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화 (10/200)

< 타이어만 다른 게 아니라니까? >

선두를 시작으로 3대의 카트가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왔다. 시작부터 현재까지 변동없는 상위권 3명.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상위권을 맹렬히 추격하는 4위 김승철. 그의 앞으로 스타트라인이 보였다. 직선주로에 올라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김승철의 카트. 그런데,

‘X발 쟤 뭐야!’

갑작스럽게 김승철의 뒤에 나타난 카트 한 대. 곧이어 자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타트라인을 먼저 통과해버렸다.

위이이이이이잉.

휑.

추월이 일어난 곳은 관중이 많은 그랜드 스텐드 부근.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갈채가 터져나왔다.

이어서 전광판에 표시된 레이스 순위.

[lap: 10/15]

(1) 김진 에프몬스터

(2) 조준원 케노

(3) 장원호 썬더젯

(4) 서준하 케노

(5) 김승철 에프몬스터

.

.

추월 장면을 본 에프몬스터의 변희상 감독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저렇게 빠른 거지?!’

10바퀴 동안 못 보던 카트였다. 오직 상위권만 주시하던 변 감독에겐 갑작스럽게 등장한 카트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순식간에 자신의 팀 선수를 제친 상황

‘직선 코스에서 저렇게 속도차가 난다고?’

다시 한번 직선 주로가 나타나자, 김승철과의 간격이 더 벌어졌다.

“감독님, 승철이 앞에 카트 수상합니다.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라요!”

옆에선 변 감독의 부하 민윤기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터스포츠에서 오랜 세월을 몸담은 두 사람에겐 너무나 생소한 장면. 동일한 카트에서 속도차가 너무 났다.

“저거 엔진 튜닝 아닙니까?”

공식 대회이니만큼 운영진에선 철저한 차량 검사를 했을 터. 엔진 성능 조작 따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까 전부 검사하는 걸 내가 봤어...”

“...그러면 승철이 집중력이 떨어진 걸까요?”

F1처럼 경주차 제작 회사가 다른 경우, 각 차들마다 성능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드라이버의 실력과 상관없이 속도차가 어느 정도 생긴다.

하지만 지금은 동일한 엔진과 부품을 사용하는 카트의 레이스였다. 속도가 비슷한 직선주로에선 추월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야... 승철이 랩타임도 현재까지 베스트야. 집중력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그럼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거죠?”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에프몬스터의 코치진이 고개를 떨궜다.

“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쏟아지는 함성. 가장 긴 직선 주로에서 다시 한번 추월이 일어났다.

“뭐야, 또 뒤집었어?! 16번! 쟤 누구야?”

“16번이면... 서준하요. 케노에서 꼬맹이가 나온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 녀석인가 봐요.”

“서준하? 처음들어 보는데. 작년에도 나왔었나?”

카트계에 몸 담은지 수십 년. 변 감독에게 서준하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이번 대회 첫 출전이래요...”

“뭐?!”

또 다시 2위 뒤를 맹추격하는 16번 카트. 연이어 발생한 추월 장면에 변 감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것 봐! 이건 승철이 카트뿐만이 아니야. 지금 다른 어떤 카트보다 빨리 달리고 있어!”

3위에 올라선 서준하의 카트. 속도가 떨어지지 않은 채 코너를 돌아 레이싱밸리를 질주했다.

“그래도... 아직 진이가 잘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예선 랩타임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에프몬스터의 김진. 안정적인 레이스덕에 사고만 없다면 김진이 1위로 들어올 수 있어 보였다.

“그렇지. 진이가 빠르긴 하지...”

“그리고 이번 대회를 위해서 엄청 고생했잖아요!”

작년 대회에서 조준원에게 한 차례 밀리긴 했지만, 오늘을 위해 엄청난 훈련을 소화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에프몬스터의 코치진은 김진의 우승을 확신했다.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에프몬스터의 피트만이 서준하의 카트를 주목하는 건 아니었다. 케노의 코치진에게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인 건 마찬가지.

