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3화 (103/200)

< 클래스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겠어 >

-어택 스타트! 해보자, 크리스!

Q2 종료까지 남은 10분. 중후반 스퍼트를 올린 포르텍의 크리스 호가드의 차량이 또 다시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4단, 178 km/h...

5단, 225 km/h...

지난 시즌 마카오 월드컵 3위, 그리고 올해 F3 브리티시 챔피언십의 챔피언을 차지하며 다양한 레이싱 카테고리에서 러브콜을 받은 크리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F1 팀 윌리엄스로부턴 아직 아무런 컨택도 받지 못 했다. 그런데,

-윌리엄스의 관계자들이 왔대! 이번에 꼭 만들어 내자

“윌리엄스...!”

영국의 F1 팀 윌리엄스 레이싱은 크리스의 인생 목표이자 곧 꿈이었다. 설립자 프랭크 윌리엄스 경을 동경해왔고, 영국 모터레이싱의 역사를 탄생시킨 팀의 열정을 응원했다. 이번 대회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자들의 눈에 들어야 했다.

5단, 243 km/h...

6단, 271 km/h...

기아 서킷의 직선 주로를 엄청난 속도로 통과하는 크리스의 포뮬러카. 윌리엄스라는 말을 듣고는 그의 가슴 속 어떠한 스위치가 켜진 듯 한데,

“...!!!”

크리스의 뒤로 또 다른 포뮬러카의 배기음이 들렸다. 이번 랩 그 역시 플라잉 랩을 달리는 듯한 기척이었다.

“스메들리...!”

소리와 동시에 윙미러를 흘겨본 제이크. 눈여겨 보던 파란색 포뮬러카 한 대가 자신의 뒤에 따라붙고 있었다.

“XX! 하필!”

하필 뒤따라오는 레이서는 서준하였다. Q2의 절반 이상이 지나도록 아직 어느 누구도 그의 Q1 기록이 깨지 못한 상황.

-격차가 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달려, 크리스!

플라잉 랩을 시작하고 절반을 넘게 달린 이상, 뒤따라오는 차에게 앞길을 터줄 순 없다. 어쩌면 또 한 번의 기회란 없을 지도 모른다.

“오케이! 신경 안 써!”

수백만 레이서들과의 경쟁을 뚫고 이곳 마카오에 다시 왔다. 이번 시즌만큼 마카오가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수년간 자신이 달려온 모터레이싱의 여정이 이번 무대를 위한 걸지도 모른다. 스타트라인까지 몇 개의 코스를 남겨둔 크리스가 전의를 불태웠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이전보다 더 거세진 배기음. 윙미러로 보이는 포뮬러카가 더욱 크게 보였다. 이제 스타트 라인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크리스의 심장은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야!!! 이 XX! 왜 한참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뛸 때...!!!

하지만 가슴 속 열 불이 난 건 크리스만이 아니었다. 그의 어택을 지시내렸던 카일 감독도 서준하의 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아무래도 뒤따라오는 또 다른 차량이 있다면, 제아무리 집중력이 좋은 레이서라도 온전히 자신의 어택에 힘을 쏟지 못 한다. 카일의 절규에 근처 다른 팀 피트의 코치진들이 그를 흘겨봤다.

“14턴까지 0.15초 빨랐는데... 지금 갑자기...”

Q1 플라잉 랩 당시 자신의 섹터 2까지의 기록보다 빨리 달리고 있던 크리스. 서준하의 등장이후 곧바로 랩타임이 제자리걸음하고 있었다.

“그래도 몰라! 모르는 거야! 조금만 버텨줘, 크리스!!!”

멜코 헤어핀을 돌아 2개의 코너만을 남겨둔 크리스. 포르텍 팀이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데,

“...!!!”

헤어핀 진입과 동시에 어느새 크리스의 뒤로 바짝 붙어버린 서준하. 탈출과 동시에 두 선수의 차량이 나란히 달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리고,

“빨라...!!!”

