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53화 (53/200)

< 준하가 이번 대회 유력한 챔피언 후보니까 >

“1,2차전 누누이 말하지만, 샤를 가도는 추월 능력은 기본적으로 약해. 하지만 유리한 라인을 선점하고, 끝까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선 디팬딩이 엄청 강한 선수야.”

스메들리 팀 하우스의 회의실 안. 3차전을 며칠 남겨두고, 대회 준비에 한창인 서준하와 레이서들. 경쟁 선수 분석을 담당한 맬릭이 열을 쏟고 있었다.

“이번 대회 어느 선수보다 브레이킹 존을 멀리 두는 레이서지. 브레이크 패달링이 엄청 섬세해.”

트레일 브레이킹, 일종의 브레이킹 존을 멀리 두는 제동 테크닉으로, 추월을 하거나 상대의 추월을 방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구 능력이다.

“근데 또 녀석의 브레이크 패달링을 보면, 다른 선수들이랑 달라. 타이어 관리에도 부담을 안 느낄 스타일이지. 그러니까 이번에도 무조건 샤를한테 선두 자리를 줘서는 안 돼.”

헤비 브레이킹 구간에서 샤를과 같이 트레일 브레이킹으로 코너를 돌면 타이어 소모가 균일하게 일어난다. 카탈루냐 서킷의 노면이 아스팔트인 걸 감안할 때, 샤를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피트 스탑 횟수를 적게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잠깐 쉬었다가 하자.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맬릭의 말과 함께 레이서 팀이 쉬는 시간을 가졌다.

회의실에 단둘이 남은 서준하와 닐.

하품을 하던 닐이 기지개를 펴며 서준하의 곁으로 다가왔다.

“샤를이 엄청 영리한 놈이긴 한가 보네. 맬릭이 저렇게 집중해서 설명하는 건 처음 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서준하. 그 모습에 닐이 서준하의 노트 곁으로 고갤 들이밀었다.

“뭘 그렇게 적어?”

두꺼운 공책 절반 가까이 빽빽이 채워진 글씨들. 노트를 펼친 닐이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레이스 일지? 난 또 네가 모범생처럼 맬릭이 말한 걸 전부 받아 적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시시하다는 표정과 함께 노트를 내려놓는 닐.

“근데 이런 걸 왜 적는 거야? 일지 같은 건 굳이 적을 필요가 없잖아. 녹화 영상도 많은데 손 아프게 뭘.”

애초에 서준하가 F1 레이서였다는 걸 그가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질문. 노트를 집어든 서준하가 닐을 바라봤다.

“난 하루에도 수십 번 드라이빙을 복기해. 그걸 까먹지 않으려면 이렇게 일지에 적어야 해. 매일 하다보면, 평소에 발견하기 어려운 습관 같은 걸 보게 돼서 좋더라고.”

노트를 집어들어 살피는 닐.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노트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음, 그럴 듯 하네... 너 근데, 3차전에도 포디엄에 오를 자신 있어?”

“포디엄... 너도 포디엄에 오르는 게 목표겠지?”

자신 있냐는 눈빛으로 서준하를 바라보는 닐. 포디엄이라는 말에 서준하가 되물었다.

“말이라고 하냐. 이번 대회 시작할 때부터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2차전에 실수를 좀 한 거고. 근데 왜?”

“내가 볼 땐, 우리가 너무 포디엄에만 목숨을 걸 필요는 없어.”

“뭐? 얘가 또 이상한 소릴 하네.”

대회 참가자 모두 포디엄을 목표로 하는 상황. 그의 말이 어색하게 들렸다.

“아무리 유로컵이라고 해도, F1 무대를 향한 여정에서 보면 그냥 엔트리급 대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꼭 우승을 해야만 상위 리그로 진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닐의 얼글을 보며 차분하게 얘길 꺼내는 서준하.

“페이 드라이버(pay driver)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야. F3도 돈만 있으면 콕핏에 앉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굳이 팀워크를 깨면서까지 포디엄에 목맬 필요가 없어.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많은 레이서들이 포디엄에만 목숨을 거는 상황. 하지만 정작 엔트리급 대회에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 대회에 참관하는 포뮬러 관계자들이 여기서 뭘 보러오는 줄 알아?”

