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27화 (27/200)

< 분명 가려운 곳이 있지만, 그 위치를 찾지 못할 때의 기분 >

“케이시 선수를 마지막으로 선발전 타임 트라이얼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회 선수 선발 본격 레이스 전, 스타트 순서를 정하기 위해 실시한 타임 트라이얼이 종료됐다. 스태프가 건넨 결과지를 받아든 윌리엄.

[선수 선발전 타임 트라이얼]

1위. 다니엘 1:02:444

2위. 스콧 1:02:942

3위. 존 1:03:522

.

.

“강사들이 이번 수료생들을 그렇게 칭찬하던데, 긴장한 걸까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데요?”

기존 선수 4명 모두가 상위권 자리를 차지한 상황. 하지만 윌리엄을 가장 놀라게 만든 건.

[선수 선발전 타임 트라이얼]

.

.

7위. 로만 1:07:791

8위. 서준하 1:08:202

“이번 수료생 중 에이스라던데, 실전엔 약한가 보네요.”

예선에서 가장 느린 서준하의 랩타임.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윌리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포뮬러는 경험이 중요하군. 내가 너무 기대한 건가?’

모든 선수가 자신의 팀원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빠졌다. 어깨를 축 늘어 뜨리고 앉은 윌리엄.

‘아냐,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 컨디션 문제일수도 있는 거고.’

생각에 잠긴 윌리엄의 곁으로 다가선 한 사람.

“엥? 어쩐지 느려 보이더니만, 1위는 못 하겠지 싶었는데. 꼴찌?”

손에 든 랩타임 기록지를 읽으며 등장한 롭.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피트에 나타났다.

“흠... 처음 타는 트랙이라 그럴 수도 있지. 근데 6초는 격차가 너무 큰데?”

스메들리 포뮬러 팀의 서킷, 선웨이. 새로운 환경이라 수료생들이 불리했던 건 맞지만, 시작 전 충분히 워밍업 랩을 돌았던 상황이었다.

“에헤이, 이거 갑자기 일할 맛이 뚝 떨어지네. 코리안이 선발 안되면 무슨 재미로 해.”

윌리엄을 발견한 롭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윌리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하는 롭.

“코리안이 떨어지면, 번복해도 돼요...?”

사나운 눈빛으로 롭을 바라본 윌리엄. 달라붙은 아들을 밀쳐내고는 피트 안으로 들어갔다.

포뮬러를 점검하는 엔지니어들. 팀 피트로 들어온 윌리엄이 팀원들에게 다가섰다.

“엔지니어링팀. 레이스 시작 전까지 모든 포뮬러들 철저히 점검해주게.”

“네, 캡틴.”

“랄프, 포뮬러엔 문제가 없겠지?”

“네, 제가 전부 살펴봤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차에 문제가 생겨서 선발전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대답하는 랄프. 그 모습에 윌리엄이 믿음직스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이 등장하자, 더 분주해진 듯한 엔지니어링팀. 랄프가 여기저기 지시를 내렸다.

“파블로, 가서 연료 체크하고 오게.”

“예?”

“...출발 전 기름 얼마나 남았는지, 가서 확인하고 오라고.”

“아, 예예.”

과장의 지시에 여전히 어리버리한 파블로. 그 모습을 본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랄프, 파블로한테 너무 그러지 말게나.”

“아, 네.”

“파블로, 요새 일은 할만 한가?”

“아, 예예.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나저나 자넨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 가슴을 좀 펴.”

입사 첫날부터 늘 긴장한 모습의 파블로. 여전히 윌리엄 앞에선 고개를 떨구며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알겠네. 스메들리 팀에서 계속 힘 써주게나.”

“아, 예예.”

***

“이런 걸 왜 하나 몰라. 시간 낭비야.”

“저런 애들이랑 같이 레이스한다는 게 창피할 정도야, 수준 떨어져.”

수료생 근처에 앉은 스메들리 팀의 기존 레이서들. 타임 트라이얼 이후 지루하단 표정으로 수료생들을 흘겨봤다.

