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1화 (121/200)

<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꾹 참아온 듯 >

“아, 역시 로즈버그가 빠릅니다. 뒤늦게 나왔지만, 서킷에 금방 적응해 버리는군요...!”

2016 F1 5R FP1이 열리는 카탈루냐 서킷. 일본의 에프원 전문 잡지사, 포뮬러 J의 두 기자가 메르세데스 팀의 활약에 감탄을 내뱉었다.

“워밍업을 마치고 속도를 높이는 데까지 들어간 시간이 고작 10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로즈버그도 좋지만, 해밀턴도 무지하게 빠르군요..!”

이번 시즌 처음으로 F1을 직관한 신임 기자 와타루에게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드라이빙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영상과 소문으로만 보고 듣던 느낌은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와타루의 감탄에 곁에선 선임 기자 마에다도 고갤 끄덕였다.

“경주차 성능의 차이도 있겠지만, 특히 해밀턴 같은 경우는 트래픽이 없을 땐 거의 최강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숏런에 강하지. 이번 시즌 역시 메르세데스와 해밀턴이 강세인 건 확실해.”

뒤늦게 시작한 FP1이지만, 메르세데스의 두 드라이버는 한 바퀴를 마칠 때마다 계속해서 상위권 기록자로 랭크했다. 환경과 서킷이 바뀌더라도 강팀은 여전히 강팀. 페라리의 페텔과 라이쾨넨 역시 처음부터 선두 기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하스가 5위?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선전하는데요?”

신임 기자의 말에 전광판을 흘겨본 마에다. 전체 순위 5위에 랭크한 코리안 레이서의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5위와 6위의 랩타임 차는 0.5초 이상이었고, 상위권과의 기록차도 얼마 되지 않았다.

“기록은 5위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랩을 소화했구만.”

테스팅 주행 성향이 강한 지금 FP1과 아직 몇 바퀴 더 남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현재 순위가 레이서들의 실력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거라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키 레이서의 선전은 오랜 포뮬러 기자 생활을 해온 마에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카탈루냐의 공략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특정 구간에서 트랙 바깥까지 밀려나지 않는 한계점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네, 사실 그 포인트란 건 대회를 준비하는 F1 레이서라면 누구나 잘 아는 것이지만, 실제로 적용해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저 레이서는 이론은 물론, 그런 실전 경험까지 두루 갖췄다는 느낌이 들어.”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특정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마에다 기자. 한국의 레이서는 상당한 경험을 갖춘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련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저런 집중력을 가진 선수가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아직 한국은 포뮬러 입문 카테고리조차 활성화가 안 된 나라일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한국인들에겐 오늘 FP1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겠구만.”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포뮬러 리그를 가꾸고 키워온 일본으로선 지금 서준하라는 코리안 레이서의 활약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F1 무대에 올라 GP에 출전한 일본 선수들은 많았지만, 지금 서준하와 같이 페라리라는 최고의 팀에 소속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인물은 없었으니까.

“마치 돌연변이 같다는 생각이 드네. 나이와 배경으로 봤을 땐 지금 상황은 거의 불가능한 거니까.”

서준하는 모터스포츠라는 생물계의 돌연변이 같았다. 오랜 기간 이 바닥에 종사하며 루키 레이서들의 주행을 지켜봤지만, FP1 첫날부터 관심을 끄는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눈앞에서 나타났고, 한국이라는 출신 배경은 두 기자의 맘속에 은근한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생각보다 일찍 페라리 카를 타고 그랑프리에 나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거 참 엄청난 일인데...”

일본에도 카타야마, 사토, 고바야시 등 괜찮은 F1 드라이버들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일본 소속 팀에서 활동하는 등 최정상 팀에선 뛴 적 없었다. 국가를 막론하고,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페라리와 같은 최정상 팀의 경주차를 운전하는 자국 선수를 상상하는 일 만큼 짜릿한 건 없다.

“오늘처럼만 주행해줘서 팀에 신뢰를 줄 수 있다면... 최초의 동양인 페라리 드라이버라는 타이틀을 저 친구가 가지게 될지도...”

서른 바퀴가 가까워져도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는 서준하. 그의 경주차가 포뮬러 J 기자들이 위치한 G 스텐드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

‘아까보다 가벼워졌다.’

현재 시간 12시 22분. FP1 선수 가운데, 가장 오래 서킷을 돈 건 단연 서준하였다. 정확히 서른 바퀴를 마치자 코너링에서 느껴지는 경주차의 하중이 시작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준하, 이번 랩 마치고 연속 두 바퀴 마음껏 달리도록

이런 느낌은 드라이버만 받은 게 아니었다. 연료 소모량과 출발 전 세팅 값을 계획한 팀 피트에서도 서준하의 플라잉 랩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앙.

위이잉.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레이스 중 연료 소모로 머신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랩타임이 올라가는 현상인 퓨엘 이팩트(Fuel Effect)를 노려볼 타이밍. 어쩌면 오늘 서준하의 FP1 하이라이트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집중력을 밀어붙이는 거야, 준하야!

서른 바퀴까지 안정적이고 꾸준한 주행으로 팀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앞으로 종료까지 남은 바퀴는 보너스 점수 획득을 위한 차례.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 데이브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서준하가 31랩을 스타트 했다.

