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18화 (118/200)

<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어 >

“현재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한국인 드라이버와 한국인 기자단의 만남. 이태리 마라넬로 프레스 센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장에서 서준하가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었다.

“프리 프렉티스 드라이버로 선발된 후로 저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별 서킷 공략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차량 개발과 행사보단 실제 그랑프리에 나가게 될 상황에 대비해 훈련합니다.”

그밖에도 매일 강도 높은 체력 트레이닝을 소화했고, 이번 시즌 전략 회의에도 참가했다. 서준하가 대답을 마치자, 여기저기 질문을 원하는 기자들이 손을 흔들어댔다.

“그렇다면 혹시 언제쯤 출전하게 되는지 서준하 선수도 알고 있나요? 정확한 출전 날짜가 궁금합니다.”

앞선 서준하의 답변에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자가 현장에 있던 대부분이 궁금해 했던 질문을 던졌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F1 그랑프리 연습 주행이 열리는 금요일. 메인 레이서들이 서킷에 적응하고, 팀은 본선까지의 대략적인 세팅값을 정하는 중요한 날이다. F1 역사에서도 테스트 드라이버가 실제로 프리 프랙티스에 나온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어느 경우에서건 F1 팀은 GP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메인 레이서가 연습 주행에 나간다. 다만, 페텔이나 라이쾨넨이 부상 등의 이유로 시즌 아웃하게 된다면, 서준하가 그 자릴 대신하게 된다.

“많은 국내팬들이 서준하 선수의 데뷔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요. 혹시라도 출전 기회를 갖게 된다면, 처음 서는 F1 무대 자신 있으신가요?”

처음 서준하가 F3를 뛸 때 국내팬들은 그가 GP2 주전이나 F1 하위팀의 테스트 드라이버에 자리하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의 기대는 더욱 높아져, 입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가 곧바로 F1에 데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저는 지금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기회가 제게 주어진다면, 이전의 레이싱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시는 기대와 성원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한국의 포뮬러 원 레이서가 되겠습니다.”

많은 기자들 앞에 엄청난 자신감을 드러내는 서준하. 이는 팀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으며, 경쟁 라인에 있는 동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기도 했다.

‘저 눈빛은 진짜야..!’

국내 유명 신문사 청명 일보의 해외 스포츠 전문 기자, 한하석. 오랜 기간 스포츠 선수들과 인터뷰를 나눠왔던 그에게 지금 서준하의 눈빛은 강한 자신감을 품어냈던 다른 성공한 선수들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기자들의 박수에 한하석이 연신 손뼉을 마주치며 짜릿함을 느꼈다.

‘한국에서도 최초의, 아니, 최정상의 드라이버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게 아닐지도 몰라.’

지난해보다 더 성장해 있었고, 자신감은 충만해 보였다. 아직 F1에서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었지만, 그의 답변만으로 한하석은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차 버렸다.

‘이 엄청난 느낌을 온전히 텍스트로 전하고 싶다..!’

오늘 기자회견 영상이 국내로 퍼져나가겠지만, 한하석은 자신이 지난 몇 년간 서준하를 보고 느껴온 것들을 글로 적어내고 싶었다. 한국 모터스포츠 팬의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헛된 꿈이라고 여겨왔던 F1 데뷔를 지금 눈앞의 남자가 이뤄낼 것 같다고.

***

“음, 졸린 기분이다. 좀 더 자야 할 것 같은데.”

“어제 일찍 잤잖아. 그렇게 자고도 또 졸리다는 거냐.”

F1 어느 팀이건 같은 팀 레이서들의 사이는 그닥 좋지 못하다. 레이스 1위는 단 한 명뿐이라는 구조상, 라이벌은 물론 실력 편차가 큰 베테랑과 신입의 관계도 좋은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페라리의 메인 레이서 페텔과 라이쾨넨은 평소 같이 운동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특이한 케이스다. 드라이버 피트니스 센터로 들어온 두 사람. 페텔이 졸린 눈의 라이쾨넨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야, 저 녀석 매일 아침 열심이잖아. 오늘도 일찍 나왔나 본데?”

지난 몇 주간 가장 먼저 피트니스 센터에 도착한 드라이버는 신입 서준하였다. 어제와 똑같은 광경에 페텔이 서준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던 라이쾨넨이 페텔을 향해 웃으며 말을 꺼내는데,

“프리 드라이버 자리 두고 르클레르 발라 버렸다는데, 이러다 저 친구가 너처럼 금방 데뷔하는 거 아니냐?”

“뭐? 그 말은 너랑 나, 둘 중 한 명은 험한 꼴 본다는 말이잖아.”

2007년 시즌 BMW 자우버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저스틴 페텔. 당시 자우버의 메인 레이서 로버트 쿠비차의 부상으로 데뷔했던 그가 미국 GP에서 8위를 기록하며, 테스트 드라이버가 가진 선입견을 깨부순 바 있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근데 라이쾨넨, 너.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아까랑 다르게 눈도 더 커졌고?”

과묵한 성격의 라이쾨넨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자, 페텔이 이를 포착했다.

“음, 나도 몰라. 갑자기 졸음이 확 깼어.”

2001년 F1에 데뷔한 이후 2007년 월드챔피언을 차지하며 2016년 현재까지 활약 중인 라이쾨넨. F3도 거치지 않고 르노시리즈에서 곧바로 F1에 데뷔한 또 하나의 역대급 선수로, 37살의 베테랑 F1 드라이버다.

