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드시 지켜낸다 >
“타이어를 교체한 서준하! 빠른 속도로 막누스를 뒤쫓습니다!”
서준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후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막누스에게 푸쉬를 가하고 싶었다.
“많은 팬들이 기다려왔던 장면이 나올 것 같기도 한데요...! 이번 시즌 루키들이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막누스는 2015년 호주 그랑프리에서 데뷔하며 F1 사상 최연소 기록을 페텔로부터 가져왔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시즌인 오늘, 한 살 어린 서준하가 데뷔하며 그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 상황.
97, 98년생이라는 비슷한 나이 그리고, 레드불과 페라리의 강팀 소속 선수들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많은 이들이 두 선수의 경쟁을 기다렸었다.
“막누스와의 격차를 좁힌 서준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갈 듯 말 듯!”
“지금 서준하 선수는 굉장히 저돌적이에요...! 아마 상당히 추월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피트 스탑을 준비하는 레드불 피트의 상황과 막누스의 타이어 체인지 타이밍으로 봤을 때 막누스는 지금 인 랩을 달리는 중이었다. 페라리 팀에서도 서준하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그는 보란 듯이 막누스를 압박했다.
부와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앙.
서준하의 앞으로 막누스의 리어윙이 보였다. DRS 존에 들어감과 동시에 막누스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갔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막누스 뒤에 붙어야 했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이걸로도 부족하지.’
어차피 인 랩에 들어갈 막누스에게 무리하게 다가설 필요는 없지만, 서준하는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길 반복하며 추월할 듯한 모션을 취했다.
막누스가 어떤 레이서인지 잘 알기에 그를 순순히 보내줄 수 없었다. 이제 한 시즌을 치른 그는 불안정하지만, 잠재력만큼은 역대급이라 말할 수 있는 레이서. 게다가 현재 연차가 쌓이며 그야말로 완전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해밀턴의 어린 시절 모습과도 상당히 유사한 포텐 있는 드라이버다.
훼에에에에에엥.
시작부터 모두가 라이벌 관계로 지목한 것과 더불어 앞으로 계속 마주치게 될 상대에게 기선 제압을 했다. 11턴 진입 직전 순간적으로 인코스를 파고들며 막누스의 앞으로 나왔다. 그가 진로를 바꿨지만, 서준하의 진입 타이밍은 더 빨랐다.
“서준하! 막누스를 제치고 현재 순위 1위에 랭크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레이스 순위표에 최연소 루키의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군요...!”
해밀턴과 로즈버그가 피트 스탑에 들어간 사이 서준하가 선두를 달렸다. 역사적인 순간, 티포시와 서준하의 팬들이 환호했다. 특히나 한국팬들이 스크린에 표시된 서준하의 이름을 휴대폰과 카메라에 담는 장면이 연출됐다.
-막누스, 박스. 박스. 박스.
막누스가 피트 레인과 가까워지자 레이스 엔지니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전방으로 오늘 데뷔전을 치르는 루키의 모습이 보였고, 지금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사실이 막누스를 분노케 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오늘 라이벌로부터 추월을 당한 건 모두 운이 나빠서였다. 서준하와 배틀하게 될 줄 몰랐었고, 타이어 체인지 타이밍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막누스가 다음 레이스를 기약하며 피트 레인에 들어갔다.
“20초 854, 21초 001! 메르세데스의 타이어 체인지 기록이 놀랍군요...!”
“오늘 참가 팀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입니다. 이제 곧바로 서킷으로 복귀하는 메르세데스의 드라이버들. 선두는 다시 해밀턴이 가져갑니다!”
24랩 2턴에 진입하는 서준하. 피트 레인 출구와 이어지는 3턴으로 실버 애로우즈(Silver Arrows, 메르세데스 AMG 경주차의 별칭)의 모습을 확인했다.
“해밀턴과 로즈버그의 뒤로 페라리의 서준하가 따라붙습니다!”
레이스 중후반, 비슷한 컨디션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 메르세데스 듀오와 서준하. 또 다른 배틀을 꿈꾸는 코리안 레이서가 실버 애로우즈의 리어윙을 쫓았다.
***
“1년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했구만.”
메르세데스 AMG 팀의 피트, 서준하의 페라리 카가 중계 스크린에 등장했다. 곁에선 팀의 비상임 이사회 의장이자 레전드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주법이 많이 달라졌어. 지난번엔 경주차가 좀 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강했는데 말이야.”
지난 시즌 F3 유로피언 대회 준비 당시 뉘르부르크링에서 서준하의 주행을 눈여겨봤던 라우다. 그날의 인상적인 모습과 또 달라진 오늘 주행은 어린 선수의 잠재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게 만들었다.
“전에 한 번 보셨던 적이 있으셨군요. 어차피 페라리와의 승부는 끝났지만, 저도 지금 저 페라리 카가 페텔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놀랍긴 합니다.”
평생을 레이싱이라는 영역에서 살아온 라우다. 그는 드라이버에 대한 남다른 직관이 있는 레전드다. 경쟁 팀 선수를 칭찬하는 듯한 말에도 테오 감독은 고갤 끄덕이며 동조했다.
사실 테오는 여유가 있었다. 이제 레이스가 서른다섯 바퀴를 넘어서는 시점에 팀 레이서들의 라인은 견고했고, 마지막 GP 역시 우승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흠... 그래도 저 친구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런 상황에서도 거슬리는 한 가지는 바로, 라이벌 팀 루키의 선전. 월드 챔피언 자릴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해밀턴과 로즈버그에게 서준하는 마지막 변수였다. 누군가 배틀을 벌이다 실수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이번 시즌 월드 챔피언 자리는 날아가게 될 테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덕분에 누가 챔피언을 차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게 됐어.”
