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73화 (73/200)

< 정말 죽여주는 엑셀 워크가 나왔습니다 >

“와아아!!!”

잠정 1위로 올라선 제프 베시. 중계 화면을 지켜보던 프리마 팀 미캐닉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번 랩에서 연료량이 최소치였을 거야. 아슬아슬했는데, 결국 제프가 해냈어!”

대부분의 베스트 랩타임은 연료량이 최소치에 이른 주행에서 만들어진다. 연료량이 적을수록 차는 가벼워지기 때문.

어택 타이밍에 맞게끔 정밀하게 연료량을 계산했던 제프. 결국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최고 기록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에 아쉬운 기록이지만, 페트로도 3위야. 한 명만 추월해서 둘 다 선두를 달린다면, 이번 레이스에선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본선 레이스 1,2위를 달리는 빨간 포뮬러카를 상상하는 프리마의 미캐닉들. 두 선수가 디펜스만 잘해준다면 우승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흠...”

제프의 기록과 함께 미캐닉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가운데, 피트 가장 자리에서 서킷을 바라보는 조르조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메들리 레이서... 스피드가 달라졌네요.”

감독의 곁으로 다가온 치로. 그 역시 기대에 찬 미캐닉들의 표정과 다르게 어딘가 걱정스런 얼굴로 서킷을 바라봤다.

“특히 저 오 루즈. 보셨나요 감독님?”

대다수의 레이서들이 서행하는 가운데, 플라잉 랩을 달리고 있는 스메들리 팀의 서준하. 좀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코스 중반부를 질주하고 있었다.

“아까 오 루즈 구간을 빠져나올 때 속도가 엄청났어. 어떻게 그런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거지.”

긴장된 표정으로 서준하의 주행을 지켜보는 두 사람. 내리막 직후 또 다른 고속 코너에서도 서준하의 파란 포뮬러카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시 온다!”

마지막 코너, 버스스탑 시케인을 돌아,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오는 서준하. 프리마 팀은 물론 서킷 위의 모든 이의 시선이 홈스트레치로 향하는데,

띠링.

곧이어 중계 화면에 표시된 서준하의 랩타임.

[2Round – Qualifying Pole]

1. Jeff Bessie – 2:04:521 / 9 lap

2. Junha seo – 2:04:799 / 10 lap

.

.

“와아아아!!!”

“못 깨, 절대 못 깨!”

“이번에 폴은 우리가 가져간다!”

아직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제프의 잠정 1위 기록. 프리마 피트 미캐닉과 엔지니어들이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반면, 여전히 어두운 표정의 치로와 조르조 감독. 긴장이 극에 달한 사람들처럼 표정이 굳고 말았다.

“아직 좋아하긴 이른데...”

7랩부터 연신 플라잉 랩을 몰아 붙이며 베스트 타임에 도전했던 우승 후보들. 하지만 서준하는 달랐다.

“서준하는 아직 몇 번 더 남았잖아.”

마지막 세 바퀴에서 어택 타이밍을 잡은 코리안 레이서의 질주는 이제부터 시작인 듯 보였다.

게다가 처음으로 플라잉 랩에 들어가 만든 기록이 2분 5초의 벽을 넘은 상황.

“쟤는 이제 시작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서준하에게로 향했다.

***

-폴과 0.25초 차이. 아깝다, 서준하

제프의 기록은 오 루즈를 최고속으로 통과해 만든 서준하의 기록보다 좋았다. 그만큼 모든 코스에서 최고의 라인을 따냈다는 소리. 제프 베시,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2위에 올라선 서준하! 1턴을 돌며 이제 곧 내리막 코스에 접어듭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휑.

다시 한번 서준하의 눈앞으로 보이는 기다란 직선 구간이 보였다.

“후...”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하는 상황.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는 만큼 위험 부담이 따른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은 서준하.

“한번 더.”

이번에도 역시 가속 페달을 놓지 않고 통과하겠다고 마음 먹은 서준하. 최고속으로 오 루즈를 통과하기 위한 2차 시도에 들어갔다.

“어! 어! 브레이크!”

“진입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1차 시도를 보지 못했던 중계진들이 서준하의 단독샷에 연신 소리를 질러대는데,

“서준하! 브레이킹 해야죠! 자칫 하면 밀려나요!”

