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70화 (70/200)

< 내가 한번 얘기 해보지. 끝나고 두 사람 모두 오피스로 잠깐 불러주게 >

레이스에서 보자던 제이크. 그가 더 이상 서준하의 윙미러에 보이지 않았다.

-콜린의 제이크가 멈췄다.

페이스를 무리하게 끌어올린 제이크는 결국, 서킷 위의 백마커만도 못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타이어 펑쳐로 보인다. 오늘 레이스는 끝난 듯. 하하

타이어 펑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서킷 위에 마블이나 데브리를 밟았거나 아니면, 드라이버가 타이어의 한계를 넘어서 주행했거나.

첫 번째 원인은 드라이버도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두 번째 원인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타이어 관리도 못하면서 무슨.”

자신의 드라이빙 스타일을 잘 아는 레이서일수록 타이어 펑쳐가 적다. 마모도는 일정한지, 네 바퀴의 어느 면에 치중돼있는지 등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줄 알았다, 바보 같은 놈.”

그러기 위해선 매 서킷의 모든 주행에서 세밀하게 체크해봐야 하는데, 많은 레이서들이 이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준하, 남은 랩은 3바퀴. 끝까지 집중하자

1턴 진입로에 다가서는 서준하. 전방에 네덜란드 팀 백마커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느린 속도로 1턴에 들어가는데,

부우우우우우웅.

1턴을 지나 사리진 백마커. 서준하의 예상 대로라면, 코너를 빠져나가 그대로 직선주로에 올랐을 거다.

청색기가 휘날렸을 테지만, 반응 속도마저 빠르지 않을 터,

-코너 직후 백마커!

다 알고 있다. 녀석은 느릿한 속도로 탈출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좀 더 바깥으로...!”

타이의 그립감은 지난 두 바퀴부터 최상에 올랐다. 덕분에 서준하의 주행 자신감도 배가 된 상황.

끼이이이익.

1턴에 진입하는 서준하의 포뮬러카. 평소보다 바깥쪽 라인에서 코너링하며 코너 탈출과 동시에 연석 밖으로 밀려났다.

“그럴 줄 알았어.”

예상대로 아직 우측으로 이동 중인 백마커, 곧바로 악셀을 밟았다간 녀석과 부딪힌다.

-빨리 안 비켜주고 뭐하는 거야!

방향을 왼쪽으로 살짝 바꾼 서준하의 포뮬러카. 좌측 두 바퀴가 연석 밖 모래밭으로 빠지며 속도를 높였다.

부우우우우우웅.

휑.

모래 먼지를 휘날리며 백마커 앞으로 나아가는 서준하. 트랙을 벗어나 그래블 배드를 걸치는 주행을 선택했다. 만약 코너를 빠져나오고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손해 봤을 거다.

“저런 건 페널티를 줘야지.”

윙미러를 확인한 서준하. 자신의 뒤에는 백마커 말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마치 법칙과도 같다. 백마커가 없으면 추격자, 추격자가 없으면 항상 백마커가 나타난다.

-나이스! 스피드를 살려냈어. 그대로 몰아붙여!

후방의 압박이건, 전방에서 갑자기 등장한 장애물이건. 한 바퀴 랩타임은 결국 한 턴에서의 이런 시간들이 모아져 만들어진다. 그러니 한 턴 한 턴에서 시간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타야한다.

-16턴 입구, 앞에 다시 백마커다

레이스 종반, 백마커를 알리는 롭의 무전.

“후... copy.”

본격적인 장애물 피하기를 앞둔 서준하. 전방의 또 다른 백마커를 바라봤다.

***

“대략 10초 이상 차이가 납니다. 제프와 페트로 모두 랩타임이 좋아지고 있는데도 격차가... 줄지 않습니다.”

파이널 랩까지 얼마 남지 않은 레이스. 선두와의 격차가 줄지 않는다는 말에 조르조 감독이 입술을 깨물었다.

“선두 차는 옵션 타이어도 아닙니다만, 랩타임이 계속 오르네요.... 막판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레이스 종반까지 옵션 타이어를 아껴두며 막판 뒤집기를 노렸던 프리마 레이싱. 예상과 다르게 초중반 벌어졌던 격차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하... 또 저러는구만.”

3위를 달리는 페트로 피터발디. 수차례 팀 메이트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며, 호시탐탐 2위 자리를 노렸다.

“페트로 이 자식...”

