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화 (14/200)

< JHCD? 그게 뭐지? >

태극 마크와 함께‘KOREA’라고 표기된 피트. 서준하의 카트가 피트 인했다.

두두두둥.

두웅.

카트가 멈추고 엔진이 꺼졌다.

“와아아아아.”

카트에서 내린 서준하 곁으로 달려오는 코리아 팀 크루들. 박수와 함께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대단합니다. 서준하 선수.”

한국 대표단의 오근수 단장이 크루들 사이를 비집고, 서준하의 곁에서 섰다.

“헉헉, 저 아직 4위 맞죠?”

헬멧을 벗은 서준하의 첫 마디는 자신의 순위를 확인하는 일.

무전을 통해 순위를 알고 있었지만, 혹여나 자신의 뒤에 들어간 선수에 의해 뒤집혔을까, 걱정하며 물었다.

“아직, 순위 변동 없어. 근데, 너 괜찮은 거야?”

데이터 로그를 살피던 주현우가 멀리서 서준하를 향해 말했다.

“빨리 카트부터 봐주세요.”

지금은 자신의 몸보다 카트가 중요했다. 카트에 생긴 문제가 크다면, 내일 본선에 못 나갈지도 몰랐으니까.

“어디 봅시다.”

코리아 팀의 미카닉들이 카트를 들어 정비대 위로 올렸다. 엔지니어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크루들.

“프레임이 많이 휘었어.”

“지금 이 카트로 10바퀴를 돈 거야?!”

카트 주변에서 엔지니어들이 웅성거렸다. 특히 이번 대회 엔지니어링 최고책임자 최양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최 팀장님. 카트가 어떻게 된 겁니까?”

카트 옆으로 다가선 오 단장이 최양호에게 물었다.

그러나 오 단장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곧장 서준하 곁으로 달려오는 최양호.

“준하 선수, 진짜 괜찮아?!”

최 팀장이 직접 본 카트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심하게 휜 프레임 때문에 가만히 둔 상태에선 타이어가 바닥에 닿지 않는 상태.

그런 카트로 8바퀴를 소화한 운전자의 몸이 성할 리는 없을 터. 가장 먼저 서준하가 걱정됐다.

“카트도 중요하지만, 저 정도면 지금 준하 선수 몸 상태도 좋진 않을 텐데...”

“전 괜찮아요, 내일 카트 탈 수 있는 거 맞아요?”

“아직 자세한 건 몰라. 저 정도면 섀시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데 그건...”

당장 내일 본선을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카트 본체를 바꿀 순 없다.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암울한 상황에 최양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바꿔주세요.”

“바꿔달라니요?”

“저희 서브 카트 있죠? 그걸로 나갈게요.”

공식적으로 큰 대회에 나갈 땐 이런 상황을 대비해 카트 한 대를 더 준비한다. 하지만,

“그건 마스터용으로 제작된 거라, 준하 선수한테 너무 커.”

대표 팀에서 준비한 서브 카트는 성인용이었다, 좌석의 크기부터 패달까지 닿는 길이까지 모든 파츠가 큰 카트. 최양호는 불가능하다며 손을 저었다.

“그렇다고 저걸 탈 순 없잖아요?”

서준하가 자신의 카트를 가리켰다.

누구보다 카트의 상황을 잘 아는 건 레이서였다. 응급처치로 저 카트를 수리한다고 해도 본선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

30바퀴를 도는 본선에선 카트의 내구성도 순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고장난 카트를 바라본 최양호가 고개를 떨궜다.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뭐?”

“서브 카트 어딨죠?”

무언가 생각난 듯한 서준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내일 열릴 본선 레이스를 앞두고 알아인 로타나 호텔에서 작은 컨퍼런스가 열렸다.

“샤를 선수, 전년도에 이어 이번에도 예선 1위로 폴포지션을 차지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

.

