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왠지 이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
“F1 레이싱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겠네.”
드라이버 교육실로 들어온 안토니오치가 서준하의 개인 교습을 시작했다.
“F1 카는 자네가 탔던 F3 경주차보다 배기량이 적지.”
F3 경주차가 2000cc 이하의 4기통 엔진이라면, F1 머신에 실린 엔진의 배기량은 고작 1600cc 6기통(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의 6,000cc 이상의 높은 배기량을 가진 엔진과 비교하면 더 말이 안 될 정도.
“배기량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출력까지 약해진 건 아니야. 여전히 시속 300km를 넘나들 수 있는 힘을 가졌지.”
15,000rpm까지 치솟는 엔진 회전수를 바탕으로 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이번 시즌 엔진. 같은 배기량을 가진 일반 승용차의 엔진 회전수가 2,000~4,000rpm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일반적으론 배기량이 커질수록 한 번에 연소되는 연료의 양이 많아지니까, 엔진 토크와 출력도 커진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네.”
배기량이 적어도 엔진 설계나 엔진의 종류에 따라 출력을 높일 수 있다. 2016년 F1 머신 개발은 다운 사이징이 대세. 그에 맞춰 과거 2400~3000cc 였던 배기량을 과감히 줄였다.
“차의 무게는 700kg가 넘어, 이는 F3 차량과 크게 차이나질 않지. 하지만 F3 보다 훨씬 많은 부품들을 탑재하고 있음에도, 무게 차이가 적은 건 탄소 섬유 덕분이야.”
차체는 벌집 모양으로 알루미늄 구조물 위에 탄소섬유 껍데기를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다 충돌해도 드라이버가 큰 부상을 입지 않는 비결은 가볍고도 단단함을 유지하는 이 구조에 있다.
“이 차량 한 대를 만들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대략 18개월 정도. 연구와 공장 설비가 쉼없이 돌아가야만 가능한 기간이지. 한 대의 가치는 약 100억 정도네.”
양산 자동차 개발 기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개발 속도. 일반적으로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지려면 족히 4년 이상은 걸린다.
“무엇보다 F3와 크게 달라진 건 이 스티어링 휠이야. 현존하는 주행용 자동차 중 운전과 조작이 가장 까다롭고 복잡하지.”
핸들링에서 F1 드라이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기어 변속과 클러치 조작. 양산차의 오토매 패들 시프트 시스템과 달리 F1 카는 헨들에 달린 클러치 패들을 활용해 수동으로 변속한다. 그밖에도 DRS, 속도 제한, KERS, 음료, 무전 등등 레이스 중 상황에 따라 20개 이상의 버튼을 조작해야 한다.
‘...이 느낌 오랜만이야.’
조작 버튼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한 감독. 동시에 핸들을 건네 받은 서준하가 이것저것 눌러보기 시작했다. 감각들이 되살아나며 핸들을 조작하던 전생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자, 그러면 이제 시뮬레이터로 스타트 연습을 해보도록 하겠네.”
실제 F1 경주차와 동일한 환경과 서킷을 컴퓨터로 구현해낸 시뮬레이터. 거대한 모니터 세 대에 연결된 페라리 팀 전용 시뮬레이터 콕핏에 서준하가 앉았다.
“하단에 보이는 스위치를 눌러, 먼저 시동부터 걸고.”
위잉.
덜컥.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시동이 걸렸으면, 이제 천천히 출발해보도록 하지. 스타트는 말이야...”
좌측 클러치 패들을 반 정도 쥐고 있던 서준하. 스타트란 말을 듣자마자, 우측 클러치 패들을 완전히 당김과 동시에 재빠르게 1단 기어를 넣었다.
“...?!”
출발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밟고 있던 브레이크 패달과 우측 클러치 패들을 놓는 서준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쥐고 있던 좌측 클러치 패들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부와아아아아앙.
엔진 스톨 없이 자연스럽게 뻗어나가는 차량. 핸들링과 페달 구조가 F3 차량과 달랐음에도 서준하는 단번에 스타트에 성공했다. 그 모습에 안토니오치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하는데,
부와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스피드가 높아짐에 따라 적절한 엔진 회전수에 맞춰 시프트업 하는 서준하. 시뮬레이터 차량이 어느새 300km/h를 돌파해버렸다.
“자, 자네! 따로 교육을 받은 건가?! 이게 어떻게...?!”
너무나도 정확하게 떨어지는 시프팅 포인트(기어 변경 시점) F3 차량과 시프트 업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기어를 변경하는 특정 엔진 회전수 포인트는 실제 해당 차를 몰지 않고서야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놀란 안토니오치가 서준하의 이전 경험을 묻는데,
“저도 F1 카는 오늘 처음 타봅니다만, 그냥 왠지 이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그냥?!”
이번 생 서준하의 F1 첫 시뮬레이터 주행. 모니터 화면의 속도계 바늘이 최고속을 향해 치솟았다.
***
‘잠을 못 잤는데도, 별로 피곤하지도 않네.’
시뮬레이터 주행이 있었던 날 저녁, 서준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비록 가상 주행이었지만,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찌릿찌릿했고, 그를 더욱 설레게 만들었으니까.
‘실제 F1 카에 타면, 그땐 심장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전생 처음 F1 카에 올랐을 때 보다 가슴은 벅찼고, 심장이 요동쳤다. 한 번 죽고나니, 시뮬레이터 앞에라도 앉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은 흘러넘쳤다. 이미 다 겪어본 과정이지만, 포뮬러 원을 배우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한국에서 눈 뜬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마라넬로에 와있어.’
