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08화 (108/200)

< 넘어야 할 산이 계속 나오는군요 >

“아니, 이게 누구야?!”

런던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이륙 전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던 60대 남성이 갑작스럽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맞죠?! 스포츠카 운전 선수?!”

노인이 가리키는 남자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지만, 갑자기 그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머릴 긁적였다. 잠시 후, 박수와 함께 기뻐하기 시작하는데

“맞아요, 서준하! 서준하 선수 맞죠?!”

국내 각종 언론과 포털 사이트에서 11월 셋째 주 내내 연신 오르내리고 있는 그의 이름. 모터스포츠를 잘 모르는 노인도 서준하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적 있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서준하에게 같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어? 서준하? 서준하가 있다는데?”

“엥? 진짜? 어디, 어디?”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여객기의 탑승객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사진 촬영 후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 노인이 계속해서 서준하의 칭찬을 늘어놓자, 주변 승객들이 너도나도 주위로 모여들었다.

“와, 실물이 더 잘생기셨네요. 호호..”

계속해서 사진 촬영 요청을 하는 승객들. 잠시 후, 비행기가 궤도에 오르고 운행 안정권에 접어들자, 다시금 서준하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잠깐 눈 좀 붙여요, 준하 선수. 어우, 이 비행기에 탄 한국분들이랑은 다 찍은 것 같네...”

시즌을 마치고 지친 몸이었지만, 자신을 알아봐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또한 서준하에겐 또 다른 기쁨이었고,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기내가 조용해지자, 서준하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절차를 밟고,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또 한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와아아아아!”

“서준하아아!”

Pride of Korea, F3 월드컵 제패, 라는 커다란 플래 카드 앞으로 서준하의 팬클럽과 수많은 취재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게이트 밖으로 서준하가 등장하자 엄청난 환호와 함께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세상에...! 대박...!”

한서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TV에서만 보던 유명 스포츠 선수의 금의환향과도 비슷한 광경이었다. 한국에서 서준하의 팬덤이 커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 일줄은 예상도 못했다. 아마도 중계 방송의 역할의 지대했으리라 싶은데,

찰칵.

찰칵.

멈추지 않는 플래시 세례에 당황스러운 건 서준하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 자신이 F3 챔피언을 차지하고 영국으로 복귀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마치 자신이 전쟁의 영웅이 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을 정말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한 미소가 가득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서준하입니다. 다들 응원해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박수. 곧이어 한국 유소년 카트 선수라고 소개 받은 아이들이 꽃다발을 전해줬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을 나서려는 그를 향해 팬들이 응원의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서준하 선수! F1 월드 챔피언까지 파이팅입니다!”

“F1도 휩쓸어주세요!”

“다시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릴 수 있게 F1 무대에서 활약해주세요!!”

그들은 이제 한국인 선수가 언젠간 열릴지도 모를 코리아 그랑프리에 나와줬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했다. 이 역시 서준하의 목표 중 하나. 멀지 않은 미래에 이뤄내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위대해지지 말 것. 소수의 전유물이 되지 말 것.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길 극대화된 안정성. 정교한 주행 일체감. 견고한 내구성. 이 놀라운 것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슈퍼 노멀, 아반트.”

2016년 출시를 앞둔 대현 자동차의 새로운 모델 아반트 AD. 광고 필름 촬영 현장에 서준하의 음성이 녹음된 오디오가 흘러나왔다.

“지금 포즈 좋습니다. 고개 45도 왼쪽으로 틀어주시고요. 네, 그 상태에서 그대로 스티어링 휠 돌릴게요. 액션...!”

촬영 감독의 지시에 맞춰 준비된 동작들을 수행하는 서준하. 스포티한 옷차림과 깔끔하게 넘겨 올린 헤어가 그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커트. 와, 좋습니다. 자연스러운데요? 이거 배우분들이 하시면 몇 번은 더 만져야 하는 작업인데, 확실히 레이싱 선수라 그런지 바로 자세가 나오네요!”

촬영 감독이 지시하는대로 간단한 동작만 선보였을 뿐임에도 쏟아지는 극찬. 어리둥절한 서준하가 커트와 동시에 밝게 미소 지었다.

또 다른 테마로 촬영하기 위해 스타일링을 바꿔야하는 서준하. 스태프를 따라 분장실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젊은 여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한 디자이너가 거울로 서준하와 눈을 마주치자 눈웃음 짓고는 말을 꺼내는데,

“실제 레이싱카가 시속 200km가 넘는다는데. 진짜 그렇게 빨라요?”

“맞아, 맞아. 저도 궁금해요. 우리 친오빠가 그러는데, 저번에 170 밟았다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대요. 진짜 200km/h 이상은 무슨 느낌이에요?”

헤어를 만지던 또 다른 디자이너 역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서준하를 향해 묻고,

“흠, 느낌이라... 롯X 월드 아틀란테스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라면 감이 오실까요?”

1.5초만에 시속 70km대로 급발진하는 아틀란테스가 떠올랐다. 200km/h 이상 속도를 체험해 본 적 없는 일반인들이 그나마 스피드를 느껴본 거라면 이런 놀이기구일 테니까.

“두 배요? 와, 그럼 얼마나 빠른거야...”

“또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네, 그럼요.”