“이번 대회 또 다른 우승 후보죠. 이탈로 선수,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컨퍼런스에 모인 스포츠 기자들의 관심이 오직 두 우승후보에게로 쏠려 있었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일본의 카트 월간지 JP카트에서 서준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예선 1랩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경기가 중단될 뻔했는데, 왜 그런 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팀에서 통역을 했지만, 서준하는 괜찮다는 표시와 함께 곧바로 질문에 답했다.

“카트의 결함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마지막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일어났고, 그렇게 크러쉬가 났습니다.”

서준하의 답변에 놀란 건 한국의 한국 코치진들이었다. 답변 내용에 놀랐다기보단 처음 듣는 유창한 영어 실력에 놀라고 말았다.

“충돌 이후에 카트가 많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괜찮은가요?”

“스핀 이후 충돌이 있었지만.”

‘스핀’이라는 단어에 히죽거리는 유럽 선수들. 하지만 서준하는 그런 행동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본선 레이스에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2년 연속 일본 리그에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서준하. 일본의 카트 기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이번 대회 자신 있는 모습인데, 몇 위가 목표인가요?”

이어진 질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서준하.

“개인적으로 그 질문은 조금 무례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컨퍼런스에 모인 대부분의 기자들이 서준하의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자님, 레이스 선수라면 당연히 모든 경기에서 1위를 목표로 하는 거 아닌가요?”

당당한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보는 서준하,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여기에 우승하러 왔습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목표를 드러낸 서준하. 그러나 우승이란 말에 유럽 선수들이 다시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흐흐흡.”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비웃듯이 말했다.

“소원 말고 목표 말이야, 크큭.”

곧바로 서준하가 소리가 난 곳을 흘겨보자, 팀 팻말이 보였다.

‘프랑스? 너희 지금 웃었냐?’

그중 대놓고 크게 비웃는 선수의 네임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샤를 가도? 처음 듣는 이름인데?’

***

“여보, 준하 언제 온데요?”

일본도 아니고 먼 중동 땅이었다. 아들이 다 컸다고 하지만, 준하의 부모 서태범과 김희연의 눈엔 여전히 어린 아이였다.

“팀장님이 인터뷰 끝나면 곧바로 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매니징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 있다고 해도 멀리 타지로 대회를 나간 아들이 걱정됐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 따라왔다.

“오늘 그렇게 힘든 경기였다는데...”

“그러니까요. 빨리 와서 좀 쉬어야 할 텐데.”

예선을 마친 아들이 숙소로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조바심이 났다. 준하의 대회 참가차 이곳에 왔지만, 쉬는 시간만큼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근데 준형이 너 뭘 그렇게 훔쳐보냐.”

창문을 통해 숙소 바깥을 유심히 바라보는 준형을 보고, 태범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뭘 그렇게 놀라? 뭐야 뭔데?”

아버지의 물음에 살짝 당황한 준형. 그런 준형의 곁으로 태범이 다가섰다.

“하 요거 요거. 누가 사내 놈 아니랄까봐.”

“...아니에요. 그냥 사람이 많아서.”

“하하, 쑥스러워 할 거 없어. 네 나이 땐 다 그런 거지 뭐.”

“...뭐가요.”

“오, 잠깐만, 쟤 괜찮은데? 너 저 여자애 보고 있던 거지?”

창밖에선 회견장 주위를 둘러싼 인파와 함께 주로 여성들이 많았다. 태범의 말에 준형의 볼이 더 벌게졌다.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냐, 얼굴은 시뻘게가지고, 자식.”

맨다리가 드러난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 꽉 끼는 하얀 상의로 드러나는 몸매 덕분에 한눈에 띄었다.

“으이구, 으이구!”

“아! 왜 때려. 크크큭.”

연애시절부터 장난기 많았던 남편. 태범의 곁에 다가선 희연이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나저나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꽤 많네요.”

“그러게, 저기 저 위쪽에는 다 한국인인데?”

