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26화 (26/200)

< 이번 대회는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고 싶어 >

“지난 일주일 동안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포뮬러 기초 이론부터 주행 실습까지. 모두가 잘 따라와줘 고맙습니다.”

짝짝짝.

스메들리 아카데미 교육 수료식. 강단에선 윌리엄이 선수 참가자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이건 국제경기 참가가 가능한 라이선스 증서입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참가자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케이시 카버트, 루크 다이어, 로만 그로니엘 그리고 서준하.”

파란색 종이 상자를 든 스태프가 옆에 서자, 윌리엄이 라이선스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사람들은 이번 기수 우수 교육생들입니다. 모두 박수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부러운 눈으로 강단에 선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수강생들.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힘들었던 교육이었기에 여기저기서 큰 박수가 쏟아졌다.

“아참, 그리고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라이선스를 나눠주던 윌리엄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스메들리 아카데미는 자체 포뮬러 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창립 이후 여러 포뮬러 대회에 참가하고 있지요. 그중에서도 포뮬러 르노 2.0L. 우리 스메들리 팀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대회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포뮬러 교육과 함께 팀을 운영한 윌리엄 스메들리. 그가 자부심에 찬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우수 교육생들에게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포뮬러 대회는 라이선스가 있는 선수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하지만, 팀 없는 개인 레이서 혼자선 불가능한 일. 네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선 장비부터 엔지니어, 미카닉, 감독까지. 팀원이 필요하죠. 이 모든 걸 스메들리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단...”

대회에 참가하는 레이서에게 엄청난 지원을 약속하는 윌리엄.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며 말을 멈췄다.

“기존의 팀 레이서들과 레이스를 해서 이겨야 합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우수 교육생들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

반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의 서준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대회이니만큼, 경험 없는 수료생을 덜컥 내보내진 않을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존 스메들리 포뮬러 팀 레이서는 4명입니다. 모두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실력자들이죠. 하지만 그들 역시 여러분과 같은 교육생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대회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레이스에 대해 설명하는 윌리엄. 앞에 선 교육생 네 사람이 윌리엄 주위로 다가섰다.

“...따라서 여러분을 포함한 레이서 8명 중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딱 2명입니다.”

네 사람을 바라보며 웃는 윌리엄. 특히나 서준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마지막 말을 건넸다.

“포뮬러 르노는 세계적인 리그죠. 아마도 그중 브리티시컵은 포뮬러  팀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회 중 하나일 겁니다. 자, 그럼 모두 건투를 빕니다.”

***

“준하, 너는 매 코너에서 브레이킹 타이밍이 엄청 정확하던데, 비결이 뭐야?”

대회 출전 선수 선발전 3일 전.

로만과 루크의 연습 레이싱을 바라보는 서준하의 옆으로 케이시가 다가왔다.

“비결? 흠, 넌 브레이킹 할 때 어느 발을 쓰지?”

전생 주니어 포뮬러 시절 서준하가 매번 들었던 질문. 케이시를 향해 양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히 오른발이지. 그건 왜?”

양산차처럼 악셀 바로 왼쪽으로 브레이크가 위치한 포뮬러카. 때문에 오른발로 악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난 왼발로 브레이킹을 해. 아마도 그래서 반응이 더 빠른 걸지도 모르겠네.”

케이시가 농담하지 말라며 웃었다. 이는 마치 오른손잡이에게 왼손 젓가락질이 훨씬 빠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악셀에서 브레이크까지 발을 옮기는 타임 로스(time loss)가 없으니까, 곧바로 악셀을 밟을 수 있어.”

왼발 브레이킹은 일반적이지 않은 테크닉. 아카데미 교육기간에도 잠깐 언급되긴 했지만, 강사들 모두 고난도 기술이라며 가르치길 미뤘었다.

“처음엔 나도 너처럼 웃었어, 근데 익숙해지니까 그후론 브레이킹 타이밍을 거의 안 놓쳤던 거 같아.”