“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하나 둘 셋... 헉, 앞에 7명을 제쳤습니다.”

12바퀴를 돌며 앞선 7대의 카트를 제친 서준하. 박기태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어느새 서준하의 카트가 조준원의 뒤에 바짝 붙어버렸다.

“야야, 쟤들 저러다 둘이 부딪히는 거 아니야?”

조준원도 바짝 붙은 서준하를 발견하고는 쉽사리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아, 왜 저러는 거야 쟤네.”

팀이라고 무조건 양보할 순 없는 법. 개인 레이스에서 조준원이 서준하에게 양보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아, 1,2위이면 얼마나 좋아. 사이좋게 끝까지 들어오면 되는 거잖아!”

같은 팀에서 1,2위를 차지한 두 선수가 다른 카트의 추월을 디펜스하며 승기를 잡는 일. 케노에겐 이게 최상의 시나리오였고, 성 감독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어어!”

레이싱밸리의 첫 번째 헤어핀에 들어서려는 케노의 카트들.

그리고 서준하의 카트가 조준원의 바깥쪽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서준하가 심상치 않은데요?!”

조준원의 바깥쪽으로 핸들을 꺾는 서준하의 모습이 주현우의 눈에 포착됐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코너가 급한 헤어핀. 그 뒤로 연이어 코너를 둔 상황에서 추월은 불가능해 보였다.

‘준하 녀석, 설마 저 헤어핀에서 하려는 건 아니겠지?’

부우우우웅.

위이이잉.

헤어핀 직전 조준원의 바깥으로 치고 나가는 서준하의 카트.

“안 돼! 저건 무리야, 급코너에서 저 속도론 둘 다 부딪힌다고!”

불길한 예감을 느낀 성 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너무 비좁아! 쟤 왜 저래!”

두 카트의 바퀴가 부딪히기 일보직전.

부우우우웅.

끼이이익.

드리프트 상태를 유지하며 헤어핀을 빠져나오는 서준하의 카트.

“드리프트?!”

바깥쪽 코너에서 높은 탈출 속도를 유지한 서준하. 아슬아슬하게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코너의 안쪽을 차지했다.

“와아아아아!”

서준하의 카트가 조준원을 추월하자, 또 다시 레이싱밸리에 함성이 울려퍼졌다.

“방금 뭐였죠?”

마치 드리프트 레이싱의 한 장면과 같은 코너링. 성 감독과 박기태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 드리프트 레이싱도 할 줄 알아?”

“...저런 건 알려준 적이 없는데?”

드리프트 레이싱. 드라이버가 경주차의 컨트롤을 유지하면서 의도적으로 뒷바퀴를 미끌리게 하는 기술이다.

‘이런 클래스에서 나올 테크닉이 아니야.’

과조향상태를 만들어 코너에서 높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다. 유소년 카트 레벨에선 상상도 못할 테크닉. 주현우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쓸어 내렸다.

‘준하야, 진짜 네 실력은 어디까지인 거냐....’

묘기에 가까운 드라이빙 실력. 탁월한 판단력과 뛰어난 모터스포츠 지능. 카트를 타면 탈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서준하였다.

다시 희망이 살아나는 케노팀 피트.

“이러다 역전하는 거 아니야?”

오늘 서준하가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1위를 따라잡을 수도 있어 보였다.

“기태야, 이제 몇 바퀴 남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남은 랩. 몇 바퀴가 남았느냐에 따라 1위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잠시만요!”

성 감독의 물음에 박기태도 기대에 찬 눈으로 데이터 로그를 확인했다. 하지만 어딘가 힘이 쭉 빠진 듯한 그의 목소리.

“이제 2바퀴요...”

“2바퀴라... 1위와의 차이는?”

“0.601초 차이입니다...”

“하...”

0.6초. 앞차를 따라잡기는커녕 추월은 꿈도 못 꾸는 타임. 게다가 남은 랩은 고작 2바퀴였다.

