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2화 (102/200)

< 이번 시즌을 끝으로 준하를 보내줘야 할지도 모르겠구만 >

“수고했다, 준하야.”

검차와 메디컬 체크를 받고 피트로 복귀한 서준하. 스메들리 팀원들과 윌리엄이 기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우리가 처음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연습 주행 때보다 노면이 미끄럽다는 소릴 들었거든.”

“진짜 몇 번 흔들릴 땐 토할 뻔했어.”

실제 서킷 안을 달리는 건 레이서일지라도, 팀원들의 마음 만큼은 모두 서준하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노면의 불안한 컨디션이 마치 자신의 앞에 놓인 장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메들리 엔지니어들은 가슴을 졸였었다.

“여기서도 먹힐 줄은 몰랐어. 이젠 더 이상 유로피언 클래스가 아니야. 이젠 월드 클래스다, 월드 클래스, 하하하.”

공식적으로 F3 월드 챔피언을 뽑는 대회는 없지만, 이 마카오 GP는 전 세계 권역별 F3 챔피언과 우수 드라이버들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로, 사실상 F3의 왕중왕전이다. 퀄리파잉 첫날 서준하가 1위에 랭크하며 팀은 물론 수많은 포뮬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헐! 대박! 대박!”

팀원들과 하이파이브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서준하. 곁에선 휴대폰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서윤이 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큰 사건이 터진 모양.

“준하 선수! 이거 봐 봐!”

마카오 GP 관람석으로 보이는 배경으로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년의 남성들. 그 가운데 한 남성이 서킷을 달리는 포뮬러카 한 대를 가리키는 장면이 절묘하게 포착됐다.

“봐! No. 5!!! 준하 선수 번호잖아! 대박! 대박!”

사진 속 남성들은 페라리 팀 관계자들이었다. 서준하의 눈에도 익숙한 얼굴들. 특히나 오전에 봤던 마르치오네가 자신의 차량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페라리 팀 CEO?!”

중계방송에도 이들의 모습이 몇 번 등장했지만, 스메들리 팀원 모두 서준하의 주행을 살피느라 정신 없었다. 모터스포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수장이 서준하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한 보이는 사진은 팀원 전체를 커다란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F1 관계자들이 많이 온다고 했었는데, 정말 이렇게 첫날부터 보스급이 등장할 줄 누가 알았겠어. 정말 엄청난 거야, 이건...!”

한서윤은 물론 팀원들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 그 모습에 윌리엄이 한마디 던지는데,

“허허, 왜 믿을 수 없어. F3을 휩쓰는 레이서가 나타났는데. 그럴 만도 하지, 안 그래?”

매 시즌 F1 팀들은 새로운 드라이버를 물색한다. 특히나 2009년 이후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을 달성하지 못한 페라리 팀은 실력 있고 젊은 레이서를 찾는 일에 혈안이 돼있었다.

‘페라리가 지켜보고 있단 말이지?’

F1 무대를 향한 여정. 카트 시절엔 한걸음씩 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F3의 끝자락을 달리는 지금 은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탄 듯 빠르게 이동 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성적과 함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한 이 사진 한 장은 서준하의 기분을 더 없이 좋게 만들었다.

‘페라리... 다음 시즌 F1 이적 시장 최고의 이변을 만들겠어.’

저 사진 한 장이 페라리가 서준하를 영입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팀은 분명 서준하를 두고 저울질할 거다. 이변이 탄생하려면 보다 강력한 이유가 필요하다. 마카오 GP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줘야 한다.

***

“마르치오네 회장이 마카오에 있다고 하더군요.”

메르세데스 AMG(Mercedes AMG Petronas Formula One Team)의 젊은 대표 테오 울프의 집무실. 팀의 커머셜 디렉터 리차드 샌더슨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 F1은 시즌도 안 끝났는데, 그 양반이 거길 왜 간 거야?”

최대 라이벌 페라리 팀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메르세데스 팀. F3 레벨에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그들에게 마르치오네의 행보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현재 F3 클래스에서 주목 받는 선수가 있는데, 아마 그 친구의 레이스를 직접 보러 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직접 갈 정도지?”

팀 운영에만 몰두하고 있던 터라 F1 보다 로우 레벨 유망주들의 소식은 잘 모르는 테오. F3 클래스라는 말에 피식하고 웃는데,

“F3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 전승 우승 챔피언을 따냈답니다. 맥라렌과 윌리엄스 관계자들도 마카오를 갔다는데, 아마 영입 관련해서 다들 직접 검토하러 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흐음. 원래 차가 잘 안 나가면, 주구장창 콕핏에 앉힐 레이서만 바꿔대는 거지, 뭐”

2014 새로 도입된 F1의 파워트레인 시스템에서 압도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메르세데스. 뛰어난 차량 성능에 더불어 현재 팀은 GP 우승을 싹쓸이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2연속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팀의 퍼스트 레이서 해밀턴과 베테랑 로즈버그까지, 레이서 라인업은 완벽했다.

“보아하니, 그 F3 레이서 말이야. 팬덤이 좀 있지?”

테오는 페라리 팀을 잘 알고 있었다. 페라리는 선수 영입에서 레이서의 실력 만큼이나 팬덤을 중시하는 팀이다. 레이서의 외모, 이색적인 출신 배경 등등 티포시들의 광적인 응원을 한층 더 증폭 시킬 요소들이 그러하다. 테오의 말에 리차드가 레이서의 프로필을 건네주는데,

“내 말이 맞네. 그 양반은 진짜 이런 선수를 좋아한다니까.”

