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48화 (48/200)

< 이 바닥에 저런 레이서가 꼭 있었네 >

[Monza: Qualifying Time Trial]

[best lap time/랩/순위]

Team MA Racing Germany

루카: 1:49:231 / 15 / 6위

베른트: 1:52:231 / 14 / 11위

“슈벤 감독님, 레이서들 랩타임이 더 떨어집니다...”

이번 유로컵에서 우승 후보로 꼽혔던 MA 레이싱. 1차전 경험 없는 서킷에서 레이스를 치루는 불리한 상황에서 루카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후... 역시 몬차구만.”

하지만 2차전 예선에선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질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연구했건만...”

레이스의 힌트는 모두 트랙 안에 있다. 슈벤이 직접 레이서들을 끌고 트랙을 걸으며, 빠른 차들이 어떻게 달렸는지 트랙과 연석에 타이어 자국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실전은 이론과 달랐다. 순위권에도 오르지 못한 팀 레이서들. 사실 이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띠링.

띠링.

-이번 대회 트랙 레코드(Track Record)가 나왔습니다!

몬차 서킷에 울려퍼지는 효과음. 장내 아나운서가 활기찬 목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Team Smedley Formula British]

서준하: 1:41:046 / 12랩 / 1위

“...!”

몬차 서킷의 F1 베스트 레코드보다 20초나 뒤진 기록이었지만, 지금 대회 선수들과 똑같은 차로 세웠던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른 랩타임이었다.

“...또 서준하야?!”

놀라웠다. 아니, 의외였다. 어린 영국 레이서 역시 몬차가 처음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어, 어떻게 저게...?”

“컨트롤 라인 타임 체커에 이상이 생긴 거 아닙니까...?”

코리안 레이서의 선전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슈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1차전에서도 혜성처럼 등장해 예선 1위를 차지했던 코리안 레이서. 피트 스탑 기록이 좋았다면, 1차전 본선 레이스를 압도했을 정도로 그의 드라이빙은 훌륭했다.

“2차전 퀄리파잉은 정말 어느 누구도 예측 못한 결관데요...”

예선 타임 트라이얼이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안타까운 목소리로 상황판을 살피던 팀 스태프의 말에 슈벤 감독이 고갤 들었다.

[Monza: Qualifying Time Trial]

[순위/best lap time/랩]

1.서준하(스메들리)/1:41:046 / 12

2.케빈(오로라)/1:43:101 / 10

3.닐(스메들리)/1:44:103 / 8

4.샤를(WD)/1:44:555 / 11

.

.

“WD 샤를이 4위?”

“게다가 스메들리가 3위까지 차지했습니다...”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폴포지션은커녕 순위권에도 못 오른 WD 모터즈. MA의 경쟁자 샤를의 4위는 뜻밖이었다.

“...순위권 모두 예상 밖의 인물들이네요?”

“서준하라는 2경기 연속 폴포지션... 근데 2위 케빈? 얘는 누구지?”

“오로라 모터즈, 리저브 레이서요. 카이오라는 레이서 대신 출전한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렇지. 그, 근데 리저브였던 레이서가...”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 주전으로도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쟁쟁한 상대들 보다 훨씬 앞서 2위를 차지한 상황이었다.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선수 데이터가 없어요... 포뮬러 대회 출전 기록이 없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그런 레이서가 예선 2위를 했다고?”

“아마 이번 대회가 데뷔전인 듯 합니다.”

스메들리의 서준하라는 신성에 이어 돌연히 등장한 케빈 프로스트. 예선 종반, MA 레이싱 팀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

2차전 타임 트라이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스메들리 팀. 팀원 전체가 팀 하우스 메인 홀에 모여들었다.

“WD 놈들 별 거 아니네, 이탈리아 팀이라서 무조건 1위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까 WD 피트 지나가는데, 분위기 완전 개작살났더라고. 스테파노 아저씨 완전 화났더라.”

“그나저나 준하가 진짜 빠른 레이서구나, 어떻게 41초대로 들어오냐!”

