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61화 (61/200)

< GP2를 생략하고 갈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거라고 할까? >

“케이시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대요.”

케이시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한서윤의 연락을 받은 서준하가 몽키펍을 찾았다.

“엄청 펑펑 울던데. 진짜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이런...”

서준하의 얘길 들으며, 고갤 끄덕이는 한서윤.

“아참, 서로 인사 나눠. 여긴 강민수 선수. 사진으로 몇 번 봤지?”

까무잡잡한 피부 위에 또렷한 두 눈. 첫 대면부터 활짝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강민수.

“얘기 많이 들었어. 나는 강민수다, 반가워.”

자신을 가까운 동생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붙임성이 좋은 사람임이 느껴졌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잠시 뜸을 들이던 강민수가 말을 꺼냈다.

“근데... 아까 옆에는 여자 친구?”

강민수의 얼굴에는 어딘가 부럽다는 눈빛이 가득했다.

식당에서 봤던 케이시를 말하는 듯. 서준하가 아니라고 답했다.

“아니라고? 에헤이, 남녀가 연애하다 보면 다툴 때도 있지. 껴안는 사이가 별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영국인 여성과 껴안고 있는 장면이 서준하의 첫인상. 이런 질문이 나올 만도 했다.

“아냐, 아냐 케이시는 준하 선수랑 아카데미 때부터 친구야. 내가 잘 알아요.”

시시콜콜 설명하기 어려워하던 찰나 한서윤이 나서줬다. 고갤 끄덕이는 강민수.

“연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누굴 만나는 건 나도, 회사도 크게 신경 안 써요. 근데 뭐 연애 때문에 훈련 스케쥴에 지장 준다거나, 본인 관리 철저히 못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요. 둘 다 알았지?”

두 사람을 향해 묻는 한서윤. 자신의 말에 동의하냐는 표정이었다.

“저도 그런 거 숨기면서 안 해요. 만나는 사람 있으면 말씀 드릴게요.”

이성을 만나는 게 죄 지을 일도 아니고, 특히나 이런 부분에선 매번 당당한 태도를 보였던 서준하가 그녈 향해 말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바(bar)로 다가서는 한서윤.

“나 한 잔 더 가져올게. 이제 중요한 얘길 해야 하거든.”

탁.

“사실 준하 선수를 여기로 오라고 한 건. 케이시 때문이 아니야. F3에 대해 말해주려고 불렀어.”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메모해둔 내용들을 살피기 시작하는데,

“출전 팀은 스메들리를 포함해서 총 여덟 팀. 다들 오랫동안 대회 참가하면서 경쟁력을 키운 팀이야. 영국은 물론,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의 실력자들이지.”

실력자라는 말에 다소 긴장한 듯한 강민수. 서준하 역시 F3 하면 떠오르는 팀들이 몇 군데 있었다.

“명성 있는 대회이니 만큼 챔피언 상금도 엄청나. 레이서 챔피언 상금은 십만 유로, 한화로 1억 3천 만원 쯤하는 걸로 알고 있어.”

“와, 챔피언 혼자 그 돈을 다 받아요?”

상금 얘기에 다시 한번 감탄을 내뱉는 강민수. 일본 무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근데 사실 상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더 엄청난 게 있으니까.”

한 권역, 특히나 F3 경쟁이 치열한 유로피언 챔피언십 우승자는 GP2같은 상위 리그 진출 쉽게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혜택이 있었으니,

“각 권역별 F3 챔피언들에게는 F3 인터네셔널컵 참가 자격이 주어져.”

인터네셔널 F3라는 말에 번뜩이는 두 선수의 눈.

“바로 마카오(Macau) 그랑프리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거지.”

포뮬러 3를 메인 이벤트로 GT 및 투어링 카부터 모터사이클 경기까지, 10여개 안팎의 레이싱 대회가 벌어지는 마카오 그랑프리. 웬만한 F1 그랑프리도 울고 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인기를 자랑한다.