“챔피언? 포디엄?”

“잠재성 있는 레이서를 찾으러와.”

“잠재성?”

좀전과 달리 동그랗게 뜨인 눈. 닐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포디엄에 오른 레이서들은 그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드라이빙 기본기는 탄탄한지. 타이어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평정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드라이빙을 해내는 레이서인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여긴 임팩트가 중요한 곳이야.”

포디엄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엄청난 닐. 팀 메이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F1 레이서...?”

F1이라는 단어에 크게 반응하는 닐 앨런. 어릴적부터 열망했던 그 단어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F1 레이서로서 네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이빙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당황한 얼굴로 서준하를 바라보는 닐. 미소를 띄운 서준하가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괜찮아, 아직 기회는 있어. 한번 더 남았잖아?”

***

2014 포뮬러 르노 유로컵 3차전. 퀄리파잉 타임 트라이얼 시작 전, 카탈루냐 서킷 위로 유니폼을 차려입은 레이서들이 모여들었다.

“자, 1,2차전 때랑 똑같이 사진 몇 장 찍을게요. 표시된 장소에 위치해주세요.”

대회 운영 스태프가 스타트라인 부근에 마련된 의자를 가리켰다. 익숙한 듯 그녀의 지시에 따르는 레이서들.

‘Fomula Renault 2.0L Eurocup Spain 2014’라는 피켓을 중앙으로 선수들이 사진 대열을 만들었다.

“아, 이번엔 스메들리 팀이 중앙으로 와주세요.”

우측 가장자리에 위치했던 스메들리 레이서들. 운영진이 스메들리 팀을 꼬집어 대열의 중앙으로 위치시켰다.

특히 세 명의 레이서 중 서준하를 정중앙에 두는 스태프.

“자, 앞쪽에 앉으신 선수들은 손을 가지런하게 놔주시고, 뒤에 서 계신 선수들은 열중 쉬어 자세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형색색의 각 팀 오버롤이 만드는 화려한 무늬. 대열 중앙 스메들리 레이서들의 파란 유니폼이 한서윤과 롭의 눈에 띄었다.

“이제 막 포뮬러에 들어온 선수들 치고는 제법 프로 선수다워 보인다, 그지?”

“다른 선수들도 그렇지만, 준하 쟤는 특히 레이싱슈트가 잘 어울리는 선수같아. 진짜 레이서 안 됐으면 어쩔 뻔했어.”

평범한 선글라스와 팀 모자를 눌러쓴 서준하. 그의 얼굴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이 가득해 보였다.

“자, 끝났어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레이서들. 특히 헝가리 선수들이 스메들리 팀 선수들에게 다가와 수다를 떨었다.

“확실히 저쪽은 얼굴이 어둡네.”

“우승 후보들이 순위권에도 못 들었으니까,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니겠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MA 레이싱과 르노 아카데미 팀. 한서윤이 대열의 좌측을 가리켰다.

“서윤, 오로라의 저 꼬맹이가 누군지 알아?”

“꼬맹이?”

“저기, 오로라 팀 빨간 유니폼 입은 가장 키 작은 선수.”

“음, 누구지? 잘 모르겠는데?”

“F1팀에 있었다면서 소식이 좀 느리다?”

오로라 모터즈의 케빈 프로스트를 가리키는 롭. 케빈의 얼굴을 본 한서윤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킷 위의 교수님 알지?”

“교수님이면, 앙드레 프로스트? 어어, 그러고 보니까 닮은 거 같다!”

2차전 케빈의 활약은 롭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케빈의 배경을 살펴본 롭은 이번 대회 그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근데 쟤 아까부터 스메들리 쪽을 계속 흘겨보던데.”

케빈을 비롯해 계속 서준하를 흘겨보는 몇몇 레이서들. 경직된 그들의 표정이 롭과 한서윤의 눈에 포착됐다.