자칫하다간 팀 레이서간 배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이 역시 후반 격차 극복이 늦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제프가 침착하게 디펜스하지만, 그래도 저러다 한 번 부딪힐까 걱정입니다.”

페트로 역시 이번 대회 우승 후보 가운데 한 사람. 뛰어난 배경과 더불어 많은 관심은 그를 더 높은 자리에 가도록 부추기는 것이 분명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휑.

선두를 시작으로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포뮬러카들. 스피드 트랩에 최고속 256km/h이 연달아 찍혔다.

“조르조, 이제 두 바퀴 남았습니다!”

“격차는?!”

기대에 찬 목소리와 함께 엔지니어들을 바라보는 조르조.

“...!”

“이, 이게 무슨...!”

“왜 그래.”

상황판을 살핀 엔지니어들이 말을 잇지 못 했다.

“서, 선두와 제프가 1초 더 벌어졌습니다...!”

한숨을 내쉬고는 타임 로그를 살피는 조르조 감독.

“게다가 제프는 이번 랩 본인 베스트 랩타임입니다만...”

계속 빨라지고 있는 제프. 하지만 그런 그와 1초가 더 차이난다는 건,

“스메들리 서준하. 18랩에서 랩 레코드를 달성했습니다...”

“랩 레코드(Lap Record, 레이스 상황에서 기록한 가장 빠른 기록)?!”

페트로의 방해가 있었지만, 옵션 타이어의 피크 타임을 맛보며 막판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준 제프. 하지만 선두 차량은 그보다 뛰어난 실력자였다.

“이번 대회 영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제이크가 아니라, 저 녀석이었어...”

어제 예선에서의 폴포지션 성과조차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조르조 감독. 이제 마음속 진짜 챔피언 경쟁자는 스메들리의 서준하였다.

“이제 파이널 랩입니다!”

서킷을 뚫어지라 보는 조르조. 스타트 라인의 선두 차량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

후미와 압도적인 격차로 파이널 랩을 시작한 서준하.

“제발, 제발, 제발!”

우승 가능성이 높아 보였음에도 스메들리 피트는 여전히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마지막에 타이어가 터지는 건 아니겠지?”

미캐닉들의 머릿속엔 온통 타이어 생각 뿐. 이미 세 명의 선수들이 펑쳐로 리타이어한 상황.

마지막 코너를 나올 때까지 서준하의 타이어가 절대 멀쩡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Smedley Formula Brithsh]

그리고 중계 화면 바로 앞, 4턴을 빠져나가는 서준하의 포뮬러카를 지켜보는 윌리엄.

“허허...”

포뮬러카는 기계다. 언제건 갑자기 문제를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다. 그게 파이널 랩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16턴!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라 준하야!”

“서준하! 끝까지!”

코스 막바지에 이르자, 모두가 자리에 일어서 스크린 앞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중계진의 말에 돌연 표정이 싹 굳은 채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는데,

“뭐야?!”

스타트 라인 직전에 멈춰선 녹색 포뮬러카 한 대가 화면에 잡혔다.

“오우, 이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차량 중앙에 불이난 채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준하! 준하는?!”

얼어붙었던 피트 분위기. 서킷 위를 달리는 파란 차를 발견한 엔지니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그리고 점점 커지는 익숙한 배기음.

“서준하!!! 체커기가 서준하를 맞이 합니다!”

스타트라인으로 가까워지는 포뮬러카를 보고 팀원들이 서킷으로 달려나갔다.

“피니쉬!!!”

최고속에 달한 서준하의 포뮬러카. 스타트 라인 부근 트랙 우측으로 붙으며 주먹 쥔 손을 흔들었다.

“와아!!!”

윌리엄 주변으로 몰려든 수석 코치진들이 서로 껴안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마음 졸이고 봤던 40여분간의 레이스. 긴장이 풀린 윌리엄과 미캐닉들이 눈물을 쏟아냈다.

“스메들리 팀! 눈물을 흘리며 환호합니다!”

위닝랩을 도는 우승자가 단독샷에 잡혔다. 손을 흔들며 서킷 이곳 저곳 팬들에게 인사하는 서준하.

-지지지징.

[Smedley Team Radio]

그리고 마침 서준하의 무전 내용이 중계됐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예쓰!

-지지지지징.

-예쓰! 와하하우우우!!!

