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71화 (71/200)

< 여길 풀스로틀로 통과할 수 있는 차는 F1 카밖에 없어 >

“세상에, 이렇게 길었던 인터뷰는 처음이야.”

시상을 마치고 몰려든 방송사 스태프와 기자들. 1차전 우승자의 생생한 소감을 듣기 위한 인파가 서준하를 붙잡았다.

“빨리 돌아가자, 계속 서있느라 힘들었을 텐데.”

한서윤과 함께 서킷 밖을 빠져나오는 서준하.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찰칵, 찰칵.

이동 중에도 오버롤을 입은 서준하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 짧은 순간마저 서준하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음... 냄새 좋아.”

호텔에 도착한 서준하. 좋은 향기가 코 끝에 맴돌기 시작하자, 곧이어 피곤이 밀려왔다. 일단 먼저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던 찰나,

“우승 축하드려요! 서준하 선수!”

기쁜 얼굴로 서준하를 발견한 다큐 PD 김선태. 카메라 맨과 함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 두 사람을 발견한 한서윤. 지금 서준하의 상태가 어떤 줄 잘 알기에 다소 걱정스런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서준하 선수, 잠깐 대회 우승 소감 짧게 저희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요?”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PD.

“PD님, 잠깐 쉬었다가 이따 저녁에 할게요. 준하 선수가 레이스 끝나고 쉬질 못 해서...”

분명 지쳐 보이는 서준하의 얼굴. 한서윤의 말을 들은 PD가 고갤 끄덕이는데,

“괜찮아요, PD님. 어디서 할까요?”

발걸음을 돌리던 두 사람을 불러세운 서준하.

“엉? 준하 선수? 오늘 좀 많이 지쳤을 텐데...?”

힘든 건 맞지만, 오늘 레이스를 우승한 이 기분을 더 많은 팬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특히나 땀과 함께 눌린 머리 등 레이스가 끝나야만 표현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있었다.

“나중에 하면 지금 이런 생생한 느낌이 안 살잖아요. 전국민이 보는 다큐라면서요. 레이스 끝나고 이런 소감이 빠지면 안되죠.”

호텔 로비에 마련된 테이블로 걸음을 옮긴 서준하. 그 모습을 한서윤이 지긋이 바라봤다.

“...참 마음이 따뜻한 구석이 있다니까.”

한서윤이 지켜본 레이서들과는 달랐다. 젊은 레이서치고 서준하처럼 실력도 있고, 배려심마저 넘치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저런 레이서가 성공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되는 인터뷰를 지켜보는 한서윤.

“하하, 아무튼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우승 소감을 비롯해 오늘 하루 종일 같은 질문에 수차례 답변하는 서준하. 모든 답변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인데,

“...대회가 끝나고 사람들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2차전을 앞둔 서준하 선수, 다음 레이스도 자신 있으세요?”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 PD가 꺼낸 질문. 가슴을 활짝 편 서준하가 환히 웃었다.

“2차전 스파 프랑코샹(Spa-Francorchamps) 사실 제가 가장 원했던 서킷입니다.”

몬차를 비롯한 여러 유서 깊은 서킷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파 서킷.

“스파를 기다렸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스파는 고속 서킷이죠. 맘 놓고 가속 페달을 밟아도 괜찮아요. 게다가 길이도 엄청 길기 때문에 레이스 내내 최고속을 즐길 수 있어서 기대됩니다.”

F1에서 가장 긴 가속구간을 갖고 있는 서킷. 특히나 전체 서킷 길이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저는 빨리 달리는 일에 미친 사람이죠. 2차전 레이스 자신 있습니다. 많이 응원 해주세요.”

피곤함은 찾아 볼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 카메라 맨이 숙소 계단으로 걸음을 옮긴 서준하를 페이드 아웃했다.

***

“단 2랩 만에 밸런스가 깨진 느낌을 받았어. 아무래도 정밀하게 점검해야 할 거 같아.”

1차전이 끝나고 곧바로 벤버리 팀 캠프로 복귀한 스메들리 팀. 짧은 휴식을 갖고, 곧바로 2차전 준비에 들어갔다.

“초반에 그 느낌을 받았다면, 차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 번 살펴 볼게.”

팀 게러지로 출근한 서준하. 가장 먼저 강민수가 눈에 들어왔다. 헨리를 비롯한 퍼포먼스 엔지니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

“먼저 주행 데이터를 비교 해보자. 데이터는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거든. 문제가 있으면 주행 기록에 다 드러날 거야.”

1차전 1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강민수. 포인트 권에도 들지 못한 순위였기에, 팀 모두가 많이 아쉬웠던 상황.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데뷔전 실패 원인을 파악에 나서며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엔지니어들과 대화를 마치고 서준하를 향해 걸어오는 강민수.

“아하, 이거 참. 스티어링 휠 쪽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야. 어쩐지 갑자기 빡빡해 지더라니.”

차량의 문제를 확인한 그가 아쉬운 표정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문제를 바로 찾아내서 다행이네.”

“그렇지? 헨리가 보는 눈이 남달라. 데이터만 보고도 어느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추려내더라고. 젊은 나이에 저 자리에 있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강민수의 포뮬러카를 분해하기 시작한 헨리와 엔지니어들. 그들을 향한 두 레이서의 신뢰가 가득했다.

“평소보다 대회 프렉티스 때 랩타임이 더 잘 나왔었는데. 하필 레이스 당일에 문제가 생기니까 많이 아쉽네.”

대회 시작전, 이번 대회 순위권과 비슷한 퀄리파잉 기록을 보유했던 강민수. 팀은 물론 스스로 포디엄에 오르겠단 의지가 대단했었다.

