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6화 (16/200)

< 그것 말곤 지금 저 속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

충돌 지점을 예측해 일부러 바깥쪽으로 크게 돈 서준하. 그의 카트가 순위를 지키며 첫코너의 혼란 속을 빠져나왔다.

‘레이스 웨이에서 카트 한두 번 타니.’

급격하게 꺾인 코너 바깥으로 치고 나오는 서준하의 카트. 덕분에 첫 코너에서 빠르게 벗어난 서준하가 앞차를 향해 달렸다.

-잘했어, P3다!

혼란스러운 첫 코너를 빠져나오자 주현우가 환호했다. 게다가 카트 한 대를 제친 상황.

“와아아아아!”

“3위!!!”

레이스웨이의 첫 코너에서 자기 순위를 지키며 돌면 앞으로 남은 랩이 편해진다. 3위 진출에 한국팀이 환호했다.

“아!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인가요? 레이스웨이에선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크러쉬가 나는군요.”

“정말 카트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후미에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합니다.”

대시를 잘하면 한 대쯤은 추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몇 대나 앞지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하위권일수록 1코너에 가기 전에 몇 대쯤 추월하겠다고 벼르며 도전하기 마련. 하지만 무리한 발진은 크러쉬를 낼 뿐이었다.

“선두에선 프랑스와 이탈리아 선수가 평온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도 역시 샤를과 이탈로의 대결인가요?”

첫 코너에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두 2명. 다른 카트와의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번 대회 DD2 클래스 최연소 참가자죠. 한국의 서준하 선수가 3위를 달립니다.”

“오호, 한국팀. 바깥에서 잘 빠져나갔군요. 이거 의외인데요.”

경기장 화면으로 서준하가 첫 코너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리플레이 됐다. 한국 팀의 선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레이스웨이. 심지어 해설자조차 서준하의 순위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코리아? 운이 좋았네.”

“쥐새끼처럼 바깥으로 잘 빠져나가는구만.”

“말도 안 돼, 저딴 팀이 3위라고?”

많은 갤러리가 한국 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냈다.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하지만 2번째 바퀴를 마친 서준하의 카트가 계속 빨라졌다.

[rpm: 12490]

감각적인 레이싱 테크닉 덕분에 서준하는 소리만 듣고도 변속이 가능했다. 덕분에 직선 주로에서 단 한순간도 변속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고, rpm은 순식간에 13,000 향해 치솟았다.

“이번에도 한국 팀입니다. 모든 코너에서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요!”

중계석에 잡힌 서준하의 개인 화면. 개인 카메라가 장착된 시스템 덕분에 카트의 속력이 서킷 전체로 드러났다.

“조금씩 선두권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현재 트랙 위에서 가장 빠른 서준하 선수!”

서준하의 카트가 3바퀴를 더 돌며 모든 랩에서 베스트 랩을 기록했다.

***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절대 못 따라 잡겠다. 선두랑 실력차가 있어.”

“그니까. 하... 이탈로 아쉬운데?”

페라리의 F1팀 주니어 육성프로그램 담당자 치로. 2년 연속 샤를에게 뒤진 이탈로의 모습에 아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오랜만에 페라리에 탄 이탈리아 선수를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F1팀을 소유한 국가는 자국민 드라이버를 선호한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가 만든 경주차에 이탈리아 선수가 타는 건 더 큰 마케팅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

“사실상 여기서 우승 못하면 F1팀 문턱에는 얼씬도 못하는 게 맞지.”

이탈리아에서 나온 유망주가 페라리 F1팀에 들어온다면 더 없이 기쁠 상황. 이탈로의 부진이 더욱 아쉬운 페라리 관계자들이었다.

“이번에도 샤를인가?”

“소문으론 레드불 주니어 프로그램에 싸인했다는 얘기가 있어.”

“확실한 거야? 이번 대회에도 나온 거 보면, 다른 컨택을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이번에 샤를을 못 데려오면, 나중에 F1에서 리스크가 클 텐데...”

