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77화 (77/200)

< 나도 여기서 F3를 타던 시절이 있었죠 >

전생부터 스텝업해온 스파 프랑코샹의 레퍼런스와 주행 경험들. 이를 불과 몇 번 안되는 제프의 레이스 경험으로 넘어서기란 절대 불가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2라운드 시작 전, 한 달의 준비기간 동안 서준하는 오 루즈만을 공략했다. 덕분에 오 루즈부터 케멜 스트레이트까지, 서킷의 1/3을 차지하는 구간을 그 어느 참가자보다 압도적인 스피드로 달릴 수 있었다.

[Final Lap]

파이널 랩의 마지막 오 루즈를 진입하는 서준하의 포뮬러카. 모든 갤러리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서준하! 다시 한 번 최고속으로 내리막을 빠져나갑니다!”

내리막이 끝나고 오르막이 치솟는 구간에 설치된 스피드 트랩(Speed Trap)

띠링.

“미쳤습니다! 순간 최고속이 272km/h를 넘어섰습니다. 예선보다 빨라요!”

“와! 차가 안 날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서준하만 다른 차를 탄 거 아닌가요?!”

뒤차의 압박에서 벗어난 서준하. 파이널 랩에서 미친 스피드를 뿜어내며 케멜스트레이트에 올랐다.

“못 따라가요. 못 따라가요. 오 루즈를 빠져나온 제프. 아, 확실히 속도가 느립니다.”

동일한 차량으로 같은 구간을 빠져나왔지만, 탈출 속도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되면 서준하가...!”

속도를 살려낸 서준하. 빠르게 이어지는 고속 코너들을 통과하는데,

“체커기를 눈앞에 둡니다!”

선두 차가 나타나는 코스 주변으로 갤러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2라운드! 이번에도 우승은 스메들리 포뮬러 팀의 서준하가 차지합니다아아!!!”

무사히 피니쉬라인을 밟은 서준하. 서킷 근처로 모여든 팀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부우우우웅.

위이이이잉.

계속해서 윙미러를 지켜보는 서준하. 그의 뒤로 제프 그리고 또 다른 레이서의 피니시를 보고는 더 크게 환호하는데,

“2위 프리마 팀의 제프! 그리고 이번 대회 첫 포디엄이죠. 강민수가 3위로 골인합니다!”

위닝랩을 시작한 코리안 레이서들. 서준하와 강민수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스파 프랑코샹을 활보했다.

***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서준하 선수가 F3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1라운드에 이은 연속 우승인데요. 현지 관심이 뜨겁습니다. 화면으로 보시죠.”

스포츠 뉴스 앵커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서준하의 우승 소식이 또 한 번 9시 뉴스 전파를 탔다.

“와아아아아!”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서준하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고, 이어지는 기자들과의 인터뷰.

“...다행히 날씨도 큰 문제 없었고, 차량의 문제도 없었기에  운 좋게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트 시절부터 고속 서킷을 선호하는 편이라, 개인적으로도 재밌고 자신감 넘치게 탈 수 있었고요. 응원해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이번에는 더 많은 한국 취재진이 프랑코샹을 찾은 듯 보였다.

“그리고 같은 대회 참가한 또 다른 코리안 레이서, 강민수 선수의 인터뷰를 보시겠습니다.”

서준하와 더불어 9시 뉴스에 오른 강민수의 포디엄 소식. 서준하와 함께 샴페인 세레머니를 마친 강민수가 기자들 앞에서 시상 소감을 말했다.

“이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띠융.

“하하, 서준하는 말도 잘해.”

두 선수의 뉴스 소식을 직접 접한 필립 황. TV를 끄며 연신 박수를 쳤다.

“경쟁 팀 모두 오래 전부터 우승자들을 배출해낸 강한 상대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2연속 우승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유건석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필립 황.

“유 실장님. 3차전은 독일에서 한다면서요? 우리도 한 번 보러가야 하지 않겠어요?”

필립의 말에 스케쥴을 살피는 유건석.

