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58화 (58/200)

< 무엇보다 준하 선수가 F3에 입성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해 >

이스트 런던에 위치한 헤론타워 40층.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요리 전문점 덕앤피플 레스토랑.

‘시간이 참 빨라.’

유로컵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서준하. 창가에 앉아 이스트런던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포뮬러 3인가.’

스메들리 아카데미에서 처음 롭을 만났을 때부터 이번 유로컵 챔피언을 차지하는 순간까지. 만족스러웠던 영국에서의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문하신 매운 황소 볼살 도넛 나왔습니다.”

총괄 셰프 다니엘 도하티의 설명과 함께 등장한 음식. 대회를 마친 서준하를 위해 한서윤이 식사를 대접했다.

“요리가 참 특이하네요.”

“특이한 게 아니고, 창의적인 거지. 저 아저씨가 런던에서 알아주는 요리사래.”

신기한 눈으로 볼살 도넛을 바라보는 서준하. 맞은편에선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든 한서윤이 입맛을 다시며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 좀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 대표님이 너 먹고 싶은 거 다 사주라고 하셨어.”

“...먹고 싶은 음식?”

도넛을 가리키며 고갤 갸우뚱하는 서준하. 그 모습을 본 한서윤이 메뉴판을 건네자, 서준하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주문한 다른 음식이 나오고,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두 사람.

“흐음... 잘 먹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한서윤이 얘길 꺼냈다.

“내가 어제 윌리엄이랑 얘길 좀 나눴어. 이번 F3부터는 투자를 엄청하실 계획인가봐.”

유로컵 전승 우승을 차지한 서준하의 활약에 힘입어 팀 챔피언 자리에 오른 스메들리.

팀 대표 윌리엄 스메들리가 본래 목표인 F3 무대 출전 의사를 관계자들에게 밝혔다.

“이번 대회 경쟁 팀들이 쟁쟁했잖아. 근데 그런 팀들을 꺾고 단번에 챔피언 자릴 차지한 게 스폰 기업들한테도 임팩트가 컸나봐. 여기저기서 돕겠다고 난리래.”

지난 유로컵부터 연이은 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스메들리 포뮬러 팀. 영국의 여러 포뮬러 관계자들과 기업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됐다.

“다행이네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팀이죠.”

전생부터 수많은 팀들을 겪어본 서준하. 사실 현재 스메들리의 코치진들은 어느 F1팀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엔지니어들은 어느 팀에가서도 보기 힘든 인재들. 스메들리 팀의 호재는 곧 서준하에게도 호재였다.

“스메들리도 그렇고, 준하 선수도 그렇고. 둘 다 잘 됐으면 좋겠다.”

서준하를 등에 엎고 연일 고공 행진하는 스메들리 팀. 처음 한서윤의 이미지와 달리 예상보다 빠르게 팀의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말없이 행복한 상상에 빠진 한서윤. 그 모습에 서준하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준하 선수, 근데 이거 하나는 알아둬야 해.”

군데군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 런던 시내. 창밖 바라보던 한서윤이 다시 얘길 꺼냈다.

“F3는 한 시즌 내내 레이스가 벌어지는 카테고리야. 지금까지 준하 선수가 참가했던 대회하고는 성격이 좀 달라요.”

한 두 번의 레이스로 끝이 아니다. 총 8번의 레이스. 유럽 전역을 돌며 장기간 레이스를 하는데, 정해진 레이스 시간 역시 주니어급 대회보다 훨씬 길어진다.

“무엇보다 체력관리가 중요한 대회야. 특히나 대회 중반 7,8월 쯤에는 레이스 도중에 쓰러지는 선수들이 있을 정도니까. 앞으로 준비 기간 동안 체력 관리에 힘 써야 할 거예요.”

한서윤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서준하. 자신의 약점이라면, 전생보다 다소 약한 몸뚱아리였다.

“안 그래도 이번 겨울 동안 몸을 좀 만들어 두려고 했어요.”

카트 시절부터 겪었던 몇 번의 혼미한 블랙아웃. 더 빠르고 길어진 레이스에 더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F3은 정말 차원이 다르거든. 무엇보다 준하 선수가 F3에 입성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해.”

엔트리급 포뮬러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F1 무대를 위한 경쟁 리그. 사실상 이미 아마추어와 준프로 수준을 한참 전에 뛰어넘은 프로들로 포화된 상태기에 경쟁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네, 준비 잘 할게요.”