F1 레이서라면 모두 카트 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꼬마 포뮬러라고 불리는 카트는 F1의 축소판. 이곳에서의 실력이 그대로 F1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근데 한국은 의외네. 랩타임봐 봐. 계속 빨라지고 있어.”

“첫 출전에 3위라니, 좀 타는데?”

“근데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몰라. 시작부터 첫 코너에서 다른 카트가 많이 나가 떨어졌잖아.”

현재까지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한국팀. 하지만 페라리 관계자들은 첫 출전인 서준하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흠, 내가 보기엔 전부 운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충분히 포디엄에 오를 실력이야.”

동료들 곁에서 숨죽여 서준하의 카트를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치로가 그렇다니까, 뭐 잘 타는 것 같기도 한데...”

“아냐, 좀 더 봐야겠어,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

모터스포츠와 거리가 먼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서준하라는 생소한 이름. 현재 3위에 올라선 한국팀의 활약에도 페라리 관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드라이빙 스타일이 엄청 부드러워. 차가 없으면 레코드라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져나가. 그리고...”

공격적이면서도 깔끔한 한국의 카트. 그런 카트가 치로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다가도 앞에 카트만 보이면 엄청 공격적으로 덤벼드는 게, 페라리 팬들이 좋아하는 레이싱 스타일이야.”

공격적인 성향의 레이서일수록 모터스포츠 팬들이 열광한다. 특히나 페라리의 팬, 티포시는 팀에게 언제나 급진적인 레이스를 펼치는 레이서를 선호했다.

“진짜 특이한 건 카트야. 흠... 어딘가 좀 달라 보인단 말이지...”

선두에선 샤를이 압도적인 상황.

이제 모두의 관심은 서준하와 이탈로에게 향해 있었다.

“한국팀 카트, 저거 잘 보면 직선 주로에선 유난히 빠르지 않아?”

치로가 손을 뻗어 서준하의 카트를 가리켰다.

“다른 카트하고 속도차가 엄청나. 직선 주로에서 올린 속도 때문에 랩타임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

치로의 말대로였다. 서준하의 카트는 홈과 백 스트레치에서 속도가 가장 빨랐다. 게다가 그렇게 끌어올린 속도가 코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네, 코리아 카트가 가장 빨라!”

“다른 팀 카트들은 레이서가 속도를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치로의 말처럼 다른 팀 카트들은 카트가 혹사 당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근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카트 엔진은 다 똑같을 텐데... 와 뭐냐 진짜 정말 코리안만 저렇게 빨라.”

잠시 고민에 빠진 페라리 관계자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아마...”

이내 자신의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문지르는 제스처를 보이는 치로.

“응? 그게 뭐지?”

치로의 이상한 손동작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보지 못하는 동료들. 그 모습을 본 치로가 답답하단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이 니들을 조이는 거지!”

세팅을 통해 출력 변경이 가능한 카뷰레터 방식의 엔진. 하이 니들을 조이면 고속 주행시 출력을 높일 수 있다.

“뭐? 하이 니들을 조여?”

엔진 세팅을 조정해 출력을 높이는 건 경기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엔진 세팅을 바꿔 출력을 높인 카트는 해당 클래스 레이서의 컨트롤 범위를 넘어선다.

“그럼 지금 한국의 레이서가 그런 카트를 운전하고 있는 거라고?”

“게다가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그렇지.”

치로의 말에 놀란 페라리 동료들. 그런 방식은 단거리 최대 속도를 측정할 때 말곤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나 대회라면 더욱 더 지양하는 방식.

“에이 말도 안 돼! 그걸로 레이스하는 건  F1 레이서들도 어려워 하는 거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관계자들. 하지만,

“나도 알아. 그냥 추측이야. 근데 그것 말곤 지금 저 속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

“감독님, 지금 이탈로의 카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타이어를 과도하게 써서 그런지 랩타임이 계속 떨어집니다.”

