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56화 (56/200)

< 요청한 사람이 다른 레이서도 아니고, 서준하입니다 - 유료 시작 >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카탈루냐 서킷 위로 포뮬러 카들이 포메이션 랩을 돌고 있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끼익.

레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이어의 온도를 높이는 레이서들. 현란한 스티어링과 함께 롤링을 하는 포뮬러들이 여럿 보였다.

“2014 포뮬러 르노 유로컵! 이제 곧 본선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대회 최종전인 만큼 경기 시작부터 각 팀의 팬들이 저마다의 구호로 레이서들을 응원했다.

“예열을 마치고 그리드에 들어서는 선수들! 끝에서부터 요리네, 키바이, 우스만...”

출발 순서 24번째 레이서부터 선두 쪽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자, 중계진이 선수들의 이름을 소개했다.

“...6번 그리드에 닐 앨런, 5번 쿠쉬, 4번 루카, 3번 케빈...”

스트레칭을 하는 선수부터 이리저리 스티어링을  흔드는 선수까지. 스타트 라인에는 묵직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또 다른 챔피언 후보 샤를 가도가 2번째 그리드에 위치합니다!”

2번 포뮬러에 잠시 멈춰선 카메라, 옆을 돌아본 샤를이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샤를을 잡던 카메라가 마지막 선수에게로 향하자마자, 갤러리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번 대회 3연속 대회 폴포지션을 차지하며 챔피언 자릴 확정 지으려는 스메들리의 서준하입니다.”

그 어느 선수의 등장보다도 강렬한 함성과 박수.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기 중인 서준하가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리고,

띠.

띠.

우우우우우우웅.

띠.

위이이이이이이잉.

“불 꺼졌습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는 포뮬러 카들. 출발과 동시에 스타트 라인 부근으로 스모크가 가득 차올랐다.

“선수들 1코너를 향해 돌진합니다!”

“1,2차전 보다 훨씬 안정적인 스타트를 보여주는 레이서들인데요!”

처음 대회 시작만 해도 스타트에서 업치락 뒤치락 했던 포뮬러들. 최종전만큼은 레이서들의 실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치열한 예선을 거치며 카탈루냐에 완전히 적응한 레이서들! 이제 단 한 번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카탈루냐에서 추월하는 모습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굉장히 단순한 서킷 레이아웃에 랜덤한 상황이 거의 나오질 않는 평이한 서킷.

이곳에서의 자잘한 실수는 곧 상대편에게 기회다. 추월에 성공했다면, 그건 뒤차의 실력이 뛰어났다기보다 앞차의 실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주행이 필수인 상황.

“실수 말고도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죠. 오늘 경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피트 스탑 횟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과거 대회들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많게는 3번까지 피트 스탑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선수들 피트 스탑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경쟁에 유리할 겁니다.”

25분 이상 지속되는 레이스. 아스팔트 노면의 카탈루냐 서킷은 일반 서킷보다 타이어 마모도가 훨씬 높은 환경이다. 레이서는 물론 팀도 타이어 관리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 자칫 한 차례의 피트 스탑 실수가 레이스 순위를 뒤바꾸게 된다.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며 다시 1코너에 진입하는 포뮬러들! 전체적으로 주행 속도가 오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카탈루냐에서 추월 포인트는 1코너말곤 전부 쉽지 않거든요!”

선두 포뮬러를 시작으로 상위권 4대의 포뮬러가 1코너 진입 내리막에 들어섰다.

***

[2014 유로컵 3차전]

[lap 10]

F1 캘린더에서 가장 지루한 GP로 여겨지는 스페인 그랑프리. 갤러리 모두 조용히 레이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실제 참가 선수들과 팀들의 상황은 달랐는데,

-준하, 14T 탈출에서 속도가 떨어져서는 안 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롭. 실제 자신이 운전하는 것처럼 매 턴 주의사항과 드라이빙 포인트를 레이서에게 알렸다.

