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4화 (104/200)

< 저 선수가 영암 서킷의 코리아 그랑프리를 되살려내는 건 아닐까? >

“아이고, 대표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진정하세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보이는 A-Max팀 대표 류 쇼야. 팀 피트를 빠져나와 바로 옆 라이언의 팀 West-Tec의 피트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씩씩거리며 분노를 참지 못하는 류의 곁으로 부감독 켄타가 따라나서는데,

“왜 운전을 그딴 식으로 하는 겁니까!!”

2위 라이언의 갑작스런 스핀으로 뒤따라오던 A-Max의 엔도 카무이가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메인 레이스를 최후미에서 시작하게 된 상황 앞에 류 대표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West-Tec의 피트로 달려들었다.

“자빠질 거면 혼자 자빠지지! 왜 아무 죄 없는 뒤차들한테 피해를 주고 그러냐고!!”

운도 실력이지만, 불운은 실력이 아니다. 모터스포츠의 섭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의가 아니란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시즌 최고로 중요한 대회니 만큼 류 대표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미안합니다...”

짧은 사과의 말과 함께 고갤 들지 못하는 West-Tec의 데일 롱포드 감독. 미캐닉들의 손에 이끌려 자신들의 피트로 돌아가는 류 대표가 연신 분노를 표출했지만, 데일의 머릿속은 온통 라이언의 상태뿐이었다.

“아 진짜 한 대 갈겨주려다가 참았어요. 한 번 큰소리 쳤으면 정도껏 해야지...”

“화가 날 만하지. 마카오 대회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류 대표가 물러나고 조용해진 A-Max의 피트. 조금 전 상황에 열불이 터졌던 부감독이 얼굴을 붉히자, 데일 감독이 그를 진정시켰다.

“후... 진짜 망했네.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프론트 바디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다친 덴 없는 거 확실해? 이거 천만다행이구만.”

사고 처리가 진행 중인 대회 진행 요원들로부터 라이언의 소식을 들은 데일 감독. 그제야 안심한 듯 붙잡고 있던 양손을 모니터 화면에서 뗐다.

“화면으로 볼 땐 비집고 들어가는 타이밍이 정말 좋았었는데요... 왜 갑자기 밸런스를 잃은 거지...?”

“노면이 미끄러웠을 수도 있고, 감속이 밀린 걸지도 모르지... 리플레이 장면을 봤으면 좋겠는데...”

기운 빠진 목소리로 한숨을 푹푹 내뱉는 데일 감독. 중계 화면에는 지게차에 들려 서킷을 빠져나가는 포뮬러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라이언의 크러쉬 장면이 리플레이 됐는데,

“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 이건 라이언이 당했구만...”

우측으로 꺾이는 3턴의 안쪽 공간을 포착한 라이언이 앞차의 인코스로 들어간 상황. 하지만 코너링 시작과 동시에 앞차가 순식간에 공간이 막아버린 탓에 이미 진입을 시작한 라이언이 그대로 가드레일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마치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것 같아... 라이언이 미끼를 물어버린 거야, 이건...”

이어서 등장한 라이언의 온보드 영상. 3턴 진입 전까지 앞의 스메들리 레이서의 움직임은 인코스로 라이언을 유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너 진입 전엔 바깥쪽으로 움직여 안쪽 공간을 주고, 진입 직후에는 차량을 최대한 우측으로 비틀어 인코스로 파고들 라이언의 공간을 틀어막았다. 공간이 막힌 라이언은 급감속 했지만, 결국 좁아진 통로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말았다.

“예측 능력이 뛰어나다고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군요...”

“서준하... 저 친군 정말...”

앞차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A-Max 코치진은 그저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와 동시에 중계화면에 등장한 코리안 레이서의 존재가 시작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

[SC: Safety Car]

사고로 인한 경기 중단인 SC 상황. 추월이나 피트로 복귀할 수 없으며, 그저 선두부터 SC차를 따라 줄줄이 순회한다. 하지만 SC에도 주어진 랩은 계속 줄어든다.

