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99화 (99/200)

< 서준하 선수는 도대체 언제 쉬냐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

“선두 차량 스타트라인 통과. 세바퀴 남았습니다, 감독님.”

강민수를 쫓기 위해 필사적인 페트로의 주행을 지켜보는 조르조. 시즌 초반 포인트 권에도 들지 못 했던 풋내기 레이서 강민수가 이제는 프리마 팀보다 앞에서 달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페트로의 랩타임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2위와의 격차가 0.15초 늘었습니다.”

포뮬러 교육의 세계 최고라고 여겨지는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의 우수한 교육생들보다 기량이 뛰어난 스메들리 레이서들. 실력 차이가 곧 차량 간 격차로 들어났다.

“스메들리 포뮬러...”

마지막 8라운드. 스메들리 팀은 어떤 팀인가, 어떤 교육을 하는가 등등 아직 레이스가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조르조의 머릿속은 온통 이런 질문들로 가득했다. 서준하라는 레이서를 발견한 안목은 물론, 또 다른 레이서의 기량을 끌어올린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서준하, 20랩에서 랩 레코드(Lap Record) 달성했습니다...”

페스티스트랩을 연신 빠르게 달리던 서준하가 결국 마지막 레이스에서조차 기록을 세웠다. F3와 GP2 시리즈를 수십 년 동안 치러온 조르조였지만, 매 레이스 기록을 내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린 F3 선수들에게 F1 GP가 열리는 서킷은 생소한 환경이었고, 기록을 세운 대다수는 시즌을 몇 번 거친 레귤러들이었다.

“마치 포뮬러 카를 고카트 몰듯이 타는구만...”

이번 시즌만 하더라도 드라이빙 테크닉이 우수한 레이서는 넘쳐난다. 하지만 서준하는 그 외 다른 능력도 뛰어났다. 끝까지 집중력을 밀어붙이는 끈기하며, 돌발상황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침착함까지. 그의 레이싱은 F1 레이서 아니, 정상에 오른 월드 챔피언 레이서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파이널 랩까지 한 바퀴! 페트로와 제프 둘 다 21랩 스타트 했습니다!”

하지만 스메들리 팀과 서준하에 대한 감탄은 조르조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타이어 체인지 이후 필사적으로 달리는 제프. 앞으로 나가기 위해 좀 더 과감하게 악셀을 밟았고, 날카롭게 코너링했지만, 서준하는 보이지 않았다.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이어플러그와 엔진의 굉음에도 갤러리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마치 제프가 아주 어릴 적 처음 F1 서킷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

‘슈미! 슈미!! 슈미!!!’

2004년 마누엘 슈마허가 월드 챔피언 7관왕을 달성하며, 커리어의 최고 절정을 달릴 때 그의 아들은 들었다. 수십만 관중이 외치는 아버지의 이름을. 곧이어 복잡한 감정이 밀려옴과 동시에 제프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토드롬 스타디움의 첫 섹터로 진입하자, 갤러리 모두 서준하의 이름이 외칩니다!!!”

그의 등장에 가만히 앉은 구경만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스피드에 목말랐던 것처럼 한 턴의 코너링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서준하를 맞이했다.

***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마지막 턴을 빠져나온 서준하. 롭이 무전으로 핏 보드(Pit Board)를 확인하라고 알려왔다.

[스메들리 포뮬러 Board]

[Junha Seo]

[P1(현재 순위) / L1(남은 랩)]

[////]

[Go Macau! Go F1!]

스타트라인 부근 참가 레이서들에게 정보를 전달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팻말, 핏 보드. 태극기가 부착된 핏 보드에는 스메들리 팀이 서준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스메들리 팀 그리고 호켄하임링은 지금 축제 분위기입니다...!”

서준하가 파이널 랩을 시작함과 동시에 짝, 짝, 짝, 한 박자씩 끊어 박수를 보내는 갤러리들. 스메들리 팀의 핏 보드가 스크린에 등장하자, 소리는 더욱 커졌다.

“2코너 커브를 빠져나간 서준하! 마지막까지 타이트한 드라이빙을 선보이면서 호켄하임링 최고속 구간으로 들어갑니다!”

“파이널 랩 타이어를 완전히 오버 히트할 생각으로 보여요! 훌륭한 팬 서비스입니다!”

피니쉬를 앞두고 차량이 멈추는 경우가 있지만, 갤러리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이 서준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7번의 레이스에서 서준하가 직접 증명했다. 그의 차는 멈춘 적이 없었고, 매 레이스 파이널 랩의 끝에서 체커기를 받아냈다. 갤러리의 머릿속엔 리타이어 시나리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 팬들과 스메들리 팀원들이 스타트라인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아!”

“아! 저도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드는군요. 마치 서준하의 승리가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승리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듯합니다. 기분이 참 이상한데요...!”

2위 강민수와도 많이 벌어진 격차. 서준하가 점점 피니시 라인에 가까워지자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니쉬!!!”

서준하가 체커깃발을 맞으며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감속하며 서킷 우측 가까이로 붙은 서준하. 그를 향해 손을 뻗은 팬과 팀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어서 들어오는 강민수! 마지막 레이스에서 86포인트를 획득한 스메들리가 팀 챔피언을 달성합니다아아아!!!”

다시 한 번  선보이게 된 코리안 레이서들의 위닝랩.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축하와 함성을 온몸으로 즐기며 검차대로 향했다.

“자, 그리고 FIA 포뮬러3! 2015 유로피언 챔피언십의 드라이버 챔피언은 바로 서준하입니다아아아아!!!”

