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0화 (140/200)

<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야? >

[생애첫F1레이스직관#성공적#짜릿함#한번더#서준하#포뮬러원#페라리]

17시즌 첫 그랑프리의 레이스가 끝난 저녁. 맬버른 서킷을 달리는 빨간색 페라리카의 사진과 함께 한국 연예인들의 인증샷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대박! 공효지 씨는 언제 만난 거야?”

레이스를 마치고 팀 전체 저녁 식사를 위해 모인 맬버른 호텔의 연회장. 서준하 곁으로 다가선 한서윤이 국내 인기 배우 공효지와의 다정한 사진을 꺼내 들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선 때 응원 오셨더라고요. 패독에서 잠깐 인사 나눴어요.”

“진짜 대박이다! 공블리가 직접 경기를 보러오다니... 실제로 보니까 어때? 엄청 예쁘시지?”

“네, 미인이시더라고요. 성격도 엄청 털털하시고.”

성격이나 외모 등 많은 한국 여자들에게 워너비로 꼽히는 공효지. 평소 그녀의 팬인 한서윤이 부럽다는 눈빛과 함께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서준하 #코리안드라이버 #SEO #F1 #레이서...]

유명 연예인들의 인증샷뿐만이 아니었다. 시즌 첫 레이스가 끝나자, 많은 포스팅 속에 서준하와 연관된 해시태그가 줄줄이 달려나왔다.

경기를 직관한 국내외 팬들부터 중계 방송을 시청한 이들까지. 페라리카에 오른 서준하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글들이 레이스 직후 SNS를 뜨겁게 달궜다.

“크흐, 준하야, 너 때문에 오늘 밤만큼은 호주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어디 돌아다니기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불편해?”

“리카르도가 너랑 배틀 이후에 완전 망했잖아. 너 그때 멜버른 갤러리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지?”

허겁지겁 서빙된 음식을 먹던 롭이 해맑은 얼굴로 얘길 꺼냈다.

“맞아, 진짜 그럴지도 모르지. 그때 완전 갑분싸였어, 갑분싸.”

“아마 오늘 레이스에서 호주 사람들이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한순간에 깨져버렸으니까.”

“허, 그러게. 이거 참 본의 아니게...”

서준하가 리카르도의 리타이어에 직접적인 원인을 주진 않았지만, 호주팬들은 그 원인을 서준하와의 배틀에서 찾았다. 그들이 리카르도의 승리를 얼마나 염원했는지 잘 알기에, 롭과 서윤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유럽 쪽은 보타스 선수랑 배틀하는 장면에 대한 코멘트가 많네. 확실히 나도 이땐 많이 걱정스럽긴 했지.”

“오! 미튜브 1라운드 하이라이트 조회수가 벌써 4만 명이 넘었어!”

FIA 측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미튜브 채널. 매 그랑프리 다양한 주요 장면들이 간단한 클립 영상으로 제작되는데, 오늘 레이스 중 단연 인기를 끄는 건 서준하의 활약상이었다.

페텔이 해밀턴과의 승부에서 일찍이 승기를 잡았고, 크러쉬 역시 없었던 레이스 상황이 한몫했지만, 시작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3위권 경쟁자들의 대결은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확실히 데뷔전 끝난 뒤와는 반응이 달라. 국내에선 진짜 F1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나 봐.”

더 이상 서브 드라이버가 아니다. 주전 출전과 더불어 퀄리파잉에서 다시 한번 기대를 모으자, 레이스 당일 이젠 정말로 서준하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오늘 많은 이에게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보여주며 더 큰 기대를 사게 됐는데,

“이대로만 쭉 타준다면, 정말...”

주문한 요리가 나왔음에도 한서윤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 배가 고팠지만,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서준하의 소식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

“실장님, 중국 그랑프리가 4월 9일이라고 하셨죠?”

서울 한남동의 어느 거리. 한국 모터스포츠협회 관계자들과 미팅을 마치고, 사옥으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필립이 유건석을 향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

“아까 그 애들 있잖아요. 가을까지 기다리게 하지 말고, 그냥 이번에 중국에서 보는 게 어때요.”

서준하의 F1 무대 진출 이후로 아시아 유소년 레이서들의 에이전시 사업을 확장해나간 PHsports. 올해 가을 F1 팀들이 본격적으로 아시아 지역 그랑프리를 시작하는 일정에 맞춰 PHsports 소속 선수들과 서준하와의 만남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미팅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필립의 생각이 조금 달라진 듯한데,

“그렇게 간절한 눈빛은 오랜만이야. 또 몇 명은 가을에 한국에 없을 거라면서요. 다들 해외 나가기 전에 한 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조금 전 유소년 레이서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던 필립. 롤모델 서준하와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속사정을 들은 후로 마음이 바뀌었다.

“성찬이랑 율이라고 했나요? 걔들 얼굴 보니까, 갑자기 준하 어렸을 적이 생각나네요. 정말 오늘 같은 눈빛이었는데...”

회사 대표가 이렇게까지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건 그들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서준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 건 행위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지만, 자신의 도움으로 어떠한 결실이 맺어지는 뿌듯함을 필립은 알기에 계속해서 선수들의 후원 사업에 앞장섰다.

“저도 대표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빠른 시일 내 F1을 한 번 보는 것도 굉장히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제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에겐 롤모델을 볼 기회가 잘 없을 테니까요.”