“시작부터 단 한 번의 충돌로 총 5대의 차가 리타이어했고요. 사고 현장은 아직 수습 중입니다.”

2위 라이언의 스핀으로 한 명. 6위 조나단의 스핀으로 뒤에 두 명. 총 5명이 3턴에서 쓰러졌다. 비좁은 코스로 지게차들이 오가며 잔해를 치우는 동안 주어진 10바퀴는 계속 줄어드는데,

“SC를 따라 움직이는 선수들. 아직 초반이라 롤링을 해주는 레이서들이 곳곳에서 보이는데요.”

SC 상황이 금방 해제될지도 모른다는, 어서 빠르게 달려 선두로 치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러나는 듯한 레이서들의 움직임. 윙미러를 살펴본 서준하가 피식하고 웃었다.

“한 바퀴를 더 돌 것 같습니다. 지금 두 바퀴째인데요.”

좁은 골목의 마카오라는 서킷의 특성 그리고 사고 이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카오 오피셜의 예민함은 사고 처리를 지연시켰다.

“자, 이번엔 서준하 선수의 온보드 영상입니다. 이거 지금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군요.”

예상대로다. 다섯 대가 리타이어했다는 소릴 들었던 서준하. 일부러 롤링하지도, 급하게 속도를 높였다 떨어뜨리지도 않았었다. SC가 길어지는 듯하자, 그제야 조용한 다른 차량과 대조적인 모습.

“서준하의 헬멧 정면에는 한국의 국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특별히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한국 팬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에디션이에요.”

모터스포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온보드 영상을 즐겨본다. 하지만 헬멧을 쓴 레이서의 얼굴은 보이지 않기에 레이서 대부분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나 이니셜 등을 헬에 그려 넣는다. 해설자의 말처럼 오늘 그의 헬멧은 한국 팬들을 향한 서준하의 마음이었다.

“SC가 사라지고 이제 다시 녹색기가 휘날립니다! 속도를 높이는 포뮬러카들!”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기아 서킷에 다시 울려퍼진 굉음들. 갤러리의 환호가 더해지자 마카오가 다시 뜨거워졌다.

“시작부터 치고 나오는 앤더슨 그린! 뒤따르던 차들의 움직임도 더욱 분주해진 듯합니다!”

“지금 SC로 두 바퀴 반을 그냥 날려버렸거든요? 어떻게든 선두권으로 올라가려면 쉴 새 없이 어택해야 합니다!”

서킷의 길이가 일반적으로 다른 곳보다 길기 때문에 총 랩 수는 짧지만, 2,5km 정도가 넘는 구간이 직선 주로이기에 사실상 추월 포인트는 몇 군데 되질 않는다. 뒷선에 머문 레이서들의 마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저기서 배틀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순위권에서도 선두를 노리려는 시도가 계속됩니다!”

파란색 포뮬러카 뒤를 동시에 달리는 크리스와 제프의 차량. 앞차의 실수만 기다리겠다는 의도로 선두를 맹렬히 추격했다.

“또 다시 스타트라인을 통과한 서준하. 남은 바퀴는 이제 다섯 바퀴입니다!”

좁아터진 기아 서킷에서의 추월은 결코 쉽지 않다. 분명한 추월 포인트, 뒤차의 레이트 브레이킹 그리고 무엇보다 앞차의 실수가 뒷받침 돼야 한다.

“크리스가 한 번 시도할 거 같은데요!”

2턴에서 탈출 속도를 살려내며 서준하 뒤에 붙은 크리스. 마카오 월드컵 폴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선두를 노리는 경쟁자들에게 기회는 격차가 없는 스타트와 SC 상황 직후 둘 뿐이다. 서준하의 뒤로 기다려왔던 차량의 기척이 들려왔다.

끼이이익.

‘그래, 들어와.’

