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45화 (45/200)

< 이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

모터스포츠 특히나 포뮬러카와 같은 오픈 휠(open wheel)레이스에서 가장 많은 변수를 만드는 것이 바로 타이어다. 가장 빈번히 교체하는 것이면서도 레이서뿐만 아니라 팀 모두의 손이 닿는 부품이기 때문.

“감독님, 샤를 가도가 저희보다 약 1초 정도 피트 스탑이 빨랐습니다!”

“스메들리 서준하는 이제 피트 박스에 들어왔습니다!”

일찍이 피트 스탑에 들어갔던 4위 쿠쉬. 그리고 그의 레이스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오로라 팀.

피트 월에선 엔지니어 한 명이 티아고 감독에게 선두권 레이서들의 상황을 알렸다.

“WD도 미캐닉 파워 만큼은 강한 팀이지.”

피트 스탑 타이어 교체 기록만큼은 자신 있었던 티아고 감독. 자신들보다 빠른 피트 스탑 기록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서 중계 화면에 등장한 스메들리의 피트 박스. 티아고 감독이 긴장된 표정으로 타이어 체인지 장면을 바라봤다.

“흠...”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메들리의 피트 크루. 하지만 미캐닉 한 명이 어딘가 미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상했던 대로구만.”

“그렇게 빠른 기록이 나올 거 같진 않아요.”

입문 대회인만큼 레이서뿐만 아니라 미캐닉들도 대회 첫 출전인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나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스메들리 팀의 경우 피트 스탑이 약할 것으로 예상했다.

“저희 팀보다 3초 정도 뒤집니다!”

타이어 교체를 마치고 피트 레인을 빠져나가는 서준하의 포뮬러카. 피트 스탑 기록이 측정되자, 스태프가 이를 알렸다.

“이렇게 되면 선두권과 격차가 조금 줄어들 것 같습니다, 감독님!”

희망적이었다. 4위를 달리는 오로라의 메인 레이서 쿠쉬도 잘 하면 포디엄에 들 수 있는 상황. 티아고 감독이 흥분한 얼굴로 중계화면에 집중했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현재 1위는 루카. 그 뒤로 샤를이 따라붙습니다.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루카! 샤를과 격차가 조금 벌렸습니다.”

“아쉽게도 서준하는 피트 스탑 기록이 그렇게 좋지 못합니다. 이제 서준하가 나올 때가 됐죠!”

제한된 속도로 피트 레인을 따라 달리는 서준하의 포뮬러.

“루카는 멀찍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요. 선두권에서 피트 스탑 기록이 가장 좋았던 샤를인데요!”

“서준하와 샤를! 두 선수, 서준하가 출구로 나올 때쯤 만날 거 같습니다!”

피트 레인 출구로 향한 중계 화면. 출구 옆으론 샤를과 그를 뒤따르는 경쟁자들의 질주도 보였다.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휑.

“나왔습니다! 새 타이어를 장착한 서준하. 다시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달립니다!”

출구에서 빠져나온 서준하. 재빠르게 시프트 업하며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샤를의 포뮬러카가 보였다.

“아! 서준하가 좀 더 빨라요! 샤를! 샤를! 서준하의 뒤에 바짝 붙습니다!”

코너 진입 시점에 먼저 도착한 서준하. 다소 늦은 피트 스탑 덕분에 샤를과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메들리 피트! 다행히 샤를의 앞을 달리는 서준하입니다!”

“순위가 뒤바뀌진 않았지만, 이래서 피트 스탑이 중요합니다! 하마터면 서준하가 선두를 내줄 뻔했죠?”

이어서 등장한 스메들리 피트. 안도하는 미캐닉들과 굳은 표정의 코치진들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의 번갈아 잡혔다.

“루카도 다음 바퀴에는 타이어 체인지에 들어갈 것 같은데요.”

스메들리를 시작으로 다른 팀 피트의 모습이 차례로 화면에 등장했다.

MA 레이싱 팀의 분주한 피트 월. 총감독 슈벤과 레이스 엔지니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 WD 모터즈의 피트는 아쉽다는 표정들이 가득하네요.”

“그렇죠. 샤를에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그만큼 서준하가 피트 스탑 이전에 엄청 빨랐던 겁니다.”

“그래도, 아직 한두 바퀴에서 서준하도 새 타이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샤를 아직 기회 있습니다!”

참가 팀 최고의 타이어 체인지 기록을 낸 WD팀. 예상과 다르게 샤를이 앞서지 못하자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자, 그리고 이어서 오로라 모터즈입니다.”

