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린 참가자래 >
[한국 F1 꿈나무, 서준하. 2년 연속 일본 SL 코다 시리즈 우승]
-초등학교 시절 한국 유소년 카트팀 케노에서 선수 활동을 시작한 서준하는 지난 2009년, 2010년 코리아카트챔피언십 시즌 챔피언을 거둬 ‘올해의 카트 드라이버상’을 수상한 카트 천재다.
그 후로 2011년엔 한국인 최초로 일본의 간판 카트 레이스, SL 코다 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이번에 다시 또 같은 대회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카트 레이스가 정식으로 경기를 가진 지난 1998년 이후 13년 만에 한국 레이서가 국제 카트 무대에서 첫 우승을 거두면서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준 서준하. 그는 이번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고 카트 레이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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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일보 서연정 기자]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한남동의 사무실.
필립 황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 ‘서준하’를 클릭하자, 각종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슬슬 준하도 포뮬러 카를 타야하지 않나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2번씩 챔피언 자리에 오른 서준하. 필립 황의 눈엔 이제 슬슬 F1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표님.”
필립 황의 말에 유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카트만 탈 거야.”
최근 홍콩 주식 투자로 거대한 자본금을 만든 PH 인베스트먼트. 조금 더 공격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해진 필립 황은 서준하가 빨리 F1 무대에 오르는 걸 보고 싶었다.
“저번에 말해주셨던 리그가 뭐였죠? 카트 다음에 포뮬러 카로 데뷔하는 리그 있었잖아요. 포뮬러 르노였나요?”
“아, 엔트리 포뮬러요?”
“그래요 그거. 준하 이제 거기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필립 황의 판단은 적절해 보였다. 전일본 카트 대회 최상위 클래스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서준하라면, 어느 정도 포뮬러 카에 탈 실력을 갖춘셈.
유건석이 손목에 찬 시계를 가볍게 흘겨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표님. 만나서 얘기 나눠 보시죠.”
처음엔 필립 황도 서준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서준하의 작은 짐 정도만 덜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서준하는 정말로 F1 선수가 될 것처럼 행동했고, 이를 결과로 증명했다.
똑똑똑.
철컥.
“대표님, 서준하 선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필립 황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어, 준하 선수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어우, 이거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거 같아.”
반갑게 서준하를 맞이한 필립 황이 자신과 서준하의 키를 비교했다. 지난 몇 년간 부쩍 커버린 서준하의 몸. 서준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이리 앉아요.”
필립 황이 발걸음을 옮겨 서준하를 자리로 안내했다.
“준하 선수, 대단하네요. 2년 연속 챔피언이라니.”
“대표님 덕분이죠.”
“그런가요, 하하.”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유건석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참, 준하 선수. 이제 콕핏에 앉아야 하지 않겠어요?”
필립 황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콕핏이요?”
포뮬러 카의 운전석, 콕핏. 콕핏이란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놀란 눈으로 필립 황을 바라보는 서준하.
“네, F1 선수가 꿈이라면서요. 내가 도와줄게요. 이제 포뮬러에 데뷔해야지.”
연간 예산이 억 단위인 포뮬러 시리즈, 포뮬러 카부터는 카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본금이 들어간다. 그런 쉽지 않은 투자에 자신의 스폰서가 되주겠다는 필립 황.
하지만 필립 황의 말에 서준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째 반응이 없네. 빨리 한국에서 첫 F1 레이서가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앞에 놓인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 서준하. 그리곤 필립 황의 얼굴을 한번 흘겨본 뒤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대표님. 그런데 제겐 아직 대회가 하나 더 남았어요.”
서준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필립 황.
옆에 선 유건석도 당황한 표정으로 서준하를 바라봤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뇨, 그게 무슨 말이죠?”
다소 굳은 의지가 드러난 표정의 서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에 나갈 생각이에요. 포뮬러는 그 대회를 마치고 데뷔했으면 좋겠어요.”
“네? 그게 무슨 대회인데요?”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 나라별 로탁스 지역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모여 겨루는 대회로 ‘카트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카트 리그에선 최고 권위의 대회다.
당황한 필립 황에게 유건석이 대회 내용을 설명해줬다.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필립 황.
“흠, 그런 대회였군요. 근데 F1 선수가 꿈이라면서요. 빨리 포뮬러 카를 몰고 싶진 않나요? 그 대회를 꼭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카트는 카트일뿐 포뮬러 카가 아니다. F1 선수가 되고 싶다면, 최대한 빠르게 포뮬러카에 타서 기량을 쌓는 것이 유리해 보였다. 필림 황은 서준하의 의도가 궁금했다.
“현존 최고의 F1 드라이버들은 어릴적 이 대회에서 우승했어요. 제 꿈은 단순히 F1에 데뷔하는 게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차근히 자신의 입장을 밟히는 서준하.
“제 꿈은 F1 월드 챔피언이에요. F1 드라이버 중에서도 최고가 되는 거죠. 월드 챔피언이 되려면 이런 세계적인 카트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도 중요해요.”
월드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F1 최고의 팀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
명문팀일수록 포뮬러 카의 성능이 더 우수하고, 그에 따라 드라이버가 챔피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잘나가는 F1팀일수록 레이서의 수상 경력을 중요시해요.”