“맞습니다. 그런데 6월에는 일본 쪽 바이어들과 미팅이 많은 터라. 독일까지 움직이시는 건 좀 무리일 듯 한데요...”

아쉽다는 표정의 필립 황. 하지만,

“6월 초에 레이스를 하는 거죠? 그럼 그땐 일정 비워줘요. 이번엔 진짜 보러 가야겠네. 저렇게 잘 해주는데 에이전시 대표가 직접 격려 한 번 하러 가야지.”

“음... 그렇죠. 준비해 두겠습니다.”

“격려도 격려고. 실제로 서준하가 얼마나 잘 타는지 저도 좀 느껴보고 싶네요. 실제로 본 사람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라는데...”

모터레이싱을 잘 모르는 필립 황. 서준하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는 이 상황에서 그 현장감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아참 그리고 지난번에 대현 자동차에서 연락 온 거 어떻게 됐어요?”

중계 방송과 함께 1차전 서준하의 우승 소식이 전해지고 며칠 뒤,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로부터 컨택을 받았다.

“아직 별 다른 건 없습니다만, 서준하 선수한테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자세한 프로필을 요청하더군요.”

“프로필? 이야, 이러다 진짜 서준하가 대현차 광고 모델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카트 시절 서준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필립. 대현 자동차에 탄 서준하가 CF 광고를 촬영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

“F3 클래스랍니다. 이번 타임이 마지막 주행이라고 하네요, 빅토르.”

새 엔진의 성능 테스트를 위해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찾은 메르세데스 AMG의 파워유닛(엔진) 담당 팀. 서킷 위에 연습 주행 중인 F3 차량들을 바라봤다.

“오호, 지난번에 봤던 코리안 레이서군요.”

메르세데스 AMG F1의 R&D(연구개발) 엔지니어 책임자 빅토르. 지난번 여성 F1 레이서 앨린 울프와 함께 봤던 레이서가 눈앞을 달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라우다.”

정장 차림에 빨간 모자라는 기이한 옷차림. 팀 피트로 들어온 60대 노인을 향해 엔지니어들이 인사를 건넸다.

“허허, 여긴 올 때마다 기분이 이상한 곳이구만.”

1976년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에서 열린 F1 그랑프리 도중 화상과 함께 큰 부상을 입었던 니키 라우다. 이후 재기에 성공하며 F1 팬들 사이에서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은 F1 레전드 중 한 명이다.

“테스트까지 한 타임 남았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라우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훼엥.

때마침 홈 스트레치에 등장한 F3 차량들의 질주. 스피드가 더욱 빨라진 파란색 F3 차량이 그들 앞을 지나가는데,

“2리터 엔진 출력이 저렇게 좋았나?”

지루한 표정으로 서킷을 바라보던 라우다. 과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파란색 포뮬러카의 주행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흐르는 듯 수수하고 꾸밈없는 드라이빙이 인상적인데,

“그러니까요, 참 빠르네요. 저 선수는 앨린도 극찬했던 한국인 레이서였어요. 저도 우연히 레이스를 봤는데, 동급 선수들이랑 레벨이 다르더군요. 유망한 선수 같아요.”

“한국인 레이서라...”

서킷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별 말이 없는 라우다. 잠시 후, 다시 얘길 꺼내는데,

“빅토르, 자네 말대로 실력 있는 친구야. 근데 저런 식으로 계속 탔다간 탈선할 가능성이 있겠구만...”

“탈선이라면?”

라우다의 눈에 보이는 파란색 F3 차량의 미스. 수수께끼 같은 말에 퍼포먼스 엔지니어들이 고갤 갸우뚱 거렸다.

“차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저 친구, 8턴에서 자꾸 브레이크를 생략하고 있어. 여기가 뉘르부르크링인걸 잊었나 보지?”

자신에게 전신 3도 화상와 더불어 심각한 폐손상, 골절상 등 평생의 상처를 안겨줬던 뉘르부르크링. 라우다가 다소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F3 차량을 주시했다.

“날아간다... 그것 참 끔찍한 일인데요, 라우다.”

