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진짜 네 속마음이겠지 >
“모터레이싱 꿈나무들이 나오죠?”
한국의 4월 봄 주말. 잠수교 아래 행사를 위해 설치된 펜스 안으로 125cc 고카트가 두 대가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주행 중인 선수들은 케노 카트팀의 김민서 군과 정찬영 군입니다. 서준하 선수처럼 F1 레이서를 꿈꾸는 친구들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서울 잠수교 구간에서 진행된 페라리 팀의 쇼런 행사.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행사 진행을 맡은 조진표가 유소년 선수들을 소개했다.
끼이이이익.
바당 바다다다.
끼이이이이익.
“카트에 이어 페라리 458 이탈리아가 드리프트 쇼를 선보입니다! 시작부터 굉장히 설레는군요.,..!”
많은 국내 팬들의 로망과도 같은 빨간색 페라리의 스포츠카. 급발진과 급감속을 이어가며 짜릿한 스키드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서준하 선수가 등장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메인 행사 시작을 위해 오픈카에 올라탄 서준하가 잠수교로 모습을 드러냈다. 약 1만 명에 가까운 팬과 시민들이 내지르는 함성. 잠수교가 난리가 났다.
“와, 정말 엄청난 인기군요...! 서준하 선수가 오늘 어떤 걸 보여줄지 굉장히 기대가 되는데요! 안녕하세요, 서준하 선수!”
“안녕하세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서준하입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저희 얘기 좀 할게요, 여러분. 하하.”
페라리 팀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마련된 무대에 올라선 서준하. 자신을 향한 끊이지 않는 팬들의 함성에 보답하기 위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페라리 팀이 오늘 쇼런 행사를 기획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서준하 선수?”
“네, 사실 이제는 한국에서 F1 GP를 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됐잖아요? 그래서 팀에서 좀 더 많은 분들에게 F1 레이싱카의 엔진음을 들려드리고자 이 자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TV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도심 속 레이싱 카의 질주. 더 이상 코리아 GP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 F1 경주차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무료로 서울 일반 도로에서 시민들에게 모터스포츠를 알리는 건 가슴 벅찬 일이었다.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일반 도로를 고르다 보니까 잠수교로 오게 됐어요. 제가 직접 F1 카를 몰고 총 세 번 잠수교를 왕복하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반포한강공원 잠수교는 서울 도로의 상징적인 장소. 오늘 서준하는 1.1km의 잠수교 구간을 남북으로 질주할 계획이었다. 시작부터 시민들의 반응이 엄청난데,
“어, 잠깐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엔진음과 배기음이 생각보다 많이 크거든요.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미리 좀 알려주세요.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콕핏에 오르기 전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서준하. 곁에선 조진표가 그의 세심한 배려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두두두두두두둥.
실제 2015시즌 F1 GP를 주행했던 페라리 팀의 SF15-T. 머신에 시동이 걸리자, 주위 펜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엄청난 플래시 세례에 경주차와 서준하의 헬멧이 연신 번쩍거렸다.
위이이이잉
부와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앙.
“...!!!”
“...!!!”
“...!!!”
신호에 맞춰 경주차를 움직이는 서준하. 100dB에 육박하는 엔진 굉음은 모터스포츠 팬들의 흥분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바로 옆 펜스에서 소리를 들은 시민들 가운데 온몸에 전율이 돋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얌전했던 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안 보이지만, 서준하 선수가 벌써 반대쪽에 도착한 모양이군요.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카다워요...!”
안정상 속도를 조절해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에 도착하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은 상황. 멀리서부터 다시 한번 포뮬러의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와우! 확실한 팬서비스입니다!! F1 레이싱 카로 드리프트 쇼를 벌이는 서준하!!!”
반대편 직선 구간에서 복귀하며 다시 차의 머리 방향을 틀기 위해 리어 타이어를 미끄러트렸다. 계획에 없던 퍼포먼스로 팬서비스를 확실하게 하는 서준하. 엄청난 스키드음과 함께 도너츠 모양의 스키드 마크가 노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엄청난 쾌감을 맛본 건 시민들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잠수교를 달리며 펜스 옆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을 흘겨봤다. 특히나 놀라움과 감격으로 범벅이 돼버린 어린아이들의 표정은 서준하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전생 서준하는 영국에서 이런 쇼런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자랐다. 어린 나이에 보고 들었던 첫 F1 카의 질주는 너무나도 강렬한 것이라, 그의 모든 걸 쏟아붓고 싶다는 충동을 만들어냈었다. 결국 그 충동은 모터스포츠 레이서라는 꿈을 꾸게 만들었고, 오랜 기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스피드를 지배하는... 레이싱 드라이버라의 세계로 들어와라..!’
어쩌면 서준하와 비슷한 꿈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한국의 아이들에게 F1의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경쾌하게 F1 카를 몰았다.
“서준하가 한 번 더 질주를 시작합니다!”
***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2016 F1 GP 3라운드 레이스가 열린 중국의 상하이 국제 서킷(Shanghai International Circuit) 메르세데스 AMG 팀의 로이스 해밀턴이 22번 그리드에 위치했다. 이번 시즌 역시 단연 GP 우승 후보인 해밀턴이 엔진 문제로 퀄리파잉을 망치며, 하위권에서 레이스를 시작하는 상황인데,
“3라운드 스타트!”
