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오직 경주차에 오른 레이서들 뿐이야 >
어느덧 2015년 봄. 각종 모터스포츠 팀에선 새로운 시즌 준비가 한창이었다.
유럽 전역을 돌며 간단한 서킷 탐사를 마친 스메들리 레이서 팀. 다시 팀 게러지로 복귀했다.
“이번 F3부터 우리 팀 식구들이 조금 늘었습니다. 먼저 팀의 새로운 레이서 미스터 강입니다.”
윌리엄의 소개로 팀원들 앞에 선 강민수. 엔지니어들과의 인사를 시작으로 팀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이쪽이 헨리 가슬리. 퍼포먼스 엔지니어링 파트 책임자를 맡고 있네. 경주차 세팅 관련해서는 헨리랑 얘기 나누면 됩니다. 서로 인사 나눠요.”
“반가워요, 헨리. 어우, 손이 따뜻하시네.”
처음보는 사람을 좀처럼 어려워하지 않는 강민수. 윌리엄의 소개가 끝나자, 먼저 악수를 청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준하처럼 조용할 줄 알았는데, 좀 다르네.”
“그러게, 내가 본 한국인 사람 중에 제일 말이 많은 거 같아.”
피트에 모인 스메들리 팀원들. 미캐닉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새로운 코리안 레이서를 바라봤다.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야. 이번 대회 재밌겠어.”
낯선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서준하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아, 오랜만에 팀 전원이 모이니 분위기가 좋군요.”
지난 시즌보다 북적이는 스메들리 팀의 게러지. 다시 마이크를 집어든 윌리엄이 팀원 전체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 그리고 피트 크루끼린 미리 인사를 나눴지만, 드라이버 팀을 위해 다시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그의 손짓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오는 남자들. 오랜 경험을 쌓은 데서 오는 여유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우리 스메들리의 미캐닉 팀과 엔지니어링 파트를 도와줄 코치들입니다. 박수 한 번 주세요.”
영국 LCC 포뮬러 아카데미의 엔지니어링과 미캐닉 파트의 교육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사내. 실전 경험은 물론 장기간 미캐닉 생활을 이어온 실력자들이다.
“LCC면 록스톤에 있는 미캐닉 학교 아니야?”
“맞아, 영국의 F1 팀 미캐닉들 중에는 LCC가 가장 많다고 들었는데. 대박.”
“하하, 윌리엄이 이번에 정말 작정하셨어. 그런 데서 코치를 다 데려오시고.”
레이서 팀이 가장 우려했던 피트 스탑. 이제는 걱정을 놔도 괜찮겠다는 얼굴로 새로운 미캐닉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이번 대회 감독은...”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인사가 끝나가자, 윌리엄이 다시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저 윌리엄 스메들리가 합니다. 제가 팀의 총감독 역할을 맡겠습니다.”
자신의 오랜 꿈을 위해 이번에는 팀을 이끌기로 마음 먹었다. 이어서 팀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는데,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수십년 동안 모터 레이싱 산업을 통해 쌓아온 제 모든 걸 걸겠습니다.”
스폰서의 규모부터 팀원 그리고 레이서의 수준까지. 지금 스메들리 포뮬러 팀은 역대 최고의 전력을 갖췄다. 어딘가 비장한 윌리엄의 표정.
“자, 우리 한 번 F3 바닥을 깜짝 놀라게 해봅시다.”
마지막 말과 동시에 쏟아지는 박수. 윌리엄이 환한 얼굴로 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이번 대회 역시 차등 포인트제야. 1위부터 10위까지 각각 25, 18, 15, 12, 10, 8, 6, 4, 2, 1점이 주어지지.”
본격적인 대회 준비를 위해 회의에 들어간 스메들리 드라이버 팀. 롭이 준비한 자료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이번 2015년 부터는 더블 포인트 제도가 도입됐다.”
“더블 포인트 제도?”
“마지막 레이스 8차전에서만 점수를 더블로 주는 거지. 50, 36, 30, 24, 20, 16··· 이렇게.”
장기 레이스에선 대회 챔피언 드라이버가 바로 정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보다 흥미로운 진행을 위해 FIA에서 새로운 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레이서들은 잘 들어. 이건 어느 대회에서나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FIA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이 규칙이 엄격해.”