지난 라운드까지 로즈버그와 해밀턴의 포인트는 9점 차로 로즈버그가 앞선다. 만약 오늘 해밀턴이 1위를 차지하더라도 로즈버그가 2위 안으로 들어오면, 챔피언은 로즈버그가 가져가게 된다. 그런데,
“...”
피트 스탑을 마치고 다시 안정적인 레이스에 들어간 메르세데스 듀오. 덕분에 몇몇 레이스 엔지니어들을 제외하곤 피트는 조용했고, 라우다와 감독의 말은 주변에 자리한 지인과 스태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가운데, 오늘 가장 긴장한 얼굴로 스크린을 보는 남자가 있었으니,
‘압박을 더 가해라, 코리안.’
그는 바로 로이스 해밀턴의 아버지, 안톤 해밀턴. 이번 시즌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아들이 3회 연속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는 감격을 맛보고 싶었다. 많은 팀원들이 3위를 달리는 신인의 선전에 주목했지만, 안톤은 그가 더 활약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만일 서준하가 로즈버그를 제친다면, 그의 소원이 이뤄지게 되는 상황. 해밀턴의 절친 로즈버그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페라리의 뉴페이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로즈버그와 서준하 0.912초 차이! 21턴을 빠져나오면서 현재까지 0.12초 가까워졌습니다.”
본격적으로 로즈버그를 압박하기 시작한 페라리의 신인. 메르세데스 팀 스태프들이 긴장 가득한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봤지만, 안톤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48랩 로즈버그와 서준하의 격차는 다시 0.51초! 피트 스탑 이후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는 서준하! 놀랍습니다!”
서준하는 필사적이었다. 이미 자신이 목표했던 포디엄 피니시 가능권에 들어왔지만, 더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 페텔의 추격 역시 무서웠고, 데뷔전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
“다시 한번 직선 주로! DRS 존에 들어간 서준하가 로즈버그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려 합니다!”
첫 번째 직선 구간에서 로즈 버그보다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시케인에 진입한 서준하. 48랩 처음 2위에 올라설 것으로 보이는데,
“성공! 서준하가 로즈버그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섭니다!”
“아직 몰라요! 직선 구간이 하나 더 남았거든요? 이번엔 로즈버그의 차례입니다!”
야스 마리나엔 두 개의 DRS 존이 있는 직선 구간이 있다. 웬만해선 앞차와의 거리가 1초 이내인 경우 쉽게 추월이 가능하다. 하지만 DRS 구간이 하나 더 있기에 저속 시케인에서 뒤차와 1초 이내로 거리를 벌리지 못하면, 그담음 DRS구간에서 재추월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직선 구간에서 로즈버그가 서준하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는데,
“서준하와 로즈버그의 간격은 0.642초! DRS ON!!!”
“로즈 버그가 서준하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갔습니다!”
중계진의 예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이번에는 로즈버그가 서준하를 재추월했다.
“엎치락뒤치락! 두 선수 모두 한 번씩 주고받으면서, 이제 중고속 코너의 마리나 구간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까지 순위를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챔피언 타이틀까지 걸린 레이스!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무척 힘들군요!”
직각 코너가 난무하는 마리나 구간. 해밀턴을 시작으로 로즈버그와 서준하 그리고 페텔까지, 총 네 대의 차가 좁은 간격으로 유지하며 요트 계류장과 호텔을 통과했다.
-해밀턴은 신경 쓰지 마, 어떻게든 남은 6랩 루키를 막아내는 데 집중해, 로즈버그!
2006년 로즈버그가 처음 F1에 데뷔할 당시부터 함께해온 레이스 엔지니어 토니 로스.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드라이버를 집중시켰다.
“그래, 이 자린...”
무전과 동시에 윙미러를 흘겨본 로즈버그. 뒤따르는 페라리 루키의 드라이빙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로즈버그 역시 지난 25년간의 레이서 생활을 통틀어 가장 필사적이었다.
“반드시 지켜낸다...!”
2014, 2015 시즌 모두 해밀턴이라는 괴물에게 챔피언 자릴 내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모든 걸 쏟아부으며 F1 레이서로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영리하게 레이스를 운용했다.
커리어 초반 자동문이라는 별명을 떨쳐버리기 위해 무수히 노력을 했고, 결국 월드 챔피언을 눈앞에 뒀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다시 한번 챔피언을 놓칠 순 없다.
-커리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자, 닉!
이번 시즌 일본 GP 이후 F1 은퇴를 결정했다. 앞으로도 올해만큼의 노력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로즈버그는 이번 시즌 모든 걸 쏟아부었다.
-뒤! 우측으로 들어온다!
아부다비의 사막이 보이는 직선 구간. 또다시 로즈버그의 뒤로 서준하가 바짝 붙었다. 그리고,
부와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앙.
슬립스트림에 들어오려는 서준하를 파악한 로즈버그.
“오늘 여기서 월드 챔피언이 되는 건 나야!!!”
뒤차가 속도를 높이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진로를 바꿨다. 자신의 마지막 F1 레이스를 치르는 로즈버그. 챔피언을 눈앞에 둔 엄청난 투지가 발휘됐다.
[2016 F1 World Championship – ABU GP: 52/55 LAP]
데뷔전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한 남자와 생애 첫 월드 챔피언 자릴 눈앞에 둔 남자의 대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배틀이 막판을 향해 치달았다.
< 반드시 지켜낸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