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63화 (63/200)

< 근데 준하야, 내가 볼 땐 네가 제일 무섭던데? >

레이스가 아닌 일반 주행에서 여러 차량이 달릴 경우, 뒤에서 빠른 차가 다가오면 우측으로 벗어나는 것이 암묵적인 관행.

하지만 조금 전 상황은 앞차가 진로 변경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들어온 무리한 추월이었다.

-지금 이건 누가 봐도 작정하고 들어온 거잖아.

흥분한 롭이 서준하에게 연신 무전을 날려댔다.

-해보자는 거야, 뭐야!

윙미러로 보이는 강민수의 포뮬러카. 온전히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하다 당황했을 그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작 전부터 우릴 쫄보라고 생각하겠는데, 이거”

분노와 동시 밀려오는 강민수의 대한 안타까움. 어쩌면 1년 동안 싸울 상대가 스메들리 팀을 얕본 걸지도 모른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끼익.

타이어의 열을 올리기 위한 워밍업. 달라진 차량의 세팅 값을 확인한 서준하가 최대한 주행 감각을 끌어올렸다.

“이전보다 그립감이 좋아졌어. 리어 쪽이 붕 뜨는 느낌이 사라졌다.”

2바퀴를 마치고, 코너링 감각을 유심히 살핀 서준하. 차의 밸런스가 이전보다 나아졌음을 느꼈다.

3단, 4단.

그립감이 피크로 치솟을 때까지 서서히 차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쎄엥.

곧이어 주행감이 최상에 달한 듯한 황금색 포뮬러카들이 그의 앞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곧 따라갈 거야.”

개의치 않고 곧바로 5코너를 빠져나와 직선주로에 오른 서준하. 매끄러운 시프트 업으로 속도를 높였다.

5단, 6단.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지금 좋아. 밸런스가 돌아왔다. 안정적이야.

다시 속도를 줄이며 6코너 헤어핀에 들어가는 서준하. 브레이크를 밟으며 재빠르게 기어를 변속했다.

“어제랑 노면 감각도 비슷하고, 타이어도 슬슬 그립감이 오르고 있다.”

웬만한 레이서들보다 배는 빠른 그의 시프트 다운 스피드. 그만큼 포뮬러카의 재가속과 급감속 타이밍이 현저히 빨랐다.

-다음 바퀴에 돌아오면 따라 붙어!

트랙의 상황을 살핀 롭. 황금색 포뮬러카들이 다시 한번 서준하를 스치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온다!”

직선주로에서 우측으로 서행하던 서준하. 롭의 지시에 재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Colin Racing British F3]

서준하의 앞으로 보이는 콜린의 포뮬러카 3대. 가까이서 보이는 콜린의 뒷날개가 인상적이었다. 전생과 똑같은 레이싱카의 디자인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더 생기는데,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휑.

직선 주로에서 살짝 뒤졌던 서준하. 1코너에서 곧바로 마지막 주자 뒤에 붙으며 거리를 좁혔다.

-들어가!

F1 경주차로도 고속을 유지해 노브레이킹으로 돌았던 실버스톤의 1코너.

“알짱거리지 말고 나와!”

이어지는 3개의 완만한 코너에 진입한 서준하. 보다 빠른 진입 속도를 살리는데 성공하며 앞차를 제쳤다.

-우후후후후! 하나 더!

통쾌한 목소리가 라디오에 울려퍼지며, 실버스톤의 또 다른 추월 포인트 7턴에 들어선 서준하.

다시 한번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코너 안쪽으로 들어갔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휑.

그리곤 순식간에 우측 인라인으로 프론트 노즈를 밀어넣으며 다음 코너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알아서 비켜!”

공간이 좁아지자, 가까워진 서준하와 콜린의 포뮬러카.

-제쳤다

곧이어 인라인을 내준 콜린의 두 번째 포뮬러가 바깥쪽으로 벗어났다.

-준하, 앞에 한 대 또 보이지?

“보여, 멀지 않아.”

10코너를 빠져나가는 제이크 러셀의 포뮬러카. 자신의 팀과도 상당히 격차를 벌리며 달리고 있었다.

“제이크 러셀?”

롭의 말과 함께 다시 한번 떠오른 강민수를 제치는 장면. 영국 언론과 포뮬러 관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우쭐대는 듯한 녀석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코너 3개 차이, 그 정돈 별 거 아니야.”

