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1화 (101/200)

< 이제 F1도 점차 어린 레이서들의 무대로 변하게 될 거야 >

“62번째 마카오 GP 퀄리파잉 1세션의 처음 한 바퀴를 돈 선수는 바로 한국의 서준하입니다!”

1953년 이후 62년 동안 열려왔던 마카오 그랑프리. 또 다시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을 서준하가 질주하고 있었고, 스메들리 팀 마크 옆으로 큼지막한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박혀있었다.

“대~한민국!!!”

“와! 서준하아아아!!!”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모터스포츠 강국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FIA F3 월드컵. 딱히 응원하는 선수가 없어도 흥미롭게 보던 이 대회에 자국 선수가 출전하자,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의 가슴에 불길이 일었다.

“등장부터 스피드를 높였던 서준하가 이제 두 번째 어택을 시작합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제 슬슬 나오려고 하는데요. 서준하는 이미 워밍업을 마친 것 같습니다. 소문대로 초반부터 그의 선전이 기대 되는군요!”

초반부터 마카오 관중들의 이목을 확 사로잡은 서준하의 드라이빙. F3 유로피언 챔피언십이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하는 대회였다면, 이번 마카오 월드컵은 세계 각국의 모터스포츠 팬들이 관람하는 대회다. 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다양한 국적의 갤러리가 이곳에 모였다.

“4턴 직후 샌프란시스코 힐(San Fransisco Hill)에 오른 서준하! 속도는 이미 230km/h! 순식간에 시프트업하며 계속 스피드를 높입니다!”

1~3턴을 빠르게 돌파하며 구불구불한 코스로 들어온 서준하. 그의 드라이빙을 처음 본 중계진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좁아터진 시가지 코스로 서준하가 지나가자 포뮬러의 굉음이 칸막이 안을 가득 채우는데,

“다시 한 번 5단! 속도가 안 떨어지는데요?!”

“실제로 보니 놀랍습니다! 이래서 속도광이라는 별명이 붙었군요...!”

마카오 GP의 퀄리파잉은 초반에 결코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서킷의 난이도와 길이, 타이어의 온도나 선수의 적응 문제를 고려했을 땐 어느 정도 주행 후 공략하는 게 낫기 때문.

하지만 아예 불가능하거나 금지된 건 아니다. 준비된 레이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서준하는 이미 오전 연습 주행에서 누구보다 선명한 기아 서킷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놨다. 그리고,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 서준하 선수가 초반 공략에 성공한 게 서너 차례 있었다고 해요. 그때마다 모두 성공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자신 있어 보이는군요...!”

전생에선 초반 공략에 익숙하지 않았다. 경험도 경험이거니와 아무래도 공략 실패에 따른 엄청난 부담감 무엇보다, 성공 후에도 다른 경쟁자들의 기록에 불안을 떨어야하는 기다림이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초반 공략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로 초반 어택은 서준하가 즐겨하는 전략이 돼버렸다.

“웜업 랩을 도는 차량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서준하! 멜코 헤어핀을 빠져나오며 다시 직선 주로에 들어갑니다!”

상대보다 먼저 기록을 내기 위해 달릴 땐, 실수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하며, 기록을 내고 난 후에는 그 기록이 뒤집힐까 불안에 떨지 않아야 한다. 퀄리파잉도 결국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21턴 Fishermens Bend를 빠져나온 서준하! 다시 또 최고속을 찍으며 마지막 턴으로 들어갑니다!”

중계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빠르게 코너링에 들어가는 서준하. 서킷의 최고 포토존 앞으로 그가 등장하자, 플래시 세례에 차량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띠링.

트랙 바깥쪽으로 거의 붙다시피 코너를 탈출한 서준하가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2분 19초 343!!!”

“믿을 수 없습니다! 지난 시즌 트랙 레코드보다 4초나 빠른 기록이에요!!!”

