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35화 (35/200)

< (10월 19일 수정) 말만 번지르르한 애들이랑 다르게 실제 행동을 보여줘서 더 믿음직스러워요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모터스포츠 레이스 시상식엔 우승자의 국가가 연주된다. 영국과 프랑스 국기 사이로 태극기가 올라가자, 서준하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좀 익숙해.’

환생 후 처음 포디엄에 올랐을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친숙하게 들리는 애국가. 머나먼 영국 땅 위로 자랑스러운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진짜 포뮬러를 다시 시작하게 될 줄 몰랐는데...’

우승의 감격을 넘어, 다시 포뮬러카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심지어 보고 싶었던 동료를 만나기까지. 서준하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 대회 챔피언, 서준하입니다!”

소개와 함께 트로피를 건네받은 서준하. 관중들을 향해 트로피를 힘껏 흔들어 보였다.

이어지는 샴페인 세레모니.

푸슈욱,

톡.

취쉬이이이쉭.

능숙한 손놀림으로 샴페인을 흔들어대는 서준하. 거품이 쏟아져 내리자, 사람들을 향해 거품을 발사했다.

“Yeah!!!”

그리고 서준하의 시야에 멀리서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롭이 들어왔다. 이번 생에도 좋았던 롭과의 호흡.

자신의 타이어 전략을 믿고 지지해준 건 롭이었다. 첫 대회부터 자신을 믿어준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준하! 잠시만요!”

시상식이 끝나고 무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서준하에게 적잖은 수의 취재진들이 다가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스메들리 부자.

“준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요? 크큭.”

관심 집중, 서준하를 향한 영국 모터레이싱 기자들의 열기에 두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들 준하를 보는 눈빛이 다르네.”

“역대 브리티시컵 우승자들이 대부분 영국인이었잖아. 근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시안이 우승한 거니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겠어?”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생소한 국적, 게다가 대회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까지. 화재의 중심엔 서준하가 있었다.

“준하랑 끝까지 해서 유로컵 우승까지 노려보자.”

“유로컵도 시시해요. 저 실력이면 GP2까지 금방이겠는데요?”

“GP2? 하하하.”

F1 리그에 오르기 직전, 레이서들의 마지막 평가 무대 GP2. 롭에겐 그 날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

“엥? 짐이 달랑 이거 하나야?”

브리티시 컵 대회를 마치고, 복귀한 서준하. 숙소로 들어온 한서윤이 서준하의 짐 가방을 가리켰다.

“어차피 금방 올 거잖아요.”

“그렇긴 해도 한국 가서 입을 옷은 더 챙겨야 하지 않을까? 홍보대사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 텐데...”

꾸미기 좋아하는 여느 애들답지 않았다. 트레이닝복 말고는 짐이 없는 그를 보고 한서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되겠다, 이따 공항 가기 전에 옷가게 한 번 들려서 괜찮은 옷 몇 벌 사가지고 가.”

“그러죠, 뭐.”

“롭은 아직 안 온 거야?”

“아직요. 곧 있으면 도착한다고 연락 왔어요.”

F1 코리아 그랑프리 홍보대사 일정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서준하. 한서윤과 함께 휴식기를 맞은 롭도 동행하기로 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어? 유 실장님이네, 잠깐만.”

진동과 함께 울리는 한서윤의 전화벨. PH인베스트먼트 유건석 실장의 번호를 확인한 그녀가 화장실로 향했다.

“아, 네 실장님. 오늘 저녁 비행기로 출발해요...”

한서윤이 자리를 뜨자, 거울 앞에선 서준하. 조금 구겨지긴했지만, 깔끔한 옷차림이 맘에 들었다.

“이게 뭐가 어때서, 후...”

하지만 멀리서 그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한서윤. ‘아니야’라는 입모양과 함께 서준하를 향해 검지를 흔들어댔다.

“아, 그렇죠 실장님. 대회 끝나고 다른 팀에서 제안도 오고 그랬어요...”

여전히 통화 중인 한서윤. 화려하진 않지만 어딘가 엣지 넘치는 그녀의 패션 스타일이 서준하의 눈에 띄었다. 그런 그녈 보니 앞으로 서준하의 패션만큼은 쉽게 양보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철컥.