숙소를 나와 마라넬로 내 위치한 전용 짐(Gym, 피트니스 센터)으로 향하는 서준하. 7년 전 처음 낯선 땅에서 자신의 꿈을 세우던 때가 떠올랐다. 불과 몇 년만에 지금 그 꿈의 문턱에 와있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뭐가 그렇게 웃겨어?”
빨강, 노랑, 하양의 색조화가 아름다운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유니폼. 센터 앞에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서준하의 매니저, 한서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어때? 잘 어울리지?”
“옷이 좀 작은 거 같기도 하고...”
“아냐 아냐, 원래 이렇게 입는 거라고. 그리고 이거! 짜짠, 드디어 나왔어!”
서준하의 매니저 직책으로 페라리 팀 공식 스태프가 된 한서윤. 그녀가 자신의 직함이 적힌 카드 한 장을 꺼내들자, 뒷면의 페라리 금박 로고가 빛을 받아 번쩍였다.
“아참, 준하 선수! 우리 SNS 한 번 더 뒤집어진 거 알아?”
서준하가 페라리 팀에 합류하고 난 후로 그의 소식을 빠짐 없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한서윤. 휴대폰을 꺼내 서준하의 공식 SNS를 보여줬다.
“반응이 장난 아니야...! 벌써 소원 성취를 했다는 댓글도 있을 정도니까, 호호.”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 사진에는 페라리 팀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활동 중인 서준하가 있었다.
모터스포츠 팬이라면 한 번쯤은 꿈꿨을 페라리 팀의 유니폼. 실제 한국인 레이서가 그 유니폼을 입은 사진은 국내 많은 페라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크... 확실히 멋있긴 하네...”
자신이 매니징 하는 선수라 그런 건 아니다. 한서윤이 보기에도 서준하는 완벽한 페라리 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팀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이제 페라리 카에 딱 타서 태극기 한 번 휘날리면... 그땐 정말 SNS 폭발이야, 폭발. 흐크크.”
단순히 새로운 유니폼을 입은 사진 몇 장만으로 국내 팬들을 취하게 만든 서준하. 그런 그가 페라리 카에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요?”
행복한 상상에 잠긴 그녀를 이끌고 서준하가 피트니스 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
“성격도 밝고 긍정적이더라고요. 근데 신기한 건 얼굴을 본 지 며칠 안됐는데,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지더라니까요.”
“에이, 며칠 봤다고, 그래.”
“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처음엔 낯을 좀 가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던데요?”
페라리 전략팀 오피스로 모여드는 팀원들. 지난 며칠간 서준하와 지낸 루에다가 첫대면의 느낌을 털어놨다.
“뭐랄까, 준하가 여길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원래 처음 어린 드라이버들이 마라넬로에 오면 바짝 긴장하고, 막 얼굴 색이 별로잖아요.”
“맞아요, 정말 마라넬로가 처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몇 번 매니저 없이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너무 여유롭더라고요. 여기가 좀 복잡하고, 큽니까?”
TV에서만 보던 유명 엔지니어들은 물론, 복잡하고 웅장한 시설에 어린 레이서라면 쉽게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이전의 선배들이 그랬고, 지금 메인 레이서들조차 입단 초반엔 모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흐음, 안토니오치,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서준하의 초반 적응을 체킹 중인 아리바베네 총감독. 전략 팀원들의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서준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전략 책임자를 향해 고갤 돌렸다.
“솔직히 시뮬레이터 주행날 많이 놀랐습니다. 르클레르는 물론이고, 제가 가르친 대부분의 레이서가 스타트 연습 출발과 동시에 엔진 스톨을 냈는데... 이 친군 설명 없이도 단번에 해내더군요.”
“단번에?”
테스트 드라이버라면 당연스럽게 겪게 되는 과정이었지만, 서준하는 예외였다. 평소 안토니오치는 과장을 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 그런 그가 서준하를 치켜세우자, 아리바베네 감독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학습 능력도 뛰어나고, 예상했던 것보다 교육 기간이 짧아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심적으로 상당히 여유가 있는 레이서처럼 느껴지더군요.”
“흐음, 여유라... 다들 평이 좋구만.”
제아무리 드라이빙 테크닉이 우수하고, 뛰어나더라도 어린 레이서들은 새로운 환경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아리바베네의 경험상 신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단연 새로운 관계에 대한 적응이었다. 팀원들의 반응에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데,
“그렇다면 이번달 말, 신차 발표식에 서준하도 내보내는 게 어떻겠나.”
사실 페라리에 몸담는 일은 소속팀 드라이버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이태리 현지 언론은 물론, 전세계 미디어가 페라리의 레이서에겐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때문.
새로운 차량을 선보이는 신차 발표식. 이를 나서는 레이서는 신차와 이번 시즌 팀의 대략적인 정보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즌의 선포식과도 같기에 수많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요한 행사다.
“준하를 신차 발표식에요?!”
“아직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친구한테는 쉽지 않은 자리 같은데요...”
조금 전까지 서준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던 팀 스태프 몇몇이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들의 우려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 아리바베네만이 아니었다. 안토니오치 역시 흐뭇한 미소로 총감독의 의견을 지지했다.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잘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친구입니다.”
팀 보스의 결정에 대한 향한 아부가 아니다. 지난 며칠간 서준하에게 받았던 예사롭지 않았던 느낌. 그것은 오랜 세월 페라리에 몸담았던 안토니오치가 뛰어난 레이서들로부터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하하, 오케이. 이제 서준하를 불러주게.”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아리바베네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냥 왠지 이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