폴포지션과 예선 3위를 차지한 스메들리 팀. 본선 레이스 하루 전 어느 포뮬러 팀보다 밝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봐, 닐. 어째 예선 시작 전이랑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여기 의자가 엄청 편해.”

“이젠 포디엄 노린다고 그렇게 앉아도 되는 거냐? 크크.”

팀 하우스 중앙, 기다란 덱체어에 누운 듯 앉은 닐. 오랜만에 보는 그의 편안한 얼굴에 팀원들이 장난을 걸었다.

“준하가 폴투피니시 하고, 네가 한 명 제쳐서 둘이 1,2위하면... 와, 이거 상상만 해도 기쁘다, 하하.”

“준하는 숏런에 강해. 앞에 트랙픽만 없으면 충분히 폴투원이야. 닐만 잘해주면... 우리 팀도 우승 가능성이 있겠는데?”

준하. 준하. 준하. 변함없는 서준하를 향한 팀원들의 극찬. 워낙 뛰어난 실력자이기에 그럴 만도 했지만, 너무 불편했다. 레이스 엔지니어들의 농담에 그저 미소를 띄운 닐.

“감독님 오셨다.”

팀 하우스 정문을 열고 롭과 함께 들어선 프랭크. 시끌벅적한 메인 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헨리, 엔진 점검 어떻게 됐나?”

“저도 예선 끝나고 엔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문제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엔진이 고장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급가속, 최고속, 풀브레이킹이 연속되는 특징을 가진 몬차. 이런 서킷에서 멋도 모르고 차를 험하게 굴리다간, 엔진 블로우(Engine Blow)와 같이 실린더에 금이 가거나, 피스톤이 손상돼 고장 나는 사태가 족족 발생한다.

“흠... 절대 엔진에 문제가 생겨선 안되네.”

다시 한번 엔지니어링 팀에게 당부하며, 2차전 피드백을 이어가는 프랭크.

“다들 표정이 밝구만.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네. 2차전이 우리한텐 엄청난 기회야. 팀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문턱이지. 이럴 때 일수록 레이서들은 자만하지 말고...”

띠링.

철컥.

땀을 흘리며 하우스로 들어온 스메들리 미캐닉들. 모두의 시선이 출입문으로 향했다.

“자네들 여태 피트에 있었나?”

프랭크가 묻는 말에 레리가 고갤 끄덕였다.

“미캐닉들은 좀 쉬라니까. 오늘 또 무리한 것 같은데.”

퀄리파잉이 끝나고 따로 연습에 들어갔던 미캐닉 크루. 1차전 이후 피트 스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고, 몬차에 온 이후 쉬지 않고 피트 스탑을 연습했다.

“자, 다들 내일 레이스 준비 잘 해주게.”

서로가 서로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분위기, 홀 한구석에 모인 미캐닉들이 숨을 고르는 모습이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헤이, 윌슨.”

그리고, 환하게 웃는 윌슨과 눈이 마주친 서준하. 미소와 함께 윌슨에게 윙크를 날렸다.

“오, 못 보던 아이템이네.”

레이서와 마찬가지로, 미캐닉들도 레이싱슈트와 같은 팀 유니폼을 입는다. 서준하의 눈에 윌슨의 새로운 레이싱 슈즈가 보였다.

“저기, 저 여자가 선물해줬어.”

윌슨이 손을 뻗어 멀찍이 롭과 수다 떠는 한서윤을 가리켰다.

“흠, 한발 늦었네.”

마땅한 슈즈 하나 없이 공업용 작업화를 신었던 윌슨. 1차전 이후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한서윤에게 미리 부탁했었다.

“참 센스 있는 사람이야.”

한서윤과 눈빛을 교환하던 서준하. 다시 그를 향해 고갤 돌리자, 윌슨이 가까이 다가섰다.

“고마워, 준하. 이번엔 피트 스탑 기대해도 좋을 거야.”

처음 듣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작고 어려보이던 윌슨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다.

***

2차전 본선 레이스 시적 전, 오로라 피트에서 서킷을 바라보는 두 사람.

“쿠쉬보다 빠를 줄 몰랐어요. 이거 대박입니다.”