희연이 회견장 문 위쪽으로 모인 인파를 가리켰다. 저마다 한 손에 태극기를 쥔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 옆에 저건 뭐야. 뭘 저렇게 흔들어 대는 거지?”

“아, 부채네. 부채.”

“제이, 에이치. 그 다음, 또 뭐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태극기를 든 인파 옆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 특히나 모두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씨, 디. 마지막 두 글자가 씨랑 디네!”

“JHCD? 그게 뭐지?”

“준형이 너는 뭔지 알아?”

“JHCD? 처음 들어보는데요.”

“뭔데 다들 저걸 다 하나씩 들고 다니지.”

“브랜드 아니겠어요. 요즘 새로 인기 끄는 브랜드인가?”

창가에 가까이 붙은 세 사람. 태범은 아예 창문을 열어 고개를 빼놓고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와아아!”

“와아아아!”

문이 열리자, 그 앞에 모인 인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인가 본데.”

“우리 준하도 있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 얼굴이 잘 안 보여.”

알록달록한 레이싱 슈트. 저마다 자신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회견장 밖으로 나왔다.

“와아아아, 오빠아아!”

“서준하아아아아!”

회견장 문밖으로 나오는 행렬의 끝으로 한 선수가 나오자, 소리가 더 커졌다. 태극마크를 단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레이서. 서준하였다.

“어머, 우리 준하다. 준하 나왔네!”

“이야, 우리 아들 인기 짱인데?!”

인파의 절반 이상이 서준하의 등장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지르는 여성까지.

“어, 아까 걔다, 걔.”

태범이 손을 뻗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준하의 옆으로 다가서 사진을 찍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와, 쟤도 준하 팬인가 봐.”

“이야, 우리 아들 인기 많은데?”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웃는 얼굴로 여자 곁에선 서준하.

“오, 준하. 여자 허리에 손 올리는 거봐. 자연스러운데?”

일본에 진출하면서부터 언론에 노출된 서준하. 잘생긴 얼굴과 훈훈한 인상 덕분에 단기간 빠르게 여성 팬들을 확보해버렸다. 멀리 타지까지 쫓아오는 팬들이 제법 될 정도.

“이야, 저 부채 LED였네.”

“그러네, JHCD.”

서준하의 등장에 요란하게 흔들리는 부채들. 팬들이 들고 있던 부채에 쓰인 ‘JHCD’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철컥.

“왜요, 무슨 일이야.”

맞은편 방에 있던 장윤호도 함성을 듣고 준형 가족의 방으로 넘어왔다.

“아, 준하구나.”

윤호의 눈에도 팬들이 서준하를 향해 부채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팬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숙소로 걸음을 옮기는 서준하.

“야야, 윤호야, JHCD가 뭐냐?”

윤호를 발견한 준형이 빨간 LED 불빛의 정체를 물었다.

“으응, 그거 별 건 아닌데...”

준하를 따라다니며 이런 광경이 익숙했던 윤호. 이젠 이런 모습이 지겹다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JHCD, 준하충동. 팬클럽 이름이야.”

“팬클럽? 준하가 팬클럽도 있었어?”

“생긴 지 꽤 됐어요. 아마 한국에서 2번째 챔피언 됐을 때 생겼을걸요?”

“근데 준하충동? 이름이 특이하네?”

“특이하죠. 그게 무슨 뜻이냐면...”

철컥.

다시 한번 열리는 문. 서준하가 들어왔다.

“어, 준하 왔...”

“빨리 문 닫아!”

그의 뒤로 JHCD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오빠아아아아!”

“서준하아아아!”

서준하의 긴박한 모습에 말문이 막힌 가족들. 이를 본 윤호가 말을 꺼냈다.

“준하충동, 글자 그대로 서준하를 향한 폭발적인 반응을 뜻해요...”

닫힌 문 너머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팬들.

“준하충동... 진짜 이름 잘 지었네...”

< JHCD? 그게 뭐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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