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턴에 물기가 좀 있었나 봐요 >
백 스트레치 진입부터 슬립 스트림에 들어간 서준하. 그의 헬멧으로로 작은 돌조각들이 날아들었다.
파바바바바박.
타타타탕.
사실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는 건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다. 이런 돌조각부터 시작해 와류 현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공기가 소용돌이 치기까지. 자칫하면 급격하게 다운 포스가 줄어들어 순간적으로 차가 날아갈 수도 있다.
수우웅.
끼이이이익.
무엇보다 무서운 건 앞차가 예측 불가능한 급제동을 하는 경우다. 뒤따르던 차는 그 제동에 순식간에 저기압대로 빨려들어가는 드래프트(draft) 현상에 빠지고, 제동 능력을 상실하며 추돌까지 낼 수 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따라서 기민성과 더불어 앞차의 속도에 따른 거리 계산, 코스에 따른 진로 예측 능력 등 슬립 스트림을 제대로 이용하고 빠지기 위해선 레이서의 상당한 실력이 요구되는데, 쎄엥.
앞차의 제동을 타이밍을 정확히 예측한 서준하. 재빠르게 차선을 바꿔 슬립스트림 영역에서 벗어났다.
[Motor Park Team Germany]
연이어 속도를 높이며 질주하자, 눈앞으로 모터파크 팀의 포뮬러카가 보였다. 마지막 코너 전, 한 번 더 슬립스트림에 들어가기 위해 그를 추격하는데,
“야! 그냥 우측으로 비키라고 해!”
모터파크 팀의 피트 월. 9턴을 향해 달려오는 스메들리 차량을 발견한 니클라스 감독이 엔지니어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
다음 바퀴에서 마지막 플라잉 랩을 달리려고 했던 마르셀. 갑작스럽게 페이스를 낮추라고 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저것마저 주면 안 돼!”
현재 모터파크의 또 다른 레이서 파비앙이 잠정 2위에 랭크한 상황. 서준하가 한 번 더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는 걸 허용해서는 안 됐다.
“마이크 이리줘바!”
당황한 레이스 엔지니어들을 뒤로 하고 니클라스가 직접 메가폰을 집어들었다.
“마르셀 우츠윽...!!!”
무전을 날림과 동시에 그의 뒤로 등장한 스메들리 레이서.
“...!!!”
부딪히기 일보 직전, 뒤에 붙은 차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9턴을 앞질렀다.
“...빨라!”
“망했다...!”
백스트레치의 끝에서 벌어진 추월. 연신 최고속으로 질주하는 서준하의 포뮬러 카에 중계진이 소리쳤다.
“총 네 번의 슬립스트림에 성공하며 스피드를 살린 서준하! 대단합니다!”
남다른 스피드로 마지막 코너를 탈출하며 단독 샷에 잡히는데,
“이번 랩, 거의 날다시피 달렸던 서준하인데요오오오!”
“자, 기록 볼까요!!!”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며 모두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하는데,
[3R. Qualifying Record]
[rank_name/ Best lap/ lap]
1.서준하/ 21초 009/ lap 11
2.제프/ 21초 336/ lap 7
3.파비앙/ 22초 241/ lap 4
.
.
기록과 동시에 스메들리 피트로 향한 중계 카메라. 미캐닉과 지인들이 방방 뛰는 모습이 등장했다.
“서준하 잠정 폴입니다! 21초 009! 다시 한 번 제프 위에 올라섭니다!”
이어서 다시 서준하를 잡기 위해 홈 스트레치로 화면이 넘어갔다. 그런데,
“엥?! 또?!”
황금색 포뮬러카의 뒤를 노리는 스메들리 카가 포착됐다.
“서준하! 이건 연료를 다 털어낼 때까지 달리겠다는 거죠!!!”
끝난 줄 알았던 조금 전의 폴 랩(pole lap) 서준하가 다시 플라잉 랩을 시작했다.
***
“트래픽이 괜찮아. 민수도 남은 세 바퀴에 최대한 끌어올리라고 전하게.”
항상 퀄리파잉 마지막에 기록을 끌어올린 강민수. 윌리엄이 초조한 눈으로 상황판을 바라봤다.