“수료생 중에 문웨이를 49초대로 돌파한 놈이 있다고 했는데. 쟨가?”

벤치 구석 서준하를 가리키는 스콧.

“맞아, 저 아시아인. 근데 그거 뽀록같아. 저 자식 지금 8번 그리드야. 푸하하.”

“엥? 완전 X신이네, 그날 운이 좋았나 봐.”

“소문 듣고 이번엔 긴장 좀 했더니만... 괜히 걱정했잖아.”

“으응, 크크큭.”

“그나저나, 저 여자애는 좀 괜찮은 거같아. 크흐흐흑.”

“오,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스메들리 레이서들이 케이시와 서준하를 번갈아 가리키며 희희덕거렸다.

한편 본격 레이스 시작 전 심각한 분위기 속에 모인 수료생들.

“이건 우리가 불리해. 새로운 트랙에서 레이스를 하는 법이 어딨어.”

“맞아, 문웨이에서 했으면 훨씬 기록이 좋았을 거라고.”

갑작스럽게 시작된 문웨이 서킷 보수 공사. 덕분에 불과 시합 이틀 전 장소가 변경되고 말았다. 랩타임 결과를 보고 머리를 감싸쥔 루크와 로만.

“멀쩡했던 코너벽이 왜 갑자기 무너졌다는 거야...”

“이거 다시 해야 공정한 거 아니야?”

모터스포츠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예정된 서킷이 변경되는 일이 다반사다. 진짜 실력자라면 어느 환경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 법. 혼란스런 분위기 속 서준하는 아무 말없이 두 눈을 감았다.

“준하까지 이 모양이면, 이거 진짜 문제 있는 거야.”

모든 연습에서 완벽한 드라이빙을 구사했던 서준하. 동료 모두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카데미는 물론 강사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레이싱 실력의 소유자였으니까.

“케이시, 이 서킷. 페스티스트랩이 몇 초랬지?”

“아마, 1분 1초대 였던 걸로 아는데?”

자신의 기록보다 훨씬 빠른 베스트 랩타임. 케이시의 말에 로크가 괴롭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 창피한데?’

페스티스트 랩타임을 듣고 생각에 잠긴 서준하. 자신의 기록과 무려 7초 차이였다. 아무리 처음 접하는 트랙일지라도, 자신의 베스트 랩타임이 너무 뒤졌다.

‘이건 트랙 때문이 아니야, 컨디션도 괜찮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문제는 없었다. F1을 향한 목표는 확고했고, 의지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차에 문제가 있었나.’

처음 아카데미에 와서부터 긴장 한 번 한 적 없었고, 선수 선발전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상위 클래스를 경험한 최고의 레이서였고, 그만큼 이런 엔트리급 설발전에는 자신 있었으니까.

‘묘하지만, 어딘가 한 박자 느린감이 있어.’

다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서준하 자신의 문제가 아닌 포뮬러였다. 매코너 전해지는 노면의 감각이 어딘지 모르게 이전과 달랐다.

‘차의 진동도 워밍엄 때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랄까.’

모터스포츠에서 부진하는 건 대부분 자동차의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제아무리 빠른 레이서라도 차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달릴 수 없는 법.

‘뭐가 문제지? 다시 한 번 봐야겠어.’

혼란스러웠다. 분명 가려운 곳이 있지만, 그 위치를 찾지 못할 때의 기분. 출발 전 자가 점검에서 이상없었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터벅터벅.

스메들리 피트로 다가선 서준하. 본선 레이스 전,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피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SEO JUN HA]

피트 가장 구석에 위치한 포뮬러 한 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펫말을 확인한 서준하가 포뮬러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본 세팅은 처음 봤을 때랑 달라진 게 없어...’

타이어, 핸들, 프레임 등 기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들엔 여전히 문제가 없었다.

‘엔진에 문제가 생겼을 리는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트 중앙 패드를 열어 엔진 부속을 확인했다. 엔진 검사는 일반적으로 엔지니어의 영역. 레이서의 자가 점검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

엔진 중앙에 놓인 엔진 마운트가 눈에 들어왔다. 새것처럼 빤질빤질한 마운트에 손을 가져다 대자, 물렁한 느낌이 전해졌다.

