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2화 (142/200)

< 이번 생에도 너는 내가 막는다 >

“한 바퀴 더 달린다고?”

어택을 마치고 서행 중인 해밀턴. 조용히 경쟁자들의 랩타임을 듣던 중, 자신과 비슷한 기록을 낸 선수가 또 한 번 어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계획대로 피트 인하도록, 0.3초 이상 차이야. 쉽게 뒤집힐 것 같진 않다

Q3에서 한 바퀴당 0.3초 이상 랩타임을 단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지금 모험을 거는 상대는 멋모르는 신인이었다. 메르세데스 피트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고, 해밀턴을 피트로 불렀다.

“일단 최대한 Q3 종료 시간에 맞춰서 달려보는 게 낫지 않겠어?”

Q3 종료 시간 전까지 스타트 라인을 통과한다면, 종료 시간 이후에도 어택 주자의 랩타임은 인정된다. 혹시 모를 상황에 해밀턴이 곧바로 피트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니, 어차피 다시 한번 어택을 달릴 일은 없어. 또 한 번 인 랩을 도는 건 우리한테 손해다. 그냥 들어와

만일 한 번 더 플라잉을 달리건 말건, 피트 레인을 한 번 더 지나치면 그만큼의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하기에 타이어를 더 쓰게 된다. 이는 곧 본선 레이스에서 스틴트(Stint, 레이스 스타트에서 피트인까지 또는 피트 아웃에서 골인까지의 간격)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불리한 상황을 초래한다. 게다가 US 타이어를 장착했기에 무엇보다 타이어를 아끼는 전략이 중요하다.

“흠... 오케이.”

어쩌면 6연속 기록이기에 예민해진 걸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의 기록도 지난 시즌에 비하면 훨씬 빨랐고, 거의 모든 퀄리파잉에서 팀의 예측과 맞아떨어졌으니까. 팀의 오더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던 해밀턴이 한 번 더 어택을 노리지 않고 인 랩을 돌았다.

-페텔 피니시. 1분 32초 004. 막누스 피니시. 1분 31초 894. 이제 남은 건 하스랑 포스 인디아 팀. 잠정 폴 축하한다, 해밀턴

이번 시즌 최고 경쟁자 페텔도 해밀턴의 기록을 넘지 못했다. 아직 남은 선수들도 해밀턴의 상대가 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긍정적인 상황에 벌써부터 팀의 환호가 무전 너머로 들려왔다. 그런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훼에에에에엥.

우측으로 빠져 서행하는 해밀턴 옆으로 빨간색 페라리카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스치고 지나갔다. 덕분에 고요했던 해밀턴의 마음에 다시 한번 작은 불안이 일렁였다.

‘아냐, 불가능해.’

멀어져가는 페라리카의 리어윙을 바라보는 해밀턴. 동시에 현재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루키의 실패를 떠올렸다. 또 한 번의 플라잉 랩 덕분에 루키는 본선 레이스를 훨씬 불리한 상태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

“형님이 말씀하셨죠?”

“응, 맞아.”

서준하의 두 번째 플라잉 랩을 지켜보는 페라리 팀 피트. 긴장된 얼굴의 전략 감독 안토니아치 옆으로 수석 트랙 엔지니어 스텔라가 다가섰다.

“아리바베네 감독님이 쉽사리 저걸 승낙해주실 분이 아니죠. 하지만 형님 말이라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세컨드 드라이버가 Q3에서 플라잉 랩을 여러 번 시도하는 일은 드물다. 애초에 팀의 오더가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전보다 좋은 기록을 내는 일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

하지만 Q3 출발 전 서준하는 자신의 목표를 밝히며 전략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아리바베네로부터 신임을 받는 안토니오치가 감독을 설득했고, 결국 서준하는 두 번의 플라잉 랩을 달리는 전략으로 Q3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 말이야... 출발 전 준하가 말했던 것과 똑같네. 이렇게 보니까, 마치 자기가 한 번 더 달려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만.”

“흠... 지금 섹터 1까지 랩타임은 굉장히 좋긴 한데, 타이어도 엄청 타이트하게 쓰는 중이라, 레이스에서 부담이 클 텐데요...”

기대에 찬 안토니오치와 달리 어택 초반 빠른 랩타임에도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스텔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바로 지금, 서준하의 신뢰도가 다른 두 사람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레이스에서 불리하더라도, 여기서 폴포지션을 따내는 건 다름 다른 의미가 있지...”

안토니아치가 볼 때 퀄리파잉 시작 전, 서준하가 유달리 좋은 컨디션과 높은 자신감 때문에 이런 시도를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안토니아치가 진심으로 느꼈던 건 바로,

“확실히 F1에서 어떻게 해야 빠르게 성공하는지 잘 아는 드라이버야. 굉장히 영특해. 과연 어떤 루키 드라이버가 상하이에서 해밀턴을 잡겠다는 모험을 할 수 있겠나.”

“...그렇긴 하죠. 이번 랩 성공하면 확실히 준하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뀔 것 같군요.”

“챔피언의 6년 연속 기록을 저지한 드라이버... 앞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차이나 GP 하면 해밀턴과 함께 서준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겠어?”

최종 레이스 순위만큼이나 중요한 건 루키 드라이버로서 F1 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 오늘 이후 시간이 지나게 되면, 분명 사람들은 이번 GP의 전반적인 내용보다 챔피언의 기록을 끊어낸 드라이버의 탄생이라는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F1에서 주목받는 스타 선수는 챔피언만이 아니다. 이런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 역시 팬과 스폰서들의 관심 대상. 서준하가 영리한 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좀처럼 생각지도 못한 이런 시도를 해본다는 점 때문이다.

