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25화 (25/200)

< 너 어디서 포뮬러를 배웠다고 했지? >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포뮬러카의 커다란 엔진음이 텅 빈 관중석에도 울려 퍼졌다.

‘어떻게 저렇게 잘 달리는 거지?’

문웨이 서킷의 관중석 한구석. 테스트 주행을 지켜보던 남자의 눈에 4번 포뮬러의 질주가 들어왔다.

한참을 지켜보던 남자가 문웨이의 3번 코너를 주시했다.

‘저기는 출구 가까이까지 브레이크를 남기고 돌아야 하는 건데.’

문웨이의 3번 코너는 풀브레이킹이 필요한 지점. 빨리 달리고 싶다고 무작정 악셀을 먼저 밟다간 오히려 속도가 떨어지는 특이한 코너다.

하지만 그 코너에 진입한 4번 포뮬러의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고, 안정적으로 코너링을 마쳤다.

‘아카데미 교육생 주제에 저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숙련된 포뮬러 레이서들도 알아내기 어려운 포인트에 남자가 놀라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에 출발해서, 선두로 올라온 거야?’

이어지는 주행에서 페이스세터 뒤로 4번 포뮬러가 등장했고, 그렇게 선두권에 합류한 4번 포뮬러가 트랙 중간 중간 퍼진 차들을 피해 질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테스트 주행에서 페이스 세터를 추월하겠다고?!’

남자의 눈엔 장애물처럼 방해하는 다른 차들이 없었다면, 4번 포뮬러가 선두를 추월하는 게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몇 바퀴를 더 달리는 4번 포뮬러를 유심히 살피는 남자. 그리고,

‘저, 저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남자. 무엇보다 그를 소름끼치게 만든 건 4번 포뮬러 운전자의 드라이빙 스타일이었다.

부우우웅.

휑.

자리에서 일어난 건 남자만이 아니었다. 피트에 모인 모든 강사와 참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트랙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 어! 어!”

“슬립 스트림!”

2번 코너 진입 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서준하의 카가 대니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갔다. 그리고,

“...!!!”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대니의 옆으로 재빠르게 빠져나온 서준하가 2번 코너 안쪽을 향해 치고 나갔다.

“너, 넘었어!”

인코스를 차지한 서준하가 이어지는 코너 진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와아아아아아아!”

3바퀴를 남기고, 페이스세터를 추월해 버린 서준하. 피트에선 참가자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

반면 뜻밖의 일이 터지자, 아카데미 강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프로 레이스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교육장에 벌어지자 강사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틴, 몇 초야!”

“네, 네?”

“4번 포뮬러! 랩타임 몇 초냐고!”

당황한 스태프들과 달리 흥분한 모습의 윌리엄 스메들리.

“사, 사번 포뮬러. 12랩... 53초 749입니다.”

모든 참가자 중 단연 베스트랩.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윌리엄이 생각했던 것 보다 랩타임이 뛰어났다.

“남은 3바퀴 기록 나오면 바로 보고해!”

“네, 넵!”

윌리엄이 흥분한 이유는 강사 대니가 교육생에게 밀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

‘어디서 많이 본 주법이야...’

처음 몇 바퀴를 돌 때 느꼈다. 지금 4번 레이서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윌리엄이 아는 누군가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고.

‘노브레이킹. 거기에 남다른 코너링 타이밍까지. 너무 똑같아...’

포뮬러카를 아주 잘 아는 숙련된 레이서의 드라이빙이면서도 어딘가 특이한 드라이빙. 서준하를 유심히 살피던 윌리엄이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저건 롭 스메들리! 롭의 주법이야...!’

GP2 최정상까지 단숨에 올라간 천재이자 불운의 레이서, 롭 스메들리. 아들의 특이한 주법이 윌리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4번 포뮬러, 13랩! 52초 777! 두 바퀴 남았습니다!”

1초나 단축한 놀라운 기록. 마틴이 큰소리로 랩타임을 외쳤지만, 별 반응이 없는 윌리엄.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설마 롭이 타고 있는 건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주법에 혼란스러운 윌리엄. 하지만 롭이 탔을 리가 없었다. 포뮬러카에 탄 운전자들을 확인한 건 바로 윌리엄, 자신이었다.

부우우우우웅.

휑.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온 4번 포뮬러.

“51초 289! 마지막 한 바퀴 남았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컸던 마틴의 외침에 놀란 윌리엄이 다시 트랙을 바라봤다.