선두가 시야에 보이자, 따라잡고 싶은 욕구가 더 강렬해진 서준하. 멀리서 자신을 향해 고갤 돌린 레이서의 모습을 포착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휑.

15턴을 빠져나오며 다시 한번 직선 주로에 오른 파란색 포뮬러카.

-빨라! 지금 아주 좋아!

재빠르게 가속하며 제이크를 향해 스피드를 높이는데,

“...!”

정면으로 피트 레인에 들어가는 제이크의 포뮬러카가 보였다.

“뭐? 끝?”

***

“도대체 아까 그 포뮬러카, 대체 뭐하는 짓이야!”

콜린 F3 팀이 위치한 피트. 이름 모를 포뮬러카가 자신들의 대열 사이로 끼어든 상황에 드라이빙 코치가 성을 냈다.

“이게 무슨 레이스도 아니고, 연습 주행에 왜 저렇게 달려드는 거지?”

서킷의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콜린 팀. 갑작스런 신경전이 당황스러웠다.

“흠... 스메들리 포뮬러 팀?”

한편 피트 바깥으로 나온 콜린 F3의 조쉬 감독. 멀리서 분주해 보이는 포뮬러 팀을 발견했다.

두두두두두둥.

두두두둥.

“저 개자식, 미친 거 아닙니까?”

“스타트라인 부근에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따라붙더라고요.”

피트의 복귀 지시를 받고 돌아온 레이서들.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서킷을 질주하는 포뮬러카 한 대를 바라봤다.

“조쉬, 왜 복귀하라고 하셨어요. 저흰 다시 추월하려고 했다고요.”

복귀를 지시한 건 조쉬 감독이었다. 서준하에게 추월 당했던 세컨드 레이서 톰 베이크. 자신은 당황해 공간을 내준 것뿐이라며 주행 중단에 불만을 표시했다.

“다들, 조용히 하게. 테스팅 주행 날 레이스를 하면 쓰나.”

오늘 연습 주행에서 리어 윙 세팅에 변화 값을 측정하려던 조쉬 감독. 세심한 차이에도 다운포스를 다르게 하며 차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부분이기에 선수들이 레코드 라인을 타는 일정한 드라이빙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본래 목적과 다른 주행을 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네. 그리고 먼저 추월한 건 우리 쪽이야. 안 그런가, 제이크?”

제이크처럼 혈기 왕성한 레이서들을 여럿 봤다. 특히나 유별난 승부욕 덕분에 레이스가 아닌 상황에서조차 앞에 차만 있으면 추월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속 길을 안 비켜주더군요. 앞차가 너무 느렸습니다.”

하지만 제이크 오히려 스메들리 팀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고갤 흔들었다.

“지금 여긴 우리 전용 서킷이 아니야, 제이크. 다음부턴 연습 주행을 분명한 목적에 맞게 하도록 해.”

이런 습관이 언젠간 화를 불러오리라고 믿는 조쉬 감독. 팀 레이서 모두에게 그 위험성을 당부했다.

“후...”

감독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는 제이크. 서킷 위로 아까 봤던 포뮬러 한 대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도망친 줄 알 거 아니야.”

갑자기 등장해 팀원들을 추월했던 스메들리 팀의 레이서. 그 이후 도전해오듯 자신의 뒤를 따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 봐 XX! 저것도 F3잖아!!!”

배기음으로 봐선 자신과 동일한 레벨의 포뮬러카였다. 내심 그와의 배틀을 기대했던 제이크, 서킷 가까이서 스메들리의 차를 보고는 신경질을 냈다.

멀어져가는 포뮬러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내쉬는데,

“그렇게 아쉬워하지마, 어차피 곧 보게 될 것 같으니까.”

제이크의 옆으로 다가선 조쉬.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을 꺼냈다.

“스메들리 포뮬러 팀. 이번 대회에서 보게 될 거야. 팀에서 기대를 거는 에이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게 저 친구일지도 모르지.”

감독의 말을 듣고, 옆 피트를 바라보는 제이크. 파랑과 노랑의 색조화가 인상적인 팀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스메들리?”

이어지는 낯선 레이서의 단독 질주. 몇 바퀴를 불태운 스메들리 포뮬러카가 서킷을 서행했다.

[Smedley Team: Junha Seo]

복귀한 포뮬러카 측면으로 새겨진 레이서의 이름. 콜린 팀 레이서 전원이 그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 친구가 맞는 것 같구만.”