서준하도 오랜 시간 공들여 연습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 처음 케이시의 반응처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보면 볼수록, 준하 넌 정말 특이해.”

교육에서 배운 정석과는 거리가 먼 드라이빙 스타일. 신출내기 레이서 케이시의 눈에 서준하는 이상한 레이서였다.

“근데 너만 특이하게 달리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교육 기간 내내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 지금이 기회란 듯이 케이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 똑같이 달릴 순 없는 거 아닌가?”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달려선 결코 1위를 할 수 없다. 생김새부터 배경까지 모든 게 다른 레이서에겐 주행 스타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상해도 문제될 건 없잖아. 어차피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자신의 레이스 스타일과 페이스를 유지하지 않는 레이서는 결코 빨리 달릴 수 없다. 서준하의 오랜 경험상 남들의 방식을 따라하려고 할수록 자신은 매번 뒤쳐졌었다.

“그건, 그렇지. 레이서는 빠르면 되는 거지...”

오히려 이상한 질문을 해버린 것 같아 민망해 하는 케이시. 얼굴이 붉어진 케이시를 보고 서준하가 밝게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 가까이 들려오는 포뮬러 엔진음.

두두두두둥.

포뮬러카에서 내린 로만과 루크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와씨. 5번 코너만 들어가면 차가 미끌미끌해.”

연습 주행을 마친 두 사람이 투덜거리며 벤치에 앉았다.

“맞아, 5번 코너는 먼지가 많은 것 같아.”

같은 서킷이라고 해도 코너마다 컨디션이 모두 달랐다. 특히나 문웨이의 5번 코너는 타이어의 그립감이 떨어졌다.

“어때, 오늘은 우리 좀 괜찮았어?”

케이시와 서준하 앞으로 다리를 뻗고 앉은 로만과 루크. 모두가 선발전 경쟁자였지만, 한 기수 교육을 같이 받은 동료들. 대회 진출을 위해 공동 연습 후 자연스럽게 피드백 타임을 가졌다.

“맞아, 피드백을 달라고. 우리 없는 사이에 데이트나 한 건 아니겠지?”

“데이트는 무슨. 내가 볼 땐 너희...”

서준하가 입을 열자, 장난스러운 얼굴에서 금세 집중 모드로 돌변한 두 사람. 지난 며칠 동안 서준하의 조언대로 드라이빙을 하자, 훨씬 더 빠른 랩타임을 만들어 냈다. 아예 메모지에 적기까지 하는 로만.

“땡큐. 준하.”

“이제 들어갈까?”

잠시 쉬는 시간을 갖은 네 사람. 이번엔 서준하와 케이시가 연습 주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한 서준하와 케이시. 문웨이 서킷에 포뮬러 엔진음이 울려퍼졌다.

“앞차가 그 코리안 맞지?”

“네, 헬멧을 보니까 맞는 것 같습니다.”

문웨이 한구석에서 연습 레이스를 지켜보는 스메들리 팀 엔지니어 과장 랄프.

“듣던 대로 드라이빙이 리드믹하구만... 교육생 클래스가 아니야.”

“마, 맞습니다. 진짜 49초대가 나올 만한 실력입니다.”

그의 조수 파블로도 과장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놀라운 건 바로,

“저것 봐, 코너를 들어갈 때 혼자 차 머리 방향이 이상하네?”

“드라이빙 스타일이 롭 스메들리랑 비슷하다던데. 정말 그런 가봅니다.”

“롭? 윌리엄 아들?”

“예, 롭의 유년 시절 드라이빙을 보는 것 같다고 다들 야단입니다.”

아카데미 강사진들 사이에서 서준하의 소문은 자자했고, 포스트 롭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상황. 특이한 주법을 본 랄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윌리엄이 괜히 그렇게 신난 게 아니었어. 이거 꽤나 골치 아프게 생겼다.”

“골치가 아프다뇨?”