“아무리 빨라도 김진이 디펜스만 해버리면 추월은 힘들거야...”

성 감독이 얼굴을 감싸쥐며 고개를 떨궜다.

“기태야, 데이터 로그 다시 줘바.”

다운된 두 사람과 달리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주현우. 박기태로부터 데이터 로그를 뺏어들었다.

[the data log: 서준하]

laps/ laptime/ diff(선두와의 차이)

.

.

(06) 01:15:387 / 4.223

(07) 01:13:831 / 3.559

(08) 01:12:512 / 2.442

(09) 01:11:111 / 1.509

(10) 01:11:503 / 1.002

(11) 01:10:917 / 0.743

(12) 01:09:525 / 0.721

(13) 01:08:973 / 0.601

계속 줄고 있는 선두와의 차이.

‘선두보다 훨씬 빨라! 이렇게 되면...!’

게다가 이젠 김진 말고 서준하의 앞을 방해할 카트는 없었다. 어쩌면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는 상황. 주현우가 희망에 찬 눈으로 서준하의 카트를 다시 바라봤다.

부우우우웅.

2바퀴를 남기고 첫 코너로 빠져들어가는 서준하의 카트.

‘후... 한 명 남았다.’

첫 코너를 빠져나오자 앞쪽에서 노란색 선두 카트가 보였다. 유유히 레코드 라인을 밟으며 코너를 빠져나가는 김진.

‘여태껏 혼자 잘 달리셨겠다?’

서준하가 2번 코너에 접어들었다. 처음 시작보다 코너링이 더 쉬워진 느낌이 들자 자신감은 배가 됐다.

‘이전보다 핸들은 부드러워졌고.’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노면의 컨디션은 좋아졌고, 이젠 어느정도 레코드라인까지 생겼다.

‘바닥도 미끄럽지않아.’

노면이 안정화 될수록 슬릭타이어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코너링을 좀 더 과감하게 시도하는 서준하.

‘이젠 진짜 맘 놓고 달릴 수 있어.’

대담하게 내지른 코너링이 성공하자 자신감이 최대로 상승했다.

부우우웅.

위이이잉.

휑.

타이어의 불안정함 때문에 혹여나 미끄러질까, 코너링만큼은 신중을 가했던 레이스. 이제는 미끄러질까 봐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부턴 노브레이킹이다!’

좀 더 카트를 공격적으로 모는 서준하. 자신의 본래 주행 스타일인 급진적 레이싱을 시작했다.

서준하의 카트가 다시 한번 전속력으로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오자, 중계진이 난리가 났다.

“1분 07초 889! 여지껏 본 적 없는 랩타임입니다!”

“와! 무섭습니다. 10위에서 2위까지 치고 올라오네요. 이 선수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어느 구간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달리는 서준하. 코너 안쪽을 훨씬 더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서준하! 계속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페스티스트랩!”

결국 14번째 랩타임에선 본선 레이스 페스티스트 랩을 기록한 서준하. 한번 더 페스티스트 랩을 달성할 기세.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악셀을 끝까지 밟자, rpm이 치솟았다. 첫 코너를 빠져나오며 김진의 카트와 가까워졌다.

“와아아아!”

“선두 뒤에 바짝 붙은 서준하 선수. 놀랍습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1,2위 카트가 마치 차 한 대처럼 가까워지자, 레이싱밸리의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과연 우승은 누가 차지하게 될지? 마지막까지 치열한 레이싱밸리입니다!”

시선을 멀리 두자, 4번 코너가 보였다. 이내 머릿속에 그려진 추월 라인. 서준하가 브레이크 위에 놓인 왼쪽 발의 힘을 뺐다.

‘타이어만 다른 게 아니라니까?’

선두 카트 옆으로 나란히 선 케노의 카트.

‘너랑은 클라스가 달라, 비켜 꼬맹아!!!’

F1 월드 클래스 레이서 서준하가 김진의 인코스를 파고 들었다.

< 타이어만 다른 게 아니라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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