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8화 (18/200)

< 계속 카트 탈 건 아니잖아? >

똑똑.

“준하야, 안에 있어?”

끼익.

철컥.

방문이 열리자 호텔 복도를 밝히는 불빛이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내려와서 저녁 먹자. 오늘 오 단장님이 거하게 쏘신대.”

침대 위에 쓰러진 서준하를 발견한 주현우. 푹신한 배드에 앉아 서준하의 어깨를 흔들었다.

“흐엄... 네 코치님.”

서준하가 하품을 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저녁 7시에 가까워진 시간. 어느새 해가 저물어 방안이 어둑어둑했다.

촤악.

주현우가 커튼을 걷자, 창밖너머 알아인의 화려한 야경이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하암... 더 자고 싶은데. 엄청 피곤해.’

어제 예선에 이어 오늘 본선까지 너무 힘든 일정이었다. 본선이 끝난 서준하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뻗고 말았다.

서준하가 기지개를 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빨리 준비해, 지금 너 빼고 다 모여 있어.”

“네...”

헝클어진 머리 매만진 서준하. 도착한 날 입었던 티셔츠를 대충 챙겨 입고는 현관 앞에 섰다.

“지금 그걸 신고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하얀색 스포츠 슬리퍼를 신은 서준하. 주현우가 그런 서준하의 발을 가리켰다.

“...?”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하가 주현우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래도 대회 우승잔데 사람들 보기 좀 그렇지 않아? 아까 보니까 못 보던 사람들도 많던데...”

신발장을 열어 운동화를 꺼내 신은 서준하. 다시 주현우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아무튼 오늘 같은 날은 좀 신경 써야해.”

오늘의 활약으로 언론의 관심이 더 높아지는 건 분명해 보였다.

"세계 대회 우승자라고, 로컬 우승이랑 클래스가 달라."

***

숙소 동을 빠져나온 두 사람이 호텔 로비로 향했다.

[WELCOME 비치 로타나 호텔]

꽤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띄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로비를 지나는 두 사람을 알아본 호텔 직원. 자연스럽게 레스토랑 안으로 에스코트했다.

짝짝짝.

두 사람의 등장에 곳곳에서 박수가 쏟아졌고, 오 단장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두 사람을 환영했다.

“하하, 어서와요. 오늘의 주인공, 서준하 선수.”

오 단장이 직접 테이블 중앙 쪽으로 서준하와 주현우가 앉혔다.

“우리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제가 이번 대회를 준...”

모두 발언을 시작한 오 단장. 서준하가 고개를 돌려 레스토랑 안을 둘러봤다.

‘저쪽 테이블은 표정들이 별로 좋지는 않네.’

대부분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몇몇 선수만이 아쉬운 얼굴로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자, 이제 다들 식사하세요. 오늘은 제가 계산할 테니 부담없이 맛있게들 드시기 바랍니다.”

첫 출전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이룬 한국팀. 환한 미소를 띄운 오 단장이 테이블 이곳저곳을 돌았다.

음식이 서빙되고, 식사가 시작된 한국 팀 테이블.

“야야, 저 여자가 자꾸 여기 쳐다 보는데? 또 이 형한테 꽃힌 거 같다, 어쩌냐.”

레스토랑 구석의 한 여성을 가리키는 김정남 코치. 그말을 들은 서준하도 한국 팀 테이블을 바라보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에헤이, 김 코치님.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죠.”

살짝 어이없다며 웃는 주현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테이블 앞을 가리켰다.

“오, 근데 멀리서 봐도 엄청난 미인인데?”

두 코치의 말에 여성을 흘겨 보는 한국 팀 대표단들.

“어, 야야야. 이쪽으로 온다, 온다.”

“옴마, 적극적인 스타일인가 보네.”

한창 식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모두가 주목한 여성이 한국팀 테이블로 다가왔다.

“저, 혹시 서준하 선수 맞으신가요?”