어리둥절해 하는 파블로. 랄프가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자, 곧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2명만 대회에 내보낸다잖아! 또 바로바로 말귀를 못 알아먹네, 이거.”

스메들리 팀의 레이서인 자신의 아들 스콧과 경쟁하게 될 실력자의 등장에 불안해진 랄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아... 스, 스콧. 이번 경쟁자군요. 이거 큰일입니다?”

다소 어리버리한 파블로. 포뮬러 엔지니어링 팀에 들어올 실력은 없었지만, 랄프의 잔심부름을 하는 대리인으로서 팀 내 한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스콧과 레이스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저 코리안은 수준급이야...”

압도적인 드라이빙 실력의 서준하. 자신의 두 눈으로 경쟁자를 직접 확인한 랄프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이번 대회는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고 싶어. 선수 선발부터 이렇게 설레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안 그런가?”

창가를 바라보던 윌리엄이 교장실 가죽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아직 선발 레이서가 결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엔 정말 우승을 노려볼만합니다.”

침체된 기간이 길었던 만큼 기대가 큰 스메들리 팀. 윌리엄의 반응처럼 코치진들도 이번 대회에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볼 땐 말이야...”

코치진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핀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우리 팀 엔지니어링이랑 미카닉들은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윌리엄의 말에 랄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퍼레이팅 쪽이 좀 아쉬워. 그때그때 레이스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졌단 말이지. 지난 대회를 봐도 그렇고...”

타이어 전략이나 경주차의 셋업, 레이스 전략 등을 결정짓는 작전 팀. 윌리엄이 스메들리 팀의 아쉬운 점을 코치진들에게 털어놨다.

“맞습니다. 페트릭 책임님이 은퇴한 이후로 작전 팀이 가장 취약한 상태죠.”

“실제로 인원도 부족해요. 저도 대회 나가기 전에 그쪽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담당자의 은퇴 후,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선임을 미루던 상황. 그 역할을 윌리엄이 했지만, 아카데미 일을 겸임하며 임시로 맡았던 터라 전적으로 집중하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구만, 그래서 말인데...”

코치진들의 얼굴을 흘겨보는 윌리엄 스메들리.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듯했다.

“롭...을 작전 책임자로 두는 건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을 마치고 코치진들의 눈치를 살피는 윌리엄.

“네?!”

“롭이요?”

교장실에 모인 코치진 전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주정뱅... 아니, 롭이 무슨.”

“요새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요. 캡틴.”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에서 들리는 롭의  소문을 잘 아는 팀 코치진들. 윌리엄의 말에 교장실에 모인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롭이 레이싱 천재인 건 압니다만, 변수가 많은 놈인 걸 잘 아시잖습니까.”

“캡틴 맘은 충분히 이해하는데요. 우리 팀원으로서 일단 성실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뛰어난 인재면 뭐합니까, 정작 대회 때 얼굴을 못 볼 수 있을 텐데...”

롭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코치들의 말에 동감한다는 표시를 보였다.

“캡틴, 롭 얼굴은 보신 적 있으세요?”

“맞습니다. 롭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괜히 생각도 없는 사람 데려다가 앉혀놓으면 팀원들도 불편해요.”

아직 롭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번 테스트 주행에 온 아들을 본 뒤, 그가 팀에서 일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훨씬 커졌고, 결국 코치진들이 모인 회의에서 롭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허허, 오케이 알겠네. 내 한 번 해본 소릴 가지고, 그...”

똑똑똑.

멋쩍은 웃음을 보이던 윌리엄이 노크 소리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허 참, 회의 중이라니까. 누구요?”

문 쪽 가까이 앉은 랄프.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서려 할 때, 철컥.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모습에 놀란 사람들.

“캡틴, 저 스메들리 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기회를 주세요.”

남자가 비장한 얼굴로 윌리엄을 바라봤다.

“로... 롭?!”

< 이번 대회는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고 싶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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