불끈 쥔 두 주먹을 강하게 흔들며 환호하는 서준하.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고서야 서준하가 짊어진 레이스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Driver Champion: Smedley. Junha Seo]

검차대에 차를 세우자, 그리드 걸이 퍼스트 랭크가 적힌 푯말을 그의 앞에 세웠다. 그러자 곧이어 어마어마한 플래시와 함께 그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차량에서 내린 서준하가 자신의 포뮬러카 프론트 바디 위로 올라섰다. 그의 처음 보는 행동에 환호와 플래시 세례는 더욱 거세졌다.

“서준하가 시즌 처음 포뮬러카 위에서 세러머니를 펼칩니다!!”

많은 선수들이 레이스 우승에서 보이는 세레머니지만, 서준하는 이번 시즌 레이스 우승 직후 단 한차례도 이런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대회 챔피언 달성에서만 보여주고 싶었던, 전생부터 이어왔던 서준하만의 신념. 차 위에 올라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포효했다.

‘이젠 마카오야!!!’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F3을 정복한 서준하. 자신의 다음 목표를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

[맥라렌 F1 팀(McLaren Formula One Team)]

페라리에 이어 현재 포뮬러 원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팀이다. 수많은 월드 챔피언을 배출해낸 명문 팀으로 현재는 중위권에 랭크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아부다비에 가기 전 잠시 마카오에 들렸다가 오겠네.”

맥라렌 팀의 CEO 및 회장직을 맡고 있는 로널드 데니스. 아직 11월 말 F1 그랑프리 하나를 남겨둔 상황에서 팀 총감독 마이크 윗마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네? 벌써 겨울 여행을 가시는 거예요...?”

“아니, 마카오 GP에 괜찮은 선수가 하나 나온다고 하는구만.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 아메리카 쪽 레이서들 보러 가시는 겁니까?”

1980년대부터 맥라렌 팀을 이끌어온 로널드 데니스. 팀의 총감독보다 새로운 드라이버 고용에 있어 더 높은 결정권을 갖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 시즌이 지나가기 전 직접 보고 싶었던 선수가 있었으니,

“아니, F3 유로피언 챔피언이 거길 나간다고 하는구만.”

유럽 바깥의 뛰어난 선수를 보러가는 게 아니었다. F1 시즌을 소화하느라 이름만 들었던 F3 유러피언 챔피언. 다음 시즌 맥라렌 F1 팀의 테스트 드라이버로서 낙점해 놓은 서준하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F1 시즌 도중 마카오 행을 선택했다.

“아부다비 GP 일주일 전에 마카오 레이스가 있어. 끝나는대로 야스 마리나(Yas Marina Circuit)로 가겠네.”

“그, 그러시죠...”

시즌 중 빠듯한 일정이라도 무리하게 움직이겠다는 로널드. 그의 계획에 마이크 감독은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어차피 F3 레벨이라고 해봤자, 선수들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고, 제아무리 조명받는 F3 챔피언이라도 막상 F1에 올라오면 실력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허나 지금 로널드는 마치 커다란 기회를 놓칠까봐 불안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마카오에 가는 게 새 엔진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할 지도 모르네.”

마이크 감독의 표정을 읽어낸 로널드. 이번 일의 중요성을 새 시즌 차량 개발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친군 꼭 만나고 싶네...”

맥라렌뿐만이 아니었다. 마카오 GP 사상 최고의 사태가 벌어질 예정. 서준하의 전승 우승 소식을 전해들은 F1 관계자들이 불이나케 마카오 행 일정을 세우고 있었다.

***

“레이디스 앤 젠틀맨, 우리 비행기는 방금 마카오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F3 유로피언 대회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곧바로 마카오로 떠난 서준하.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이 그의 볼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준하 선수! 잠깐 얘기 좀 나누고 가시죠! 한 말씀만 해주세요!”

짐을 찾고는 팀원들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가는 서준하. 그의 일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부터 공항 출구에는 많은 취재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 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레이스 중이신데, 서준하 선수는 도대체 언제 쉬냐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레이스를 끝으로 다른 팀 선수들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걸로 아는데, 너무 일찍 오신 거 아닙니까?”

시즌 중간 중간에도 다른 팀들보다 훨씬 많은 연습 주행을 소화한 서준하. 마카오 GP까지 아직 많이 남은 상황에 벌써 공항에 나타난 모습이 놀랍다는 반응들이었다.

“오래전 인터뷰에서도 밝혔다시피, 마카오 GP를 2015년 마지막 레이스로 생각해왔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카오를 일찍 찾은 것도 주행 감각을 최상으로 끝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지 않는 게 무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다시 사는 서준하에겐 마카오 GP는 그리 만만하게 볼 레이스가 아니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마카오 레이스. 어느 누구도 승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GP로 이름났기에 준비는 확실히 해둬야했다.

“좋습니다, 서준하 선수! 마지막으로 마카오 GP를 앞둔 각오 한 말씀만 해주시죠!”

이런저런 질문을 끝으로 마지막 질문을 건네는 기자. 마지막과 각오라는 말에 서준하가 카메라를 바라보는데,

“마카오 그랑프리 우승은 물론, 이 기세로 다음 시즌 F1 무대까지 휩쓸겠습니다!”

“에, 에프원까지요?!”

각 권역별 F3 챔피언들은 물론, 수십 명의 포뮬러 원 드라이버들에게도 도전장을 내민 순간이었다.

< 서준하 선수는 도대체 언제 쉬냐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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