분명 어택 시작 당시 크리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서킷 중간 갑작스럽게 서준하가 붙은 상황. 카일 감독에겐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는 레이서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띠링.

띠링.

지금이 퀄리파잉인지, 레이스인지 헷갈릴 만큼 코스를 나란히 달리는 어택 주자들.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며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데,

“2분 19초 999!!!”

크리스의 기록을 보고 뒤집어진 포르텍 팀의 피트. 20초의 벽을 넘은 상황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New Track Record]

[Smedely: Junha Seo (kor)]

[2m 17s 491]

“...”

Q2 가장 꼭대기 칸에 랭크할 것이라 여겼던 크리스의 랩타임. 트랙 레코드에 밀리며 2위에 자리했다.

‘주... 죽은 세나가 환생이라도 한 거야?’

기록 달성 방송과 함께 순식간에 얼어버린 포르텍 피트. 허탈감에 빠진 카일의 머리 위로 아일톤 세나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

“맥라렌 팀이 널 만나고 싶대.”

Q2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서준하.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본선 레이스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맥라렌에서요?”

놀란 건 서준하의 에이전시 역시 마찬가지. 소식을 알린 한서윤도 아직 얼떨떨한 듯 보였는데,

“괜찮으면 퀄리파잉 끝나고 바로 연락 달라는데...? 방금 레이스 마치고 왔는데, 그건 좀 무리지? 미팅 전에 준비할 것도 있는 거고... 레이스 끝나고 연락드린다고 할까...?”

F1 팀과의 첫 대면에 별다른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 한서윤의 눈엔 곧바로 미팅을 가지면 안 될 여러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스를 앞둔 서준하의 심리 상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검차만 마치고 바로 올게요. 미팅 잡아주세요.”

F1 팀에서 이렇게 대회 도중 레이서와 미팅을 요청하는 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기회가 온 것을 직감한 서준하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잠시 후, 서준하가 머무는 호텔 접견실로 두 명의 중년 영국인이 자리했다.

“윌리엄스 쪽에서도 컨택을 했을 거 같은데, 우리 쪽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마카오 월드컵 시작 전부터 이미 서준하를 눈여겨본 맥라렌 관계자들. 어제 Q1이 끝나고 서준하에 대한 판단을 마쳤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자리한 그들이 서준하를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며 기다렸다.

“왔네요.”

문이 열리고, 서준하와 한서윤이 접견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발견한 맥라렌 팀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는데,

“...!”

“...!!!”

맥라렌 팀의 얼굴을 본 한서윤과 서준하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로, 로널드 데니스?’

지난 1970년대부터 맥라렌 F1 팀을 이끌어온 전설적인 인물 로널드 데니스. 한서윤 역시 그런 인물이 미팅 자리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는 네 사람.

“대회 도중 이렇게 갑자기 만나자고 청해서 미안합니다. 내일 레이스 준비도 필요한 상황일 텐데... 용건만 빠르게 전하겠습니다.”

자신을 맥라렌 팀의 스카웃 담당자라고 밝힌 하이폰 더핀이 먼저 정중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옆에 앉은 로널드 역시 오늘 경기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감사를 표하는데,

“이제부터 맥라렌은 차량부터 레이서들의 라인업까지 리빌딩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부터 그 변화가 시작됐지요.”

차량의 엔진 파츠 부분을 전부 새롭게 업데이트하며 변혁을 꽤하는 맥라렌 F1 팀. 팀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선 차량은 물론, 실력 있는 레이서가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 맥라렌 팀은 다음 시즌 서준하 선수를 테스트 드라이버로 기용하고 싶습니다.”

존 왓슨과 앙드레 프로스트와 같은 레전드 드라이버들의 잠재력을 꿰뚫어봤던 로널드 데니스. 팀이 드라이버 발굴에 난황을 겪는 상황에서 뛰어난 인재를 발견하자마자, 자신이 직접 마카오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테스트를 보러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린 서준하 선수에게 테스트 드라이버 자릴 제안하는 겁니다.”