어린 시절 서준하도 슈마허라는 롤모델을 만나 자신의 꿈을 키웠다. 이런 경험이 유소년 선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누가 알았겠어. 한국에서 서준하와 같은 레이서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길지.”

“그러게 말입니다.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유소년 카트 선수들이 급격히 증가했고, 일찍이 실력을 보이는 선수들은 빠르게 해외로 진출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F1 레이서로 키우겠다는 부모도 많아졌으며 국내자동차협회의 해외 지원 사업도 다양해졌다.

이 많은 후원 사업과 선수 육성의 중심에 PHsports가 있었고, 에이전시는 더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며 국내 모터스포츠계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몇 년 뒤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할 정도네요.”

“코리아 그랑프리가 부활한다거나...”

“그건 물론이고. 음... 포뮬러 원 이적시장에 한국 선수들 이름이 몇 개는 더 보이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F1과 서준하에 대한 인기를 실감하는 중인 필립 황. 달리는 차 안에서 변해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가까운 미래를 떠올려봤다.

***

“지난 7년간 그 녀석과 싸우면서 여기만큼 힘든 곳이 없었지.”

차이나 그랑프리 시작 전, 서킷 탐사에 들어간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드라이버 팀. 상하이 인터네셔널 서킷의 홈스트레치를 지나치며 페텔이 말을 꺼냈다.

“이상하게 해밀턴은 중국에만 오면 자신감이 넘쳐. 안 그래도 숏런이 강한데, 여기선 정말 빨라진단 말이지.”

현역 드라이버 가운데 상하이에서 두 차례 이상 우승을 한 선수는 오직 해밀턴뿐. 그는 무려 이곳에서 4번의 우승과 5번의 폴포지션을 차지하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페텔이 조금은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서준하도 고갤 끄덕였다.

“상하이의 저런 요상한 코너는 진짜 드문 거 알지? 진입할 땐 감속을 차분히 하는 게 중요해. 생각보다 빠르게 돌 수 있는 코스거든.”

“그렇군요. FP 때 연습 많이 해둬야겠어요.”

“거기 말고도. 저기 13턴 탈출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돌아야 해. 아마 시뮬레이터에서 타봤던 거랑 조금 다를 거야.”

페텔은 여유 있는 남자였다. 많은 드라이버들이 팀 메이트와 거리를 두는 반면, 그는 적극적으로 서준하를 도왔고, 견제보단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평소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최정상의 위치에 4번이나 오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드라이빙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는데...’

지난 2014년부터 페라리는 페텔을 중심으로 팀을 빌드업해왔다. 신차 역시 페텔의 성향이 담긴 개발을 했으며 모든 레이스에서 페텔을 우선시했다. 어쩌면 팀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그가 서준하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아마 이번 시즌 서준하의 활약에도 페라리는 퍼스트 레이서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서준하가 할 일은 팀의 오더를 따르는 일. 전생의 경험상 팀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바뀌었다.

“이제 패독으로 가자. 프레스 전에 잠깐 팀 사인회가 있는 거 알지?”

트랙 탐사를 마친 두 선수. 팀 커며설 관계자의 뒤를 따라 준비된 이벤트 스테이지로 걸음을 옮겼다.

***

“와아아아!”

서킷 패독에 마련된 각 팀의 팬 사인회. 팬들과 셀카를 찍으며 한창 사인회 이벤트를 진행 중인 막누스의 시선이 갑작스러운 환호가 몰리는 쪽으로 향했다.

“막누스 뭐해. 사진 촬영하자고 하시잖아.”

“어, 어어.”

막누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레드불 레이싱 팀의 부스 옆 페라리 팀의 부스. 뒤늦게 사인회장으로 들어온 페텔과 서준하에게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막누스는 좀처럼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자신의 앞에서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는 팬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이름이?”

페라리 팀이 뒤늦게 등장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받게 된 거라 생각하는 막누스. 이내 사과를 건네며 다시 자신의 팬들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다시 막누스의 팬 사인회가 다시 시작되는 듯했는데,

“와아아아아아!”

“우와! 카버트!”

“와! 대박이다!”

다시 한번 페라리 부스 근처로 향하는 막누스의 시선. 다소 차분했던 사인회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시 카버트?!”

페라리 부스 앞으로 등장한 금발의 여성. 분노의 질주 8시리즈의 여주인공이자, 도전 슈퍼 모델 영국 지역의 우승자인 케이시 카버트가 서 있었다. 평소 그녀의 열렬한 팬인 막누스가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는데,

“...”

코리안과 다정하게 포옹을 나누며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슈퍼모델. 두 사람의 대화에 주목한 건 막누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모인 팬들은 물론, 그녀를 알아본 여러 선수들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페라리 부스를 바라봤다.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야...?’

패독에서 저런 유명인사를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그 곁엔 대부분 유명 드라이버들이 있었다. 막누스와 같은 어린 루키들에겐 드문 일이었고, 특히나 아시아 출신 선수이라면 더욱.

‘서준하, 이번엔 다를 거야...’

케이시와 서준하의 관계를 알 리 없는 막누스는 묘한 열등감을 느꼈다. 아직 레이스는 시작도 안 했지만, 특히나 자신의 이상형과 다정하게 웃는 서준하의 모습은 이번 레이스 전의를 불타게 만들었다.

<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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