“저는 이게 가장 궁금했어요. 그 경기 시작하면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차에 타고 있잖아요. 근데 진짜로...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참으로 현실적인 질문. 질문을 던진 헤어 디자이너는 장난치는 게 아닌 듯 진지한 표정이었는데,

“아... 그렇죠. 그런 일 생기죠. 그래서 선수마다 행동 루틴이 다 있어요. 가령, 차에 타기 전에 무조건 화장실을 갔다 온다든지, 레이스 도중에 음료의 양을 최소한으로 섭취한다든지 등등. 그래도 만약 참사가 일어날 것 같다면... 일부러 스핀내고 화장실 간다는 레이서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참사래, 크큭.”

“아니, 근데 서준하 선수 말도 잘하고 재밌으시다. 혹시 여자친구는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모습.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를 나누는 여유. 천부적인 레이싱 재능과 더불어 잘생무엇 하나 떨어지지 않는 매력에 그를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호감을 가졌다.

“두번째 촬영 들어가시죠, 서준하 선수”

준비를 마친 서준하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경주차건 양산차건, 차에 올랐을 때만 나오는 그 카리스마가 촬영장을 다시 압도했다.

***

“언제쯤 오라고 했다고요?”

PH인베스트먼트의 사옥. 집무실에 앉아 서준하를 기다리는 필립 황이 유건석 실장을 향해 물었다.

“1월 둘째 주로 전달 받았습니다. 더 자세한 일정은 조만간 메일로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마카오 우승 후 영국으로 돌아갔던 서준하. 며칠 뒤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스카웃 책임자 로만 메이어로부터 다음 시즌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 자리를 제안 받았고, 다음달 초 공식적인 테스트 드라이버 계약을 위해 이탈리아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유건석이 전해들은 내용을 필립 황에게 설명하는데,

“속전속결이군요. 들어온지 한 달만에 한국엔 얼마 있지도 못하고, 바로 다시 나가게 생겼네.”

광고 촬영과 더불어 각종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던 서준하. 하지만 페라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를 원했다.

“실장님. 테스트 드라이버면, 후보 선수, 뭐 그런거죠?”

테스트, 리저브, 써드(Test, Reserve, third drivers) 드라이버 모두 같은 말이다. F1 팀에는 GP를 나서는 두 명의 메인 레이서 말고도, 팀에 소속되어 차량 개발과 정규 선수가 부상이나 기타 사유로 F1 그랑프리에 출전하지 못할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하는 선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레이서가 팀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메인 드라이버로 쓸 선수를 미리 이 자리에 앉힌다. F1 차량 조작부터 새로운 규정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했기에 메인 레이서에 오르기 전 테스트 드라이버는 필수 아닌 필수 과정이다.

똑똑.

“왔어요, 준하 선수!”

연락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온 서준하.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의 유건석과 필립 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정 됐어. 다음달에 마라넬로(Maranello)로 오라고 하네?!”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모든 연구와 테스트가 이뤄지는 핵심 근거지 마라넬로. 소식을 들은 서준하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시즌을 끝내고 다양한 팀이 관심을 보였다. 페라리, 윌리엄스, 맥라렌, GP2 시리즈의 다양한 팀 등 내로라하는 팀들이 영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서준하가 선택한 건 페라리였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팀. 무엇보다 살벌한 F1 무대에서 그나마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팀이 페라리였다.

“축하드립니다, 서준하 선수. 헌데 생각보다 준비를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거의 쉬질 못해서 좀 걱정인데 어쩌나...”

흐뭇하게 웃던 유건석이 조심스럽게 일정에 대해 말을 꺼내자, 서준하가 문제 없다며 어깰 들썩였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팀이 서두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휴식기가 조금 더 갖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서준하가 빠르게 한국을 벗어난다면, 마카오 직후 서준하에 대한 열기도 금방 식겠지만, 애초에 그런 건 관심 없었다. 하루 빨리 F1 GP에 데뷔하고 싶은 게 서준하가 원하는 일이었다.

“아참 그리고, 마라넬로에 서준하 선수 말고도 모나코 출신 선수가 한 명 더 있다고 말하더군요.”

끊임 없이 경쟁해야 하는 모터레이싱의 세계. F1 최고의 팀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전 보다 그 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 또 다른 경쟁자의 소식에 들떴던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고,

“쉴르 르클레르. F2 챔피언 이력을 가진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 출신이랍니다.”

하지만 당황한 필립과는 다르게 서준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서준하는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허, 팀에 들어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네. 넘어야 할 산이 계속 나오는군요.”

“상황이 어떻든 너무 걱정마세요, 대표님.”

유 실장에 말에 잠시 수그러든 분위기. 하지만 서준하는 자신감이 넘쳤다. 또 다른 걱정이 생긴 듯한 필립을 향해 그가 말을 꺼내는데,

“다음 시즌 프리 주행에서 제 이름을 보게 되실 겁니다.”

F1 그랑프리 퀄리파잉 전날 진행되는 프리 프렉티스(Free Practice) 메인 레이서들의 연습이 주를 이루지만, 가끔씩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F1 데뷔를 갖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다려라, 페라리. 마라넬로의 주인이 되돌아간다.’

전생 자신의 팀 페라리가 어떤 팀이고, 어떤 드라이버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페라리 팀의 관심을 독차지하겠다, 자신을 콕핏에 앉히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만들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 넘어야 할 산이 계속 나오는군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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