하지만 포디엄에 오르기 위해선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 강민수의 말에 문제 없었던 자신의 차량에 감사함을 느끼는 서준하.

“이제 시작했는데, 뭐. 우승할 기회는 아직 7번이나 더 남았어.”

우승이라는 말에 피식하고 웃는 강민수. F3 첫 대회를 잘 치루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그도 승부욕 강한 레이서다.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싶은 건 당연해 보였는데,

“그래, 2차전에는 선두에서 보자.”

강민수가 좋은 성적을 내주는 건 서준하도 바라는 일이었다. 팀 메이트간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같은 팀 레이서끼리 팀워크를 발휘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레이서 팀은 잠깐 모여주길 바라네.”

때마침 밝은 얼굴로 게러지로 등장한 윌리엄 스메들리. 롭을 비롯한 레이스 엔지니어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일찍 떠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직 2차전까지 한 달 가까이 여유가 있는 상황. 대회 시작 2주 전 서킷으로 이동을 계획했던 스메들리 팀이 일정 변경에 나서는데,

“벨기에는 우리 모두 처음이지 않은가, 좀 더 일찍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어.”

스토브 시즌동안 가볍게 둘러봤던 스파 서킷. 레이서 모두 주행 데이터가 전무한 장소였다.

“일찍 가는만큼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윌리엄.”

한 사람이 아닌 팀 전원이 이동하는 상황. 단 하루라도 계획보다 일찍 갈 경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허허, 괜찮아.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게.”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1차전 우승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생긴 윌리엄. 정말 이번 대회 모든 걸건 듯했다.

“이번 주말 보내고 바로 떠나도록 하지. 레이서 팀은 장비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출발해주게.”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서 준비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준하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연습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말을 마친 윌리엄. 서준하에게 윙크를 날렸다.

***

“여기가 그 유명한 스파 서킷이야.”

벨기에 프랑코샹에 위치한 스파-프랑코샹 서킷. 영국 실버스톤, 독일 뉘르부르크링, 이탈리아 몬차 등과 회자되는 매우 유서깊은 서킷이다.

“길이는 총 7km가 넘고, 자잘한 코너 또한 무려 스무 개나 되는 곳이지.”

스타트라인 부근을 걷기 시작하는 레이서 팀. 서준하의 주변으로 넓고 기다란 코스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와아아!”

헤어핀 1코너를 지나 스메들리 팀 앞에 등장한 엄청난 내리막 슬라럼. 대략 건물 10층에 가까운 고저차에 팀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여기가 바로 오 루즈(Eou Rouge)와 라디온(Raidillon) 구간이야. 어때 엄청난 내리막이지?”

긴 내리막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오르막까지. 롭이 자신의 주행 경험을 꺼내 놓으며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설명하는데,

“오 루즈. 여긴 진짜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야. 스파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니까.”

F1을 제외한 GT급 레이스카들이 고속으로 오 루즈를 통과하려면 순간 브레이킹을 걸거나 가속페달을 잠시 떼어서 모멘텀을 끊고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바깥으로 밀려나 대형사고로 연결된다.

“여길 풀스로틀로 통과할 수 있는 차는 F1카밖에 없어.”

“엥? 이런 위험한 내리막 구간에선 성능 좋은 차일수록 풀스로틀을 못 쓰는 거 아닌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궁금증을 드러내는 강민수. 어느 경주차를 막론하고 레이싱 카테고리 제일 빠른 F1 경주차. 그런 빠른 차일수록 이런 곳에선 제어가 힘든 건 분명해 보였는데,

“F1 차가 최고속으로 여길 지나갈 수 있는 건, 차의 다운포스랑 타이어 접지력 때문이야.”

“어, 준하. 그, 그래?”

다운포스, 차체를 밑으로 눌러서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이는 힘. 스포츠카는 앞 뒤에 윙을 달아 양력으로 다운포스를 늘린다. 서준하가 나서는데,

“F1 카만큼 지면에 딱 달라붙어 주행하는 차가 없어. 그래서 풀스로틀로 달려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 거야.”

여러 레이싱 카테고리를 경험하며 다양한 서킷을 주행해 본 서준하. 자신의 전생 경험을 잘 포장해 전달했다.

“맞아, 준하 말대로 F1 카는 이론적으론 천장에 붙어서 달릴 수도 있어. 자체적으로 차체를 짓누르는 힘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지.”

“그, 그렇구나...”

중요 사항을 메모하는 자신과는 반대로 어딘가 항상 여유있는 모습. 생각에 잠긴 강민수가 무리의 가장 뒤에서 걸었다.

“아무튼 두 사람, 여기에선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우리 경주차는 F1 카보다 훨씬 다운포스가 떨어져. 최고속으로 내려왔다간 날아가버릴 지도 몰라.”

서준하를 바라보는 강민수. 그는 마치 레이스 엔지니어들이 지적하는 사항들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반면,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오 루즈를 바라보는 서준하.

F1의 경우 오 루즈를 통과할 때 최대 6G의 중력 가속도를 수직으로 받는다. 이 구간을 통과하며 느꼈던 어마어마한 중력가속도가 서준하의 몸으로 다시 전해지는 듯하는데,

‘오 루즈, 승부처는 여긴가.’

긴장되고 신기한 눈으로 서킷을 바라보는 강민수와는 달랐다.

‘이번 생엔 여길 브레이킹 없이 달려 보겠어.’

속도광 서준하. 오 루즈에서 풀악셀을 밟고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준비 기간 동안 반드시 방법을 찾는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어려운 코너, 오 루즈. 2차전 준비를 앞둔 서준하가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 여길 풀스로틀로 통과할 수 있는 차는 F1 카밖에 없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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