중계진의 예상과 달리 파란색 포뮬러카는 서킷 위에 착 달라붙어 달렸다. 곧이어 미친 속도가 이어져 순식간에 30m 높이 오르막으로 치솟는데,

“...!!!”

서준하의 대담성에 놀란 건 중계진과 갤러리 뿐만이 아니었다. 서킷 위에선 레이서들의 눈엔 마치 서준하 혼자 다른 차를 운전하는 듯 보였다.

“와우!!! 정말 죽여주는 엑셀 워크가 나왔습니다!”

곧바로 중계화면에 등장한 스피드 트랩. 오 루즈를 통과한 포뮬러카의 시속이 화면에 잡혔다.

“방금 전 순간 최고속이 무려 258km/h입니다! F3 경주차로는 처음 보는 숫자인데요?!”

탈출 속도를 살린 서준하. 이어지는 1km 의 긴 케멜 스트레이트(Kemmel Straight)로 들어갔다.

“케멜 스트레이트에서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속도, 오로지 속도 뿐이죠! 연이어 전력으로 질주하는 서준하! 케멜을 달릴 줄 아는 선수입니다!”

오 루즈를 빠져나온 다른 경주차들. 앞선 서준하와의 탈출 속도가 확연히 드러났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도대체 저 스피드는 뭐야...!’

케멜 스트레이트 중간에서 우측 서행 중인 제프 베시. 빠라게 사라져 버린 서준하의 포뮬러카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치솟았다.

‘하, 서준하...’

달리고 싶었지만, 이미 연료량이 바닥에 이른 상황. 서준하를 보자 모든 걸 쥐어 짜내며 만들었던 좀전의 기록이 더는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서준하 혼자 서킷을 달리는 듯합니다. 아직 5분 정도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서행하고 있는데요!”

서준하가 나타날 구간 앞에서 연신 청색기를 흔들어대는 마샬들. 깃발을 본 포뮬러카들이 재빠르게 우측으로 진로 변경했다.

이번엔 스파 서킷의 또 다른 내리막에 도달한 서준하.

“복합 코너를 빠져나온 서준하! 다시 한번 내리막에 올라탑니다! 이번에도 미친 속도로 달리는데요!!!”

내리막 이후 이어지는 완만한 헤어핀 8턴. 최고속에서 순식간에 두 자릿수까지 속도를 떨어뜨려야 하기에 엄청난 파워 브레이킹이 필수다.

“지금까지 서준하 좋았지만, 여기 조심해야 합니다! 아까도 파비앙 선수가 급 브레이크를 시도하다가 휠 락(Wheel-Lock)이 발생했죠?!”

휠락, 브레이크가 타이어의 제동력을 넘는 힘으로 디스크를 잡아 잠기면서 정상적인 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속도가 여전히 빠른데요! 브레이킹 타이밍을 최대로 늦추는 서준하 8턴에 진입합니다!”

속도를 제어하기 힘든 탓인지, 아니면 속도를 살리기 위함인지. 서준하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가운데,

끼이이이이이이익.

코너 진입과 동시에 차체의 방향이 완전히 꺾어 놓는데,

“...!!!”

중계진의 걱정과 달리 아슬아슬 연석 끝까지 차를 밀어넣으며 헤어핀을 돌아나갔다.

“와하하하하! 서준하! 내리막 코너 앞에서 과감한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재가속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며 재빠르게 탈출하는데 성공. 연이은 고속 코너에 들어갔다.

“거의 다왔는데요오오오!!!”

추격자도, 백마커도 없었다. 장시간 서행하며 특별히 주의할 코스도 이미 파악을 끝냈다.

‘이번 랩은 완벽했어. 마지막 시케인만...!’

만족스러웠던 오 루즈 통과 이후 자신감이 극에 달한 서준하. 마지막 시케인을 앞두고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전속력으로 버스스탑 시케인 앞에 나타난 서준하!”

시케인에 진입하는 서준하. 코스 바깥 라인으로 먼지가 일어나는 걸 발견했다.

“브레이크 타이밍을 일찍 가져가는데요오오오!”

마지막 장애 요소까지 완벽히 피해가는 서준하. 헤어핀 안쪽을 크게 돌아 나오는데,

“자, 과연?!”

띠링.

전광판에 표시된 서준하의 랩타임. 갤러리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분 3초 822!!!”

“서준하 잠정 1위에 올라섭니다아아!!!”

남은 시간은 2분 남짓. 랩타임을 확인한 서준하가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며 속도를 늦췄다.