지지직 거리는 통신음과 함께 연신 소리를 지르는 레이서의 목소리가 중계되는데,

“서준하! 자신의 F3 데뷔전 첫 우승을 차지합니다!”

서준하가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대회가 바로 포뮬러 3이기 때문.

레이싱 선수로서의 삶의 기로에 마련된 카테고리이자, 젊은 레이서들 중 상당수가 드라이버로서의 삶을 일찍 마무리하는 무대. 그런 대회의 우승이니만큼 어느 대회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더 컸다.

“검차를 받으러 들어오는 서준하! 곧장 팀원들에게 달려가는군요!”

검차대 바깥으로 모여든 팀원들을 발견한 서준하. 차에서 내리자마자 펜스를 향해 온 몸을 던졌다.

“준하아아아!!!”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내는 팀원들. 서준하 역시 눈가가 촉촉하게 젖으며 그들에게 안겼다.

***

레이스가 끝나고 레이서들의 복귀를 기다리는 프리마 레이싱 팀.

“이번에도 페트로가 자꾸 치고나오려는 게 눈에 거슬렸네.”

이미 프리마 팀에선 퍼스트와 세컨드 드라이버를 나눈 상황. 하지만 오늘 레이스에서도 레이서간 신경전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졌다.

“페트로도 카트 시절부터 메인이나 퍼스트 자릴 놓친 적이 없던 레이서 아니었겠습니까? 드라이빙 코치들이 몇 번 면담을 해봤는데, 지금 상황을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자신의 아버지가 F1 월드 챔피언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몇 안되는 브라질 선수들 가운데 유망주 소릴 듣고 자랐던 페트로 피터발디. 처음으로 팀의 세컨드로 밀린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내가 한번 얘기 해보지. 끝나고 두 사람 모두 오피스로 잠깐 불러주게.”

팀 메이트간 라이벌 의식을 갖는 건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로 중의 프로 무대인 F1에서조차 같은 팀 레이서끼리 다투는 경우가 허다한데,

터벅터벅.

굳은 표정으로 팀 오피스로 들어간 조르조 감독. 곧이어 레이서들이 도착했다.

“제프, 페트로. 두 사람 모두 감독님 오피스로 잠깐 가봐. 감독님이 찾으신다.”

피트로 복귀한 프리마의 레이서들. 장시간 주행으로 쏟아낸 땀을 식힐 새도 없이 곧바로 오피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어, 들어와요.”

오피스로 들어온 두 사람. 조르조 감독이 웃으며 제프와 페트로를 맞이했다.

“오늘 모두 고생 많았어요. 첫 대회부터 두 선수 모두 포디엄이라니 대단합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꺼내던 조르조.

“으흠, 사실 레이스 끝나고 바로 이렇게 면담하는 이유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데,

“팀에서 퍼스트와 세컨드 자릴 나누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팀은 레이서간 경쟁을 시키지 않는 팀이죠. 솔직하게 말해서 프리마 팀이 원하는 건 우승 말고는 없습니다.”

팀 마다 퍼스트와 세컨드 레이서에 대한 대우는 다르다. 프리마 팀의 경우 오랜 세월 퍼스트 레이서의 우승을 위해 다른 레이서들이 희생해온 팀이었다.

“페트로, 오늘 후반 배틀만 없었더라면, 우리 팀이 선두권을 노려볼 수도 있었습니다. 모터레이싱은 팀 스포츠죠. 잊었나요?”

조르조의 시선을 피하는 페트로. 어딘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대회 시작이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명심하세요. 팀 레이서간 팀워크도 중요한 승리 요소라는 걸.”

긴 대화가 끝나고 두 선수가 오피스에서 나왔다.

“후...”

한숨을 내쉬며 먼저 건물을 나서는 페트로.

“야! 페트로!”

뒤따라오던 제프가 그를 불러세웠다.

“너, 오늘처럼 한번 더 내 앞을 넘어서려 했다간...”

연습 주행에서 틈틈이 자신을 추월하려고 했던 페트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제프가 그의 앞에 다가섰다.

“그땐 진짜 날려버린다, 알겠어?”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제프를 노려보는데,

“뭐? 날려버려?”

스으으으윽.

턱.

페트로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친 제프.

“여기 퍼스트는 나야. 착각하지마, 새끼야.”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제프의 주먹. 그의 눈엔 살기가 어려 있었다.

< 내가 한번 얘기 해보지. 끝나고 두 사람 모두 오피스로 잠깐 불러주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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