“페트로와 제이크도 플라잉 랩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1위로 랭크한 서준하의 소식에 기뻐하던 스메들리 피트 월. 퀄리파잉 종반, 우승 경쟁자들의 어택 소식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까지 모르겠구만, 허허.”
랩타임이 빨라질 수밖에 없는 퀄리파잉 종반. 후반을 노린 차량과 더불어 순위권에서 밀려난 참가자들 대부분이 어택에 들어간 듯 한데,
“빠르다!”
스메들리 피트 앞을 지나간 프리마와 콜린의 포뮬러카들. 서행하는 차들과 확연하게 다른 배기음이 엔지니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4랩 페트로 피터발디. 3위에 랭크했습니다!”
“...이전 랩과의 차이는?”
“대략 0.25초씩 당기고 있습니다. 한 바퀴 더 달려요. 기세가 좋습니다.”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는 경쟁자들. 피트월 엔지니어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윌리엄에게 보고했다.
“제이크 러셀. 페트로의 기록을 뒤집고, 다시 3위에 랭크했습니다, 윌리엄.”
11,12랩 총 두 번의 어택을 마치고 쿨링에 들어간 서준하. 퀄리파잉 종료 직전, 스메들리 팀원들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러다 따라잡히는 거 아니야?!”
중계 스크린을 뚫어지라 보는 스메들리 미캐닉들. 페트로와 제이크 두 선수의 독주가 끊이지 않았다. 종료 4분 전, 두세 바퀴 기회가 더 남은 가운데,
“...!!!”
중계 스크린을 보던 스메들리 팀원들. 순간 등장한 화면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민수야?!”
***
“자! 종료 4분 전! 페트로와 제이크가 막판 핫 랩을 달리고...!!!”
끼이이이익.
말을 멈춘 중계진. 굉장한 스키드음을 내는 경주차 한 대로 시선이 향하는데,
“아! 스메들리 팀의 강민수가 미끄러졌습니다!”
1턴에서 서킷 바깥쪽으로 밀려난 파란색 포뮬러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래블 베드(자갈밭)로 처박고 말았다.
“이거 아쉽습니다. 막판 순위권 진입을 노리던 강민수 선수였는데요.”
“엥? 근데 아직 강민수 선수 움직일 수 있나 본데요?!”
아쉬움을 토로하는 해설자를 두고, 다시 스크린을 살피던 케스터.
“강민수!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군요.”
런 오프(run-off 안전을 위해 트랙 주변에 배치된 넓은 공간) 덕분에 방호벽에 부딪히지 않은 강민수. 후진하며 차의 머리를 다시 돌려 놓는데 성공했다.
“그렇죠! 아직 한 바퀴는 더 해볼 수 있어요! 다시 달리는 스메들리의 강민수!”
“음, 강민수의 의도적인 경기 지연은 아니었던 걸로 보이고요. 과연 마지막은 어떻게 될지...!”
강민수의 스핀 장면을 리플레이로 확인하는 해설진. 고의성은 보이지 않았다.
한편, 자갈밭을 구르며 용케 빠져나온 강민수. 덕분에 서킷 주위로 돌멩이들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황색기! 황색기가 떴어요! 이렇게 되면...”
강민수가 1턴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마샬들이 옐로우 플래그를 흔들었다. 황색기 구간에선 반드시 속도를 늦춰야만 하는데,
“아! 제이크가 들어오는데요!”
무서운 속도로 홈스트레치를 빠져나온 제이크 러셀이 1턴 앞으로 다가섰다.
“여기서 속도를 줄이는 건 제이크에게 치명타죠. 아, 망했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끌 때가 아닌데요!”
1턴 초입에서 급격하게 속도를 줄인 제이크. 느린 속도로 돌멩이가 놓인 좌측면을 피해나갔다.
[3R Qualifying Time]
[0분 : 45초]
“남은 시간 45초! 제이크는 다시 달리고요.”
“자, 그러면 페트로! 먼저 지나간 페트로를 봐야죠!”
“과연, 페트로가 1,2위를 넘어설 기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45초. 서킷의 절반을 넘지 못하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인 가운데, 백 스트레치에 진입한 페트로의 차량으로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다.