어릴적부터 세계 카트리그에서 주목 받지 못한 레이서는 관심 목록에 껴주지도 않는 게 현실이었다. F1을 꿈꾼다면 이 대회에서 성적을 보여야 했다.
“만약 제가 이대로 카트를 접고 포뮬러 카에 들어간다면, 카트에서 추가할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 한 줄을 잃는셈이에요.”
서준하의 말을 듣던 유건석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준하 선수의 말이 맞습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 카트 대회 우승 경력은 그렇게 의미가 크진 않습니다. 세계 카트 대회에서 역량을 보여준다면... F1팀으로부터 더 빠른 컨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죠.”
듣고 보니 서준하의 생각이 옳다는 유건석. 그도 세계 카트 선수권 대회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필립 황. 어쩌면 자신이 조급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 세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나눴고, 서준하가 사무실을 떠났다.
유건석과 필립 황만이 남은 오피스 안.
필립 황이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에선 도로 위를 걷는 서준하가 보였다.
“어때요, 유 실장님?”
“허허, 저는 좀 놀랐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려는 모습이더군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조급하지 않고 차분한 성격.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사업가들조차 서준하의 생각에 놀라고 말았다.
“아니, 그것도 그렇고. 그 포부가 엄청나. 그냥 F1에 데뷔하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
“대단한 아이입니다.”
“애 같지가 않다니까. 아주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타고 난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저는 오늘 더 확실해졌어요. 서준하랑 끝까지 가보죠.”
***
-위이이이이잉.
-끼익.
-쾅.
-퍼퍼퍽.
비디오 화면 밖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충돌음. 이어서 이곳 저곳 부서진 카트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오우...”
“준하야, 봤지? 이번에도 첫 코너에서 충돌이 났어.”
한국 케노팀의 이미지 트레이닝실.
주현우와 서준하가 전년도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의 경기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어느 트랙이건 첫 코너를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나 알아인(Al Ain) 레이스웨이만큼은 더 신중하게 레이스해야 해.”
매년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이 열리는 UAE 알아인의 레이스웨이 서킷. 메인 스트레이트 이후 각도가 급격하게 꺾인 첫 코너는 카트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자, 그리고 다음 여기.”
주현우가 리모컨을 조작해 비디오를 앞으로 넘겼다. 그리고 등장한 또 다른 충돌 장면.
“S자 커브 후에 코스가 급격히 좁아져. 욕심내서 저 카트처럼 추월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주현우가 손을 뻗어 좁은 코스 라인을 가리켰다. 한 눈에 봐도 다른 라인보다 좁은 트랙. 앞차를 추월하려던 카트가 추돌 후 트랙 밖으로 밀려났다.
‘코스가 급격히 좁아지긴 하네.’
눈을 껌뻑이며 화면을 주시하는 서준하. 좁은 구간을 다시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근데 저길 몇 살 때 가봤더라?’
이미 경험해 봤던 트랙으로 서킷의 난이도가 꽤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서킷 난이도가 있다는 걸 알고도, 꼭 저런 데서 실수를 하더라고.”
“그러게요.”
“아무래도 큰 대회다 보니까 욕심을 낼 수 밖에 없었던 거겠지.”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은 명실상부한 국제 카트대회다. 유럽 선수권에 이어 세계 왕중왕전으로 손꼽히는 최고 권위 리그. 그런 무대에선 당연히 너도나도 욕심이 앞설 수 밖에.
“네가 유럽이랑 북미 카트들이랑 겨뤄본 적 없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데, 쟤들 스타일은 저래.”
주현우가 화면에 손을 대고 공격적으로 인코스를 치고 들어오는 카트를 가리켰다.
“진로방해, 옆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건 기본이야. 공간 없어도 그냥 무대포 레이싱으로 치고 나가는 게 일반적이지.”
북미권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카트계에 뛰어들어, 트랙을 전쟁터로 생각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코너 경쟁이 치열해 경기 중단이 발생하기도 부지기수.
‘아시아 레이스랑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
주현우의 염려와는 다르게 유럽 카트를 경험해 본 서준하. 심지어는 실제 본인이 그런 급진적인 스타일의 레이서였다.
“이번에 60개국에서 264명이나 참가한다는데, 여기서 우승하려면 치열한 예선을 뚫어야해.”
“264명이요?”
“응, 역대 최다 참가자래. 전세계 실력자들은 다 나오는 거 같은데?”
걱정스런 표정의 주현우와 반대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는 서준하.
‘뭐야? 246명? 여기서 우승하면 더 눈에 띈다는 거잖아?’
레이서가 많다고 실력자가 많은 건 아니었다. 최정상 레이서 서준하에겐 대다수가 허수들에 불과했으니까.
-와아아아아!
작년도 우승자 샤를 가도가 포디엄에 오르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
영상이 끝나자 주현우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준하야, 이번 대회에선 네가 우리나라 첫 출전이라 기대가 커.”
‘오, 한국 첫 출전 타이틀 추가요.’
타이틀은 많을수록 좋다. 괜히 횡재한 느낌을 받은 서준하.
“그렇다고 너무 부담갖진 말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현우가 서준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무언가 생각난 듯한 다시 입을 여는 주현우.
“아참 그거 말고도, 네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린 참가자래...”
걱정스런 그와 달리 서준하의 입가에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응? 게다가 최연소까지? 이거 우승하면 타이틀이 몇 개야?’
< 네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린 참가자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