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1화 (141/200)

< 이 바닥 신인들은 하나 같이 예의가 없어 >

“1턴에서 스피드를 좀 더 올려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진입 각도 기준으로 90도를 돌아나갈 때까지는 대략 250km/h 정도를 유지해야 할 거다.”

상하이 서킷에 위치한 페라리의 팀 하우스, FP3를 마치고 서준하의 주행 데이터를 분석하는 레이스 엔지니어들. 특히나 서준하와 롭을 향해 팀의 수석 트랙 엔지니어 스텔라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석 내용을 설명했다.

“속도를 더 높여서 진입했다간 오버스티어가 날 것만 같았거든요. 조금 더 깊숙하고 빠르게 돌아도 괜찮나 보군요.”

“그렇지, 미리 속도를 크게 떨어뜨릴 필요 없어. 나는 상하이 서킷을 드라이버의 담력을 테스트하는 곳이라 생각해. 용기 있는 드라이버만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거지.”

알론소, 라이쾨넨과 같은 F1 챔피언들의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였던 안드레아 스텔라. 2000년대 최고의 레이스 엔지니어로 손꼽혔던 팀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지난 시즌 서준하의 데뷔전과 호주 GP의 준비 기간 때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주행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짚어준 포인트들만 레이스에서 잘 반영해준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준하야.”

“네, Q1, Q2에서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책임자님.”

팀 내 주로 페텔의 전략과 주행을 분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스텔라. 하지만 1라운드 이후 조금씩 서준하의 피드백에 관여하며 자신의 관심을 드러냈다. 팀의 미래를 서준하에게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를 잘 가르쳐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롭, 여기 13턴을 보게. 레이스 엔지니어는 특정 구간 드라이버의 스피드만 보고도 머신 컨트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해.”

“네, 책임자님.”

“이것 봐, 13턴 탈출 속도가 계속 240km/h 아래로 떨어지는데도 자네의 코멘트에는 이에 대한 지적이 하나도 없어. 드라이버가 집중하는 타이밍에 엔지니어가 관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신 컨트롤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즉시 알려줄 필요가 있네.”

롭 역시 실력 있는 레이스 엔지니어지만, 몇몇 아시아 서킷들에 관해선 배울 것들이 많다. 자신이 놓쳤던 사실들을 바로 잡아주는 스텔라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롭. 더불어 책임자가 텔레메트리만 보고도 특정 레이스 상황을 파악하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일단 상하이는 그 어디보다 타이어를 가장 혹사시키는 서킷이야. FP 때 느꼈겠지만, 타이어와 브레이크 관리를 잘한 드라이버일수록 우승할 확률은 높아지지.”

스텔라의 입에서 나온 말 중 유독 우승이라는 단어가 서준하의 귀에 꽂혔다. 은근한 기대감이 담긴 듯한 말투 역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 좀처럼 신인 드라이버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지금 그 변화는 분명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 조금씩 빌드업을 해나가는 거야.’

차량 개발부터 레이스 운용까지. 모터스포츠는 드라이버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팀원들과 함께 레이스를 풀어나가는 팀 스포츠다. 최정상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선 자신을 중심으로 한 빌드업이 중요하다.

하지만 빌드업이란 건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의 이런 대화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2경기 연속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서준하. 시간이 흐를수록 스텔라를 비롯한 페라리 스태프들의 더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

[SAHARA FORCE INDIA F1 TEAM]

현재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중위권 팀 가운데 가장 강력한 팀, 포스 인디아. 잊을만하면 포디엄에 오르는 경쟁력을 갖춘 팀이다. 상위권 진입을 목표로 항상 세 개의 강팀의 순위를 위협하고 있으며, 17시즌에서 팀 창단 이래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왜 FP에서 내 뒤에 붙는 거냐고. 연습 주행이 무슨 레이스야? 붙었으면 속도를 줄이고 떨어져야 할 거 아니야.”

“아니, 그건 형이 비켜야 하는 거죠. 서행을 할 거면 가장자리로 나오던가. 일부러 못 지나가게 막는 건 또 뭐예요.”

“뭐? 일부러 막아? 말 똑바로 안 하냐, 너.”