서준하의 테이블로 다가와 자신을 소개한 한 여성.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외모에 대표단의 시선이 집중됐다.

“푸흐흐흡.”

‘서준하’라는 말에 김정남과 주현우를 향해 비웃는 대표단. 영문을 몰라 머뭇거리던 김지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서준하 선수! 대회 우승 축하드려요. 저는 전남도지사님의 수행비서 김지혜라고 해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김지혜. 새하얗고 정렬된 치아가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아, 네.”

“어머, 식사 중에 죄송해요.”

게 요리를 먹던 서준하. 양손에 게다리를 쥐고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김지혜를 바라봤다.

“혹시 이따가 식사 끝나면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누실 수 있나요?”

“근데 어떤 일 때문에...?”

미안하단 그녀의 말에 서준하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옆에 있던 주현우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아, 코리아 그랑프리 조직위원회에 건의 드릴 내용이 있는데, 그전에 서준하 선수와 얘기 나누고 싶어서요.”

“어! 일단 여기 앉으세요.”

멀뚱히 서있는 김지혜에게 재빠르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주현우.

‘코치님 뭐야, 저 사심 가득한 미소는.’

서준하는 물론 한국팀 모두에게 낯선 인물. 주현우가 식사를 방해한 외부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서준하가 그를 흘겨봤다.

“아, 저희가 이번년도 F1 코리아 그랑프리 홍보대사를 물색 중이거든요. 후보 군으로 서준하 선수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와서 제가 직접 의견을 여쭤보려고 왔어요.”

F1 코리아 그랑프리 2013. 전라남도는 대회가 열리는 영암 서킷을 소유하고 있었다.

“홍보대사요?!”

뜻밖의 소식에 대표단 모두가 감탄을 내뱉었다.

“엥? 근데 홍보대사면 유명한 연예인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준하는 연예인이 아닌데?”

김지혜에게 말 붙일 타이밍을 잡던 김정남.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모두가 그를 눈치없다는 듯 바라봤다.

“,,,”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얼른 말을 잇는 김지혜.

“아니에요. 서준하 선수는 엄청 특별한 인사죠! 이전에는 전부 연예인들을 위촉했는데, 이번에는 모터스포츠 종사자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것 때문에 최근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고,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는 서준하 선수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쏟아아졌죠. 연예인 효과 그 이상일 거예요!”

일본 대회 활약 이후 한국 F1 기대주로서 조명받은 상황. 유소년 선수로 서준하만큼 관심을 받는 레이서는 드물었다.

“사실 지난번 일본에서 활약하셨을 때, 위촉 드리려고 했는데, 다음 대회 준비로 많이 바쁘시다길래. 계속 일정이 미뤄지니까, 이번에 지사님께서 직접 저를 보내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김지혜. 하지만 한국에서 이곳 알아인까진 꽤 먼 거리였다.

“아, 그러셨구나. 근데 정말 먼 길 오셨네요. 왜 전화 주시지 않고?”

계속 관심을 보이던 주현우가 직접 이곳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맞아, 그리고 여기 알아인까진 좀 멀지 않아요?”

평소엔 무뚝뚝한 성격으로 말이 없는 김정남 코치도 관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둘 다 안 외롭네, 서른 넘어가면 관심 없네, 하더니만...풉.’

서준하가 두 코치를 바라봤다. 아예 김지혜를 향해 돌려 앉은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네, 이번 대회 끝나면 곧바로 해외로 넘어가실 수도 있다길래. 제가 직접 이리로 왔어요. 게다가 지사님께서 이번엔 꼭 승낙을 받아오라고 하셔서...”

2010년 오픈한 코리아 그랑프리. 점점 식어가는 열기 때문에 2013 홍보대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차분한 말투와 맑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김지혜. 부끄러운 얼굴로 머뭇거렸다.

“모터스포츠 팬으로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레이서가 서준하 선수라...”

