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니쉬 라인을 밟을 때까진 모르는 거야 >
사이드미러를 통해 후방을 확인한 샤를.
‘따라왔어?’
태극 마크가 붙은 카트를 보고 살짝 당황했다.
‘그래봤자, 남은 랩은 3바퀴. 공간만 안 주면 내가 이긴다.’
레이스 막바지. 상대에게 남은 기회는 많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샤를 가도.
“한국 팀, 무섭습니다. 한국의 서준하 선수가 이탈로를 제치고 2위를 달립니다.”
“게다가 한국은 이번 대회 첫 출전인 팀이거든요?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에서 첫 출전한 팀이 포디엄에 오른 경우는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한국 팀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레이스는 어느덧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있습니다.”
한국팀의 이변에 레이스웨이 서킷의 분위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부우우웅.
위이이잉.
28랩의 스타트 라인을 통과한 서준하. 데이터로그에 랩타임이 측정됐다.
-0.501초 빨라졌어. 좋아, 준하야!
부우우웅.
위이이잉.
“와아아아아아!”
“코리아, 코리아! 이제 한국이 샤를 뒤에 바짝 붙었습니다!”
가까워진 서준하와 샤를의 카트. 흥분한 중계진의 방송과 함께 관중의 함성이 커졌다.
-크러쉬 조심하고, 공간 보이면 바로 들어간다!
“카피.”
시선을 멀리두고, 전방 트랙의 상황을 파악하는 서준하.
‘1번 코너. 가장 좁긴 해도 여기가 가장 추월하기 쉬워.’
속도를 줄이지 않은 서준하가 샤를의 우측을 노려봤다.
‘지금!’
악셀을 밝아 아웃라인으로 치고나가려던 그때,
우우우웅.
‘...!’
“아! 오버테이크를 시도하려는 서준하를 막아서는 샤를입니다!”
-뭐야, 저 자식. 디펜스가 좋은데?
레이싱 스킬 중 디펜스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 받는 레이서, 샤를 가도. 우측으로 돌아나가려는 상대 카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미리 공간을 차단했다.
“아, 역시 샤를 가도입니다. 절대 공간을 내주지 않는군요.”
-속도가 떨어졌어 준하야. 다음 랩을 노리자
“카피.”
추월을 실패한 서준하. 덕분에 불리한 코너링으로 카트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2바퀴 남았어. 1번 코너말곤 무리 하지마 준하야.
“카피.”
모든 코너에서 추월이 가능하지만, 성공 확률이 높은 코너는 따로 있는 법. 주현우의 눈엔 급격한 1번 코너 말곤 추월이 힘들어 보였다.
‘1번 코너가 가장 좋긴 한데...’
모든 코너에서 추월을 시도할 필요는 없는 없었다. 레이스 막바지 남은 1명만 추월하면 되는 상황. 한국팀은 1코너만을 노리기로 했다.
-지금 이 페이스 유지해
“카피.”
무리하게 오버테이크를 시도해 실패했다간, 페이스를 잃고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뒤따라오는 이탈로에게 다시 기회를 내줄지도 모르는 상황.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오우! 서준하 선수, 트랙 밖으로 살짝 벗어났습니다!”
인-아웃 라인을 계속 바꿔가며 방어전을 펼치는 샤를. 덕분에 서준하가 브레이킹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이탈로! 이탈로도 따라 붙었습니다! 이거 마지막까지 순위를 예측할 수 없겠는데요?”
속도가 늦춰지자 3위 이탈로가 어느새 선두 대열에 합류했다. 점점 선두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레이스 웨이.
***
“이제 남은 랩은 2바퀴!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오는 카트들!”
다시 한번 서준하의 시야에 들어온 1번 코너가 보였다.
‘왔다. 1번 코너!’
서준하가 홈 스트레치에서 속력을 최대로 올렸다.
“1번 코너를 앞둔 카트들!”
“한국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요!”
부우우웅.
위이이잉.
다시 한번 속도를 올리고 샤를의 뒤를 빠져나가려는 서준하의 카트. 선두의 우측으로 나아가려던 그때,
‘또 막았어?’