지난 시즌 보다 엔진 성능이 한층 좋아졌지만, 4초라는 차이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시작 이후 단 두 랩만을 돈 차량에게서 나온 기록에 중계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유로피언 챔피언 레이서가 마카오의 첫 잠정 폴을 만들어냈습니다!”

***

“아! 크러쉬! 또 크러쉬가 났습니다!”

안 그래도 사고가 빈번한 마카오에 두 차례 연속 크러쉬가 났다. 일찍부터 등장한 폴 기록에 많은 경쟁자들이 당황한 듯 보였는데,

“X신들...”

서킷으로 등장한 SC차량. 코스 구석구석 황색기를 흔드는 마샬의 모습이 엔도 카무이의 눈에 들어왔다. 자빠져버린 중도 탈락자들 덕분에 주어진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갔기에 욕이 절로 나왔다.

-이번 랩 스타트라인까지 느리게 복귀. SC 상황이 끝나는면 곧바로 어택에 들어간다.

“야쓰.”

엔지니어의 말에 자신 있게 답하는 엔도. 아시아의 유일한 F1 레이서 고바야스 카무이의 조카로 현재 혼다(Honda)가 스폰서로 있는 일본의 독보적인 원탑 유망주 레이서다. 다른 경쟁자들이 조바심으로 가득찬 질주를 시작했을 때 엔도는 기다렸다. 그리고,

-엔도, 출발해라

엔도 역시 불안했지만 그 불안을 직시했고, 긍정적인 결과만을 떠올리며 묵묵히 자신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중후반 어택 시기에 맞게 철저하게 랩 수를 계산하던 그때 마침 어택 오더가 떨어졌다.

-3턴 탈출 직후 차량 두 대 서행 중. 주의할 것

일본 팬들이 환호하는 모습과 함께 트랙 구석구석 지게차(Forklift)가 보였다. 사고 차량을 끌어올리는 지게차. 그것은 자신이 아닌 뒤따라오는 느릿느릿한 X신들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휘리리릭.

잠시 후, 엔도의 윙미러로 멈춰선 차량 근처로 지게차가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고, 그는 미소 지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덕분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엔도는 더욱 과감하게 드라이빙했다. 지난 20여분 동안 꾹 참아왔던 질주 본능을 마구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 랩타임 좋다! 끝까지 집중해!

기아는 총 길이가 6.2km가 넘는 긴 코스로, 잘 달리던 차량들도 집중력을 끝까지 발휘하지 못 해 사고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스의 끝이 다가오자 엔도의 엔지니어가 목소리를 높이는데,

‘...!!!’

마지막 코너 탈출 이후 재가속 타이밍을 굉장히 빠르게 가져가며 홈스트레치에 들어온 엔도. 트랙 우측으로 서행하는 코리안 레이서가 보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넌 이제 끝이야! 이 새끼야!!!’

악셀을 끝까지 밝으며 스타트라인으로 향하는 엔도가 서준하를 향해 고갤 돌렸다. 그리고,

띠링.

-와아아아아!!!

엔도의 랩타임이 측정되자, 무전으로 환호하는 A-Max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엔도 역시 엄청난 기대감에 휩싸였는데,

-2분 22초 888!!!

“뭐...?!”

랩타임을 전해들은 엔도가 실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기록을 재차 물었다.

-세컨드 톱이라고, 엔도! 세컨드 톱!!! 하하!

철저히 계산했던 어택 타이밍과 완벽한 코스 공략으로 성공했던 엔도의 이번 랩. 22초대라는 기록이 놀라웠지만, 그건 폴 기록이 아니었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듯한데,

“...고작 22초...”

-19초대를 넘는 건... 쉽지 않아... 저 녀석은 괴물이다, 괴물...!

말문이 막혀버린 엔도 뒤로 나타난 서준하. 엔도의 윙미러로 20초의 벽을 넘어선 괴물 레이서가 보였다.

***

“E stato bello venire qui!”

메인 그랜드스탠드의 VVIP  관람석.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흡족한 표정으로 퀄리파잉 1차전을 바라봤다.