“서준하! 섹터 2 진입! 동일 구간 해밀턴의 기록보다 0.04초 빠릅니다!”

“...!!!”

“...!!!”

잠정 폴 기록과 거의 차이 없는 서준하. 페라리 팀의 엄청난 기대를 모으며, 마지막 섹터의 직선 스트레이트로 진입을 시작했다.

***

-막누스가 약 0.01초 빠르다. 준하야, 이번 랩 어떻게든 만들어야 해!

롭으로부터 직전 랩 기록이 3위로 밀려났다고 전달받은 서준하. 당황스럽고 불안할 겨를도 없었다. 이미 그는 두 번째 미친 듯이 플라잉랩을 달리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앞선 기록들을 반드시 넘어버리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13턴 돌파! 해밀턴과의 차이는 0.02초! 직선 스트레이트에서 최고속 뽑아내!

이번 GP 역시 해밀턴이 잠정 폴 기록을 만들어낼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전생에 자신의 데뷔 시즌 차이나 GP에서 해밀턴은 7연속 폴포지션 기록에 도전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록을 저지한 선수가 바로,

‘이번 생에도 너는 내가 막는다...!’

서준하였다. 그날 이후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준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선수가 됐다. 전생에 한 번 겪어봤기에 오늘 퀄리파잉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상하이 서킷 1.2km의 최대 직선 스트레이트로 페라리카가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스피드를 더 뽑아내기 위해 서준하는 필사적으로 경주차를 몰았다. 그렇게 직선 구간의 끝자락에 놓인 스피드 트랩을 통과하고,

“333.2km/h! 오늘 퀄리파잉 최고속도가 나왔습니다!!!”

“게다가 지금 여전히 서준하가 해밀턴보다 0.02초 빠릅니다!!!”

이어지는 14, 15턴의 대형 비행 조형물을 끼고 헤어핀을 돌아나가는 서준하. 그의 뒤로 또 다른 어택러들이 있었지만,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의 관심이 그에게로 향했다.

“마지막 코너! 서준하 공략 속도가 좋습니다! 이대로 들어온다면...!”

“와, 빨라요! 빨라요! 자, 과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스타트 라인으로 접어드는 페라리카를 바라보는데,

띠링.

피니시와 동시에 엄청난 함성이 상하이 서킷에 울려 퍼졌다.

“서준하! 1분 31초 668!!!”

“해밀턴과 0.01초 차이로 피니시합니다!!!”

[Q3 Qualifying Rank]

[1. SEO – 1:31.668]

[2. HAM – 1:31.678]

[3. VER – 1:31.894]

.

.

“서준하! 잠정 폴! 상하이 예선 톱타임에 랭크합니다!!”

Q3 시간은 이미 종료됐고, 이제 네 명의 주자만이 스타트 라인으로 들어가면 끝나는 상황. 전광판에 표기된 기록에 상하이 서킷이 뒤집혔다.

***

“이, 이게 무슨...!”

“...”

Q3가 끝나고 가장 혼란에 빠진 팀은 단연 메르세데스였다. 수석 코치진들을 비롯한 팀의 컨트롤 타워가 중계 스크린에 표시된 폴포지션 랭커의 이름을 보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 이거 해밀턴한테 미안하게 됐네, 참...”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6연속 아까워서 어떻게 하냐. 아우...”

피트 주변으로 몰려드는 취재진 덕분에 테오 감독을 비롯한 몇몇 스태들이 곧바로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많은 엔지니어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고생했다, 로이스...”

피트로 돌아온 해밀턴의 곁으로 다가선 테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덤덤해 보이는 해밀턴을 향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팀의 오더를 따라 피트로 복귀했기에 그의 손짓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평소 같았으면, 테오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취재진 앞에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 해밀턴. 검차대로 이동하는 길목까지 표정의 변화 없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찰칵.

찰칵.

해밀턴이 검차대로 들어오자, 취재진이 더욱 분주해졌다. 곧이어 서준하가 등장했고, 기자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흘겨보던 해밀턴의 눈과 서준하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 봤자, 퀄리파잉이라 이건가...’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해밀턴의 표정을 포착한 서준하. 연승 기록이 깨졌기에 충분히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드러날 만했지만, 해밀턴의 표정은 차분했다. 역시나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답게 그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드라이버들 모두 안쪽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차대로 들어오는 선수 모두 서준하를 한 번 흘겨봤다. 뜻밖의 결과에 여러 선수들이 놀란 듯했지만, 가장 많이 놀란 건 단연 팀메이트 페텔이었다. 지난 몇 년간 자신이 넘지 못했던 차이나 GP의 최강자를 단번에 꺾어 버린 상황. 게다가 예선 4위로 밀린 그는 평소와 같은 여유는 사라진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서준하!!!”

“와아아아아아!!!”

그랑프리의 주인공은 단연 레이스 우승자지만, 아직 레이스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부터 주인공은 폴포지션을 달성한 서준하였다. 검차대 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한 걸음조차 옮기기 힘들었다. 더불어 속속들이 모여드는 페라리 스태프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는 탓에 오피셜이 서준하 곁으로 다가서는 장면까지 연출되고 말았다.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건 주변 기자들과 팀원들뿐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저 멀리 서킷의 스탠드에서 수많은 갤러리들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이 기세 그대로 레이스까지 간다!’

티포시와 한국팬들은 물론 모터스포츠 전역에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서준하. 그 누구보다 화려한 생애 첫 폴포지션을 달성하며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 이번 생에도 너는 내가 막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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