이탈로로부터 카트의 상태를 전달 받은 레이싱 엔지니어가 마시모 감독에게 이를 알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경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어떻게 벌써 타이어에 문제가 생겨.”

초반부터 선두 샤를을 잡기 위해 여러 번 추월을 시도했던 이탈로. 결국 타이어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레이스 중반 위기에 놓였다.

“감독님 그리고... 3위와의 격차가 점점 더 좁혀지고 있습니다.”

“3위?”

“한국팀 카트가 3바퀴 연속 베스트랩을 기록했습니다. 이 페이스로 가면 이탈로를 추월할 것 같습니다!”

데이터로그를 살피던 드라이빙 코치가 마시모 감독에게 현재 트랙의 상황을 알렸다.

“한국팀, 경기 전에 카트를 바꿨다고 하지 않았어?”

“네, 맞습니다.”

“페달에 발굽 설치하는 그런 개조였다면서?”

“네, 크기 조절을 한 거 같습니다.”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그런 카트로 이탈로를 따라온다고?”

마시모 감독이 다시 한번 데이터로그를 확인했다.

“혹시 엔진 튜닝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계속해서 랩타임을 줄여나가는 한국팀 카트.

“오피셜 2명이 그 자리에서 전부 확인하는 걸 저희도 봤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었지?”

“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시모는 악조건 속에서도 빨리달리는 한국팀의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왜 이걸 한 번에 못 알아듣나? 검사했다는 그 오피셜들 말이야!”

“그것까진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동양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이 상황을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고, 결국 한국팀이 심판을 매수해 차량 성능 검사를 피해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한국이 이번 랩에서 0.01초 더 줄였습니다!”

“뭐?!”

랩 타임을 확인한 엔지니어가 다시 한번 이탈로와 서준하의 격차를 알렸다.

“다음 랩이면 이탈로를...”

그리고 그때,

“서준하의 카트가 이탈로 선수 뒤를 쫓습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두 선수!”

서준하의 카트가 이탈로의 뒤에 바짝 붙었다.

“아! 따라 붙었습니다. 한국의 서준하. 이탈로 뒤에 바짝 붙었습니다!”

흥분한 중계진들 때문에 레이스 웨이의 모든 갤러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슬립스트림! 슬립스트림을 이용하려나 본데요!”

차량이 빠르게 달릴 때 차체 후면에 공기저항이 줄어드는 현상, 슬립스트림. 이를 이용해 순간적인 상승 속도로 뒤차가 추월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어어, 어! 너무 가까워요! 이러다 부딪히겠는데요!”

타이밍을 놓치면 크러쉬를 낼 수 있기에 레이서의 고도의 집중력과 레이싱 스킬을 요한다. 일촉즉발의 상황!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하나처럼 딱 붙은 두 대의 카트.

서준하가 휠을 움켜 잡고 앞의 코너를 바라봤다.

‘지금이다!’

이탈로의 뒤로 갑자기 튀어나온 카트 한 대. 쏜살같이 코너의 안쪽을 파고 들었다.

-들어가!!!

슬립 스트림에 들어간 서준하의 카트. 한계치 이상의 속도를 뽑아내며 이탈로를 추월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 첫 출전인 한국 팀이 2위로 올라섭니다!”

드디어, 2위에 올라선 서준하.

-그 엔진 세팅으로 방금 전 그 코너링! 미쳤다! 진짜 잘했어! 준하야!

흥분한 주현우의 목소리. 하지만 서준하의 귀로는 무전이 들리지 않았다.

“...!”

눈앞으로 자신의 시선을 뗄 수 없게끔 만드는 카트가 있었으니,

[FRANCE TEAM. CHARLES]

그리고 곧 컨퍼런스에서 자신을 강하게 비웃었던 샤를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가 제일 크게 웃던 놈이지?’

< 그것 말곤 지금 저 속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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