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9화 (19/200)

< 준하야, 그럼 이제 너도 F1 선수되는 거야? >

“스탑 기어 시즌 4! 시작합니다!”

자동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스탑기어. 메인 MC 조진표와 유시원이 환한 얼굴로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하하, 잘 지내셨어요 진표 씨? 이번주 스탑 기어. 어떤 특집인가요?”

입으로 엔진음을 소리를 내며 등장한 조진표. 핸들을 잡은 듯 양손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운전하는 흉내를 보였다.

“작지만, 빠르다. 경주용 차량의 원조, 레이싱 카트 특집입니다!”

“오호, 레이싱 카트요?!”

유시원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조진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컴팩트한 차체구성과, 가볍게 만들어진 엔진, 그리고 낮은 높이로 이루어진 1인승 차량으로...”

“그만, 그만!”

“아니 왜 말을 끊어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훨씬 빠르겠다. 자, 스티그 나와주시죠!”

조준표의 말을 막은 유시원이 ‘큐’사인을 카메라에 보내자, 스탑 기어 스튜디오에 레이싱 카트가 등장했다.

부우우우우웅.

하얀색 레이싱슈트와 헬멧이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와아아아!”

스탑 기어의 마스코트, 스티그. 레이싱 카트에 올라타 레이싱 휠을 이리저리 돌렸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방청객들.

“스탑 기어의 랩타임을 책임지는 신이 내린 레이서 스티그! 스티그도 어렸을 때부터 카트를 즐겨 탔다고 하는데요.”

“진표 씨도 카트 좀 타셨다구요?”

“그렇습니다. 저도 카트 경력이 몇 년 되죠. 레이서에게 카트는 기본 아닌가요? 하하하.”

연예계 자타공인 레이서 조진표와 유시원.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자신들의 레이싱 경력을 뽐냈다.

“레이싱 카트. 그야말로 모터레이싱 실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경주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스탑기어! 특별 게스트와 함께 합니다.”

“아마 현재 한국에서 이 선수보다 레이싱 카트를 잘 타는 사람은 없을 걸요? 자, 나와주세요!”

푸슈슈슈슉.

현란한 조명과 함께 에어샷이 공중에 흩어졌다.

하얀색 레이싱 슈트를 입은 남성이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한국, 일본은 물론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F1 최고 유망주, 서준하 레이서입니다!”

“와아아아아!”

무대 중앙에 서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는 서준하.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덕에 스튜디오 방청객들의 환호가 뜨거웠다.

“와, 여태껏 나오신 게스트 중에 오늘 함성이 제일 컸어. 하하.”

“아우, 지현 작가. 소리 좀 그만 질러. 잘생기고 어린 게스트만 보면 아주, 크큭.”

특히나 여성 방송 작가들이 계속 환호성을 치는 바람에 MC들이 어이없다며 반발했다.

“한국의 카트 천재, 서준하 선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레이서 서준하입니다.”

“캬, 레이서! 아직 어려 보이는데,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레이서라는 타이틀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유시원이 서준하를 소개하며 조진표를 바라봤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유시원.

“날 왜 쳐다봐, 이 사람아!”

“아니 같은 레이서인데... 느낌이 좀 다르네, 푸흡.”

카메라가 조진표와 서준하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클로즈업 했다. 화면에 조진표의 원샷이 잡히자, 방청객에서 ‘치워’라는 말이 나왔다.

“헐... 빨리 넘어갈게요, 크큭.”

MC들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서준하.

패널들과 함께 레이싱 카트를 소개하며, 자신의 레이싱 지식을 드러냈다.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레이싱 카트의 묘미입니다.”

떨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카메라 앞에선 서준하.

“서준하 선수, 지난 4년 동안 모든 대회 전승이세요, 참가하는 대회 족족 모두 우승했다는 거잖아요. 이거 이력이 너무 화려한 거 아니에요?”

조진표가 대본을 살펴보며 서준하의 이력을 공개하자, 스튜디오에 감탄사가 쏟아져나왔다. 그저 겸손히 웃는 서준하.