***

“1턴에서 너무 빠르게 돌 필요 없어. 여긴 속도보단 안정성이 더 중요해.”

연습 주행을 마치고 피트로 복귀한 서준하. 곧바로 레이스 엔지니어들과 함께 주행 피드백에 들어갔다.

“레이스 도중에 빠르게 돌아야 할 때도 있을 거야. 그땐 분명 오른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곧바로 오른쪽 연석을 타고 속도를 회복해서 안으로 들어와.”

영상과 주행 데이터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하며 서준하의 드라이빙을 코칭하는 롭. 주행 중 레이서가 놓쳤던 부분을 세심하게 일러줬다.

“자, 그리고 다음으로는...”

“롭, 잠시만...”

계속해서 롭이 피드백을 이어가려던 참에 한서윤이 서준하 곁으로 다가섰다.

“다들 저기 좀 봐 봐.”

손을 뻗어 피트 레인 입구에 북적이는 인파를 가리키는 한서윤.

“오늘 여기에 니키 라우다가 왔대.”

포뮬러 관계자에겐 익숙한 이름 니키 라우다. 불사조라는 별칭답게 불굴의 의지로 이름난 그의 활약은 젊은 레이서들에겐 엄청난 귀감을 심어줬다.

“잠깐 얼굴만 보고 오자. 누가 알아? 우리 팀 레이서들이랑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지?”

F3 레벨에선 좀처럼 쉽게 만날 수 없는 레전드. 그녀의 말에 서준하의 눈이 번뜩였다.

터벅터벅.

한서윤의 말과 동시에 재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서준하. 그의 이름을 들음과 동시에 아직 살아있는 라우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찰칵.

찰칵.

이미 소식을 듣고 몰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라우다.

“니키 라우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울컥해지기까지 하는데,

“어, 코리안 레이서군요. 아까 F3 차를 탔던, 맞죠?”

영광스럽게도 먼저 서준하에게 인사를 거네는 라우다.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허허, 나도 여기서 F3를 타던 시절이 있었죠. 만만한 곳이 아닌데, 주행 능력이 훌륭하더군요.”

인사를 나눈 두 사람.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며 서준하의 드라이빙을 칭찬했다.

“근데 있잖아요...”

서준하의 어깨에 손을 올린 라우다가 서킷 펜스 근처로 다가섰다.

“내가 꼭 말해주고 싶었던 게 있었어.”

무언가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 서준하도 당황하지 않고 그를 따라는데,

“8턴 이후부터는 상당히 리드미컬한 구간이야. 8턴에서는 절대 브레이크를 생략해선 안 돼요. 그리고...”

아까의 장면을 떠올리며 상세한 피드백을 이어가는 라우다.

“거긴 특히나 고저차가 심하다고, 빠른 돌파를 자제할 필요가 있어요. 뉘르부르크링에선 노브레이킹은 무리야. 잘못하다간 차가 바깥으로 밀려나지. 내가 그랬다니까, 하하. 근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죠?”

라우다는 후배 레이서들에게 ‘잘한다, 훌륭하다.’와 같은 공허한 응원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감사해요, 라우다. 이거 큰일 날뻔했는데요.”

역시 레전드였다. 팀 엔지니어들은 물론 경주차에 올라탄 서준하도 놓쳤던 부분을 캐치해내는 안목. 감사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준하, 다른 코스는 전부 좋았어요. F1까지 건투를 빌게요. 한 번 잘해봐요.”

특유의 표정과 함께 윙크를 날리고 사라진 라우다. 그의 조언을 되새기며 서준하가 생각에 잠기는데,

“어떻게 해... 준하 선수, 같이 사진을 못 찍었어...”

어쩌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상황. 멀어져가는 라우다를 바라보고는 한서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괜찮아요, 사진보다 더 엄청난 걸 얻은 것 같으니까.”

궁금하단 표정의 한서윤을 두고 서준하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청난 거?”

3차전 준비 기간동안 뉘르부르크링 정복에 나선 서준하. 우연한 레전드의 원포인트 레슨으로 자신의 취약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 나도 여기서 F3를 타던 시절이 있었죠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