FIA가 모든 레이싱 카테고리의 대회를 주관하지 않는다. 각 카테고리의 대표격인 대회를 주관하는 그들은 엄격한 대회룰을 적용하기로 유명했는데,
“무엇보다 추월. 앞차는 뒤차를 한 번만 막을 수 있는 거 알지? 드라이빙 스타일로 위장한 디펜스 무브 따위는 절대 안 먹혀. 작은 접촉에도 페널티가 쏟아지니까, 레이서들은 주의해.”
레이스에는 추월에도 룰이 있다. 가령, 뒤차가 왼쪽으로 움직여서 이를 막았다면 다시 오른쪽으로 빠져 앞으로 나오는 걸 막으면 안 된다.
“다들 알다시피 F3 차량은 엄청 가벼워, 그래서 살짝 부딪혀도 앞뒤 윙이 잘 부숴지기 쉽지. 윙 하나에도 수백만 원이야, 이것도 주의해줘.”
날개는 물론 타이어 펑크도 자주 일어난다. 속도가 빠른 만큼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F3. 접촉을 일으킨 선수에겐 가차없이 페널티가 부여된다.
“그리고 오늘 모이라고 한 이유. 가장 중요한 타이어 체인지에 대해 말해줄게.”
테이블 근처로 의자를 끌어온 롭.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피트 스탑 전략이 중요하다는 소리 들어봤지?”
“F1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잖아.”
“아냐, 이건 F3에서도 마찬가지야.”
또 다른 페이퍼를 꺼내든 롭.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이 칠해진 타이어들 가운데, 타이어 회사 피렐리(Pirelli)의 마크에 주목시켰다.
“F1 대회 타이어 공급사네”
“이번 대회 역시 피렐리 타이어가 쓰여.”
“오호, 그럼 사용 가능한 타이어가 여러 개야?”
“그렇지, 선택 가능한 타이어는 옵션으론 울트라소프트-슈퍼소프트-소프트, 프라임으론 미디움-하드, 이렇게 총 5개야.”
“와 5개? 그럼 전부 쓸 수 있는 건가?”
“아니, 예선부터 레이스까지 쓸 4세트를 미리 정하고 들어가야 해. 옵션 2세트, 프라임 2세트 이렇게.”
좀 더 단단한 컴파운드인 프라임 타이어는 내구성이 높은 대신 그립이 상대적으로 낮아 스피드가 떨어지고, 최적 온도까지 타이어 온도를 끌어올리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
반면, 좀 더 부드러운 옵션 타이어는 보다 높은 그립을 만들고 타이어가 최적 온도에 도달하는 시간이 훨씬 빠르지만,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내구성을 유지하면서 랩타임 손해를 감수하는 전략을 쓰거나, 옵션 타이어로 더 많은 피트스톱을 가져가는 대신 빠르게 랩타임을 끌어올리는 전략 등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지”
때문에 타이어 관리와 맞물려 피트스톱 전략은 레이스의 양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소다.
“교체할 수 있는 타이어도 많고, 레이서들 특징도 제각각이라 변수가 많아.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승패를 가른다고 볼 수 있지.”
경주 중에도 타이어 사용량과 잔량, 경쟁자와의 거리, 경쟁자의 교체 시기, 날씨 등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타이어 교체 타이밍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타이어 전략을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게 바로 레이서의 실력이야.”
타이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오직 경주차에 오른 레이서들 뿐. 전략보다 타이어 마모가 너무 많이 진행된다면, 타이어 전략이 의미 없어진다.
“서준하, 강민수. 남은 기간 동안 타이어 관리 능력을 끌어올려줘.”
말을 마친 롭. 다시 서준하와 강민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
1차전이 열리는 실버스톤, 스메들리 팀이 연습주행에 들어갔다.
[Free Practice – Silverstone]
[Minsu Kang]
[11 lap : 1:47.442]
이틀에 걸쳐 차량 세팅 값을 조정 중인 강민수. 스타트라인을 통과하자 랩타임이 팀 피트로 전송됐다.
“11랩, 47초대로 들어왔어. 어제오늘 통틀어 베스트야.”
일관적인 테크닉은 물론 서킷 위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는 강민수. 강렬한 배기음과 함께 다시 한번 스타트라인을 빠져나갔다.
“적응이 빠른 드라이버야. 예상보다 기록이 좋아지고 있어.”