“그럴 수밖에. 준하가 이번 대회 유력한 챔피언 후보니까.”

이번 대회 라이징 스타, 서준하. 두 사람을 발견한 그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

“본선 그리드 배정을 위한 타임 트라이얼 시작합니다! 카탈루냐 서킷 위로 포뮬러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각 팀의 피트에서 아웃 랩(out lap)하는 선수들. 타임 트라이얼이 시작되는 신호가 울리자, 갤러리들이 환호했다.

“카탈루냐는 테크니컬한 서킷이 아니거든요? 사실상 이번 타임 트라이얼 성적이 본선 레이스 성적과 비슷하다고 봐도 거의 무관합니다. 그만큼 시작부터 엄청난 긴장감이 맴도는 듯합니다!”

기초적인 코너와 헤어핀을 모아놓은 카탈루냐. 자연 지형을 이용해 만든 서킷도 아닌 터라, 트랙의 고저차도 그리 크질 않다. 길이 역시 길지 않은 깔끔한 서킷.

“가장 먼저 트랙을 도는 선수는 바로 샤를 가도입니다. 롤링 스타트를 충분히 해주는 모습이죠?”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타이어를 데우기 시작하는 WD의 샤를 가도. 연습 주행 시기보다 기온이 조금 떨어진 환경에서 좀 더 하드한 히트업을 시작했다.

“2차전 환상적인 질주를 보여준 오로라 모터즈의 케빈이 등장합니다!”

오로라 모터즈의 빨간색 포뮬러 한 대가 나타나자, 피트 레인 근처 빨간색 깃발을 든 무리가 환호했다.

부우우우우웅.

속속들이 트랙에 들어서는 포뮬러들.

피트 레인 근처 서준하의 파란 포뮬러가 롤링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 잡혔다.

“그리고 이번 대회 슈퍼 루키! 스메들리의 서준하가 타이어를 이리저리 흔들며 피트 레인을 나섭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서준하를 보고 흥분한 중계진들.

“유로컵에서 서준하만큼 숏런이 좋은 선수는 없을 겁니다! 저 선수의 등장만으로 갤러리가 들썩이는데요!”

1,2차전 모두 폴포지션을 차지한 서준하가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워밍업에 들어갔다.

“과연 이번 예선에서도 압도적인 기록을 보여줄지! 서준하가 1코너로 향합니다!”

숏런이 좋다는 건 퀄리파잉 모드에서 포텐셜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한다. 트래픽이 없는 상황에선 압도적이란 소리.

“1차전 예선 경기 극초반부터 플라잉 랩(Flying lap)에 들어갔던 서준하. 오늘도 초반 어택에 들어갈지! 시작부터 관심이 집중됩니다!”

퀄리파잉에서 최고의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달리는 플라잉 랩(핫 랩). 가능한 적은 연료와 서킷 적응도가 높은 예선 후반에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 말씀하신 순간 서준하가 속도를 높입니다!”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포뮬러 한 대. 모든 팀 레이스 엔지니어들의 시선이 서준하에게로 쏠렸다.

“서준하! 탐색 따윈 필요없다는 건가요?!”

“1차전과 마찬가지로 초반 어택을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평소보다 현저히 적은 연료를 채우고 퀄리파잉에 들어온 서준하. 일찍이 예선 최고 기록을 세우기 위한 전략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의 뒤로 달려드는 포뮬러카가 있었으니,

“샤를! 샤를! 급격하게 속도를 높이며 서준하의 뒤를 따릅니다!”

먼저 한바퀴를 돌아온 샤를이 시프트업하며 속도를 높였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슈우우웅.

경기 초반 갑작스러운 상황에 중계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

그리고 전속력으로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포뮬러카 한 대.

“케빈! 이번엔 케빈이 속도를 높입니다!”

샤를, 케빈 그리고 서준하. 마치 사전에 계획한 듯 세 선수 모두 질주를 시작했다.

“3차전 우승 후보 전원! 동시에 어택을 시작합니다!!!”

< 준하가 이번 대회 유력한 챔피언 후보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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