‘고무? 엔진 부품에 고무를 쓰나?’

자신이 아는 포뮬러 상식과 다른 부품의 모습.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하가 재빠르게 옆차를 확인했다.

‘이것 봐, 원래 이렇게 단단한 거라고...!’

***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초반에는 탐색전인가, 다들 무리하지 않네요.”

긴장된 얼굴로 본격 레이스를 지켜보는 윌리엄. 그의 곁으로 롭이 다가섰다.

“확실히 기존 레이서들 주행이 훨씬 매끄러워.”

“그렇죠. 수료생들이 카트 경험이 있다고 해도, 포뮬러로 레이스는 처음일 테니까요.”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건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포뮬러 역시 마찬가지. 하위권엔 출발 순위 그대로 수료생들이 주행했다. 그리고,

“와, 쟤들 진짜 약았네.”

“약다니?”

레이스를 지켜보던 롭이 선두를 가리켰다.

“저거 다니엘이랑 스콧이죠? 미리 작전 세운 것 같은데. 저건 팀 디펜스 플레이 아니에요?”

뒤에 선 다른 포뮬러들이 치고 나오지 못 하도록 공간을 막는 1,2위 포뮬러들.

“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설령 그랬다고 해도 안 될 건 없지. 반칙은 아니니까.”

“그렇긴 한데...”

실제 대회에선 흔히 있는 일. 하지만 롭도 기분이 이상했다. 참가자들 모두가 자신이 코칭할 선수들이었지만, 유달리 선두 레이서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남은 랩이 그리 넉넉하진 않을 텐데.”

하위권 포뮬러들을 바라보는 윌리엄.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계속 이렇게 흐르려나, 이젠 내가 다 긴장되네...”

40바퀴를 도는 레이스. 일반적인 레이스 치곤 바퀴수가 적었다. 게다가 시간은 점점 더 흐르는 상황. 롭이 서준하의 포뮬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하는 거냐, 코리안. 진짜 그날만 운이 좋았던 거였어?’

순위 변동 없이 계속 흐르는 레이스. 롭이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으려던 그때,

“어?”

서준하의 포뮬러를 바라보던 롭이 미소 지었다.

“그분이 오셨나 본데?”

좀전과는 다른 코너링. 서준하의 포뮬러가 앞머리가 꾹 늘린 채 코너링에 성공했다. 그리고,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코너링에서 속도를 살린 서준하의 포뮬러가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앞선 차를 제쳤다.

“그래, 이거지. 왜 진작 이렇게 드라이빙 안 한 거야!”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케인(S자 코스)에서조차 빠르게 통과하는 서준하의 포뮬러. 지난번 롭이 보고 감탄했던 주법이 다시 등장했다.

***

[스메들리 선수 선발전]

1위. 다니엘.

2위. 스콧.

3위. 서준하.

.

.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3위로 올라선 서준하. 이제는 스메들리 코치진들도 흥미로운 얼굴로 레이스를 지켜봤다.

“경기 이대로 안 끝날 거 같은데?”

“지금 치고 나오는 거 코리안 맞지?”

순위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관중들은 더 신이 나는법. 스메들리 피트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던 랄프가 파블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피트 구석으로 불러냈다.

“...파블로! 너 이리와!”

파블로를 향해 윽박지르는 랄프. 자신의 목소리가 새어나갈까 주위를 살피는 모습.

“지금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랄프.

퍽!

이어서 딱딱한 구둣발로 파블로의 무릎을 걷어찼다.

무릎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 앉은 파블로.

“이 XX야! 일 똑바로 안 할거야!”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랄프가 다시 한 번 발길질을 하려 할 때,

“어! 어! 간다! 간다!!!”

옆에서 들리는 팀원들의 함성.

“스콧?!”

랄프의 아들 스콧의 옆으로 포뮬러 한 대가 파고 들었다.

< 분명 가려운 곳이 있지만, 그 위치를 찾지 못할 때의 기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