이어서 피트로 복귀한 포뮬러카. 차에서 내리는 선수를 확인한 조쉬 감독이 제이크를 향해 말했다.

“서준하, 이번 대회 네 경쟁자다.”

사실 조쉬가 레이서들을 복귀시킨 진짜 이유는 서준하 때문이었다. 소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는 압도적인 드라이빙 테크닉. 그대로 뒀다간 제이크마저 추월당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했다.

“흠, 서준하? 귀엽게 생겼네요.”

감독의 말에도 별 반응 없는 제이크. 레이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몇 바퀴 안 타긴 했지만, 이거 내일 다시 써도 되겠는걸?”

연습 주행이 끝나고, 포뮬러카를 점검하는 미캐닉들. 타이어 마모도를 체크하며 서준하의 드라이빙 패턴을 분석하기 위한 메모에 나섰다.

“윌리엄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어. 진짜 미캐닉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구만.”

서준하의 연습 주행을 처음 지켜본 새로운 엔지니어와 미캐닉들. 말로만 듣던 엄청난 타이어 관리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강민수도 괜찮은 레이서야. 어제보다 타이어를 더 효율적으로 썼어. 8바퀴에 타이어 하나씩 쓰는 놈들에 비해서 이 정도면 훌륭한 거지.”

“맞아, 유럽 무대가 처음이라 좀 걱정했는데, 오늘 주행 보고 걱정을 좀 덜었어. 레이서 팀 말대로 테크닉도 일정하고, 주행이 안정적이야.”

“의외야. 한국인들이 이렇게 모터레이싱에 재능 있는 줄 몰랐다니까, 하하.”

타이어 관리와 더불어 어제의 기록보다 훨씬 앞당겨진 강민수의 랩타임. 팀원 모두 유럽 무대가 처음인 그의 적응력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한편, 주행을 끝내고 피트 근처 벤치로 걸어오는 서준하. 10바퀴도 주행하지 않았지만, 마치 대회를 마친 레이서처럼 땀을 쏟아냈다.

“후... 후...”

더 빠른 차를 타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격분한 상태로 연이어 앞차들을 추월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듯했다.

피트를 둘러보던 서준하, 열성적인 레이스 엔지니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맬릭의 눈빛이 달라졌네.”

이번 시즌 새롭게 강민수와 호흡을 맞추는 맬릭. 강민수의 주행을 본 후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준하야.”

벤치에 앉은 서준하를 발견한 강민수. 음료를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래서 20바퀴 하겠어?”

실버스톤의 대회 본선 레이스는 총 20바퀴. 40분 가까이 진행되는 장시간 경기는 훨씬 더 체력소모가 심하다.

언제나처럼 농담을 던지는 강민수를 향해 그저 미소 짓는 서준하.

“어우, 원래 유럽 레이스가 훨씬 거칠다고 들었는데, 연습 주행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선수 생활 단 한 번도 유럽 무대를 경험한 적 없는 강민수. 마치 해외 유럽 축구와 비슷한 거친 드라이빙 스타일이 당황스러웠다.

“저기, 저쪽도 이번 대회 참가자래. 원래 여기 애들 신경전이 좀 강해.”

전생은 물론 서준하의 카트 무대부터 느꼈던 것들. 저돌적이고, 거센 유럽 선수들은 대회 전부터 오늘 같은 신경전을 일삼았다.

“완전 폭주족이야. 우씨, 생긴 것도 무섭게 생겨가지고.”

분주한 콜린 피트. 오버롤을 입은 레이서들이 보였다.

다시 고갤 돌려 서준하를 바라보는 강민수.

“근데 준하야, 내가 볼 땐 네가 제일 무섭던데?”

레이스 비슷한 서준하의 질주를 처음 본 강민수. 평소 차분한 모습의 서준하와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1년 동안 싸울 건데, 처음부터 기세에 밀릴 수 없잖아.”

서준하도 처음 강민수와 같이 신사적으로 행동했지만, 결국 그런 행동은 대회 전 녀석들의 기세만 높여주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처럼 또 그러면 분명 대회 가서도 얕볼 거야.”

어떠한 결심이 묻어나는 말투. 서준하가 콜린의 피트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다음번엔 절대 도망치지마. 우리 근처에 오는 걸 두려워하게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회를 앞두고, 코리안 레이서들이 마음을 굳게 먹었다.

< 근데 준하야, 내가 볼 땐 네가 제일 무섭던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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