수줍어하는 그녀의 말에 대표단 모두 부러운 시선으로 서준하를 바라봤다.

“그래서 말인데, 서준하 선수. 이번 2013 코리아 그랑프리 홍보대사를 맡아주실 수 있나요?”

말을 마친 김지혜의 얼굴엔 서준하를 향한 기대의 눈빛이 담겨있었다.

***

“어디가 좋을 것 같아?”

“어디가 좋을 것 같다뇨?”

실외 수영장을 둘러싼 로타나 호텔의 정원. 식사를 마친 주현우가 서준하를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계속 카트 탈 건 아니잖아?”

“그렇죠. 이제 포뮬러 카를 타야죠.”

로탁스 그랜드 파이널 우승. 세계 최고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줬으니 서준하도 이제 포뮬러카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었다.

“흠. 포뮬러카를 어디서 시작하느냐가 중요한데. 처음에 잘 배워놔야 해서.”

서준하의 진로를 두고 고민에 빠진 주현우.

‘많이 다른 차긴 하지.’

카트와 포뮬러카는 다르다. 기어변속부터 조작법까지. 배우지 않고는 운전할 수 없는 차다. 어느 레이서건 입문부터 아카데미 교육을 받는 게 필수적이다.

‘다시 아카데미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서준하에겐 포뮬러카를 다시 배우는 건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라이센스 취득과 대회 참가를 위한 팀 소속 때문이라도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그럼 코치님은 어디서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일본 쪽에 괜찮은 아카데미가 있긴 한데.”

한국에선 엔트리급 이상의 포뮬러를 가르치는 곳이 드물다. 일본에서 포뮬러 선수 생활을 했던 주현우. 일본 스즈카에 연이 있는 포뮬러 아카데미들을 떠올렸다.

“일본이요?”

“응, 어릴 때 같이 F4 나갔던 한국 선수들이 거기서 포뮬러 코치를 하거든.”

한국과 가까우며, 다소 포뮬러 인프라가 잘 구성된 일본. 주현우는 일본 쪽 아카데미를 추천했다.

‘흠, 일본?’

독자적으로 포뮬러 리그를 개최하는 일본. 그만큼 대회 규모도 크고, 쟁쟁한 선수들이 많지만, 지역 구조상 세계 상위 리그 진출에 한정적이다.

“근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포뮬러카로 넘어간다는 사실만 픽스해두자.”

자신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서준하.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오늘 우승 소식이 전해지면, 여기저기 컨택이 올지도 모르니까.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기다려보지, 뭐.”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하.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코치님. 유럽 쪽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요?”

메이저들이랑 컨택할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건 물론, F1 진출 기회가 많은 유럽이 훨씬 유리하다.

“응, 그것도 팀에서 얘기해 봤는데, 유럽이 너 혼자 나가기엔 한국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교육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아카데미로 시작해 곧장 포뮬러 대회로 이어지는 커리큘럼. 이걸 소화하려면 오랜 기간 유럽에서 생활해야 한다. 게다가 서준하의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주현우에겐 유럽행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왜? 준하, 너는 유럽에서 시작하고 싶은 거야?”

일본 아카데미엔 시큰둥하다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유럽 얘기를 꺼낸 서준하. 유럽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했다.

“음? 그냥 거기 재밌는 친구가 한 명 있어서요.”

갑자기 썡뚱맞은 말을 내뱉는 서준하.

"재밌는 친구?"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롭이 아마 스메들리 아카데미에 있었지?’

전생의 F1 시절, 페라리 팀 최고 작전 책임자이자, 서준하의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였던 롭 스메들리.

‘어차피 다시 다녀야 할 아카데미면, 거기가 좋지.’

서준하의 머릿속으로 아카데미의 정문을 박차고 나오는 롭의 얼굴이 떠올랐다.

< 계속 카트 탈 건 아니잖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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