FP3을 마치고 포스 인디아의 팀 피트로 들어선 팀의 드라이버 페레즈와 오콘. 연습 주행에서 경주차의 간격을 두고 팀 메이트 간 설전이 벌어졌다.

“이 바닥 신인들은 하나같이 예의가 없어. FP에도 암묵적인 룰이란 게 있는 거 아냐. 언론에서 띄워주니까 지가 진짜 무슨 퍼스트라도 되는 줄 알고 날뛰네. 이씨.”

11시즌부터 F1 무대에서 뛰어온 페레즈의 눈에 오콘 같은 루키들은 눈엣가시였다. 툭하면 지난 몇 년간 페레즈가 포스 인디아와 쌓아온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거슬리는 언행으로 시합 전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피트를 떠나며 흘리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페레즈. 이에 오콘 역시 지지 않는데,

“6년 넘게 위로 못 올라갔으면, 그건 끝난 거지, 뭐. 아직도 12시즌 기대주로 착각하는 거야, 뭐야. 레이스에서 무슨 예의를 따지고 있어.”

12시즌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던 페레즈. 오콘이 느끼기엔 페레즈는 아직도 자신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듯 보였다. 단순히 포스 인디아에 더 오래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퍼스트로 대우해주길 바라는 모습에서 페레즈의 텃세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이거 점점 분위기가 왜 이러는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원래 팀 메이트끼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신경전을 벌이던 드라이버들이 메디컬 체크를 위해 사라졌고, 피트에는 포스 인디아의 코치진들이 남았다. 두 선수의 얘길 듣던 로버트 감독이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자, 팀 대표 비제이 말리야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곁에 섰다.

“자꾸 지난 시즌 훌켄버그랑 페레즈의 싸움이 생각나네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는데... 이제와서 퍼스트, 세컨드 구분을 해야 하는 건지.”

“그건 좀 그렇네. 오콘이야말로 이번 시즌 포텐이 가장 넘치는 녀석이라고.”

“그렇긴 하죠...”

만약 드라이버 간 서열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면, 세컨드 드라이버는 제한적으로 레이스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지난 시즌 한두 번 순위권에 올랐던 오콘의 잠재성을 제한하는 셈. 덕분에 상위권으로 도약해야 하는 포스 인디아 입장에선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저렇게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마침 비제이 앞으로 지나가는 페라리의 드라이버 팀. 다소 친근해 보이는 페텔과 서준하를 두고 포스 인디아 코치진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오콘과 비슷한 루키의 활약도 놀라운 것이지만, 기존 드라이버와 마찰 없이 자연스럽게 팀에 흡수되고 있는 서준하의 적응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밝은 표정의 서준하를 바라보는 로버트 감독. 자신이 들었던 경쟁 팀들의 속사정을 비제이에게 들려줬다.

“구조적으로 페라리가 퍼스트 제도를 쓰기 때문에, 루키들도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도 있겠지만, 확실히 서준하라는 친구는 관계에서도 그 나이답지 않게 잘한다고 하더군요.”

F1 무대, 특히나 강팀에서 신인과 루키들이 쉽게 살아남기 힘든 건 드라이빙 실력이 다른 레이서보다 떨어져서가 아니다. F1 팀에 소속된다는 건 수백 명의 팀원들과 관계를 맺는 일. 루키가 어려운 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관계를 헤쳐나갈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짜 언론들 말이 맞아. 페라리가 제대로 된 루키를 잡은 것 같구만...”

로버트의 말을 듣고 고갤 끄덕이는 비제이. 성과를 내면서도 팀과 마찰을 내지않는 페라리의 루키의 모습이 어딘가 단단하고 지혜로워 보였다.

***

“이제는 Q3에서 이 선수를 보는 게 조금 당연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직 그랑프리를 두 번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꾸준히 빠른 랩타임을 내고 있습니다.”

차이나 GP 공식 일정의 토요일 저녁. 본선 레이스 그리드를 정하기 위한 퀄리파잉 가운데, 마지막 Q3가 시작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참가 선수들이 서서히 서킷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중계 스크린으로 서준하의 붉은색 페라리카가 등장했다.