한 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F1 문턱에 오른 선수들이 F1 입단 테스트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F1 차량이 이전 경주차들보다 훨씬 주행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 영입에 앞서 테스트가 일반적인 상황에 맥라렌이 특별 카드를 꺼내들었다.

“어떻습니까? 서준하 선수. 이 정도면 파격적인 제안 아닙니까?”

기자들의 질문에도 신중한 답변을 내놓기로 유명한 로널드 데니스. 자신의 판단에 확고한 표정과 함께 서준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

“아, 이번 대회 저런 표정은 처음 봅니다...!”

마카오 월드컵 셋째 날 토요일 오전. 메인 레이스 그리드를 정하는 10바퀴 퀄리피케이션 레이스(Qualification Race) 출발을 앞두고, 그리드에 대기 중인 선수들 곁으로 중계 카메라가 다가섰다.

“항상 웃음이 넘쳤던 선수 거든요? 긴장한 건 아닌 듯하고, 덕분에 그리드 분위기가 굉장히 살벌하군요...”

비장한 표정으로 포뮬러카 옆에서 대기 중인 서준하. 여유로운 표정이 가득했던 지난 퀄리파잉 때와는 달라 보였다.

“퀄리파잉의 성격이 강한 오늘 레이스지만, 오늘 망하면 내일 레이스도 거의 망한 상태로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상 오늘은 메인 레이스의 전반전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아마 서준하도 그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중계진의 말에 기아 서킷으로 더욱 커다란 긴장감이 전해졌다. 잠시 후,

“이제 미캐닉들은 물러나고요. 그리드에 선수들만이 남았습니다!”

세이프티카 주변의 마샬들이 녹색기를 흔들자, 스타트 신호 5개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2015 마카오 GP 포뮬러 3 퀄리피케이션 레이스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갤러리의 함성과 함께 포뮬러카들이 순식간에 뻗어나가기 시작하고,

“그리드의 퍼스트 로우가 앞질러나갑니다! 특히 서준하! 서준하의 스타트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가장 먼저 앞으로 치고 나오는 서준하의 차량이 클로즈업 됐다.

“시작과 동시에 서준하의 뒤로 라이언 선수가 따라붙습니다!”

서준하의 윙미러로 보이는 하얀색 포뮬러카. 뒤차의 움직임을 확인한 서준하가 살짝 우측으로 진로를 바꿔 뒤차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사실 출발 전 서준하가 긴장에 빠져 미소를 잃은 건 아니었다. 오늘내일 레이스에서 강한 한방을 남기기 위해 생각에 잠긴 것 뿐이다.

‘클래스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겠어.’

참가자 모두 서준하의 앞을 넘기 위해선 단단한 각오가 필요해 보였다. 그는 오늘 살벌한 레이스를 보여주기로 작정했으니까.

‘단 한 번도 추월 당하지 않겠다.’

F1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은 이상, 이제 더는 F3 레벨이 아니다.

‘나는 너희랑 달라.’

서준하가 어느 누구에게도 틈을 보이는 레이스를 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쭉쭉 뻗어나가는데,

“3턴에 들어가는 서준하! 뒤쪽에선 라이언이 다시 한 번 안쪽을 노립니다!!”

속도가 느린 레이스 초반 그리고 기아 서킷의 최고 추월 포인트 3턴에 이른 라이언이 서준하의 안쪽을 공략했다.

“아아아아아!!!”

서준하의 리어 타이어와 부딪히며 밸런스가 무너진 라이언.

끼이이익.

콰과쾅.

공간이 막힌 라이언이 3턴 안쪽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말았다. 그리고,

“아! 라이언을 시작으로 뒤따라오던 차들이...!!!”

끼이이이이이익.

콰과과과과쾅.

콰콰쾅.

끼이이익.

기아의 리스보아 3턴. 어김없이 마카오 GP의 대형 크러쉬가 발생했다.

< 클래스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겠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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