하지만 평소 흔들림 없는 레이스를 보여주는 그 역시 임박한 은퇴 시기와 맞물려 조금씩 기량을 잃고 있었다. 무엇보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입 레이서의 등장은 라이쾨넨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적응 속도가 빨라. 작년에 몬차에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데뷔니, 뭐니 그런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야.”

없던 경계심이 생긴 건 페텔 또한 마찬가지. 팀원들의 평가가 훌륭한 만큼 실력 있는 레이서가 분명했고, 4회 연속 월드 챔피언인 자신의 앞에서도 위축되는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다.

‘처음과는 많이 달라.’

서준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이전과 달라진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선수의 시선을. 그 안에는 약간의 경계심과 긴장감이 담겨있었고, 서준하는 그 시선을 즐겼다.

‘다들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겠지.’

이곳은 철저한 실력주의가 지배하는 포뮬러 원의 무대. 페텔과 라이쾨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전의 성과와 팀에 대한 헌신이 제아무리 대단했을지라도, 또 다른 실력자 앞에선 온정 따윈 베풀지 않는 곳이라는 걸.

‘특히 라이쾨넨,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어.’

라이쾨넨을 바라보는 서준하. 자신과 눈이 마주친 라이쾨넨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부와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앙.

어리고 경험 적은 레이서들이 뉴 레코드를 세우는 일은 단순히 과거보다 차량 성능이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 모터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건 다 시뮬레이터 덕분. 언제 어느 GP에 투입될지 모르는 프리 프랙티스 드라이버에게 세계 전역의 서킷을 마음껏 돌 수 있게 만든 시뮬레이터는 소중한 장비였다.

“루에다, 이거 오늘 내 데이터야. 같이 분석 좀 도와줘.”

“또? 흠... 그래, 준하 너니까 또 한다...”

체력 훈련과 간단한 미팅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서준하는 시뮬레이터 앞에 앉았다. 결코 서킷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보여주기식으로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다.

서준하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뮬레이터로 그랑프리 서킷들을 돌면서 얻게 되는 가상의 주행 데이터. 실제 주행과 똑같진 않지만, 갑작스럽게 투입되는 상황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데이터다.

“봐. 여기 던롭(스즈카 서킷의 3턴)에선 오른쪽으로 밀려났지? 이건 준하, 네가 핸들링을 많이 썼다는 증거야. 되도록이면 악셀링만 가지고 돌아 나가는 게 좋아.”

이렇게 연습과 분석을 쉬지 않는 서준하는 매번 페라리 팀원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요청에도 팀원들은 그를 도왔고, 오히려 그의 집요함을 높이 샀다.

“잠깐 쉬었다 하게, 준하 군. 아까 오전부터 쉬는 걸 못 봤어.”

주행 데이터를 띄운 모니터 앞에 앉은 서준하와 루에다. 그 옆으로 전략 책임자 안토니오치가 다가섰다.

‘마누엘의 모습을 보는 듯하구만.’

오랜 기간 페라리 팀에 몸담았던 안토니오치. 여태껏 봐온 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의 드라이버는 바로 슈마허였다. 그는 단순히 차를 잘 모는 선수가 아니었다. 뛰어난 모터레이싱 지능과 관찰력, 엔지니어링 파트에 대한 지식까지. 하지만 그런 슈마허의 모습이 서준하에게서 보이는 듯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어.’

슈하머의 최강점은 바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팀 빌드업이었다. 팀원들과 활발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가져가며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가는 것. 고작 테스트 드라이버에 불과한 서준하지만, 팀원 한 명 한 명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미 어떻게 성공하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슈마허 이후 이런 선수는 거의 없었다. 안토니오치는 그런 서준하에게 끌렸고, 계속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슈마허와 같이 어린 그가 페라리가 누렸던 옛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깐 얘기 좀 하지, 안토니오치.”

안토니아치가 이런저런 생각에 깊이 잠길 때쯤 아리바베네 감독이 그를 불렀다. 시즌 시작 전 바쁜 감독이 따로 그를 부른 건 무슨 이유가 있는 듯했다.

“자네가 보기에 서준하는 어떤가?”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가능성. 자넨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처음엔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지만, 점점 그가 하는 말의 의중을 알아챈 안토니오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데,

“제 생각엔 이번 시즌 그랑프리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안토니오치의 말에 미소 짓는 아리바베네. 자신의 결단이 더욱 확고해진 듯 고갤 끄덕였다.

“하하, 레이서에 대한 자네 판단은 틀린 적이 없었지.”

곧바로 팀 전체 스케쥴을 체크하는 아리바베네. F1 캘린더가 적힌 페이퍼를 펼쳐놓고는 다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2016 F1 World Champ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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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 중국 GP 4월 17일]

[4R. 러시아 GP 5월 1일]

[5R. 스페인 GP 5월 15일]

“어디 보자... 아시아 쇼런이 중국 GP 이전에 하기로 했으니까...”

스케쥴표를 이리저리 검색하는 아리바베네 감독. 옆에선 안토니오치 역시 신중한 표정으로 캘린더를 바라보고,

“가장 적합한 곳이 보이는군요.”

안토니오치의 시선이 한곳을 향해 머물자 감독 역시 고갤 끄덕였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네.”

스페인 GP가 열리는 바르셀로나-카탈루냐 서킷. 시즌 시작 전 공식 테스팅 주행이 열리는 곳으로 상대적으로 GP기간 동안의 프리 프렉티스 부담이 적은 서킷이다.

“서준하의 르노 시절, 아트의 경지에 올랐다는 찬사를 받은 곳이죠. 카탈루냐가 괜찮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동의하는 안토니오치. 집무실 창문 밖으로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서준하의 얼굴이 보였다.

<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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