레이스 엔지니어들의 곁에서 타임 로그를 살피던 서준하. 그의 매끄러운 주행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 올라가니까 완전 다른 사람이 되네. 엄청 침착해.”
미스가 몇 번 있었지만, 다음 바퀴에서 금방 극복해 좋은 기록을 뽑아냈다. 그런데,
“어? 저건.”
기뻐하던 스메들리 엔지니어들. 서킷 위에 또 다른 포뮬러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콜린 팀이네.”
피트 레인을 빠져나오며 롤링을 시작하는 포뮬러카 한 대. 팀의 트레이드마크인 황금색 차의 바디가 눈에 띄었다.
“콜린?”
피트 레인으로 고갤 돌린 서준하. 전생부터 다양한 레이싱 카테고리에서 마주치며 경쟁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쟤네도 오늘 연습 주행 있나 보네.”
“이번에 우리랑 경쟁 팀이지?”
“응, 이번에도 유로피언 챔피언십에 나올 거야. 오늘 우리 말고 다른 포뮬러 팀이 여길 쓴다고 했는데, 콜린이었구나.”
이어서 등장하는 또 다른 콜린의 포뮬러카들. 덕분에 실버스톤이 좀 더 시끄러워졌다.
“준하, 이제 너도 준비해. 민수 들어오면 바로 스타트할 거야.”
흥미로운 표정으로 콜린의 차를 지켜보던 서준하. 롭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는 헬멧을 챙겨 들었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훼엥.
“...!”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높이는 황금색 포뮬러 카. 워밍업을 마친 듯 빠른 속도로 홈 스트레치를 지나갔다.
“빨라!”
빠른 속도에도 불안정해 보이지 않는 콜린의 포뮬러카들. 레이스 엔지니어들의 눈에도 그들의 드라이빙은 수준급이었다.
“맨 앞쪽이 메인 레이서인가? 스티어링이 엄청 부드럽네.”
“콜린의 퍼스트 레이서, 제이크 러셀. 아마 그 녀석이 맞을 거야.”
특히나 모두의 관심을 끄는 팀의 첫 번째 주자.
“아, 지난 시즌 콜린에서 최연소로 윌리엄스 팀에 들락거린다는 레이서?”
“맞아, 저번에 조지 콜린 아저씨랑 신문에 나왔던 금발 머리 영국 남자 선수있잖아.”
콜린 팀은 물론 영국의 많은 포뮬러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제이크 러셀. 어린 나이에 F4 대회를 섭렵 후, 지난 시즌 F3에 데뷔한 영국 최고의 유망주였다.
“민수, 이번에도 랩타임 좋을 것 같다. ”
막판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강민수. 그런데,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그의 뒤로 제이크의 포뮬러카가 뒤따랐다.
“어? 따라간다!”
마침 스메들리 피트에서 잘 보이는 5코너 이후 직선 주로. 코너를 빠져나온 강민수의 포뮬러카에 시선이 집중했다. 그리고,
“제이크, 저 자식! 뭐하는 거야?!”
강민수의 뒤에 바짝 붙은 제이크. 5코너에서 속도가 줄지 않은 콜린의 포뮬러카가 압도적인 속도를 냈다.
“...!!!”
곧이어 강민수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가는데,
“추월하겠다고?!”
쎼엥.
순식간에 6코너 인코스로 파고들어 추월에 성공한 제이크의 포뮬러카.
“민수가 아예 우측으로 빠졌어...!”
제이크에게 자릴 내주며 속도를 줄이는 강민수. 갑작스런 포뮬러카의 등장에 당황한 듯 보였다.
부우우우우우우.
위이이이이잉.
휑.
속도가 덜어진 강민수는 또 다른 콜린의 차들에게 레코드 라인을 내주고 말았다.
“개자식들! 굳이 저기서 추월할 필요가 없었잖아!”
“레이스를 하자는 거야, 뭐야?!”
대회 시작 전부터 기세가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스메들리 팀원들이 발끈했다.
“준하!!!”
피트로 들어오는 강민수를 확인한 롭. 곧바로 서준하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1년간 싸워야할 상대야. 진짜 빠른 게 뭔지 보여줘!”
서킷을 바라보던 서준하가 포뮬러카에 올라탔다.
< 타이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오직 경주차에 오른 레이서들 뿐이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