“FIA(국제 자동차 연맹)에서 좀처럼 F3 무대에는 그랑프리 타이틀은 안 주는데, 이 대회는 그런 수식이 붙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F1보다 낮은 급의 포뮬러인 F3 경기를 하면서 그랑프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그건 바로 각국의 유망주들이 주로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종종 F1 레이서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원래 F1 진출이 GP2 같은 시리즈에서 활약하고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카오 그랑프리 우승은 GP2를 생략하고 갈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거라고 할까?”

세나, 슈마허, 쿨사드 등 F1 유명 선수들도 모두 마카오 그랑프리 우승자 출신.

현재 그 위상이 과거보다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F1 스카우터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세계적인 무대다.

“마카오에 가면 정말로 F1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거야.”

그녀의 말에 서준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

“FIA에서 이번 대회 서킷을 발표했어요. 다들 나눠드린 리스트 보시죠.”

FIA가 주관하는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2015. 대회 시작을 앞두고, 8라운드 장소가 공개됐다.

스메들리 팀 회의실. 윌리엄과 코치진 모두 리스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1차전은 4월 10,11일 영국 실버스톤이에요. 다행히 우리 팀은 출발이 괜찮아요.”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 이번 대회 스메들리 팀이 가장 자신있는 무대였다.

“오, 몬차랑 카탈루냐도 있네. 여기도 괜찮지.”

“카탈루냐는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번에 포함됐어요. 준하가 좋아하겠는데요?”

“그리고 호켄하임링, 폴 리카르, 스파, 헝가로링... 전부 F1 서킷이네.”

스메들리 팀이 직접 대회를 뛰어본 서킷도 있었지만, 반대로 차량 데이터가 전혀 없는 서킷도 있었다.

“각 레이스마다 한 달 정도 텀이 있으니까, 최대한 연습 주행을 많이해서 데이터 확보에 힘써야겠구만.”

장장 8개월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치루는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다행히 한 번의 레이스를 마치고 다음 서킷까지 한 달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한 달이면,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이야. 트랙 탐사부터 예비 주행까지, 할 게 많아. 아마 우린 좀 부지런하게 움직여야겠어.”

3월부터 11월까지, 약 2주에서 1주 사이의 기간을 두고 20번 이상의 GP가 열리는 F1. 그에 비하면 한 달의 준비 기간은 여유있지만, 레이서들의 체력적 능력으로 봤을 땐, 한 시즌을 소화하는 일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우승 후보 팀 전부 다 참가했어요.”

“지난 시즌 챔피언이 프리마 레이싱 팀이었나?”

“네, 작년엔 마지막 8차전에서 콜린 팀을 꺾고 역전 우승했어요. 확실히 F3는 막판 레이스까지 가야 챔피언을 알 수 있는 곳인가 봐요. 이번에도 제 8전에서 승부가 났어요.”

장기 레이스 대회의 경우, 한 팀에서 월등한 성적을 내며 우승을 차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로피언 F3는 참가자 팀 실력에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흠... 이번에는 어떤 선수들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참가 팀 모두 대회 참가 신청 막바지까지 자신들의 레이서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상황. 유명 팀의 레이서는 대략 예측이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분명하지 않았다.

“콜린하고 루나에서는 나올 사람이 정해져 있고, 프리마 팀은 이번에도 그쪽 애들이 나오려나?”

펜을 들고 참가 팀 리스트를 바라본 롭. 프리마 팀 옆에 ‘Ferrari’라고 낙서했다.

“뭐, 관련 기사 같은 건 찾아 본 게 있어?”

“페트로 피터발디? 이탈리아 유망주 관련해서 소식이 좀 있긴 한데.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항상 새로운 선수들을 대회에 내보내며, 성과를 냈던 프리마 레이싱. 종종 페라리 아카데미 프로그램 교육생들이 소속으로 출전했다.

