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1화 (11/200)

< 와, 페라리 캘리포니아네 >

본선 레이스 15바퀴 중 가장 짜릿했던 마지막 15랩. 피니쉬 라인 근처에서 체커 깃발이 휘날렸다.

“선두로 들어오는 16번 카트!!!”

모든 이에게 카트 레이싱의 묘미를 선사한 카트가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0위에서 출발한 서준하 선수가 1위로 들어옵니다!”

하위권에서 선두로 들어온 서준하. 그가 제친 카트는 무려 9대였다.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속도를 줄이고, 위닝 랩(경기가 끝나고 1위 선수가 자축하며 도는 랩)을 도는 서준하. 양 손을 흔들며 관중의 환호에 호응했다.

‘예쓰!!!’

새로운 생의 첫 우승.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해봤지만, 이번 우승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엄청났다.

‘내가 질 줄 알았지?’

위닝 랩을 마친 서준하가 피트로 들어서자, 케노의 피트 주변으로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서준하 멋있다!”

“와아아아!”

“여기요 여기. 같이 사진 찍어요!”

사람들을 의식한 그가 타이밍 좋게 헬멧을 벗었고, 그렇게 피트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런 거엔 익숙하지, 하하.’

수줍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모습.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서준하 선수, 오늘 우승 축하해요. 10위에서 1위까지 놀라운 역전극을 보여줬는데, 그 비결이 뭔지 말해줄래요?”

어린 서준하를 향한 배려의 말투. 관중 사이에서 스포츠 기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와 물었다.

‘기자인가?’

서준하도 잘 알고 있었다. F1에 가기 위해선 실력 말고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하단 사실을.

‘이런 걸 잘해야 해.’

언론에 노출되는 건 스폰서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실제로 어릴 적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은 선수들이 F1 무대에 쉽게 올랐다.

“제가 예선에서 10위를 기록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

다소 진지한 표정의 서준하. 차분한 말투로 인터뷰하자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저는 그때가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레이스는 조금이라도 끝났다고 맘을 먹는 순간부터 정말 떨어져 나가거든요? 아마도 그런 신념 때문에 제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환호성. 그러자 서준하가 다시  한번 트로피를 흔들어 보였다.

“정말 기뻐요! 헤헤.”

화려한 무대에 수없이 올라봤고, 수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스타 레이서는 진정성과 함께 유머 속에서 탄생한다는 사실.

‘애가 애다워야지, 너무 또 진지하면 이상하지.’

서준하가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피트 안으로 들어갔다.

***

“지금부터 로탁스 클래스 선수전 시상식이 진행되겠습니다!”

포디엄에 오르는 로탁스 클래스 2,3위 김진과 조준원. 다소 무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어서 이번 대회 최연소 우승자, 케노팀의 서준하 선수입니다!”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포디엄에 오르는 서준하가 트로피를 머리 위로 흔들자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한 사람,

‘최연소?’

한국의 젊은 투자사업가 필립 황이 시상식에 모인 인파들 틈에서 서준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유 실장님. 저 친구 몇 살인지 들으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이랬으니까, 한국 나이로 12살이네요.”

필립 황의 비서이자 오랜 사업 파트너 유건석. 그의 대답에 필립 황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옆에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작다했더니만, 어린 친구였군요.”

“보통 유소년 카트 선수들이 고등학생이니까, 그렇네요, 12살이면 많이 어리네요.”

“하하, 그래요? 이거 엄청난데요?”

서준하의 나이를 듣고는 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는 필립 황.

“늙은 꼰대들한테 하도 당해서 그런가? 저는 최연소라는 말만 들으면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아, 그러시군요.”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뭔가를 이뤄낸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필립 황. 젊은 사업가에겐 수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그래서 그런지 서준하의 우승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 유 실장님, 보통 저런 선수들이 성인이 되면 어느 대회에 나가나요?”

계속되는 필립 황의 질문. 유건석은 포디엄의 챔피언을 바라보는 필립 황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카트 선수 대부분이 F1 레이서를 꿈꾸는데, 한국은 아직 레이스가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했지요. 아직 인프라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유소년 선수들이 국내에서 열리는 투어링카 레이싱 선수 정도로 활약하죠.”

“그렇군요. 한국에선 아직 F1 선수가 없나요?”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유건석의 말을 곰곰이 듣던 필립황.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도 F1선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거기 한국보다 못 살잖아.”

“아마 대부분이 스폰서를 갖고 출발한 경우였을 겁니다. 집안이 좋다던가, 마피아 쪽 지원을 받는다던가...”

“그렇군요. 지원을 받아서 나오는 거군요.”

2010 코리아 그랑프리 덕분에 기업들의 관심이 모터스포츠를 향해 있었다. 기업의 관심이 모이는 곳은 곧 돈이 쏠리는 곳. 이를 잘 아는 필립 황도 전반적인 산업 조사차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본래 목적과 다르게 지금 필립 황의 눈빛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걸 발견한 듯 보였다.

