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69화 (69/200)

< 그 친구도 명단에 올려두죠 >

“서준하! 드디어 피트 스탑에 들어갑니다!”

피트 스탑 없이 달리던 선두 차량. 피트레인으로 들어서는 파란색 포뮬러카가 중계화면에 잡혔다.

“서준하가 하드 타이어를 꼈다고 의심되는 순간이네요.”

네 타이어 모두 그 한계까지 몰아부친 서준하. 스메들리 피트 박스에 들어섰다.

지이이이이잉.

처억.

서준하에게 남은 타이어는 프라임 타이어 2세트 뿐. 미디움 타이어를 장착한 서준하의 포뮬러카가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스타트!”

레리의 수신호와 함께 박스를 나서는 서준하.

-빨랐어, 나이스 미캐닉!

지체없이 이루어진 듯한 타이어 체인지. 서준하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피트 크루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 다시 집중.”

서킷의 컨디션은 어제 예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버스톤의 거친 노면 역시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베테랑 레이서 서준하에겐 익숙한 환경.

-9턴에서 뒷바람이 거세.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

“copy.”

포뮬러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건 노면만이 아니다. 특정 구간의 거센 바람 역시 차량의 안정성을 무너뜨린다. 레이스에서 벗어난 잠시 동안 피드백을 전하는 롭.

“와아아아아아아!!!”

맞은편 메인 그랜드 스텐드. 피트 레인을 지나가는 선두 차량을 영국 홈 관중들이 뜨겁게 맞이 했다.

부우우우우웅.

우우우웅.

피트 레인에 올라선 순간조차 멍 때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다시 서킷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조금 뒤 벌어질 상황을 미리 그려 보는데,

-준하야 뒤에

피트 레인에 오르자, 무전과 함께 또 다른 포뮬러카의 배기음이 들려왔다.

부우우웅.

위이이잉.

윙미러로 후방을 확인한 서준하. 빨간색 포뮬러카가 눈에 들어왔다. 헬멧의 색상으로 레이서가 누군지 확인했다.

-프리마도 곧바로 따라 들어왔어

연속해서 서준하를 뒤따르던 제프 베시. 그 역시 똑같은 랩을 소화하고, 피트 스탑에 들어왔다.

두두두두둥.

방향을 바꿔 그대로 프리마 팀 피트 박스에 정지한 제프의 포뮬러카.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프리마의 피트를 보고 혼잣말을 내뱉는 서준하. 윙미러로 보이는 제프의 차량이 점점 작아져 보였다.

[PIT lANE EXIT]

잠시 후, 출구가 보였다. 곧바로 속도를 높일 준비를 하며 오른손과 왼발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경쟁자들이 얼마나 따라왔는지 모른다. 출구를 나가는 순간, 맞딱드릴 수도, 아니면 저멀리서 배기음 정도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됐든,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좌측 메인 트랙을 흘겨본 서준하. 곧바로 시프트 업하며 직선주로에 올랐다.

***

“1,2위가 빠진 지금! 뒤차들에게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서준하가 빠진 사이 1위에 오른 제이크 러셀. 그립감이 피크에 달한 상태로 마지막 코너에 진입했다.

“그리고 제이크를 뒤따르는 페트로 피터발디! 두 선수 모두 벌어졌던 격차를 좁이고 있습니다!”

제이크의 윙미러로 보이는 빨간색 포뮬러카. 갑작스럽게 나타난 페트로가 그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가려했다.

“그렇죠! 페트로도 선두 욕심이 있죠!”

“이러면 또 자리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요!”

엎치락 뒤치락 하는 제이크와 페트로. 홈스트레치에서 배틀이 벌어졌다.

“아, 제이크 선수. 속도가 쳐져요. 디펜스에 치중하느라 앞으로 치고 나가질 못 하는데요.”

이제 곧 나타날 서준하. 앞으로 나가야 할 제이크를 페트로가 가만두질 않았다.

“자, 그리고!”

그리고 중계 카메라가 피트 레인을 비췄다.

“이제 서준하가 나옵니다!”

“피트 스탑 이전에 벌어졌던 거리가 꽤 됐었군요. 출구 근처에는 아무도 없어요.”