샤를의 카트가 다시 한번 돌아나가는 서준하를 막아섰다.
‘그러면 이쪽!’
이번엔 방향을 틀어 왼쪽 인코스를 시도하는 서준하. 그런데,
“아웃라인을 디펜스하는 샤를 가도!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꿔 인코스를 막습니다!”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서준하가 지나갈 공간을 절대 내주지 않는 샤를 가도.
-저건 디펜스 무브잖아!!! 저 새끼 뭐야! 미친놈 아니야!!!
샤를의 드라이빙에 소리를 지르는 주현우. 선두가 방향을 바꿔가며 서준하의 진로를 방해했다. 대회 룰에 어긋난 디펜스 무브가 명백한 상황.
“아, 저건 디펜스 무빙아닌가요?”
뒷 차량은 추월을 막기 위해선 단 한 번의 방향 전환이 허용된다. 그 이상의 디펜스는 상당히 위험한 사고를 낼 수 있기에 F1을 비롯한 모든 레이싱 경기에서 금지된 행위.
“우우우우우.”
샤를의 비신사적인 행위에 갤러리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저번 대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적 있었던 샤를인데요. 페널티가 나올지?”
모두가 페널티를 예상하는 가운데,
“흠, 경기 그대로 진행되는 것 같군요. 심판진은 정당한 방어라고 보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도 서킷 위엔 아무런 깃발도 흔들리지 않았다.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 모두 당황한 상황.
-이런 양아치 같은. 저건 디펜스 무브가 맞잖아!!!
격분하는 주현우 코치. 속도를 올리고 들어온 서준하가 브레이킹 하지 않았다면 추돌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황스러운 건 서준하도 마찬가지.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약은 짓을 골라하네.’
어이없는 상황에 서준하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한번 샤를의 뒤에 바짝 붙었다.
‘한번 더 막으면, 그땐 밟고 간다.’
***
“프랑스의 샤를! 남은 랩에서 절대 공간을 내주지 않는 작전에 들어간 듯합니다!”
샤를의 무빙을 지켜본 프랑스 팀 피트.
“개소리들 하지 말라고. 저게 무슨 디펜스 무브야!”
리플레이 영상에 잡힌 샤를의 카트. 그 모습을 보던 프랑스의 쥘 단장이 흥분하며 탁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금 저 코너에서 브레이킹을 하려면 저렇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고! 안 그래, 마크?”
“...”
쥘 단장이 마크 감독을 바라보며 동의하냐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감독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저건 디펜스 무브가 맞아...’
반칙을 했다면 이대로 1위로 들어와도 패널티를 먹을 게 분명한 상황. 샤를의 돌발 행동에 프랑스팀의 마크 감독은 혼란스러웠다.
“와아아아아!”
프랑스 피트를 가득 메운 환호와 함성. 레이스웨이의 갤러리가 다시 한번 뜨거워진 듯했다.
“샤를 선수의 랩타임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서준하 선수가 워낙 빠르니 샤를이 느리게 보일 정도네요!”
레이스웨이의 분위기는 쥘 단장의 예상과 정반대로 치닫고 있었다. 계속 빨라지는 서준하의 랩타임. 이제는 갤러리 모두가 서준하의 추월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 같은 팀한테 따라 잡힐 거야?! 무슨 수를 써보라고!”
경기는 이미 막바지, 팀이 트랙 위에 레이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끝까지 집중하라는 무전뿐이었다.
“지금 이 경기에 들어간 돈이 얼만지 알아? 너희 똑바로들 안 할 거야!!!”
흥분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마크를 쏘아보는 쥘 단장. 그 바람에 프랑스 팀 피트 안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런데,
“어?!”
화면을 주시하던 마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코너를 향해 달려가는 샤를 가도! 3번 코너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 진입을 시도하는데요!”
해설자의 말과 동시에 코너를 빠져나온 샤를의 카트.
“방금 전 샤를의 코너링 장면, 뭔가 이상한데요!”
