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3화 (123/200)

< 잠시 인터뷰 좀 해주시죠, 감독님 >

“2016 포뮬러 원 월드챔피언십 20라운드, 브라질 GP(Brazilian Grand Prix)! 본격적인 레이스 시작에 앞서 선수들이 포메이션 랩을 돌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호세 카를로스 파시 서킷(Autodromo Jose Carlos Pace), 인터라고스(Interlagos)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2016년의 마지막 직전 그랑프리 본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선두에는 해밀턴, 그 뒤로 챔피언 자릴 다투는 그의 팀메이트 로즈버그, 3위에는 라이쾨넨...”

2016 시즌 역시 압도적인 포인트 차로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메르세데스. 이번 20라운드에도 메르세데스 듀오가 본선 레이스 프론트 로우에 위치했다.

“오늘 레이스가 페라리와 레드불 팀에게 굉장히 중요해졌습니다. 페라리가 오늘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마지막 21라운드 아부다비 GP에서 다시 2위 자릴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오늘 두 팀의 경쟁이 굉장히 치열할 것으로 보여요. 지금 레이스 출발 순위도 3위부터 6위까지, 라이쾨넨, 막누스, 페텔, 리카르도 순입니다. 오늘 페라리가 막판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레드불이 2위 자릴 굳히는 구도를 만드느냐가 오늘 레이스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 챔피언 자리는 메르세데스에게 넘어간 상황.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레드불과 페라리 팀의 피트 월이 번갈아 중계 화면에 잡혔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면, 해밀턴과 로즈버그의 경...”

“엥?”

포메이션 랩을 마치고 그리드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선수들. 먼저 정지한 선두 차량을 살피던 중계진이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옵니다. 비가 오고 있습니다...”

“저, 정말... 역시 인터라고스입니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갑작스럽게...”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서킷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인터라고스. 바닷가 근처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날씨가 굉장히 변덕스럽다. 일기예보에 맞지 않는 상황이 매 GP 연출될 정도로 특이한 곳. 오늘도 어김없이 출발 전부터 참가 팀과 드라이버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거 뭔가 쉽지 않은 레이스가 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선수가 인터미디어트나, 소프트 타이어를 장착했거든요? 아직 비가 많이 내리고 있진 않지만,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땐 쉽게 그칠 것 같진 않습니다.”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오늘과 비슷한 상황을 수차례 겪었던 베테랑 드라이버들의 모습이 잠시 화면에 잡혔다. 특히나 맥라렌의 알론소가 장시간 중계 화면에 잡히는 바람에 몇몇 팬들이 이곳에서의 악몽을 돌이켜보기도 했다.

‘...비?’

서킷 패덕 내 위치한 페라리의 팀 하우스에서 서킷 상황을 살피는 서준하. 멀찍이 갑작스럽게 분주해진 페라리 팀의 피트 월과 게러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출발 전 그리드 위는 고요해 보일지라도, 서킷 바깥으로 팀은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비 내리는 인터라고스라...’

신호가 떨어지자 수십 대의 레이싱 카가 그리드를 나서기 시작했다. 수천 번 보고 경험했던 경주차들의 출발 장면이지만,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런 돌발 변수도 레이싱 드라이버라면 겪어내야 할 하나의 과정이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무사히 레이스를 마치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

“15턴 이후 그로장이 속도를 높입니다! 페텔과의 격차는 2.1초!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격차라면 내리막 코스 이후 4턴에서 배틀이 예상되는데요?”

레이스 시작 10바퀴째. 경쟁자들의 추격으로 페라리 팀 피트는 더욱 분주해졌다. 피트 월 중앙 통제 엔지니어가 아리바베네 감독을 향해 말했다.

“말도나치, 현재 강수량 변화는 어떤가?”

“레이스 시작과 비슷합니다. 아직 큰 변화는 없습니다.”

“흠, 계속 내리고는 있다는 거지...”

비는 많이 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내렸다. 젖은 도면과 드라이한 노면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골 때리는 상황. 지금 드라이타이어를 장착한 드라이버들에겐 최악의 주행 조건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

“오우..!”

중계 화면으로 1, 2코너. 스핀하며 미끄러진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를 지켜보던 페라리 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고,

“누.. 누구지...!”

팀 전원이 탄식을 내뱉으며 혼란스러워할 때 감독은 재빠르게 피트 월을 향해 고갤 돌렸다.

“그로장! 하스의 그로장이 미끄러진 것 같습니다!”

“휴...”

“어우... 난 또...”

“그래도 안 다쳤나 보네. 다행히 그로장이 걸어 나오네요...”

고지대에 위치해 높고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인터라고스. 내리막 고속 코너 직전 페텔의 뒤를 따라붙으려던 그로장이 스핀하고 말았다.

혹여 자신들의 팀 레이서가 피해를 봤을까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던 페라리 팀원들. 이후 굳건히 트랙을 달리고 있는 페텔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등장하자, 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님, 페텔이 타이어 교체가 필요할 것 같답니다. 고속 코너 진입 시 언더스티어가 계속 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구만. 지금 노면 상태가 심상치가 않아...”

그로장의 크러쉬 이후, 더욱 강해진 불안감. 꾸준히 내린 비는 이제 서킷을 완전히 웨트 컨디션으로 바꿔놓았다. 페텔은 물론 많은 선수들이 웨트 타이어 교체를 희망하고,

“레이스 재개됐습니다!”

“오케이, 이번 바퀴를 끝으로 페텔부터 타이어 교체에 들어간다. 라이쾨넨은 다음 바퀴에 피트 인하도록.”