“플라잉 랩을 달리는 선수가 몇몇 보이는군요. No.50 서준하! 하스의 하얀색 포뮬러카가 1턴의 안쪽을 빠르게 파고듭니다!”

지금까지의 주행이 사고와 충돌이 나지 않는 것까지 신경 쓰는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 서준하는 최대한 빠르게 코스들을 돌파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막판 빠른 스피드 덕분에 서준하에게로 향한 갤러리의 시선들. 기대에도 없던 루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듯, 3턴으로 진입하는 서준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미디움 타이어의 서준하.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꾹 참아온 듯! 이제 플라잉 랩을 달립니다...!”

1시간 동안 서킷을 달리며 카탈루냐의 모든 주행 경험들을 통일시켰다. 시뮬레이터로 얻은 데이터와 비교했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달린 기억들을 현재 세팅과 차량에 맞는 하나의 주행법으로 일치시켰다.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서준하! 플라잉 랩 처음 본인의 베스트 기록을 만들어냅니다!”

한 턴 한 턴 과감한 돌파가 성공할 때마다 짜릿함을 느꼈고,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 해밀턴만큼이나 강한 숏턴을 보이며 바퀴당 0.07초를 단축, 퓨엘 이팩트와 함께 32랩 23초대에 올라섰다.

‘아직 한 바퀴 더 남았어..!’

시작 전 목표했던 랩타임은 이미 넘은 상황.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 엔지니어 데이브의 환호가 무전으로 전해졌지만, 서준하는 기뻐하지 않았다. 아직 종료까지 3분 남짓 남았고, 서준하는 파이널 랩을 시작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현재 플라잉랩을 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라이쾨넨, 페르스타펜, 리카르도, 서준하... 많은 선수들이 연습 주행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오콘의 사고 이후 경기 내내 조용했던 카탈루냐가 종료 직전 갑자기 달아올랐다. 마치 퀄리파잉을 연상하는 듯한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랩타임에 기대를 걸었다.

“빠릅니다! 라이쾨넨을 시작으로 마지막 턴을 빠져나오는 선수들! 자, 과연...!”

[FP1 Result]

[순위/ 차량 번호/ 선수/ 베스트 랩타임]

.

.

4위/ No.7/라이쾨넨/ 1:23.978

5위/ No.50/서준하/ 1:24.071

6위/ No.8/리카르도/ 1:24.124

플라잉 랩을 달렸던 세 선수가 연달아 피니시했다. 곧이어 리카르도에 이어 스타트 라인으로 들어오는 한 선수.

띠링.

[4위/ No.50/서준하/ 1:23.515]

“와하하! 마지막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서준하가 라이쾨넨보다 0.5초 가량 빠르게 들어오며 4위에 랭크합니다!”

모두가 기록을 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오늘 FP1이지만, 그건 서준하도 마찬가지다. 첫 FP1에서 4위에 랭크한 서준하. 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

“휠베이스가 길어진 효과가 카탈루냐에선 빛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네요. 아무래도 카탈루냐는 중고속 코너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FP1을 마치고 하스 팀 피트로 복귀한 서준하. 자신의 주행 데이터를 점검하며 퍼포먼스 엔지니어들에게 피드백 사항을 전달했다.

“그, 그래?”

“네, 덕분에 안정성은 높아졌는데 빠른 방향 전환이 필요한 몇몇 구간에선 확실히 효율이 떨어집니다.”

연습 주행의 본질은 본선 전 출전 선수의 감각을 키우는 데도 목적이 있지만, 현재 차량 세팅에 대한 점검도 필수. 상급자와 그 아래 드라이버를 나누는 기준은 랩타임 결과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들이 느낄 수 없는 세심한 사항을 발견하는 피드백 능력도 포함된다.

“오케이, 참고 할게. 흠... 이건 개발팀하고 상의해야 할 거 같은데...”

“아마 에보 서스랑 함께 쓰면 본래 목표했던 안정성은 살리면서도 전환 속도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요. FP2 때 한번 테스팅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FP1 종료 후 팀과의 피드백. 많은 영드라이버들이 자신의 첫 주행에 대한 결과에 신경 쓰느라 이 과정을 건너뛴다. 하지만 이 피드백이야말로 FP1을 나서는 드라이버의 할 일이었다.

비록 잠깐 동안 하스 팀 콕핏에 앉았지만, FP1에 참가하는 동안 서준하는 정말로 하스를 자신의 팀이라 여기며 행동했다. 보여주기식 피드백이 아니라, 팀의 진보를 위해 성심성의껏 피드백했다.

앞으로 한 번 더 하스 팀과 FP를 치를지도 모르는 일.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갖고 행동해야 기회가 왔을 때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

“준하, 잠깐 나 좀 보지.”

피드백을 마치고 하스의 피트를 벗어나던 서준하. 패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아리바베네 감독을 발견했다.

‘갑자기?’

서준하가 올 걸 알았다는 듯 먼저 손짓하며 바라보는 아리바베네.

‘전생에도 저런 눈빛을 본 적 있었지.’

평소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기로 유명한 아리바베네. 그의 강렬한 눈빛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FP1, 2.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리바베네.”

자연스럽게 웃으며 감독의 요청을 반기는 서준하. 어떠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꾹 참아온 듯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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