2차전 예선 5위로 밀려난 우승후보 쿠쉬 메오. 팀이 전적으로 믿는 메인 레이서였기에 티아고 감독의 실망감은 컸다.

하지만 팀에선 예상 밖의 뛰어난 결과를 낸 또 다른 레이서가 탄생했으니,

“역시 엄청난 인재가 맞구만!”

“아마 이번 유로컵에서 가장 어릴 겁니다. 진짜 역대급 유망주가 분명합니다.”

오로라 포뮬러 아카데미에서 합류한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은 케빈. 아카데미 단장의 권유로 다음 시즌를 위한 탐사 겸 리저브 레이서로 데려온 선수였지만, 뜻밖에 오늘 데뷔전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

“이건 분명해! 이 바닥에 저런 레이서가 꼭 있었네. 어린 나이에 떨지도 않고, 데뷔 무대에서 뜻밖의 기록을 뽑아내는 레이서들이 있었지. 다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그게 뭔 줄 아나?”

“레이싱 천재, 뭐 그런 건가요?”

엔지니어의 말에 크게 한 번 웃는 티아고 감독.

“아니지! F1! 포뮬러 원 레이서들의 공통점이네. 케빈, 이놈은 무조건 F1에 갈 거야. 내 장담하네!”

“그거 좋군요. 오로라 모터즈에서도 F1 레이서가 한 명 나오겠네요.”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준 케빈. 오로라 팀 코치진 모두가 기대에 가득찰 수밖에 없었다.

“오늘 기상 데이터도 엔지니어들이 예상했던 그대로입니다. 세팅값도 문제없이 잡았고, 연습대로 탄다면... 이거 데뷔전 우승도 노려볼만 하겠는데요?”

연습 주행 데이터를 비교해가며, 서킷 상황을 체크하는 엔지니어들. 큰 변수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오늘 레이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오늘은 보는 눈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만.”

“그래요? 누가 오셨습니까?”

티아고의 말에 궁금한 표정을 짓는 엔지니어. 그 모습을 본 감독이 메인 스텐드를 가리켰다.

“케빈의 데뷔전인데 빠질 수가 있나.”

그리고 다시 확신에 찬 눈으로 그리드를 바라보는 티아고 감독. 그 어느 포뮬러카보다 2번 그리드에 대기 중인 케빈의 포뮬러가 눈에 띄었다.

“그나저나 저 코리안 녀석. 2연속 폴포지션입니다. 주니어 선수 중에 저렇게 숏런에 강한 선수는 처음 보네요. 엔트리 무대에 갑작스럽게 실력자가 등장한 기분입니다.”

정말 그랬다. 1차전에서도 압도적인 퀄리파잉 랩타임. 그리고 이번 몬차에서도 2위와 2초가 넘는 차이를 기록한 스메들리 퍼스트 레이서.

“허허, 데뷔전에서 케빈이 괜찮은 상대를 만난 거 같구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제 티아고 감독의 진짜 우승 경쟁팀은 스메들리였다.

***

두두두두두두둥.

부우우우우웅.

2차전 본선 레이스 시작 전, 포메이션 랩을 마치고 그리드에 선 서준하의 포뮬러.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케빈의 모습이 보였다.

[Aurora Motors. Kevin]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녀석을 볼 줄 몰랐다.

케빈 프로스트. 전생 서준하의 F1 최연소 데뷔 기록을 깬 레이서이자, 특별한 배경으로 매번 화제를 몰고 다녔던 레이서.

‘데뷔전이면, 아마 그 사람도 왔겠지.’

전생 케빈의 얼굴과 함께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이 서준하의 머릴 스쳐갔다.

띠딩.

출발이 임박한 상황. 다시 한번 중계진의 관심이 선두로 쏠렸다.

“폴포지션에 서준하! 1차전에 이어 연속 폴포지션입니다!”

“이번 대회 다크호스 아니, 강력한 챔피언 후보 서준하입니다!!!”

중계 카메라가 가장 앞자리 포뮬러카를 클로즈업 하자, 서준하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신호 꺼집니다! 2014 유로컵 2차전 레이스 시작합니다!”

< 이 바닥에 저런 레이서가 꼭 있었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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