사고 차량으로 중단됐던 경기가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노면은 더욱 미끄러워졌고, 대부분의 팀이 피트 복귀를 지시하는 상황이 됐다.

“페텔 피트 레인 진입! 4초 후에 박스 도착 예상! 피트 크루 대기 바람!”

너도나도 피트로 몰려드는 포뮬러카들. 덕분에 참가 팀들은 다시 한번 대혼란을 겪었다.

“오케이, 이젠...”

큰 무리 없이 타이어를 교체한 페텔이 다시 서킷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아리바베네. 곧바로 라이쾨넨의 복귀 오더를 내리기 위해 상황판을 살폈다. 그런데,

“...!!!”

상황판을 살피던 감독과 주변 레이스 엔지니어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우, 노!!!”

“키만! 괜찮나?! 키만!”

레이스 시작부터 현재까지 3위 자릴 굳건히 지키며 달리던 라이쾨넨. 마지막 코너 15턴 진입하다 방호벽과 부딪히고 말았다.

“키만! 키만!”

우측 프론트 윙과 타이어가 박살난 라이쾨넨의 경주차. 레이스 엔지니어가 부르는 무전에도 라이쾨넨은 답이 없었다.

큰 사고로 보이는 상황으로 곧바로 경기는 중단되고, 잠시 후, 마샬과 메디컬 요원이 그를 경주차 바깥으로 옮기는 장면이 화면에 등장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는 페라리 팀 피트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머릴 감싸 쥔 채 말을 꺼내지 않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괜찮답니다! 괜찮대요! 무전 고장이었답니다.”

“휴...”

“오호호...”

마샬들의 부축을 받고 콕핏을 빠져나온 라이쾨넨.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

“뭐야 왜 저래...!”

차량 바깥으로 빠져 나와 부축을 받고 걷던 라이쾨넨. 처음엔 멀쩡히 걷던 그가 갑자기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

“잠시 인터뷰 좀 해주시죠, 감독님!”

“오늘 레이스가 끝나고 많은 팬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라이쾨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레이스가 끝나고 페라리 팀 하우스 근처로 모여든 포뮬러 기자들. 팀 하우스로 들어서는 아리바베네 감독 주위로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를 에워쌌다.

“음... 충돌과 동시에 우측 발목에 타격이 가해졌고, 염좌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외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차분히 얘길 꺼내기 시작하는 아리바베네. 오늘 사고로 팀은 레드불에게 확실하게 2위 자릴 내준 데 이어 그가 아끼는 레이서 한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현재 페라리 팀이 엄청난 충격을 겪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했다.

“티포시와 키만의 팬들이 슬퍼할 소식이군요... 혹시 부상 정도는 어떻게 되는지요? 2주 뒤에 있을 21라운드에 라이쾨넨이 출전할 수는 있는 겁니까?”

부상 소식에 조용해졌던 기자들. 누군가 정적을 깨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라이쾨넨 본인도 많이 괴로워하는 부분입니다. 사실상 시즌 아웃으로 봐야 할 정도로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선수로 준비된 선수가 따로 있는 건가요?”

시즌 아웃이라는 말에 곧바로 질문을 이어가는 기자들. 사실상 이들이 오늘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감독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여는데,

“아마 서준하 선수가 나가게 될 겁니다.”

“서준하요?!”

“와...!”

“정말인가요?!”

감독의 한마디에 다시 시끌벅적해진 기자들. 팀 하우스로 들어가기 전 감독이 다시 카메라를 향해 고갤 돌리고,

“나가게 될 것이 아니라, 서준하를 내보내겠습니다. 2016 아부다비 GP에 그를 데뷔시키겠습니다.”

이번 시즌 총 세 번의 FP1을 경험한 서준하. 페라리는 이미 그에 대한 검증을 끝낸 상태였다.

다음 시즌 메인 레이서 자리에 오르는 게 유력했던 상황에 이번 시즌 마지막 GP에 내보내기로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답변을 마친 감독이 팀 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준하, 잠시만.”

감독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로 이동하는 서준하. 집무실로 이동하는 동안 팀원들이 자신을 향해 보내는 시선을 느꼈다. 오늘의 결과 덕분에 몇몇은 여전히 축 늘어진 얼굴이었지만, 또 다른 몇몇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끼익.

툭.

자신의 자리에 앉은 감독이 서준하를 보고 얘길 꺼내기 시작했다.

“모든 코치진이 동의한 사항이네. 준하, 이번 시즌 마지막 GP에서 뛰어주게.”

감독의 요청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는 서준하. 라이쾨넨의 시즌 아웃 소식과 함께 느꼈던 기대가 흥분으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결과로 레드불과는 71포인트 차. 레드불이 2위 자릴 확정 지었네.”

현재 446점의 2위 레드불과 375점 3위 페라리. 내일 페라리가 1, 2위를 전부 차지하고, 레드불 팀 두 선수가 리타이어 하더라도 뒤집을 수 없는 차이다. 오늘의 사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페라리가 시즌 3위라는 굴욕을 보게 됐는데,

“이미 오늘 레드불과의 승부는 끝이 났지. 그래서 말이야 데뷔전은...”

오늘 레이스 직후 종일 씁쓸한 분위기의 페라리 팀이었지만, 지금 감독의 눈빛은 어딘가 강렬했다.

“자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게나...!”

이미 4위와의 격차도 110포인트 이상. 서준하가 리타이어해도 뒤바뀌지 않을 상황이었다.

‘데뷔전? 게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된다고?’

지난 FP1 주행에서 오직 팀 오더에 맞춘 드라이빙을 했던 서준하. 설렘과 흥분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잠시 인터뷰 좀 해주시죠, 감독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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