“Q2에서 서준하의 1분 32초 181이 가장 빨랐거든요? 오늘 예선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사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Q3 기록까지 봐야겠지만, 오늘 컨디션 굉장히 좋아 보이죠? 오전 FP 때보다도 코스 돌파가 상당히 타이트한 느낌을 주네요.”

FP 이후 스텔라를 비롯한 페라리 스태프들의 피드백을 곧바로 적용한 서준하. 자신이 미숙했던 부분을 단 한두 번의 주행으로 보완해내며 놀라울 만큼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개선 사항이 랩타임과 주행 데이터로 반영되자, 팀 엔지니어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고,

“아웃랩을 마쳐가는 해밀턴!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며 스타트라인으로 계속 스피드를 높입니다!”

상하이 서킷 최강자이자, 현역 드라이버들 가운데 숏런이 가장 강한 해밀턴. 6년 연속 차이나 GP 폴포지션을 따내기 위한 어택을 시작했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상황에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들의 관심이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실버 애로우로 향했다. 그리고,

“자 곧바로 뒤이어 서준하도 어택을 시작합니다!”

“마치 해밀턴을 기다렸다는 듯 서준하의 스피드가 갑작스럽게 올리기 시작하는데요!”

티포시들의 환호를 받으며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서준하. 해밀턴의 뒤에서 대기하며 그의 어택 타이밍만을 기다렸다.

워낙 예선전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는 해밀턴이기에 그의 폴 기록을 보고 어택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 최정상 선수의 기록을 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심리적 부담을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15턴을 빠져나오며 빠른 속도로 코스를 돌파하는 해밀턴! 이제 16턴만 돌파하면 스타트 라인이 눈앞에 보입니다!”

“와, 지금까지 어택을 낸 선수 가운데, 가장 빠릅니다! 이번 랩 역시 놀라운 기록이 나올 것 같은데요?!”

급감속 16턴에서 150km/h 이상으로 빠르게 공략하는 해밀턴. 잠정 폴 기록을 위해 약간의 언더스티어까지 감수하는 모습인데,

“1분 31초 678!!! 해밀턴 잠정 폴 기록을 세웁니다! 이렇게 되면 17시즌 다시 한번 폴포지션을 노릴 수 있을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자, 그리고 해밀턴을 기록을 잡기 위해 달려오는 후발주자들! 페라리의 서준하가 15턴을 빠져나옵니다!”

아직 어느 누구도 세우지 못한 31초대의 기록. 이번 시즌에도 해밀턴의 전성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환호하는 메르세데스 피트를 끝으로, 서준하의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히는데,

“16턴 돌파! 서준하! 과연 어떤 기록을 낼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향한 해밀턴의 어택을 지켜보는 바람에 서준하를 놓쳤던 중계진. 마지막 턴을 빠져나온 그에게 재빨리 집중하는데,

띠링.

페라리 경주차가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자, 모두의 시선이 타임 로그로 향했다.

“와우! 서준하! 1분 31초 998!!”

“...엄청납니다! 해밀턴과 0.32초 차이!”

잠정 폴 기록에 조금 못 미쳤지만, 예선 2위에 랭크한 상황에 페라리 피트가 엄청난 환호를 내질렀다. 그리고,

“해밀턴은 인 랩을 시작하고요. 그럼 이제 서준하도...?”

단 한 번의 어택으로 피트로 복귀하려는 해밀턴. 하지만 곧이어 화면에 등장한 화면을 본 중계진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하, 한 번 더...!”

중계 스크린에 등장한 서준하의 온보드 영상.

“서준하가 또다시 어택을 시작합니다!!!”

오늘 서준하의 목표는 바로 폴포지션. 특히나 폴포지션만큼은 차이나 GP에서 반드시 이뤄내고 싶었다. 그건 바로,

‘이건 그냥 폴포지션이 아니잖아!!!’

이번 생 첫 폴포지션이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모두가 기대했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기록. 멀리서 해밀턴이 또다시 질주를 시작하는 페라리 경주차를 바라봤다.

< 이 바닥 신인들은 하나 같이 예의가 없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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