-지금 9 랩이랑 타임 차이가 없어! 좀 더 타이트하게 몰아

레이스 중반에 다다른 상황. 슬슬 레이서의 집중력이 떨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롭이 목소리를 높였다.

컨트롤라인을 통과 후 1코너에 진입하는 서준하의 포뮬러.

-내리막 조심해, T2에서 탈출이 늦어져선 안 돼

“copy”

계속해서 같은 트랙을 수없이 도는 레이스지만, 반복적으로 돌다 보면 모든 코너가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선 특정 코너의 포인트를 놓치기 십상.

-지금 진입 속도가 너무 빨라, 조금만 늦춰

“빠르다고?”

레이스는 레이서 혼자만 달리는 것이 아니다. 레이서는 레이스 엔지니어 그리고 팀과 함께 달린다.

롭의 큐대로 재가속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간 서준하. 곧바로 3코너 초대형 헤어핀에 진입했다.

부우우우우웅.

끼이이익.

충분히 속도를 죽이고 긴 헤어핀을 돌았지만, 순간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스키드음을 냈다.

-슬라이드가 너무 깊은데? 차가 생각보다 많이 미끄러졌어. 타이어를 바꿀 때가 된 거 같다

이전과 달리 적절한 진입 속도에도 미끄러짐을 제어하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롭이 타이어 교체를 지시했다.

“오케이, 이번에 피트 스탑한다.”

단순히 레이스 상황과 카메라 화면만 보고도 차의 상태를 단번에 캐치하는 롭. 비슷한 타이밍에 서준하도 그립감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격차가 좀 있으니까, 타이어는 미디움으로 안전하게 간다?

이미 다른 차들은 일찍이 피트 스탑에 들어갔고, 선두의 서준하는 조금 격차를 벌렸다. 내구성 높은 미디움 타이어를 권하며 롭이 보수적인 레이스 운영에 들어가려는데,

“아니, 한번 더 소프트로 갈 거야.”

롭은 물론 스메들리 팀의 예상과 다른 서준하의 선택. 한치의 망설임 없는 답변이었다.

-소프트? 격차가 조금 벌어지긴 했어도 아직...

그립감이 좋은만큼 내구성은 떨어지는 소프트 타이어. 이미 앞서있는 상황에서 추월을 시도할 게 아니라면, 무리할 이유가 없는 옵션 타이어였다. 레이서의 요청에 망설이는 롭.

-흠, 잠시만 준하야

당황한 롭이 곧바로 프랭크 감독과 헨리가 있는 피트로 무전을 보냈다.

“혹시나 펑쳐라도 난다면...”

경기 내내 차분했던 롭.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옆에선 엔지니어 아론이 불길한 말을 꺼냈다.

“허허, 지금 상황에 그럴 필요가 있어?”

롭의 무전에 당황한 스메들리 피트.

-요청한 사람이 다른 레이서도 아니고, 서준하입니다. 다 생각이 있는 듯합니다

서준하가 이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요청에 의견이 엇갈리는 스메들리 팀. 결국 롭이 설득에 들어가는데,

-후...

무전 중 다시 한번 상황판을 확인한 롭. 피트 스탑 타이밍에 가까워진 서준하를 보고 머릴 감싸쥐었다.

-준하야 대기, 피트에서 아직 확답을 안 주고 있어.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한시가 급한 상황. 롭의 응답이 길어지자, 서준하가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무전을 날렸다.

“롭, 날 방해하지 말라고 전해.”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이 남았다. 애초에 이번 대회 출전하는 서준하의 목표는 단순히 챔피언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

당황한 것도 잠시, 포뮬러카가 피트 레인에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롭이 곧바로 헨리에게 무전을 보냈다.

-헨리, 타이어 체인지는 소프트로 해! 준하의 부탁이야!

막판에 서준하가 자만에 빠졌다거나, 무리수를 던지려는 건 더욱 아닌 듯했다. 지금은 서준하를 믿고 맡겨줄 때.

“뭐? 소프트?”

확신이 생긴 롭이 목소리를 높였다.