매 레이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던 서준하. F3 그 치열함을 더 잘 알기에 철저히 준비할 것을 다짐했다.

***

PH인베스터먼스트 사옥. 깔끔하고 넓은 접견실 창가 앞에 선 필립 황.

잠시 생각에 잠기던 차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셨어요, 장호 형.”

필립 황의 지인으로 홍콩에서 금융 사업을 벌이는 박장호. 서준하의 스폰 의사가 있는 인물 가운데 대표격인 그가 접견실에 자리했다.

“에이전시 때문에 형이랑 얘길 좀 나누려고요.”

“어, 그래 잘했어. 마침 근처 지나가던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 근황을 묻던 필립이 본격적으로 얘길 꺼냈다.

“서준하 선수가 이번에 F3 간다고?”

“네, 포뮬러 리그 데뷔 1년 만이에요.”

“이야, 그거 참 대단한 일이야. 네가 진짜 제대로된 선수를 발견한 거 같은데?”

“하하, 다들 적응 못해서 난리라는데. 저도 이렇게 잘 할 줄은 몰랐네요. 서준하 때문에 보람도 있고 즐겁네요.”

서준하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박장호. 뿌듯한 표정의 필립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애낄 꺼냈다.

“제가 알기론 서준하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유럽에서 포뮬러 3에 가는 건데...”

“아, 그건 아니야. 내가 알기론 작년에 임재원이라고 한국인 최초로 F3 전체 시즌 소화한 선수가 한 명 있었어.”

“그래요? 에헤이, 이거 아쉽네. 근데 형 진짜 이 바닥 소식을 잘 아시는군요.”

“뭐 그럭저럭. 근데 임재원 선수는 이번해 결과가 너무 안 좋아. 선수 스스로도 포기하는 분위기고, 나도 많이 아쉽더라.”

다른 투자자들과 다르게 박장호는 모터레이싱 전반에 빠삭했다. 유럽 포뮬러 잡지를 구독하는 수준. 특히나 해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에 대한 관심이 가득한 레이싱 광팬이었다.

“임재원 선수는 작년에 직접 만나도 봤는데, F3 부터는 진짜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F3부턴 진짜 다른가 보군요.”

“확실히 유럽에는 날고 기는 드라이버들이 천지니까, 성적 압박이 심한가봐.”

수백만 명의 예비 레이서들이 F1에 오르기 위해 거치는 등용문 F3. 유럽 무대를 거친 한국인 레이서들을 잘 아는 박장호가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줬다.

“근데 장호 형. 그 저번에 말하셨던 강, 무슨 선수 있잖아요. 왜 일본 포뮬러드립 오디션 1위 했다는 선수.”

“강민수 선수? 왜?”

F3 얘기 도중 갑작스럽게 다른 한국 선수의 이름을 꺼내는 필립 황.

“그 선수 영국으로 보낼 생각 없어요?”

“갑자기?”

“그 선수도 유럽 보내고 싶다고 하셨었잖아요.”

“으응, 그랬지.”

“형이 강민수랑 서준하 둘 다 관심 있는 거면, 한 군데서 서포트하는 게 부담이 덜하지 않겠어요?”

박장호와 다른 기업들이 스폰서로 있는 포뮬러 레이서 강민수. 일본 슈퍼 포뮬러 주니어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으로 진출한 한국인 레이서들 가운데 관심을 받기 시작한 선수다.

“한 군데서 서포트 한다는 게...?”

“우리가 지원해주는 대신, 강민수 선수도 스메들리 팀에서 뛰게 해달라고 조건을 거는 거죠.”

필립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진 박장호.

“유럽 포뮬러 대회에 한국인 선수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같은 팀으로 출전한다면 국내에서도 관심이 더 쏠리지 않겠어요?”

그런 박장호의 표정을 살핀 필립이 계속 몰아붙였다.

“우리가 국내 중계권을 가져오는 거예요. 기회 봐서 F3 인터네셔널 컵까지 하는 거고. 그런 다음 방송사 애들하고 딜하면 거기서 수익도 내고, 괜찮지 않아요?”

브리티시 F3나 유로피언 챔피언쉽과 같은 시리즈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

“강민수를 스메들리에 보내자, 이거야?”