“해밀턴! 자신의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라는 듯 빠르게 하위권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1턴에서 마싸가 해밀턴을 가로막는데요. 아...!”
평소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드라이빙으로 서킷의 악동이라는 별명을 가진 해밀턴. 시작부터 앞차와 컨택을 일으키며 중계진들의 관심을 끌었다.
“상황을 다시 봐야겠지만, 방금 전 돌진에서 마싸의 프론트 윙이 박살 났습니다...!”
“흠, 이건 뭐 어제 퀄리파잉에 대한 복수 비슷한 걸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가 악동의 이미지를 갖춘 건 드라이빙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특정 선수들과의 잦은 트러블로 구설수에 올랐고, 그때마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메르세데스라는 최고의 팀에 자리한 건 다 이유가 있는데,
“마싸를 추월한 13턴을 빠르게 돌아 나온 해밀턴! 이어지는 백스트레치를 공략하며 단숨에 7위에 랭크합니다!”
“엄청납니다! 스타트가 22위였었거든요? 지금 5랩 만에 15명을 넘고 올라왔어요..! 그야말로 이 시대 톱 드라이버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숏런을 따내는 스피드가 역대 레전드 드라이버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 팀의 라이벌 닉 로즈버그를 제외하면 2014시즌 이후 그 어느 누구도 해밀턴을 이기지 못했다.
덕분에 2016시즌 초반 역시 메르세데스가 연일 우승을 차지하며 또 한 번 챔피언 후보에 우위를 점했다.
“16랩 어느새 라이쾨넨의 뒤까지 따라온 해밀턴! 최고의 라이벌 페라리와 메르스데스가 배틀에 들어갑니다!”
201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메르스데스 AMG팀과 해밀턴. 그들의 라이벌 팀을 꼽자면 단연 페라리다. 라이벌 간 경쟁이 시작되자, 갤러리는 더욱 뜨거워졌다.
“해밀턴이 라이쾨넨의 뒤에 붙자 티포시들이 엄청난 야유를 쏟아냅니다!”
“흥미로운 배틀이 될 것 같습니다! 해밀턴과 라이쾨넨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거든요?”
2010년 이전 데뷔한 해밀턴은 루키 특유의 무모함으로 많은 선수들과 부딪혔는데, 그때 가장 많이 엮였던 게 페라리 드라이버들이었다. 페라리 팬들에게 그런 해밀턴은 거의 원수와도 같았고, 매 GP 그의 활약에 야유를 보냈다.
“아! 11턴 헤어핀 진입 전, 브레이크를 최대한 늦춘 해밀턴이 라이쾨넨을 추월합니다!!”
안타까운 추월 장면에 절규하는 티포시들. 팀 드라이버의 부진에 맘이 아픈 건 서준하도 마찬가지였다. 추월에 성공한 해밀턴의 드라이빙이 콕핏에 대기 중인 서준하의 눈에도 들어왔다.
‘로이스 해밀턴, 불리한 조건에도 숏런이 굉장히 강해...’
서준하의 눈에도 해밀턴은 단연 최고의 F1 드라이버였다. 최정상 자릴 꿈꾸는 서준하에게 그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번 생 다시 한번 느낀 그의 존재감 앞에서 서준하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
“빨라, 벌써 도착했구만.”
2016 시즌 5라운드가 열리는 바르셀로나-카탈루냐(Circuit de Barcelona-Catalunya) 서킷. 서킷 정문에 도착한 서준하의 눈앞으로 바람에 휘날리는 커다란 스페인 국기가 보였다.
“긴장되지?”
“음, 괜찮습니다.”
Hass-Ferrari 팀의 프리 프렉티스 주행 드라이버로 이번 라운드를 나서게 된 서준하. 신입 레이서에게는 충분히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다. 레이서들의 맘을 잘 아는 레이스 엔지니어 데이브가 출전 서킷을 찾은 그의 어깰 주무르며 곁에 섰다.
“마라넬로에서 계획했던 대로 준비하게. 하스 팀 레이서들하고도 잠깐 인사 나누도록 하지.”
데이브의 소개로 메인 레이서 그로장과 구티에레즈와 인사를 나누는 서준하. 웃는 얼굴로 패독에 위치한 하스 팀의 하우스로 들어왔다.
“안녕, 준하. 부디 차만 부수지 말아줘. 하하. 아냐. 농담이다, 농담.”
서준하를 웃으며 인사하는 팀의 세컨드 레이서 구티에레즈. 그는 지금 상황이 못마땅했다. 이미 F1 무대에 데뷔한 그들에게 서준하는 어리고 경험 없는 레이서였을 뿐이었으니까.
게다가 4라운드까지 22포인트를 취득으로 팀을 시즌 5위에 랭크시킨 하스 팀 레이서들이기에 서준하가 대신 연습 주행을 맡게 된 지금 상황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게 진짜 네 속마음이겠지.’
구티에레즈의 말에 서준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지만,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서준하는 아직 공식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으니까.
‘앞으론 분명 오늘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거야.’
아마 금요일이면, 이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서킷은 그 역시 수천 번 테스팅했던 카탈루냐였고, 차량의 환경은 동일했다. 주변의 우려와 기대가 어떻건, 서준하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이제 차량 점검 시작할까요?”
2016 스페인 그랑프리. 이번 생 서준하가 처음으로 포뮬러 원이라는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그게 진짜 네 속마음이겠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