페라리가 어떤 선택을 내릴진 알 수 없지만, 테오의 입가엔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제아무리 F3에서 날고 긴다고 할지라도, 아직 어리고 경험 없는 풋내기 레이서에 불과할 테니까.

“서준하? 다음 시즌엔 이 이름이 출전 명단에 나오는지, 한 번 볼까?”

현재 메르세데스는 최강이다. 차량, 레이서, 팀원 모두 최고 전력.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테오가 레이서의 프로필을 대충 훑어보고는 덮어버렸다.

***

“3턴 브레이킹 포인트가 엄청 늦던데, 랩타임이 좋은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실제로 보니 더 놀라웠다. 자신들이 알던 브레이킹 타이밍과는 전혀 다른 포인트. 코너 진입에서 차량의 방향을 먼저 틀고 들어가는 서준하만의 스타일이기에 가능한 테크닉이었다.

대회 둘째 날, 오전 연습 주행을 마치고 검차대에 들어온 서준하의 곁으로 인도 국적으로 보이는 레이서들이 다가섰다.

“서준하 선수, 같이 사진 한 장 찍어 줄 수 있나요?”

인도 선수들 뿐만이 아니었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동유럽권 출신 선수들이 서준하를 졸졸 따라다녔다.

유럽권 선수들과 우승 후보들은 그 모습을 견제하는 눈치였지만, 다른 지역 선수들은 마치 유명 인사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서준하를 바라봤다. 특히나 이번 대회 색다른 이력으로 팬들의 주목을 끄는 레이서마저 서준하에게 관심을 보였으니,

“나랑도 한 장 찍어줄래요?”

이번 대회 유일한 여성 레이서 소피아 플로렌스가 서준하의 어깰 두드리며 물었다.

“물론이죠.”

그녀의 요청에 곧바로 포즈를 취하는 서준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모습에 주변 레이서 몇몇이 부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크큭, 소피아 선수 얼굴 빨개진 거 보세요. 말은 자기가 먼저 걸어놓고, 되게 부끄러워하네.”

“아직 레이스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인기가 대단하구만. 관심 집중이야, 관심 집중, 하하.”

서킷 어딜 가나 쏟아지는 관심. 연습 주행이 끝났음에도 서준하를 보기 위해 모여든 팬들의 모습에 스메들리 부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실 이런 관심도 부담스러워하는 레이서들이 많은데, 준하는 참 잘 즐기네요.”

“상황마다 어떤 행동이 맞는 건지 명확하게 아는 거지. 정말 영리한 녀석이야.”

마카오 대회 시작 전보다 더 뜨거워진 관심. 그 앞에서 서준하는 긴장하며 여유를 잃기 보단, 오히려 그 관심을 적절하게 즐기고 있었다.

“단순히 실력만으론 F1에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행동하고 있어요.”

사실 대회 기간 동안 틀어박혀 레이스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지만, 마카오는 레이스 당일만 중요한 무대가 아니다. 대회 기간 사흘 내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 F1 팀들은 레이싱 실력뿐만 아니라, 서킷 밖에서도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레이서에게 더 관심을 준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준하를 보내줘야 할지도 모르겠구만...”

“흐음, 그건 참 슬픈 일인데요.”

승승장구, 완벽한 행보를 이어가는 팀의 퍼스트 레이서. 스메들리 부자의 가슴 한편에 서준하와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밀려왔다.

***

[Q2 Pit Lane Open]

[39 분 : 59 초]

WTCR 퀄리파잉을 마치고 시작된 F3 퀄리파잉 2(Q2) 피트레인 오픈과 동시에 많은 선수들이 피트를 나섰다. 어제 Q1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Q1과 Q2 기록 중 더 좋은 기록으로 퀄리피케이션 레이스의 그리드를 결정합니다. 어제 기록이 좋지 못 했더라도, 지금 Q2에서 랩타임을 만들면 되는 거죠.”

어차피 퀄리피케이션 레이스 역시 본선 레이스의 그리드를 정하는 예선일 뿐이지만, 다들 뭐 그렇게 목숨을 거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참가자는 총 33명. 트랙의 폭이 10m가 채 안 되는 기아 서킷의 특성상, 본선 당일 뒤에서 출발하는 건 거의 게임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Q2라는 또 다른 기회에 선수 모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일반적으로 마카오 GP는 Q1보다 Q2 기록이 다들 좋거든요? 어제 Q1에서 좋은 기록을 낸 선수들조차 초반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피트 레인 출구부터 치열한 자리싸움. 참가자들은 마치 본선 레이스의 아웃 랩처럼 한 랩이라도 더 돌기위해 분주했다. 하지만, 아직 피트를 나서지도 않은 선수가 있었으니,

“아, 서준하. 여유로워요. 피트에서 꼼짝 않고 있습니다. 아직 시동도 안 건듯 한데요?!”

“그렇죠. 이미 Q1에서 19초대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으니 사실 급할 게 없을 겁니다.”

지금 이 난리를 만든 주인공이 중계 화면에 잡히자, Q2 시작과 동시에 나온 함성보다 더 큰 환호가 갤러리에서 쏟아졌다.

“아! 시작부터 크러쉬가 납니다! 이번에도 3턴 리스보아인데요!!!”

마카오는 퀄리파잉에서도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참가자들의 마음은 급해졌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 덕분에 시작부터 연이은 사고로 더 나은 기록을 세우겠다는 희망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우우우웅.

위이이잉.

포뮬러카 한 대의 배기음이 피트 레인의 정적을 깨버렸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이 선수가 등장합니다!!”

SC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달리는 선수들로 북적이는 기아 서킷. 서준하의 등장에 Q2의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 이번 시즌을 끝으로 준하를 보내줘야 할지도 모르겠구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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