통화하던 한서윤이 열렸던 문을 마저 닫아버렸지만,

‘여기 방음 안 되는데...’

서준하도 엿들을 맘은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들렸다.

“저도 처음에 스메들리로 간다고 했을 때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실장님도 기억 하시죠? 제가 출국한 날 좀 힘들었다고 전화드렸던 거.”

유건석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한서윤.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서준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장실 가까이로 다가섰다.

“처음에는 좀 별로였어요. 외모랑 다르게 말투도 좀 딱딱하고. 이미지도 좀 차갑잖아요. 근데...”

인상을 찌푸리는 서준하. 귀를 더 쫑긋세웠다.

“진짜 딱, 포뮬러 타면서부터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구요. 이전에는 제가 한 번도 레이스하는 거 못 봤었거든요.”

레이서는 레이스만 잘 하면 된다. 흡족한 미소를 짓던 서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말만 번지르르한 애들이랑 다르게 실제 행동을 보여줘서 더 믿음직스러워요. 고집 디게 센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자기 확신? 주관이라고 해야 되나? 그게 뚜렷하더라고요. 원래 고집 세면 주변에 피해주고 그러는데, 그건 또 아니라서...”

숙소나 팀 선택에 있어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전부 서준하의 선택을 들어줬던 한서윤. 그의 선택이 올바른 결과를 갖고 온 것에 만족스러웠다.

“아 그래요? 독일 쪽에요? 진짜 성사되면 대박이죠. 네, 그럼요!”

갑자기 톤이 바뀐 한서윤의 목소리.

“네, 네 홍보대사 일정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게 10월 7일이니까, 일정도 괜찮아요. 와 진짜 그 사람이면 대박이죠!”

저렇게 흥분할 정도면 꽤나 묵직한 소식이 분명했다. 서준하는 그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네,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일단 준하한테는 비밀로 할게요! 쉬세요, 실장님.”

전화를 마치고 나오는 한서윤.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무슨 로또 당첨됐어요?”

“로또? 푸흐흐흡.”

“왜요? 뭔데요?”

“아니야. 이제 나가자!”

***

“오, 여기가 쎄울?”

“쎄울 말고 서. 울.”

“그거나, 그거나.”

한국에 도착해 반나절 휴식을 취한 롭, 한서윤 그리고 서준하. 밀리니엄 힐튼 호텔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여기요, 준하 선수!”

그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미모의 여성. 서준하에겐 낯익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런칭쇼 가이드 김지혜라고 해요. 오랜만이에요, 준하 선수!”

전남도지사의 요청으로 지난 세계 카트 대회까지 서준하를 만나러 찾아왔던 수행비서. 김지혜가 스메들리 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통화 내용대로 오늘 런칭쇼에서 위촉장 나눠드리고, 홍보대사로서 간단히 자기소개 정도만 해주시면 돼요.”

반갑게 인사하는 김지혜를 한서윤이 경계하는 눈초리와 함께 흘겨봤다. 반면 미인의 등장에 실실거리는 롭.

“시간 됐으니까, 먼저 들어가시죠. 초대 받은 분들만 입장 가능한 곳이라서 저랑 같이 들어가셔야 해요.”

김지혜를 따라 호텔 행사장으로 들어간 세 사람.

런칭쇼 입구부터 커다란 포뮬러 카 한 대와 함께 옆 부스에 위치한 레이싱 모델들이 눈에 띄었다.

찰칵.

찰칵.

런칭쇼 입구부터 인증샷을 남기는 주변 참석자들. 그 모습을 본 김지혜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세 분도 한 장 찍어드릴까요?”

“네, 찍어주세요.”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세 사람.

“저, 저기...”

사진을 찍으려던 김지혜가 롭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 롭!”

롭을 향해 소리치는 한서윤.

“WHY?”

“사진 찍으신다잖아. 이리 와.”

잠깐 사이 레이싱 모델 곁으로 다가선 롭.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한서윤을 바라봤다.

“사람들 전부 거기서 찍잖아. 우리는 여기 레이디들하고 찍자고.”

날씬한 몸매가 매혹적인 레이싱 모델들. 그들을 피해 다른 참가자들 모두 포뮬러 카를 배경으로만 인증샷을 남겼다.