“대표님께서 많이 아쉬우신가 보군요. 그래도 저 아이는 이번 대회 최연소 우승자니까, 아마도 좋은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유건석이 포디엄 위의 서준하를 가리켰다. 작은 꼬마 선수가 트로피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

“감독님! 아침에 대한타이어 마케팅 담당자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스폰서쉽 관련해서 감독님과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하네요.”

“뭐? 대한타이어?!”

대회를 마치고 다시 팀으로 복귀한 케노팀. 몇몇 기업들이 케노를 후원하겠다고 알려왔다.

“대한타이어면 꽤 큰 기업이잖아요. 스폰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대박인데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박기태가 흥분한 목소리로 새로운 스폰서쉽 소식을 알렸다. 이를 듣고 놀라는 성철현과 주현우.

“1년 사이에 이렇게 확 관심을 끄니까 참 얼떨떨하네.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성철현 감독. 시원한 웃음소리에 케노팀 오피스가 들썩였다.

“곧 있으면 F1이 열리니까, 진짜 작년이랑 분위기가 다르네요.”

“게다가 이번 대회는 진짜 재밌었잖아. 폭우 속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대역전극까지. 근데 또 그런 경기의 우승자가 최연소라니까 관심이 쏠릴 만하지.”

2010 F1 코리아 그랑프리. 모터스포츠의 관심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고, 흥미진진했던 이번 카트 대회덕분에 기업들이 카트 종목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난, 이번에 현우한테 정말 고마워.”

“에헤이, 감독님 또 진지모드 들어가셨다.”

“현우, 너 없었으면 나도 이번 결정 내리기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준하를 팀으로 데려와서 대회까지 내보내는 추진력까지. 정말 대단하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냥 준하가 잘 타준 거밖에 없어요.”

비인기 스포츠의 작은 팀 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큰 힘이 된다. 케노팀 사무실에선 계속 되는 호재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우우우웅.

두두두두두둥.

그때, 사무실 밖으로 들리는 터보 엔진음. 박기태가 벽에 기대 창밖을 내다봤다.

빨간색 컨버터블 슈퍼카 한 대. 노란색 말 한 마리가 그려진 엠블럼이 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와, 페라리 캘리포니아네.”

V8 터보엔진을 사용한 2010년형 페라리의 슈퍼카. 4억에 달하는 가격 덕분에 한국에선 보기 드문 차였다.

“야, 현우야. 누가 온다고 했나?”

“음, 모르겠는데요.”

따로 약속도 없이 찾아온 손님. 차 문이 열리고, 고급스런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누구죠?”

“그러게, 저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창문 밖으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코치들.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가 사무실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똑똑.

케노팀 사무실 문이 열리고 남자들이 들어왔다.

“유소년 카트팀, 케노가 맞나요?”

“맞아요, 근데 누구신지...?”

당당한 풍채의 남자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어리둥절한 케노팀 코치진들.

“안녕하십니까. PH인베스트먼트의 유건석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PH인베스트먼트요?”

“일단 여기 앉으시죠.”

케노팀 사무실을 찾은 필립 황의 비서, 유건석.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아 성 감독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난 대회에서 저희 회사 대표님과 함께 레이스를 관람했습니다. 케노팀 선수들이 아주 훌륭하더군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몇 분간의 대화에서 케노를 후원하고 싶다고 밝힌 유건석.

“다름이 아니라, 저희 대표님께서 유소년 카트팀에 큰 관심을 보이셔서 제가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후원 방식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카트 부품비 지원과 운동 환경 개선금 지원을 약속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이은 후원 제안에 케노팀 코치진의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잠시 머뭇거리던 유건석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날 우승했던 선수를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어느 클래스 선수를 말씀하시는 건지...?”

그날 대회에서 케노는 여러 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성 감독이 상황 설명을 하며 누구를 말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최연소 타이틀로 우승한 선수가 있지 않았나요?”

“아아, 서준하요. 잠시만요. 아직 안 갔으려나...”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성 감독.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지금 체력 훈련이 끝났답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올라 올 겁니다.”

서준하를 기다리는 동안 코치진은 유건석이 타고 온 페라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근데 바깥에 저 거 페라리 아닙니까? 한국에서 보기 드문 모델인거 같은데.”

“아, 저희 대표님 차입니다. 저걸 몰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모터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페라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필립 황은 자신의 슈퍼카를 내어줬다.

잠시 후.

철컥.

문이 열리고 서준하가 들어왔다.

그리고 서준하에 눈에 들어온 중년 남성. 고급진 슈트와 정갈한 헤어가 인상적이었다.

‘밖의 페라리 주인인가 보네.’

오는 길에 주차된 페라리를 봤다. 전생에 서준하가 타고 다닌 페라리와 비슷한 색깔과 외형이라 더 눈길이 갔었다.

“반갑습니다. 준하 선수, PH인베스트먼트의 유건석입니다.”

어린 서준하에게 존대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유건석.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PH인베스트먼트?’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이 상황. 게다가 돈냄새 풍기는 회사 이름까지.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인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유건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서준하 선수는 꿈이 뭔가요?”

전생에 서준하를 따라다닌 스폰서들, 그들이 항상 던졌던 첫 질문이 이거였다.

‘그거다.’

그의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서준하는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F1 월드 챔피언이요.”

< 와, 페라리 캘리포니아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