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파라볼리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
이탈리아 몬차 서킷에 도착한 스메들리 포뮬러 팀. 팀 하우스에 대기 중이던 레이서들이 2차전 드라이버 미팅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하, 이탈리아에 오니까 어때?”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던 서준하. 그의 곁으로 다가선 루시가 서준하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준하야 이거 리버리킷 챙겨가고.”
손을 들어 레이서들을 부르는 롭을 보고 걸음을 옮기는 서준하. 그를 보고 다가온 헨리가 서준하에게 번호표를 건네줬다.
“이번에도 폴포지션으로 시작하는 거지?”
“응, 폴투피니시로 끝낼거야.”
이밖에도 서준하가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스메들리 팀원들. 모두가 기대의 찬 눈빛으로 서준하를 향해 웃었다.
“파이팅 하자, 닐.”
1차전 이후 여전히 침울한 표정의 닐. 롭 주위로 다가선 서준하가 그를 향해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어, 어 그래. 파이팅.”
어색하면서도 기운 빠진 목소리. 닐이 서준하의 손을 맞잡았다.
닐의 기분이 이해가 됐다. 1차전은 물론, 대회 시작 전부터 온통 서준하에게로만 쏟아진 팀의 관심. 미묘했지만, 팀원들이 레이서들을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차별 아닌 차별을 그도 느꼈을 테니까.
모터레이싱이 팀 스포츠라고 해도, 같은 팀 레이서끼린 라이벌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F1까지 가면서 수많은 레이서 메이트들을 만났지만, 서준하에겐 하나같이 닐과 같은 반응이었다. 어쩔 수없다. 여긴 원래 이런 곳이니까.
스메들리 팀 마크가 표시된 표찰을 목에 건 프랭크.레이서들과 데리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철컥.
“스메들리 팀 오셨군요. 저쪽으로 앉아주세요.”
미소가 아름다운 진행 요원이 팀을 준비된 좌석으로 안내했다.
“2014 포뮬러 르노 유로컵 2차전. 드라이버 미팅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희 주최 측에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스메들리 팀. 명단과 인원을 확인한 주최 측이 미팅을 시작했다.
연습 주행 전, 모든 팀 레이서가 한데 모여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더 좋은 대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최 측과 함께 토의하는 드라이버 미팅(또는 브리핑). 안전수칙 전달과 같은 형식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지난 1차전에서 오로라 모터즈의 카이오 선수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2,3차전 출전 불가능하다고 전달해주셨습니다. 맞죠?”
주최 측 바로 옆에 앉은 오로라 모터즈. 사회자의 질문에 티아고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어떤 멍청... 아니, 누가... 조금만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으면, 카이고의 선수 생활이 끝날 뻔했죠. 다들 빗길에선 욕심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마이크를 내려 놓으며 르노의 테이블을 흘겨본 티아고 감독. 그 모습을 본 르노 팀원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흠. 네, 알겠습니다. 오로라 팀. 그러면 리저브(예비) 레이서는 준비돼 있는 거죠?”
싸늘해진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하는 스태프. 어느 팀이건 이런 상황을 대비해 예비 선수들을 레이서 명단에 포함한다.
손을 뻗어 자신의 팀원 한 명을 가리키는 티아고 감독.
“이름이... 케빈 맞죠? 새로 출전하는 만큼 규정 사항 잘 지켜주세요.”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든 서준하. 재빠르게 오로라 팀 테이블을 훑어봤다. 그리고,
‘케빈 프로스트!’
여전히 앳된 얼굴의 어린 남자가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
드라이버 미팅이 끝나고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 회견장 밖 몬차 서킷의 널따란 주차장으로 적잖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쿠쉬 선수. 인터뷰 한 번 해주시죠. 몬차 서킷, 자신 있으신가요?”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오로라의 레이서 쿠쉬. 모터레이싱 기자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성이 다가섰다.
“제가 비록 터키 출신이지만, 몬차는 처음이 아니에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카트를 시작했고, 페라리의 광팬이기도 하죠. 직접 드라이브한 적은 적지만, 자주 찾았던 곳이라 익숙한 곳입니다. 자신 있어요.”
그리고 그 뒤로 등장한 샤를. 더 많은 취재진들이 그에게로 다가섰다. 마침 그 뒤로 회견장 문을 열고 나온 서준하.
“샤를! 많은 사람들이 이번 2차전에서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로 지목했는데요. WD 모터즈에서 가장 많은 연습 주행을 나온 서킷이 몬차라면서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영어 발음.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기자의 질문에 샤를이 확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뭐, 실수만 없다면, 폴투피니시는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최고속 주행 연습을 위해 여러 번 몬차를 찾았으니까요.”
아직 퀄리파잉 타임 트라이얼도 치루지 않은 상황. 이미 폴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처럼 확신에 찬 샤를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이탈리아 모터레이싱 팬으로서 참 보기 좋습니다. 몬차 서킷에 온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음, 소감이요. 이곳에 올 때면 마치 제 고향에 온 것 같아요. 그만큼 편한 곳이죠. 게다가 지금 이 주차장만 봐도 정말 설레네요. 빨리 여기서 F1 카를 몰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손을 뻗어 형형색색의 슈퍼카들이 즐비한 주차장을 가리키는 샤를.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알파로메오부터 람보르기니, KTM, 콜벳 등 국내에선 보기 힘든 슈퍼카들이 원초적인 엔진음을 내고 있었다.
“몬차는 빨리 달려야 하는 곳이에요. 아마 장시간 최고속 주행에 익숙하지 않은 레이서들은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상대 선수들을 햇병아리 취급하며 훈수를 두는 듯한 말투. 샤를의 말을 들으며 계단을 내려온 서준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라는 거야, 쪼만한 게.’