4위 쿠쉬의 포뮬러가 잡히며 다음으로 오로라 팀 피트 월이 등장했다. 팀 분위기를 설명하던 중계진. 갑작스럽게 말을 멈췄다.

“어?!”

이어서 당황한 모습의 티아고 감독이 화면에 잡혔다.

***

“8랩을 남겨둔 상황에서 세이프티 카가 등장합니다. 황색기가 휘날리는 스네트 서킷. 선수들 모두 SC를 따라 서행합니다.”

F1을 포함한 모터레이싱에서 우천 시 사고 확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통계적으로는 150% 이상. 이번 대회에도 어김없이 크러쉬가 발생했다.

펄럭. 펄럭.

서킷 위의 사고가 났음을 알리는 황색기. 스네트 서킷의 5코너 그래블 배드(gravel bed, 자갈밭)위로 뒤엉킨 두 포뮬러가 보였다. 멈춰선 차량 주위로 모여드는 메디컬 카와 마샬들.

“큰 사고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18번 포뮬러면, 오로라 모터즈의 카이오네요. 들이받은 차가 5번 르노의 드미트리입니다.”

트랙 밖에 위치한 그래블 배드. 포뮬러가 그곳에 위치했다는 건 충돌한 차가 그곳으로 날아갔다는 얘기. 자갈밭이 없었더라면, 갤러리가 위치한 펜스까지 충돌이 있었을 만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드미트리 선수가 포뮬러에서 나옵니다. 다행히 드미트리 선수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요.”

크러쉬를 일으킨 장본인이 걸어 나오자 해당 팬들과 팀 관계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찌그러진 오로라의 포뮬러에선 레이서의 움직임이 보이질 않았다.

“흠, 사고가 심각해 보입니다. 어서 크레인이 드미트리의 차를 들어내야 할 것 같아요.”

해설자과 동시에 크레인이 트랙에 들어섰다. 뒤엉킨 두 차량을 분리해내는 크레인 기사.

“아, 이러면 오로라와 르노 팀 굉장한 위기인데요. 포인트 딸 선수가 이제 한 명 뿐입니다.”

구조용 장비를 동원해 레이서를 밖으로 빼내기 시작하는 후송 팀. 생각보다 오랜 시간 경기 재개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말을 잇는 중계진.

“저희 쪽으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카이오 선수 의식은 있답니다. 다행이네요.”

“이렇게 되면 다음 2,3차전에서 오로라 팀에선 다른 선수가 출전할 수도 있겠군요.”

이번 크러쉬로 리타이어하며, 다음 경기 출전이 불투명해진 카이오. 중계진에선 오로라 팀 예비 레이서의 출전을 예상했다.

후송 팀의 부축을 받아 엠뷸런스에 올라탄 카이오. 이어서 대회 운영 팀과 마샬들이 떨어져 나간 마블과 데브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경기는 계속 중단되고 있었구요. 이제 슬슬 경기가 곧 재개될 것 같은데요.”

사고 정비를 하며 흘러간 시간. 어느덧 비가 그치고, 코번트리(Coventry)의 하늘엔 서서히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크러쉬로 경기 시간이 많이 지체됐는데요. 선수들 아마 굉장히 피로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선수들 다시 집중력을 발휘 해야죠!”

가만히 콕핏에 앉아 포메이션 랩을 도는 것도 많은 체력 소모를 요하는 일. 중계진이 선수들의 체력 걱정을 늘어놨다. 그리고,

“자, 이제 포뮬러카의 움직임이 어딘가 달라진 듯 보입니다!”

사고 상황을 살피던 각 팀 레이스 엔지니어들. 선수들에게 다시 레이스 준비를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펄럭.

펄럭.

녹색기를 들고 나타난 마샬들. SC가 들어가고, 깃발이 휘날리자 포뮬러들이 강렬한 배기음을 뿜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했습니다! 맨 앞에는 MA 레이싱의 루카. 그 뒤로 서준하, 샤를 쿠쉬가 순위권을 달립니다!”

질주를 시작하는 포뮬러카들. 하나의 기차처럼 다닥다닥 붙었던 포뮬러들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하자, 갤러리들이 환호했다.

“피트 스탑을 미뤘던 MA의 루카! 길었던 레이스를 멈추고, 이제 피트로 복귀합니다!”

“경기가 중단되면서 가장 손해를 본 게 루카 선수죠. 지금 들어갔다가 빨리 복귀해도 순위권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초중반 격차를 벌리고, 경기 후반 피트 스탑 전략을 세웠던 루카. 예상치 못하게 경기가 중단되며 후미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말았다.