“뭐? 51초?!”

포뮬러 한 대가 압도적인 스피드로 트랙을 돌자, 이제는 다른 포뮬러 모두가 트랙 바깥쪽으로 비켜서기 시작했다.

“문웨이의 페스티스트 랩을 넘어섰어!”

문웨이의 최고 기록, 52초대를 넘어버린 서준하의 포뮬러. 심지어 아직 한 번 더 기록 경신할 기회가 남은 상황. 서준하의 기록에 다시 한번 피트가 소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문웨이의 모든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파하는 서준하. 롭의 현역 선수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펄럭.

펄럭.

드디어 체커기가 휘날리고, 서준하가 피니쉬 라인을 밟았다.

띠링.

“49초 999! 50초를 넘었습니다아아아아!”

타임 로그를 확인한 마틴이 자신의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오마이갓!”

마치 자신들이 응원하는 선수가 올림픽 기록이라도 세운 것처럼 환호하는 참가자들. 스메들리 피트가 난리가 났다.

‘...스메들리에 엄청난 녀석이 들어왔구만.’

서준하의 주행이 끝나자, 정신을 되찾은 윌리엄. 걸음을 옮겨 트랙 가까이 다가서던 중 관중석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찌푸리며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롭?”

푹 눌러쓴 모자 옆으로 삐져나온 노랑머리. 누가 봐도 자신의 아들이었다.

***

관중석에서 일어나 피트를 향해 재빠르게 걸어가는 롭.

롭은 방금 들어온 엄청난 실력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이 정도 실력자면 수강생은 아닐 테고, 새로 들어온 코치인가?’

무엇보다 미치게 궁금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과 똑 닮은 드라이빙 스타일 때문이었다. 이렇게 특이한 주법은 스메들리 같은 소형 아카데미에서 볼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니었다.

‘누구냐 너...’

테스트 주행을 마치고 피트로 복귀하는 B조 참가자들. 롭은 4번 포뮬러 앞에 헬멧을 벗고 앉은 레이서의 얼굴을 확인했다.

“B조 베스트 랩은 4번 서준하, 49초 999초! 그리고 합격 참가자는...”

마이크를 쥔 스태프가 참가자들의 랩타임을 읊었다.

‘4번 서준하...?’

서준하라는 이름에 롭의 머리위로 몽키 펍에서의 한국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몽키 펍, 코리안...?’

***

“49초요? 50초도 아니고 49초?!”

아카데미 교장실에 모인 윌리엄과 스메들리 포뮬러 팀의 수석 코치진들.

“이 랩타임 정말 제대로 젠 거 맞습니까?”

전체 교육이 종료되기도 전, 이례적으로 윌리엄이 팀원들을 비상소집했다.

“내 20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쳤지만, 여태껏 이런 교육생은 롭 말곤 단 한명도 없었네. 하하하.”

아카데미가 아닌 스메들리 포뮬러 팀 코치진은 아직 서준하의 얼굴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평소 무뚝뚝한 윌리엄이 크게 칭찬하는 걸 보니 진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듯했다.

“게다가 루크 다이어, 케이시 카버트. 이 둘도 랩타임이 괜찮습니다.”

“한 명이 너무 압도적이라, 다른 참가자들을 잊고 있었네요, 하하.”

다른 참가자 몇몇도 제법 괜찮은 실력을 드러냈다. 오랜만의 값진 결실에 웃음꽃이 핀 아카데미 관계자들.

“와, 그러면 이번 브리티시컵 엄청 기대되는데요.”

포뮬러 르노 2.0L. 가장 보편적인 엔트리급 포뮬러 리그로 자국컵부터 알프스컵, 아시안컵 그리고 가장 상급인 유로컵까지 다양한 대회가 존재한다. 그중 브리티시컵은 아카데미 교육을 마친 레이서들의 데뷔 무대. 수석 코치진들이 흥분했다.

“윌리엄, 그럼 모두 대회에 내보내실 건가요?”

“모두? 모두라면 이번 합격자들을 말하는 건가?”

“네, 오늘 테스트 주행에서 괜찮았던 수강생들이요.”

“흠, 전부 뛰어난 레이서긴 한데, 기존의 팀 레이서들도 있는 상황이라...”

교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코치진들. 그중 유독 팀의 엔지니어링 과장직을 맡은 랄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한 윌리엄. 그 모습을 본 랄프가 재빠르게 치고 나왔다.