“헤이, 돈 비 샤이. 이리와.”

롭 말곤 휑한 레이싱 모델 포토존. 나머지도 얼른 롭의 곁으로 다가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여기 사람들은 왜 날 저렇게 더티하다는 눈으로 보는 거야? 난 그냥 다가가서 얘기 몇 마디 했을 뿐이라고. 여기 원래 이래?”

“별거 아냐, 신경 꺼 롭.”

홀로 레이싱걸과 얘기를 나눴던 롭이 이상하다며 반응했다.

“자, 이제 들어가시죠.”

김지혜의 에스코트로 스메들리 팀원들이 본격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

“...이것으로 2013 코리아 그랑프리 런칭쇼를 마칩니다.”

길었던 공식 행사가 끝나고, 호텔에서 간단한 파티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모습.

“오, 준하 선수. 오랜만이에요. 아까 진짜 말 잘하던데?”

탑기어 진행자 조진표가 반가운 얼굴로 서준하에게 다가왔다. 타이밍 좋게 음료잔을 맞부딪히는 두 사람.

“나 준하 선수 포뮬러 타는 거 비디오 클립으로 다 찾아 봤잖아. 첫 출전에 브리티시 컵 우승, 대박이던데?”

“감사해요, 하하.”

“그것도 그렇고! 이거, 이거. 이게 더 대박이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조진표. 서준하에겐 익숙한 사진이었다. 화면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와 레이서’ 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나중엔 진짜 F1 무대에서 보겠어. 벌써 여기저기 유명하던데?”

나름 모터스포츠 전문가 조진표. 최근 그가 아는 레이싱 소식통으로 새로운 신예 서준하라는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 진짜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F1 무대를 해설하는 게 소원이야. 그 꿈 꼭 이뤄줘.”

“열심히 할게요, 하하.”

“아이, 그렇게 웃지마. 잘생겨 가지고 재수 없다니까? 하하하. 농담인 거 알죠?”

한바탕 크게 웃은 조진표. 잠깐 주변을 둘러보더니 서준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참, 그리고 투미닛 알죠, 투미닛. 쟤네가 나랑 친한 후배인데...”

행사장 중앙 테이블에 자리한 인기 걸그룹 투미닛. 조진표가 그쪽 테이블을 흘겨봤다.

“아나, 내가 몇 년찬데 이런 걸 하냐. 자, 여기! 이것 좀 전해달래.”

주머니에서 얇고 두꺼운 종이 한 장을 건네는 조진표. 투정거리는 말투에도 얼굴 표정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이게 뭐...?”

“아니, 그 투미닛에 선아 있잖아, 선아. 걔가 준하 선수 팬이래. 우리 스탑기어 몇 번 출연하더니, 완전 레이서한테... 아니, 그냥 좀 전해달래.”

“아...”

“저쪽은 뜨거운데, 여기는 영 미지근하네? 아무튼 연락 한 번 해봐요. 나중에 또 봐.”

선아, 사실 투미닛이 누군지도 몰랐다. 레이스 말고는 별 관심 없는 서준하에게 잘나가는 걸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진표와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로 돌아온 서준하.

“오, 준하 은근 셀럽인데? 저 아저씨 그 레퍼? 아무튼 연예인이잖아.”

“그러니까요. 준하 선수 대박이다...”

“그리고 아까 투미닛이 우리 테이블 엄청 쳐다보던데?”

“에이, 아니에요. 이제 가죠.”

“응? 뭐가 있나 본데? 쑥스러워하는 거 좀 봐. 크큭.”

서준하를 향해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한서윤과 김지혜.

“아참, 이번 결승전 체커깃발 누가 흔드는 줄 아세요?”

살짝 표정이 굳은 서준하를 본 김지혜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였다.

“축하해요, 서준하 선수! 이번 GP의 체커맨으로 뽑히셨어요!”

매 그랑프리 결승전에선 대회 주요 인사가 체커 깃발을 흔든다. 각 나라에 한 번 있는 GP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광스러운 역할.

“체커맨?!”

< (10월 19일 수정) 말만 번지르르한 애들이랑 다르게 실제 행동을 보여줘서 더 믿음직스러워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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