“8턴! 빠르게 진입하는 페트로! 프리마 팀 긴장된 순간입니다!”
[3R Qualifying Time]
[0분 : 15초]
분리된 화면으로 등장한 참가팀의 피트. 모터파크를 시작으로 프리마 팀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스메들리 팀이 화면에 등장했다.
“...마지막 8초, 7초...!!!”
1턴 황색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페트로. 트래픽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랩 클린하게 주행에 성공했었는데,
“거의 다 왔어요오오오!!!”
“기록 볼까요오오오?!”
갤러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스타트 라인을 바라보는데,
[3R Qualifying Time]
[Race Over]
“아아아아아!!!”
“설마 인정 안 됐나요?!”
페트로의 마지막 랩타임이 측정되지 않자, 소리를 지르는 중계진.
“...기록이 없습니다. 페트로 이번 랩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 한 듯 보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머릴 감싸쥐는 페트로를 클로즈업하던 카메라. 곧바로 화면이 넘어가는데,
“서준하가 3라운드 톱 타임을 지켜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마구 흔드는 서준하. 서킷이 떠나갈 듯 포효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
“진짜... 마지막까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준하야, 12랩 막판 엑셀 워크 죽여줬다. 우린 네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퀄리파잉이 끝나고 피트로 복귀한 서준하. 그의 등장에 팀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3연속 폴 포지션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서준하 정말 작정했구나?”
F3 시즌 데뷔전에서 3연속 폴포지션이라는 놀라운 기록. 헨리의 칭찬에 서준하가 웃음으로 답했다.
이어서 스메들리의 또 다른 레이서가 들어서는데,
“민수, 마지막이 아쉬웠네. 그래도 연습 주행보다 기록이 잘 나왔으니 다행이야.”
“그래, 마지막 집중력 훌륭했다, 민수야.”
윌리엄을 시작으로 강민수를 격려하는 미캐닉들. 예선 결과 랩타임 페이퍼를 받아든 강민수가 아쉽다며 고갤 흔들었다.
“1턴에 물기가 좀 있었나 봐요. 순간적으로 차가 돌아가 버리더라고. 오일 기(Oil flag)를 흔들어 줘야 하는 거... 억!”
불쑥 스메들리 피트로 들어온 낯선 남자.
“XXX야!!! 뒤지고 싶냐!!!”
강민수를 향해 달려들어 멱살을 쥐어잡은 남자.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듯한 제이크 러셀이었다.
“이 XXX!!! 일부러 그랬지, XXX야!!!”
강민수가 막판 자신의 랩타임을 막기 위해 수를 썼다고 생각하는 제이크. 1위 기록을 만들어야 했던 그에겐 강민수의 행동에 고의성이 있어 보였다.
결국 멱살을 잡은 한 손을 놓고는 주먹으로 내리치려는데,
“...!!!”
재빠르게 두 사람 곁으로 달려든 서준하. 주먹이 날아들기 전 재빠르게 제이크를 밀어냈다.
“이거 놔 XX!!!”
“그만해, 제이크! 돌아가자!”
제이크를 붙잡은 스메들리 미캐닉들. 뒤늦게 달려온 콜린 팀 크루들이 제이크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XXX!!!”
팀원들의 만류로 피트를 빠져나가는 제이크. 그의 입을 가로막는 손을 밀쳐내고는 서준하를 향해 욕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
그에 반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는 서준하. 콜린 팀에게 붙들려간 제이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잘 참았다. 준하야.”
얼굴이 붉어진 윌리엄. 서준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가까이 다가섰다.
“어차피 컨트롤 라인(스튜어드와 오피셜의 대기 장소)으로 불려갈 거야. 이미 다 카메라에 잡혔을 거다.”
피트 주변 중계 카메라를 가리키는 윌리엄. 서준하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진짜 꼴사납네.’
처음 대회 시작 전, 자신의 앞에서 실실 웃던 제이크의 얼굴이 떠올랐다.
‘쟤는 진짜 한 번 걸려야 하는데.’
제이크의 난동을 무시로 일관한 서준하. 한 번 더 까불면 레이스에서 담궈버리겠다고 다짐했다.
< 1턴에 물기가 좀 있었나 봐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