***

“10턴 뿌옹(Pouhon)이후 내리막 헤어핀에서 자꾸 속도가 떨어져. 내가 볼 땐 여기가 가장 문제야.”

퀄리파잉 레이스를 마치고 피트로 복귀한 강민수. 영상과 함께 그의 주행 데이터를 살펴보는 맬릭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맬릭, 내가 볼 땐 민수가 거기서 페달링을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아. 그렇게 하면 락이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지.”

예선 5위를 기록하며 발전하고 있는 강민수. 그를 위해 레이스 엔지니어들은 물론 미캐닉들과 헨리까지 피드백에 나섰다.

“헨리, 말이 맞아. 여기서는 관성을 최대한 이용해서, 엑셀에 의존하지 말고, 통과속도를 올리는 게 최선이야. 무조건 자세부터 안정시키고 코너링에 들어가야 해.”

새로 투입된 미캐닉 리더, 제임스가 헨리의 의견에 힘을 실고,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여긴 밸런스가 중요하다, 이거 맞지?”

2차전만큼은 준비를 많이 했던 터라 누구보다 예선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큰 강민수. 땀이 채 식기도 전에 피트로 찾아와 피드백 사항을 빠르게 메모했다.

터벅터벅.

게러지로 들어선 윌리엄. 흡족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바라봤다. 특히나 매번 미캐닉들을 괴롭히는(?) 강민수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흠...”

젊은 레이서들이니만큼 초반 대회 부진에 쉽게 포기하는 걸 많이 봤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한 강민수의 집요한 열정과 끈기는 앞으로 남은 레이스를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헨리, 제임스. 잠시만.”

정차한 포뮬러카 앞으로 걸음을 옮긴 윌리엄이 두 사람을 곁으로 부르는데,

“그나저나 이 차 괜찮은 거야?”

“괜찮다뇨?”

서준하의 포뮬러카 바퀴를 발로 툭툭치는 윌리엄. 그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갤 갸우뚱 거렸다.

“엔진, 엔진 말이야.”

오늘 예선 결과에 무척이나 기뻤지만, 내심 차량이 걱정됐다. 특히나 독보적으로 고속 주행을 보여준 서준하의 포뮬러카는 차량 성능 이상의 속도를 뽑아냈으니까.

“그나마 새차라서 블로우가 나거나 하진 않을 거 같은데...”

새 엔진의 경우 금속 부품의 강도가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 하지만 다소 걱정스런 눈으로 차량을 바라보는 윌리엄. 그만큼 오늘 레이스에서 서준하의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걱정마세요, 준하는 기어 변속 능력이 최고 수준에 달한 듯합니다.”

두 번의 급감속 구간. 무리한 기어 변속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리송한 말에 눈을 껌뻑이는 윌리엄.

“검차 상 엔진에 문제 없고, 준하도 스킵 시프트는 단 한번도 없었다네요.”

“단 한 번도?!”

서준하는 시프트 다운 속도가 남들보다 배는 빠른 선수였다. 총 3번의 플라잉 랩에서 단 한 차례 실수도 만들지 않았는데,

“믿을 수 없구만,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젊은 레이서가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침착함. 멀리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피트로 걸어오는 서준하가 보였다.

“마인드도 그렇고, 엄청난 프로인 건 확실하네.”

“맞아요, 큰 변수만 없으면, 내일 레이스도 폴투원 할지 모르죠, 하하.”

웃으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선 서준하. 말을 마친 헨리가 서준하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그나마 변수가 생긴다면, 비가 오는 걸 텐데...”

산악 지형에 위치한 스파 서킷. 일요일 레이스가 열리는 날 비가 올 확률이 60%가 넘을 정도다. 굳은 날씨로 매번 레이스를 뒤죽박죽 되곤 했는데,

“다행히 내일 비 예보는 없었어요.”

“좋아, 그것 참 다행이구만.”

걱정스런 표정을 짓던 윌리엄이 예보에 없다는 말에 세상 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전부 상관 없었다.

‘스파 프랑코샹만큼은 놓친 적 없어.’

‘스파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곳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인 서준하.

‘여기 5번째 스파 스페셜리스트는 나였으니까.’

세나, 슈마허, 데이먼 힐, 키미 그리고 서준하. 전설의 뒤를 잇는 역대 5번째 스파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레이서였다.

< 정말 죽여주는 엑셀 워크가 나왔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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