제이크의 전방 시야로 등장한 파란색 포뮬러카. 불과 몇 초 만에 선두 자릴 다시 내주고 말았다.

“아직 모릅니다! 프라임 타이어를 장착한 서준하거든요. 앞으로 두 바퀴, 많게는 세 바퀴까지 서준하도 타이어 온도를 높일 시간이 필요해요!”

선두는 다시 등장하며, 트랙을 달리는 상황.

“다시 슬립스트림에 들어간 페트로!”

윙미러를 확인한 제이크. 자신의 뒤에 다시 따라붙은 페트로를 보고는 신경질을 냈다.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끼익.

“자! 1턴에 들어가는 두 선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빠져나온 페트로의 포뮬러카. 하지만,

“아! 좀 늦었어요! 제이크가 막아섭니다!”

“잠시 주춤. 두 선수 1턴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어! 만나겠는데요!”

1턴의 종료 지점 옆으로 보이는 피트 레인 출구. 또 다른 빨간색 포뮬러카가 서킷에 올라섰다.

“제프가 트랙으로 복귀합니다아아아!”

혼란의 연속. 2턴까지 이어지는 직선주로로 세 대의 포뮬러카가 경쟁에 들어갔다.

“뒤차들 속도가 더 빨라보이는요오오오!”

제이크의 좌측으로 치고 나오는 페트로. 그리고 이번에는 가장 우측으로 제프가 등장하는데,

“쓰리 와이드(Three Wide)!!!”

세 대의 포뮬러카가 나란히 직선 주로를 달리는 상황, 쓰리 와이드. 중계진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나란히 달리는 세 대! 오늘 실버스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양보할 기세가 없는 포뮬러카들. 속도를 줄이지 않고, 2턴 진입로에 다가서는데,

“자! 먼저! 먼저 노즈를 집어넣는 사람이 유리하죠오오오!”

자칫 누군가 한 명이라도 방향을 크게 꺾는다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가운데, 완전히 붙어버린 세 대의 포뮬러카.

“제이크! 제이크가 먼저 들어갔어요!”

이어지는 삼연속 슬라럼. 좌측으로 꺾이기 시작하는 2턴에서 제이크가 앞서기 시작했다.

“페트로와 제프가 뒤져요오오오!!!”

그와 동시에 조금씩 물러나는 빨간색 포뮬러카들.

“제이크 2위에 랭크합니다! 계속 치고나가는 제이크! 선두까지 따라잡을 기세인데요!”

삼연속 슬라럼을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황금색 포뮬러카. 이어서 중계진의 말을 끝으로 선두 차량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오, 이런!”

어느덧 9턴 헤어핀에서 탈출 속도를 높이고 있는 서준하의 포뮬러카.

“세 선수가 경쟁하는 사이 가장 이득을 본 건 바로 서준하군요!”

2위 차량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선두의 위치. 경쟁자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레이스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

“이야, 저걸 뚫고 나오네. 하하하.”

젊은 레이서들을 물색하고 있는 F1 팀들. 그중 제이크 러셀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윌리엄스 레이싱 스카웃 관계자들이 실버스톤을 찾았다.

“제이크의 앞날이 기대되는군요. 이번 시즌 끝나면,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할 정도야.”

“맞아요. 이렇게 잘 타준다면, 영국 팬들이 더 좋아할 거고. 빠르면 내년에도 테스트 받으러 오겠는데요?”

레이스 후반부 막판 저력을 보여준 제이크 러셀. 처음부터 관계자들의 관심은 오직 제이크 뿐이었던 터라, 그의 활약에 더 큰 환호를 보냈다.

“그나저나, 소문대로 이번 대회 정말 저 친구가 챔피언 후보가 맞구만.”

예선 이후 챔피언 후보로 급부상한 서준하. 관계자들 역시 흥미로운 눈으로 그의 레이스를 지켜보는데,

“오늘 레이스만 봐서는 적수가 없어. 애초에 타이어 관리 능력이 남다르다고. 엄청난 기본기를 가진 레이서야.”

“근데 무대가 실버스톤이기도 하고, 아직 1차전만 가지고 우리가 너무 섣부른 걸 수도 있지.”

“맞아요. 좀 지켜 봐야겠지만, 확실히 눈에 띄는 레이서인건 맞아요. 영국 출신이 아닌 게 좀 흠이지만...”