곧바로 피트 스탑에 들어간 루카.

“자, 루카가 빠지고 1위가 바뀌죠. 서준하! 선두로 올라섭니다!”

트래픽이 없는 예선에서 숏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서준하. 그의 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보고 중계진이 스메들리의 우승 가능성을 점쳤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서준하! 기다렸다는 듯이 스네트 서킷을 질주합니다!”

비가 그치긴 했어도, 여전히 미끄러운 노면. 오버스티어가 여러 번 나는 상황에서 서준하는 적절한 조향 테크닉을 발휘하며, 차체의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아! 이런 웨트 컨디션에서도 안정적인 드라이빙을 선보이는 서준하입니다!”

이어서 중계 화면에 잡힌 샤를의 포뮬러.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휑.

띠링.

“말씀하신 순간, 샤를이 경기 막바지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 아직 끝난 게 아니죠! 서준하를 추격하는 샤를 가도!”

스타트라인을 통과한 샤를. 본인의 최고 랩타임을 갱신하며 중계진을 놀라게 했다.

“두 선수, 카트 대회에서도 맞붙었던 적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때도 샤를은 서준하 뒷모습을 보고 피니쉬 라인을 밟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코 뒤집겠다는 샤를의 의지가 돋보이는데요!”

생소하고 불리한 서킷에서 2위라는 놀라운 성적. 하지만 자신의 카트 마지막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서준하가 눈앞에 보이자, 샤를이 막판 스퍼트를 달렸다.

“샤를! 샤를 가도! 시간이 없어요!”

본인의 최장점인 섬세한 페달링의 끝을 보여주며 서준하를 뒤쫓았다.

“지금 마음이 급한 건 샤를뿐만이 아니죠! 오로라와 르노 팀 선수들도 막판 과감한 코너링과 함께 추월을 시도하려는 모습입니다!”

크러쉬로 팀의 출전 선수 한 명이 리타이어한 오로라와 르노. 조금이라도 포인트를 높여야하는 상황에 공격적인 드라이빙을 보였다.

“비는 그쳤고, 경기 후반 집중력이 떨어질 시기입니다!”

“그렇죠! 뒤차들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어요!”

영국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에게 불리했던 스네트 서킷. 연습주행과 더불어 예선, 본선 중반까지 거치며 트랙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섣불리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어! 쿠쉬! 쿠쉬!”

3코너, 운 좋게도 조금 무리한 코너링에 성공했던 3위 쿠쉬 메오가 샤를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갔다.

“4코너! 4코너! 쿠쉬가 나옵니다!”

우측으로 꺾인 소형 헤어핀 4코너. 쿠쉬가 샤를의 인코스 좁은 공간을 파고들었다. 차의 중심을 바깥으로 돌려 차체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전환하는 쿠쉬.

“밀려요! 밀려요! 샤를이 바깥쪽으로 밀립니다!”

코너 진입 위치에서 밀린 샤를. 어쩔 수 없이 헤어핀 바깥쪽을 크게 돌아나오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인코스 오버테이크! 쿠쉬 메오! 타이밍이 기가 막힙니다!”

참가자 가운데 가장 디펜싱 능력이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 샤를. 레이스 막바지 온통 서준하만을 생각하며 달리던 순간 뒤차에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쿠쉬! 선두 자리에 목말랐던 쿠쉬! 치고 나옵니다!”

레이스 종반, 공격적인 주행으로 샤를을 제치며 빠르게 치고나오는 쿠쉬.

“이렇게 되면 쿠쉬가 서준하! 서준하와, 엥?!”

기세가 오른 쿠쉬를 보고, 막판 선두 경쟁을 예상했던 중계진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중계화면 잡힌 서준하의 위치.

“이, 이거 갑자기 뭐죠?!”

“언제 저기까지 갔나요?!”

벌써 마지막 코너를 돌아 스타트라인으로 접어드는 서준하.

이어서 전광판에 랩타임이 표시됐다.

“와하하하! 서준하! 17바퀴 랩 레코드(lap Record)를 기록합니다!”

랩 레코드, 한 서킷에서 기록된 랩 타임 중 가장 빠른 기록. 데이터를 살핀 중계진이 감탄을 내뱉었다.

“서준하! 2위와 엄청난 격차를 두고, 이제 파이널 랩에 들어갑니다!”

뒤차의 압박없었던 레이스. 실수 없이 클린랩을 돈 서준하가 승리를 눈앞에 뒀다.

< 이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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