포뮬러 르노 2.0 유로컵. 이제 막 포뮬러를 탄 신예들의 무대고, F1까지는 멀고 먼 길. F1카를 타보고 싶다느니, 몬차가 익숙하다느니. 다른 선수들의 이런 말들이 어이가 없었다.
‘서킷에서 보자고.’
전체 대회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성공을 확신하는 선수들. 어린 선수일수록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작은 관심에도 쉽게 우쭐한다. 거만한 선수들의 미래가 보이는 듯한 서준하가 주차장 너머로 보이는 서킷을 둘러봤다.
‘편하긴... 여기가 얼마나 살벌한 곳인데.’
몬차 서킷을 마주하자,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든 서준하. 이곳에서의 수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회색의 콘크리트로 구성된 서킷과 달리 트랙 주위로 우거진 나무들 덕분에 숲 속을 질주하는 느낌을 주는 몬차 서킷.
F1의 오랜 역사와 떠오르는 신예들의 설레는 무대가 공존하는 곳이자,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함께 완벽하게 계산된 인공물이 공존하는 곳.
거대한 숲에 둘러싸인 5.793km의 몬차 서킷으로 선수들의 포뮬러가 타임 트라이얼에 들어갔다.
“2차전 퀄리파잉이 시작됐습니다! 본선 그리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각 팀 포뮬러가 피트 레인에서 뛰쳐나옵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구간이 몇 군데 없는 서킷. 피트 레인을 빠져나온 포뮬러들이 단 몇초 만에 160km/h 이상으로 속도를 높였다.
“선수들! 시작 전부터 꾹꾹 참았던 스피드를 지금 이곳 몬차에서 터트리고 있습니다! 엄청나군요. 현재 서킷의 평균 속도는 170km/h에 달합니다!”
500kg이 넘는 수십 대의 쇳덩이들이 200km/h이 넘는 속도로 질주하자, 엄청난 굉음이 서킷을 메웠다.
“쿠쉬! 쿠쉬! 파라볼리카에 진입합니다.”
마지막 커브인 파라볼리카. 그 이후 최고속으로 연신 달릴 수 있는 직선 주로가 등장하기에, 베스트 랩타임은 이 코너를 제대로 공략하는 데 달려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탐사를 마친 쿠쉬가 본격적으로 서킷 공략에 들어갔다.
“아! 쿠쉬, 속도가 점점 떨어지네요. 다음 바퀴를 노려봐야겠습니다!”
쿠쉬에 이어 다른 레이서들도 최고속으로 파라볼리카 앞에 도달했다.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샤를! 샤를이 파라볼리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급격히 떨어지는 포뮬러의 속도. 파라볼리카 앞에 위축된 모습에 중계진들의 표정이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역시 파라볼리카입니다. 어린 레이서들이 쉽게 속도를 높이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듯합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휑.
“자, 서킷으로 투입되는 포뮬러들! 가장 마지막으로 스메들리 팀 서준하의 포뮬러가 등장합니다! 이번엔 서준하의 드라이빙을 감상해볼까요?”
주위를 살피며 피트 레인에서 나온 서준하. 1차전 퀄리파잉 전략과 다르게 뒤늦게 트랙을 밟았다.
“천천히 트랙을 탐사하는군요.”
워밍업을 마친 서준하. 직선 주로에서 곧바로 속도를 올리며, 금세 최고속을 찍었다.
“가볍게 워밍업을 마친 서준하. 다시 한번 1번 시케인에 들어갑니다!”
“이번엔 진입 속도가 달라 보는데요?!”
포뮬러는 운전자의 시선이 머문 쪽으로 간다. 전방 시선을 멀리 둔 서준하. 직선 구간 끝으로 급격하게 꺾인 1,2코너 시케인이 보였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이번 대회 포뮬러카는 최고속 200km/h에서 정지까지 4.6초가 걸릴 정도로 브레이킹 능력이 우수하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은 서준하가 풀브레이킹에 들어가자,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파워! 파워 브레이킹입니다! 단번에 속도를 떨어뜨리며 시케인을 빠져나가는 서준하!”
급가속과 최고속 그리고 풀브레이킹이 연속되는 특징을 가진 몬차 서킷. 이어진 완만한 커브까지 재빠르게 가속을 해야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곧바로 풀스로틀을 밟으며 서킷을 질주하는 서준하.
“Wow! 속도를 높인 서준하. 다시 4,5코너에서 풀브레이킹! 완벽합니다!”
한 선수, 한 선수 트라이얼을 중계하던 해설진의 관심이 서준하의 포뮬러로 쏠렸다.
“빠르게 속도를 올려 파라볼리카로 향하는 서준하! 기어는 6단! 최고속입니다!”
급진적인 드라이빙 스타일. 게다가 눈에 띄는 엄청난 진입 속도 때문에 깜짝 놀란 해설진들.
“모든 코스 완벽한 브레이킹과 라인을 따냈던 서준하! 과연 파라볼리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까다로운 파라볼리카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들어갑니다! 서준하! 엄청나게 공격적인 모습입니다!”
커브에 최적화된 모멘텀으로 파라볼리카에 진입하는 서준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코너 진입 전 속도를 줄이지 않자, 해설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펙스(apex) 잡기가 어려울 텐데요오오오!”
아슬아슬 순식간에 코너를 빠져나가는 서준하.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탑스피드를 찍기 위해 다시 풀악셀을 밟았다.
‘여긴 닥치고 스피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파라볼리카. 유일하게 속도를 줄이지 않는 레이서가 나타났다.
< 과연 파라볼리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