고갤 끄덕이며 웃는 필립 황. 그의 머릿속엔 자신의 모터스포츠 에이전시, PHsports의 회사 로고가 번뜩였다.

“그렇죠. 본격적으로 유럽 에이전시를 키워보는 거죠.”

***

“아, 네 그러시죠. 이사님. 금요일에 저희가 찾아 뵙겠습니다.”

영국 스메들리 팀 캠프의 집무실. 긴장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윌리엄이 수화기를 내려놨다.

“하하하하!”

두 팔을 활짝 벌린 윌리엄. 밀려오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결국 크게 웃음을 쏟아냈다.

“어떻게 됐어요, 윌리엄?!”

집무실 중앙 소파에 앉아 통화 내용을 엿듣던 루시.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됐네! 됐어! 해보겠대! 금요일에 계약서 들고 가면 돼.”

영국의 자동자 부품 중견 기업 코넨. 여러 레이싱 카테고리에 스폰서로 자리한 코넨이 스메들리 팀을 본격적으로 후원하겠다는 소식을 알렸다.

“와!”

통화 직후 격렬한 윌리엄의 반응이 이해가는 대목. 루시가 연신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제 됐어. 본격적으로 F3 준비를 할 때가 온 것 같구만.”

서준하로부터 소개 받은 한국 후원사부터 자국의 몇몇 기업들까지. 스메들리 팀의 후원 규모가 상당해졌다.

“루시, 지난번에 말한 차량 주문 계획서 하나 더 추가해줘.”

“네? 하나 더요?”

“그래, 메르세데스 엔진이 달린 거로 한 대 더 들여놓지!”

F3 무대를 위해 새로운 경주차를 구매하기로한 스메들리 팀. 한 대에 무려 1억 5천만 원이 넘는 차를 한 대 더 주문하는 윌리엄.

“그리고 F3 전용 시뮬레이터(simulator)도 한 대 들여놓자고. 괜찮은 제품 리스트 한 번 뽑아주게. 풀옵션, 풀스케일로 말이야.”

실제 레이싱 환경을 컴퓨터로 구현해 레이스 연습을 돕는 장비, 시뮬레이터. 풀스케일에 최고 옵션이 들어간 모델의 경우 2천 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다.

“시뮬레이터까지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놀란 표정의 루시. 그 모습에 윌리엄이 걱정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나 있어야지. 연습 기간 동안 매번 유럽 전역을 돌 수는 없지 않겠어?”

시뮬레이터에 설치된 유럽의 다양한 서킷들. 이는 비가 오는 날에도 앉아서 다양한 서킷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선사한다.

“원래 레이서들 연습 지원에 돈을 아끼면 안 돼. 이번에 제대로 준비해야 하네.”

원메이커화 되고 있는 F3 시리즈들. 이번 대회 역시 레이서의 실력이 우승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아참 그리고 미캐닉들이랑 퍼포먼스 엔지니어들을 더 데려올 생각이야, 곧 영입 제안 리스트 만들어서 전달하겠네.”

피트 스탑에 투입되는 인원수부터 복잡하고 세밀해진 차량을 점검하는 엔지니어들까지. 팀이 더 체계를 갖추기 위해선 그만한 인력이 필요했다.

장비부터 새로운 팀원까지.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가는 윌리엄 스메들리.

“흠, 윌리엄. 근데...”

윌리엄의 말을 메모하던 루시.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죠? 시뮬레이터까지는 예산이 좀 빠듯할 거 같아요...”

“흐음, 그래?”

“네, 후원사가 더 생기면 그때 결정하시는 게...”

안타까워 하는 루시를 향해 고갤 끄덕이던 윌리엄.

“아냐, 그건 내가 사도록 하지. 계획대로 구매해줘.”

“와, 사비까지 내놓으시는 거예요?”

말을 마치고, 집무 책상 한켠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는 윌리엄.

“나는 이번 대회 역시 좋은 예감이 들어.”

사진 속 트로피를 함께든 팀원들 가운데, 밝게 웃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새로운 무대를 잘 마칠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니지.”

자신의 팀에 대한 투자는 이전과는 다른 후원 규모와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서준하, 이 친구는 F3의 전무후무한 레이서가 될 거네.”

그건 바로 사진 속 인물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승리의 기운. 스메들리 팀이 본격적으로 F3 준비에 나섰다.

< 무엇보다 준하 선수가 F3에 입성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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