-닥치고 그냥 해줘! 다 생각이 있겠지! 서준하잖아

***

WD 모터즈의 피트 월. 페르난도 감독이 초조한 표정으로 상황판을 바라봤다.

“어! 서준하! 이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메들리 피트가 박스를 준비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트 스탑에 들어가는 서준하. 경기 시간을 확인한 페르난도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우. 샤를의 마지막 기회야! 서준하가 피트 스탑하고 나오기 전에 최대한 치고 나가라고 전해!”

15초 가량 벌어진 샤를과 서준하의 격차. 페르난도의 머릿속엔 온통 피트 레인을 빠져나오는 서준하와 샤를이 맞닥뜨리는 장면이 가득했다.

“좋아 좋아, 지금 샤를이 타이어를 바꾼지 얼마나 됐지?”

“두 바퀴를 넘어섰습니다!”

새로운 타이어를 장착한 서준하. 서킷에 나온 뒤 한두 바퀴는 적응하며 속도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서준하가 나올 때 쯤이면, 샤를의 그립감이 피크에 달하겠구만. 이번이 진짜 기회야, 반드시 제쳐야 해!”

이는 곧 샤를의 포뮬러카가 최상의 컨디션을 보일 시기. WD의 피트 월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감독님, 샤를 뒤에 케빈이 따라붙습니다!”

엔지니어의 말을 듣고 상황판을 살펴본 페르난도. 이전보다 샤를의 뒤로 가까워진 케빈의 차량이 눈에 띄었다.

“좋아 케빈! 너도 올라와!”

오히려 더 잘됐다. 서준하가 3차전 2위에만 올라도 대회 챔피언이 되는 레이스.

아직 샤를이 챔피언이 되는 것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WD 코치진에겐 케빈의 질주가 반가웠다.

“나이스! 서준하와 격차가 10초대에 들어왔습니다! 계속 줄어듭니다, 감독님!”

선두와의 격차가 계속 줄어드는 샤를.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최후의 집중력과 피트 스탑에 들어간 서준하의 딜레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서준하는?! 아직 피트에 있어?!”

기쁜 소식과 함께 달아오른 WD 피트 월. 흥분한 페르난도 감독이 선두의 위치를 물었다.

“이제 나옵니다! 서준하, 피트 박스를 떠났습니다!”

엔지니어의 말과 동시에 중계 화면을 바라본 페르난도 감독.

화면에는 피트레인을 달리는 스메들리 포뮬러카 한 대가 보였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WD 팀은 물론 갤러리의 관심이 피트 레인 출구로 쏟아진 가운데,

“피트 스탑을 마치고 서준하가 피트 레인에 올라섰습니다!”

“새 타이어를 장착하고 달려가는 서준하! 스메들리 팬들 환호합니다!”

피트 레인을 달리는 파란색 포뮬러카가 카메라에 잡히자, 중계진이 소리쳤다.

“서준하가 앞서긴 해도, 이제 막 타이어를 교체했기 때문에 한두 바퀴 정도는 뒤차들에게 기회가 있어요!”

새로운 타이어에 예열과 적응이 필요한 상황. 경쟁자들에겐 분명 기회였다.

“그렇죠. 피트에서 충분히 타이어를 데웠다고 하지만, 서준하도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제보다 노면의 온도가 떨어지기도 했고요.”

피트 레인에서의 제한 속도 덕분인지 확연히 느려보이는 서준하의 포뮬러.

“샤를과 케빈! 전력으로 질주합니다!!!”

“서준하 빨리 복귀해야 하는데요오오!”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는 샤를과 케빈의 포뮬러.

“자! 과연! 2,3위에게는 마지막 기회!”

최고속으로 직선주로에 오른 두 선수. 그리고,

슈웅.

넘어간 화면으로 등장한 서준하의 파란색 포뮬러카.

“서준하!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카탈루냐를 찾은 모든 이의 시선이 피트 레인 출구로 향했다.

< 요청한 사람이 다른 레이서도 아니고, 서준하입니다 - 유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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