“어우, 그렇게 웃지마요. 레이싱도 잘하는데, 그렇게 잘생기긴 얼굴로 웃으면 더 재수 없어. 크큭.”

장난스런 유시원의 말투에 스튜디오가 한층 밝아졌다.

출연진 간의 호흡 덕분에 방송 진행이 자연스럽게 흘렀고, 잠시 동안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서준하 선수, 방송 체질인가 봐요. 어쩜 그렇게 안 떨고 잘해? 지금까지 진짜 좋았으니까, 계속 잘 부탁드려요.”

서준하의 곁에 다가온 메인 PD. 방송 출연이 처음인 어린 선수치고는 MC들과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 다른 작가들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 반응이 좋네, 나오길 잘 했어.’

대회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니 스탑기어 제작진으로부터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매번 스폰서와 기업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스포츠 선수로선 커리어 초반, 언론에 노출되는 게 나쁠 건 없다.

사업가인 필립 황도 방송 출연을 적극 권장하는 마당에 서준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자 본격적으로 레이싱 카트를 타보도록 하죠!”

“진정한 레이싱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레이싱 카트! 이곳에 계신 패널과 MC 모두 레이싱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서준하 선수와 함께한 레이싱 대결. 자, 이제 화면으로 보시죠! 스탑 기어!”

부우우웅.

위이이잉.

끼익.

모 방송사 드라마의 쌍칼 배역으로 유명한 탤런트 박준구. 스탑 기어의 패널로 카트장을 찾은 그가 화면에 등장했다.

“아니, 무슨 차가 이렇게 조그매. 이거 우리집 애들이 타는 거 아냐?”

레이싱카트를 처음 접하는 박준구. 카트의 크기를 얕잡아 보곤 제작진을 향해 웃었다.

“한 번 타 보시죠.”

쌍칼의 옆에 등장한 서준하. 이번에도 역시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서준하의 설명을 듣고 레이싱 카트에 올라탄 쌍칼 형님.

부우우우웅,

끼익.

휑.

1랩 만에 스핀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와 씨, 이거 겁나 빠른데? 다시 다시!”

레이싱 카트를 얕잡아 봤던 쌍칼 형님.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열정적으로 카트를 몰았다.

“시선은 멀리보시고. 너무 급해요, 천천히!”

초보적인 실수를 이어가는 쌍칼 형님. 그런 그를 향해 서준하가 레이싱 지도를 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코너를 돌 때 브레이킹은 최대한 늦게!”

간결하고 정확한 서준하의 큐 사인. 곧이어 박준구의 카트가 안정을 찾고 다시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서준하의 피드백이 적용된 모습에 방청객에서 박수가 나왔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연습주행을 마치고 복귀한 박준구. 온몸에서 땀방울을 쏟아냈다.

“아니 형님. 저번에 GT도 해보셨잖아요. 어떻게 시작하자마자 스핀을...”

“저 타는 거 보세요. 이래뵈도 제가 슈퍼레이스 챔피언입니다.”

박준구가 ‘뭐 이런 차가 다 있어?’ 라고 소리치자. 두 MC가 다가가 장난을 쳤다.

부우우웅.

위이이잉.

쌍칼 형님의 차례가 끝나고, 유시원과 조진표가 나란히 트랙 위를 달렸다.

“와 진표랑 시원이 잘 타는데?”

자동차 관련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두 MC. 레이서 다운 면모에 박준구가 감탄했다.

“봤지? 봤지? 몇 초야, 몇초?”

워밍업을 마치고 복귀한 조진표가 랩타임을 확인했다.

“1분 5초 994! 이거 해볼만 한데요?”

랩타임을 확인한 두 MC가 서준하를 바라보며 서준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준하 선수! 레이스 해볼까요?”

비장한 표정의 두 MC와 달리 그저 환하게 웃는 서준하.

“오케이, 그렇게 하시죠!”