3턴의 바깥쪽으로 진입을 시작한 서준하. 재빠르게 윙미러로 크리스의 움직임을 흘겨봤다. 그의 예상대로 뒤따르던 크리스가 인라인으로 프론트 노즈를 밀어 넣으려고 하자,

끼이이이이이이익.

차체의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놓으며 코너링에 들어가는 서준하. 당황한 제이크가 급격히 속도를 줄이지만, 안쪽 벽과 살짝 부딪히고 말았다.

쿵.

3턴을 탈출하자 뒤차는 아까와 같은 기세로 서준하를 쫓지 않았다. 차량의 문제는 없었지만, 레이서의 정신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결국 속도가 쳐지며 뒤따르던 빨간 포뮬러와 배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5단 205km/h...]

[6단 259km/h...]

레이스에서 뒤차가 따라붙는 건 당연히 발생하는 상황이지만, 왠지 모르게 추월 시도를 내준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재빠르게 격차를 벌리고자 마음먹었고, 4턴 이후 다소 울퉁불퉁한 직선 주로에서도 풀악셀을 밟았다.

-9턴 진입 속도가 너무 빠른데?

이번 대회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겨야 한다. 어떤 임팩트가 좋을지 수차례 고민해 봤지만, 역시나 F3 차량으로 할 수 있는 건 스피드를 내는 것 뿐이었다. 진입 속도 덕분에 아슬아슬했지만, 서준하는 9턴에서 미끄러지지 않았다.

“롭, 그렇게 걱정스런 목소리 알려주지 않아도 돼.”

걱정할 것 없다. 서준하는 지금 한없이 냉철한 정신으로 레이스를 하는 중. 면도날 위를 걷는 듯한 그 아슬아슬함을 견디고 이겨내야 스피드를 얻을 수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엔지니어의 무전마저 거슬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연습 주행 처음, 서킷을 느리게 돈 건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매번 정해진 레코드 라인으로 돌아봤자, 빨라질 수 없다. 서준하는 지금 자신과 차량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스피드를 올리는데 몰두했다.

-7랩, 랩 레코드!

뒤차들의 견제에서 벗어난 서준하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았다. 스타트라인을 통과한 서준하가 남은 세 바퀴 랩 레코드 연속 갱신이라는 목표를 위해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와하하!! 서준하 벌써 2위와 격차가 10초 이상 벌어졌습니다!”

“이 선수, 코스를 공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라인 자체를 새로 창조해내고 있는데요?! 자, 멜코 보시죠!”

몬테카를로 서킷의 페어몬트 헤어핀보다 더 타이트하고 좁은 기아의 20턴 멜코 헤어핀. 폭이 7m뿐이 되지 않기에 속도를 굉장히 줄여야하는 난코스인데,

“사실 멜코는 정석적으로 처음부터 에이팩스에 바짝 붙어 도는 게 일반적인데요. 하지만 서준하는 최대한 늦게 턴인 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이런 특이한 라인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만의 남다른 코스 공략으로 스피드를 높이고 있는 서준하. 지켜보던 중계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8랩 서준하! 이번에도 랩 레코드! 두 바퀴 연속 신기록을 달성합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마카오 서킷. 레이스가 끝을 보일수록 오늘도 간신히 레이스를 살아남았다는 마음이 참가자들의 솔직한 심정이겠지만, 서준하는 달랐다. 파이널 랩을 향해갈수록 그는 더욱 과감했고, 급진적이었다.

“서준하의 질주에 마카오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냅니다!!!”

서준하의 이름을 외치며 박수를 보내는 갤러리들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특히나 한국 팬들의 가슴속에 불길이 일었다.

“또 다시 최고속을 찍은 서준하! 마카오를 찾은 한국인들에게 짜릿한 스피드를 보여줍니다!!!”

저 선수가 F1에 가면 어떻게 될까? 저 선수가 영암 서킷의 코리아 그랑프리를 되살려내는 건 아닐까?

한국 팬들은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그의 질주를 바라보았다.

< 저 선수가 영암 서킷의 코리아 그랑프리를 되살려내는 건 아닐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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