“랩타임이 좋았다고는 해도, 아직 라이선스도 없는 애들이잖습니까? 레이스 경험도 없는 풋내기들이고. 아직 대회에 나가긴 좀 이른 것 같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숙련된 레이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랄프. 사실 그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아들 스콧이 스메들리 팀 레이서기 때문.

“흠, 라이선스야 금방 나오는 거고... 랄프 자네 말대로 경험이 중요하긴 하지, 그래서...”

잠시 말을 머뭇거리는 윌리엄. 랄프가 이어질 말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나는 그걸 해서 내보낼 생각이네.”

그 말을 들은 랄프가 고개를 숙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

5일차 스메들리 아카데미의 테스트 주행. 교육을 마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아카데미를 떠나고 있었다.

“헤이! 롭, 오랜만이야.”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온 롭. 그를 발견한 동료들이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 뭐야, 이제 다시 아카데미에 나오는 건가?”

안부를 묻는 동료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롭.

빠른 걸음으로 동료들을 지나치려던 그가 잠시 뒤를 돌아봤다.

“잠깐, 뭐 하나만 묻자. 아까 4번 포뮬러. 걔 어딨냐?”

서준하를 찾는 롭의 물음에 강사들이 교장실을 가리켰다.

“아, 서준하! 오늘 대박이었지. 아까 끝나고 윌리엄이 따로 부르던데?”

“오케이.”

“롭, 근데 오랜만인데...”

인사도 없이 사라진 롭.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교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그때 몽키 펍에서 아시안 여자 옆에 앉은 놈이라고? 미래의 F1 슈퍼스타니, 뭐니 하더만. 그냥 꼬맹인 줄 알았는데, 진짜 실력자였어?’

터벅터벅.

교장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여유로운 걸음으로 아카데미를 빠져나가는 서준하가 보였다.

“야, 코리안!”

지난번 펍에서의 유쾌했던 모습과 달리 진지한 표정의 롭. 다짜고짜 서준하를 불러 세우며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 롭 또 만났네?”

반면, 롭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든 서준하. 갑작스럽게 마주해 당황스러웠지만, 간신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는 펍에서의 유쾌했던 모습 그대로 밝게 인사를 건넸다.

‘뭐지, 저 얼굴은? 근데 이번에도 제 발로 찾아 왔잖아?’

지난번 몽키 펍 첫 만남 이후 롭에게 천천히 다가가려고 했다. 그날 롭은 한서윤에게 정신이 팔려있었고, 자신의 얘기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오랜 동료가 먼저 관심을 보이는 일에 신기한 서준하.

“너 어디서 포뮬러를 배웠다고 했지?”

“어디서 배우긴, 여기서 처음 배웠지.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야?”

믿을 수 없었다. 단 6일만에 포뮬러를 배우고, 49초대의 신기록을 수립할 순 없는 법. 그런 건 레귤러들도 못하는 일이었다.

서준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묻는 롭 스메들리.

“거짓말 하지 말고. 노브레이킹으로 턴하는 법, 코너에서 차 앞머리 누르고 도는 테크닉. 이런 거 전부 누가 알려줬어!”

특히 서준하의 코너링은 자신의 스타일과 완전히 똑같았다. 너무나 특이한 코너링이라 웬만한 선수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주법. 롭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아니, 윌리엄이 알려줬어?”

자신 말고는 아무도 가르칠 수 없는 주법. 말을 꺼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설사 배웠다고 해도, 뭣도 모르는 교육생이 6일 만에 그걸 써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너도 오늘 테스트를 봤구나? 그냥 타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됐어. 근데 누구한테 배웠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 출처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미친놈 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서준하의 포뮬러카 주법은 전생에 롭으로부터 배운 스킬이었으니까.

롭의 얼굴을 살핀 서준하. 오늘은 자신을 대하는 그의 반응이 어딘가 진지해졌음을 느꼈다.

“중요하진 않은데... 나한텐 너무 충격적이라.”

몽키 펍에서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던 것과 영 딴판인 강렬한 롭의 눈빛.

고개를 떨군 롭이 말이 없자, 정적이 흘렀다.

그러던 그때, 무언가 말하길 망설이던 롭이 서준하를 향해 고갤 들었다.

“코리안, 너. F1에 가겠다고 했지?

< 너 어디서 포뮬러를 배웠다고 했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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