“뭐라고 하신 건가...?”

페라리 F1 팀의 스카웃 책임자 로만 메이어.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옆에선 수행원에게 그 내용을 묻는데,

“어, 들으라고 한 말 아니야. 여기 오길 잘했다고...! 그냥 감탄사네, 하하하.”

바쁜 일정을 쪼개 먼 마카오까지 찾았다. 눈여겨 봤던 선수의 드라이빙에 만족스럽자 마르치오네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까 저쪽에서 로널드를 본 것 같은데, 어째 다들 마지막 아부다비 GP는 눈에 안 들어오나 보지?”

퀄리파잉 시작 당시 맥라렌 F1 팀 관계자들의 모습을 봤던 마르치오네. 눈에 익은 사람들을 마카오에서 보게 됐다. 아직 올해 마지막 에프원 GP를 남겨둔 시점이라 그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회장님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평소 선수 영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마르치오네가 직접 마카오를 찾은 상황. 퀄리파잉 시작 이후 줄곧 한 선수에게만 향한 회장의 시선을 포착한 로만이 그 내용을 묻는데,

“스토펠 밴돔을 봤을 때보다 더 좋은 예감이 드는구만...”

2015 GP2 시리즈 챔피언 레이서 스토펠 밴돔. 다음 시즌 페라리는 물론 여러 F1팀 들의 영입 대상 1호 선수다. 그런 그보다 잠재성을 높이 평가하는 레이서가 있었으니,

“외모도 훌륭하고, 한국이라는 배경도 매력적이네. 특히나 F3 클래스에서 저런 팬덤은 흔치 않은데 말이야...!”

일찍이 잠정 폴 기록을 세우고 기아 서킷을 서행 중인 서준하. 마치 순회 공연하는 인기 가수의 모습처럼 그가 지나치는 곳곳에서 근처 갤러리들이 큰 환호를 보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GP2를 거친 선수와 F3만 겪어본 선수는 아무래도 차이가 좀 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나이도 어리고...”

로만이 페라리와 연결해준 선수가 스토펠이라 이런 말을 던진 게 아니다. 단지 퀄리파잉 한 번만 보고도 이번 시즌 GP2 챔피언보다 높은 평가를 내리는 듯한 회장의 판단이 조금 의아했다.

“어차피 GP2도 F1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엔 테스트를 해봐야 알겠지만, 나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네.”

F1를 제외한 다른 레이싱 카테고리의 최고 레벨이 GP2라고 하지만, 결국엔 GP2도 F1이 아니다. F1보다 차량 성능이 떨어지고, 경쟁하는 선수들도 정상급은 아니다. 회장의 말에 로만이 고갤 끄덕이고,

“게다가 막누스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F1도 점차 어린 레이서들의 무대로 변하게 될 거야.”

만 17세의 나이로 이번 시즌 F1에 데뷔하며 시즌 12위 달성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앞둔 F1 레이서, 막누스 페르스타펜. 그 역시 F3 무대를 마치고 곧바로 F1에 데뷔한 가장 어린 신예다. 그밖에도 여러 F1 팀들이 젊고 어린 레이서들을 그랑프리 무대에 올리는 추세.

“아무튼 계속 지켜보자고, 이건 나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어린 한국 선수를 F1 최고의 명문팀 페라리의 콕핏에 앉히는 건 엄청난 이변이다. 아직은 검증이 필요한 시점에 회장이 말을 아끼는데,

“엥?!”

“결국엔 내 예감이 틀릴 것 같지 않아. 저것 좀 보게. 하하”

때마침 그의 앞으로 다시 스피드를 높이기 시작하는 서준하가 지나가자, 손을 뻗어 그를 가리켰다. 그리고,

찰칵.

찰칵.

그와 동시에 서준하의 포뮬러카를 가리키는 마르치오네의 모습이 포뮬러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기고 말았다.

< 이제 F1도 점차 어린 레이서들의 무대로 변하게 될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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