많은 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서준하. F1 관계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직원들 틈으로 수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마디 던지는데,

“그 친구도 명단에 올려두죠. 앞으로 쭉 지켜 봅시다.”

윌리엄스의 스카웃 팀 책임자, 로건 채프먼. 실력 있는 유망주들을 데려오는 일에 귀신 같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정말요, 로건?”

“와하, 진짜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한 경기만 보고 리스트에 올라간 적은 처음인 거 같은데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인력을 동원해 앞으로 서준하가 참가하는 모든 경기를 관찰하겠다는 얘기. 윌리엄스 F1 팀이 서준하를 관심 목록에 두는 순간이었다.

“처음이 아니네. 어제 예선을 봤잖는가. 오늘이 두 번째야.”

사실 로건은 어제 예선에서  서준하를 눈여겨 봤고, 결국 오늘 레이스에서 마음을 굳혔다.

“오호, 그러셨군요. 그러면 이제, 코리안 레이서도 응원하면 되는 건가?”

로건의 말과 동시에 관계자들의 시선이 선두 차량으로 향했다.

***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경쟁자들을 뚫고 앞으로 나온 제이크 러셀. 영국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선두를 추격했다.

“보인다...!”

마지막 코너 전 직선 주로에 오른 제이크.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파란색 포뮬러카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탄성.

“원숭이 새끼!!!”

수많은 홈 팬들의 환호를 받는 건 제이크만이 아니었다. 홈스트레치로 선두 차량이 지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갤러리의 모습이 보였다.

띠링.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와 스타트라인으로 들어가자, 제이크의 랩타임이 측정됐다.

-랩타임이 똑같다, 제이크. 현재 타이어 상태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피트 스탑 시점을 훨씬 빠르게 가져갔던 제이크. 두 번째 장착한 타이어 역시 소프트를 낀 상태였다. 타이어가 슬슬 한계를 보이는 상황.

“...문제 없어.”

앞으로 네 바퀴. 윙미러로 빨간색 포뮬러카들이 보였다. 여전히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오는 상황.

잠시 뜸을 들이던 제이크가 엔지니어에게 무전을 날렸다.

-정말이야?

그럴리 없었다. 팀의 전략으론 이미 두 바퀴 전에 피트 스탑 했고, 랩타임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타임 로그를 다시 살핀 레이스 엔지니어가 재차 묻는데,

“...”

말이 없는 제이크. 레이서의 답을 기다리던 엔지니어가 다시 무전을 날렸다.

-그만하면 됐다, 제이크. 이번 랩을 끝으로 타이어 체인지 하도록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의 판단은 물론, 수석 코치진들마저도 타이어 교체를 지시한 상황.

피트 스탑으로 2위 자릴 내주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은 4바퀴 동안 차량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 내 말 못 들었어?”

콜린 팀 라디오 상으로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는데,

“XX!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곧이어 흥분한 제이크가 삼연속 슬라럼에 최고속으로 진입했다.

부우우우우우웅.

슈우우웅.

“선두는 서준하! 그 뒤로 제이크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다시 중계화면에 잡힌 실버스톤. 서킷 전체가 카메라에 담겼다.

“그렇습니다! 갑자기 페이스가 달라진 듯한 느낌입니다!”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드라이빙하는 2위 포뮬러카.

“제이크! 브레이킹 타이밍을 최대한 늦게 가져가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제이크와 서준하에게로 향했다.

“자! 11턴 이후 코너들만 잘 공략하면, 제이크에게도 기회가 있어요!”

추격 차량을 응원하는 팬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팬들이 마지막 기적을 바라는 듯합니다!”

“전속력으로 직선주로에 올랐는데요!”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며 과감히 16턴으로 진입하는데,

펑.

“...!!!”

순간 엄청난 굉음에 놀란 중계진.

“아! 제이크!!!”

그의 포뮬러가 단독샷에 잡히고,

“스타트 라인을 앞두고 리타이어합니다!!!”

곧이어 괴성과 함께 타이어를 걷어차는 제이크.

“으아아아아아아!!!”

너덜너덜해진 우측 뒷 타이어. 형태를 알 수 없이 찢어진 타이어가 카메라 잡혔다.

< 그 친구도 명단에 올려두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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