서준하도 웃으며 좋다고 말하자, 본래 계획에 없던 레이스에 촬영 팀이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

세계 대회가 끝나고 한국에서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서준하.

오랜 만에 장윤호의 연습 레이싱을 지켜본 뒤, 집 근처로 밥을 먹으러 나왔다.

“윤호야, 아까 2번 코너에서 브레이킹 타임이 너무 빨랐어. 계속 그러던데?”

“그니까 나도 알아. 거기만 지나려고 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거 고질병인데 어쩌냐, 준하야?”

스피디파크의 2번 코너에서 크러쉬를 경험했던 장윤호.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너 예전에 거기서 사고 났었지?”

“응, 2번에서 크러쉬나서 뒤에 오던 카트랑 제대로 박았지...”

“아마도 예전 사고 때문에 몸이 긴장해서 그럴 거야. 너,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하고, 그러진 않아?”

“맞아. 2번 코너에 닿으면 불길한 예감을 느껴져. 그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었다. 레이서라면 꼭 겪는 트러블 중 하나. 서준하도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무슨 느낌인지 잘 알았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도움이 될 거야, 윤호야.”

“응?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불안한 느낌이 들 때,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느낌 그대로를 인지하라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장윤호가 서준하를 향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 내가 또 불안함을 느끼는 구나. 이런식으로 받아들이라고. 크큭.”

“아이씨, 장난 치지마.”

“장난 아니야. 이거 진짜 효과 있어.”

자신이 말하고도 웃음이 나오는 조언이었지만,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일종의 심리학적 치료로, F1 시절 전담 의사가 서준하를 케어한 방법. 서준하 역시 이런 자기 객관화로 트라우마를 이겨냈다.

“흠... 그래. 다음에 한 번 써먹어 볼게.”

지난 몇 년간 서준하가 보여준 드라이빙 실력을 보면, 장윤호도 그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웬만한 성인 코치들보다 그의 조언이 더 잘 들어맞을 때가 많았으니까.

역 근처를 지나는 두 사람. 역시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 서울XX초 애들이네.”

광장의 시계탑 주위에 낯익은 얼굴들. 서준하와 같은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보였다.

“와! 연예인이다.”

“오, 서준하다아아!”

멀리서 서준하를 발견한 친구들. 다짜고짜 서준하를 연예인이라고 치켜세우며 달려왔다.

“서준하, 너 TV도 나오더라. 멋있던데?”

“맞아, 거기 나온 연예인들 가지고 놀던데?”

여기저기 자신의 목격담을 털어놓는 친구들.

“야야 준하야. 마지막에 한 손 드라이빙. 그거 어떻게 했냐? 진짜 개쩔던데.”

스탑 기어에서 벌어진 레이싱 대결. 레이스 막바지 출연진과의 격차가 벌어지자, 서준하는 한손으로 카트를 모는 쇼맨십을 보였다.

“괜찮았어?”

그날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하이라이트 장면. 방송을 본 사람 모두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다.

“너 안 떨렸냐? 연예인이랑 있으면 엄청 긴장될 거 같은데.”

그 말에 서준하가 말없이 피식 웃었다.

“떨릴 게 있나?”

남들이 보기엔 서준하는 처음 TV에 출연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전생에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슈퍼스타였다.

떨릴 게 전혀 없었다. 서준하의 주위엔 늘 헐리우드 배우와 슈퍼모델이 넘쳐났었으니까.

“준하야, 그럼 이제 너도 F1 선수되는 거야?”

“에이, 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한국에선 F1 선수하기 힘들데. 준하는 카트 선수야.”

“F1? 나도 그거 알아. 우리나라에선 못 할 걸? 그거 타려면 돈이 엄청 필요하대.”

지이이잉.

친구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듣던 서준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끼자 휴대폰을 꺼냈다.

[필립 황 대표님]

[010-8282-XXXX]

발신자를 확인한 서준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내가 너희 F1 레이서 친구 한 명 두게 해줄게.”

< 준하야, 그럼 이제 너도 F1 선수되는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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