“이번에도 진입 위치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지금 샤를의 코너링. 저거 숏컷 아닌가요?”
중계진이 연달아 샤를의 트랙 진입 위치를 지적했다.
“또 뭐가 문제라는 거야! 왜 자꾸 샤를한테만 저러는 거냐고!”
쥘 단장이 손에 쥔 물병을 화면으로 던지며 욕을 해댔다.
‘숏컷?!’
정상적인 코스가 아닌 지름길로 가로 질러 이득을 보는 행위. 코스를 벗어나 트랙 바깥쪽으로 경주차가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옆에서 밀쳐서 벗어난 것도 아니야.’
마크의 눈에 들어온 샤를의 카트. 4바퀴 모두가 3번 코너의 바깥쪽 트랙을 벗어난 게 보였다.
‘저건... 일부러...’
다른 카트에 밀려 벌어난 상황이 아니었다. 마크의 눈엔 샤를의 고의성이 다분해 보였다.
‘저렇게 해서라도 1위 자리를 지키겠다는 건가?’
서준하는 빨랐고, 샤를은 불안했다.
숏컷이나 디펜스 무브와 같은 반칙 행위를 해서라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샤를. 마크의 눈엔 샤를은 이미 평정을 잃은 레이서였다.
‘무너진 건가? 이렇게 되면 경기....’
프랑스, 아니 유럽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 레이서 샤를. 그런 샤를이 트랙 위에서 압박감을 느낄 정도면 굉장한 클래스의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서준하라고 했지? 심지어 샤를보다 어려.’
마크 감독에겐 샤를을 조급하게 만드는 한국의 레이서가 눈에 띄었다.
***
“경기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샤를은 굉장히 지저분한 레이스를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3대의 카트들. 이제 마지막 바퀴입니다!”
-준하야, 페이스 유지해! 어차피 선두는 패널티를 받을 거야. 추월 시도할 필요 없어 레이스에서 패널티를 받으면, 경우에 따라 결승점을 통과한 레이서의 순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샤를의 반칙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
“...”
무전에 답이 없자, 주현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왜 말이 없어!
추월을 시도해 1,2위 경쟁하는 걸 틈타 3위가 치고나올 수도 있는 상황. 서준하가 손해를 볼 필요는 없었다.
-절대 무리하지 마! 이대로 2위로 들어가도 네가 이긴다고!
자신의 판단에 확신하는 주현우. 하지만 여전히 서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 이대로 들어가면 될까?’
주현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튜어드(심판)의 판정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피니쉬라인을 밟을 때까진 모르는 거야.’
공정한 F1 리그에서조차 여러 변수를 경험했던 서준하. 레이스는 끝날 때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첫 세계대회에서 몰수승은 별로 잖아?’
추월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1번 코너를 지나 2번 코너로 진입하는 카트들.
“서준하! 다시 나옵니다! 서준하!”
-뭐하는 거야! 서준하!!!
모두가 더 이상의 추월을 예측하지 않을 때, 2번 코너에서 서준하가 샤를의 옆으로 치고 나왔다.
“바깥쪽에서 속도가 더 빠른데요오오오!!!”
넓은 2번 코너 바깥쪽으로 돌아 나오는 서준하. 예상치 못한 추월시도에 샤를이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휑.
2번 코너를 빠져나와 나란히 선 서준하와 샤를의 카트.
“왼쪽 샤를! 오른쪽엔 서준하! 이렇게 되면 다음 코너에서어어어!!!”
시계 방향으로 돌아나가는 3번 코너.
“인코스! 인코스! 인코스!!!”
“한국의 서준하가 먼저 인코스로 들어갑니다!”
두 대의 카트가 코너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내가 카트 경력만 12년차야.’
전생 7년, 현생 5년. 도합 12년의 카트 경력. 서킷 위에 그 누구보다 오래 카트를 탄 서준하.
‘아참, F1도 3년 했다. 나와 이 XX야!!!’
최후의 오버테이크. 레이스웨이의 모든 갤러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피니쉬 라인을 밟을 때까진 모르는 거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