“허허, 페트로 피터발디... 브라질의 신성이 등장하는구만.”

출전 팀 명단을 보던 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알지, 알지. 절대로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거?”

강민수와 서준하 앞에 다가선 한서윤. 멀리서 세 사람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이게 무려 2시간짜리 다큐래. 전국민이 보는 영상이 될 거야. 말도 한 번씩 생각해서 내뱉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움이 중요해, 자연스러움.”

F3 대회에 공동으로 출전하는 기념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에 들어가는 강민수와 서준하. 오늘따라 짙은 화장의 한서윤의 얼굴을 흘겨봤다.

“어머, 오셨어요?”

어딘가 달라진 한서윤의 목소리. ‘나는 F1을 꿈꾼다.’의 방송 PD가 세 사람 곁으로 다가섰다.

“지난번에 설명드렸듯이, 앞으로 대회까지 카메라와 함께 제가 따라다닐 거예요. 두 선수 조금 불편하셔도 양해 바랄게요.”

한국 모터레이싱 사상 한국인 선수 2명이 팀 메이트로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건 드문 일. 특히나 한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서준하 덕분에 촬영 전부터 관심이 높았다.

“그러면 처음이니까, 간단한 인터뷰나 소감 정도만 촬영하고 시작하죠. 먼저 강민수 선수부터 들어가시죠.”

준비된 촬영 장소로 이동하는 강민수. 평소와 달리 차분해진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민수 선수, 긴장했나 보다, 원래 저렇게 조용한 사람이 아닌데. 그나저나 무슨 질문을 하려나? 준하 선수도 미리 생각해놓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인터뷰는 솔직함이 중요하다. 떨리면 떨리는 그대로, 반대로 자신 있으면 자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서준하가 해야하는 일과 목표는 확고했다.

“인터뷰면, 대회 목표나 꿈 이런 걸 물어볼 텐데. 젊은 선수가 또 너무 자신감 넘치면 거만해 보일 수 있거든. 잘 하겠지만, 그래도 겸손이 중요한 거 알죠?”

한서윤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서준하. 물론 이 말도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겸손하면, 스폰서 아저씨들 걱정이 늘지 않겠어요?”

프로 선수가 매번 저자세를 취하는 것도 매력없다. 충분히 실력을 갖추기 위해 정진하는 상황에선 한 번쯤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서준하는 그만큼 노력했고,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서준하 선수, 들어오시죠.”

준비된 룸에서 나오는 강민수. 이어서 담당 PD가 서준하를 방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F3 대회를 앞둔 심정을 말해볼 거예요. 부담가지실 필요 없어요. 그냥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시면 됩니다.”

룸 중앙에 마련된 의자 위로 밝은 조명이 쏟아져내렸다.

“음, 우선 새로운 대회, 새로운 차, 새로운 경쟁자들. 이 모든 게 기대되는데요...”

대회 준비 관련 이런 저런 질문에 답변을 시작하는 서준하.

“...앞서 강민수 선수는 한 시즌을 무사히 치루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웃는 얼굴의 PD가 마지막 질문이라며 물었다.

“서준하 선수는 이번 대회 목표가 어떻게 되시나요?”

한 시즌을 별탈 없이 치루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건 서준하가 정말로 원하는 목표가 아니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슈퍼 라이선스를 따내겠습니다.”

각 권역별 F3 챔피언에게 1년간 주어지는 슈퍼 라이선스. F1 무대에서 뛰기 위해선 이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슈퍼 라이선스요?!”

뜻밖의 단어에 놀란 담당 PD.

“그렇게 마카오 GP에 나가 F1 관계자들의 컨택을 받아내는 것. 즉...”

조금의 망설임도, 어떠한 허세도 담겨있지 않는 서준하의 답변,

“F1 문턱에 다가서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 GP2를 생략하고 갈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거라고 할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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