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5화 (145/200)

< 이건 17시즌에도 기회였어 >

“예쓰! 됐어! 됐어!”

“훨씬 유리해졌다!”

서준하가 피트 스탑에 들어감과 동시에 해밀턴을 추격했던 페텔. 해밀턴이 주춤하는 사이, DRS를 이용해 곧바로 선두 자리에 올랐다. 팀이 원했던 시나리오가 펼쳐지자, 페라리 피트 월이 환호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속 치고 나가라고 전하게...!”

“와, 정말 타이밍 절묘했습니다! 이렇게 곧바로 선두 탈환이라니요!”

서준하와 해밀턴을 제외한 인터미디어 타이어를 장착한 모든 선수가 2~4랩을 돌자마자, 옵션 타이어로 교체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각 팀의 예측보다 노면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페텔 역시 빠르게 S 타이어로 교체하며 서준하와 해밀턴을 추격했고,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해밀턴을 단 10랩 만에 추월해버렸다.

“서준하 박스 도착! S 타이어로 교체 들어갑니다!”

“오케이, 타이어 체인지 실수 없도록!”

페텔이 선두에 오르고, 해밀턴의 타이어 전략이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페라리 팀으로선 최고의 상황. 이 모든 게 서준하 덕분이었다.

“페텔이 정말 빠르게 치고 올라와 준 것도 한몫했지만, 준하의 작전 수행 능력 역시 뛰어납니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아는 드라이버 같군요.”

“솔직히 상하이에서 이 정도까지 해밀턴을 막아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그런데 열 바퀴를 해내다니...”

레이스 출발 전 서준하에게 오더를 내렸던 전략 감독 안토니아치. 디렉터는 자신이 요구했던 사항을 플레이어가 곧바로 레이스에 보여줄 때 뿌듯함을 느낀다. 곁에선 아리바베네 역시 서준하에게 걸었던 자신의 선택에 확실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지금 메르세데스는 상당히 꼬여 버렸구만. 이제 레이스 운용만 잘하면 돼.”

“크루징 피니시는 페텔의 전매특허 아니겠습니까. 특별한 상황만 아니라면, 2연승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10랩 페텔에게 선두를 내준 해밀턴. 남은 5~6바퀴 SS타이어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번엔 페텔에게 막히고 말았다. 아직 피트 스탑을 하지 않았기에 계획보다 빠르게 교체할지 아니면, 또다시 추월을 노려볼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아니지. 해밀턴에겐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았네. 아마 페텔의 두 번째 피트 스탑이 기회겠지. 하지만 그때도 준하가 한 번 더 해줄 수 있다면...”

거친 상하이 서킷의 노면과 초반 옵션 타이어라는 조건으로 볼 때, 오늘 레이스 페텔은 두 번의 피트 스탑을 가져가야 한다. 이는 분명 뒤따르는 경쟁자에게 기회. 하지만 방금과 유사한 상황을 서준하가 만들어준다면, 확실한 승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제 루키에 대한 불안은 완전히 사라졌군.’

다시 한번 서준하에게 기대를 거는 감독의 모습을 본 안토니아치. 분명 데뷔전부터 서준하를 믿고 선택한 감독이었지만, 항상 그의 표정에는 신인에 대한 불안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번 GP 서준하의 활약에 감독의 생각은 달라진 듯했다.

‘어쩌면 당장 이번 시즌에 퍼스트의 입지가...’

상하이에서 해밀턴을 막는 건 페라리팀의 오랜 과제였다. 매번 아쉽게 실패했지만, 오늘 레이스 초반 처음으로 목표했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었다. 서준하에 대한 남다른 신뢰로 가득한 안토니아치가 팀의 달라질 미래를 떠올렸다.

***

“우와!”

“이렇게 보니까 훨씬 빨라!”

2라운드 레이스 초중반 상하이 서킷의 K스탠드. 1.2km 장거리 직선 스트레이트를 돌파하는 포뮬러카들의 배기음이 관중석에 울려 퍼졌다.

“나도 빨리 저걸 타고 싶다.”

영상으로만 보던 F1카의 실제 주행은 강렬했다. 레이스가 시작한 지 20분이 넘어가는데도, 마치 천둥이 내리치는 것과도 같은 소리에 아이들이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초스피드의 영역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아마 지난번에 너희가 탔던 F4R 엔진 경주차보다 한 바퀴에 40초나 더 빠를걸?”

한국자동차경주협회와 PHsports의 주관으로 이십여 명의 모터스포츠 꿈나무들이 오늘 레이스를 찾았다. 특히나 이번 여름 유럽으로 포뮬러 유학을 떠나는 양성찬과 최율에게 끝판왕 F1카의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코치 겸 매니저 한명호가 들뜬 표정으로 두 선수 곁에 다가섰다.

“저기! 이제 나온다!”

“다시 달려, 페라리!!”

“우와! 서준하! 달린다!”

타이어 체인지를 마치고, 피트 레인을 빠져나오는 서준하의 붉은색 페라리카. 자신들의 롤모델을 발견한 성찬과 율이 다른 한국팬들의 함성의 맞춰 소리를 질렀다.

더불어 경주차 배기음보다 아이들이 놀란 건 서준하를 응원하는 팬들의 열광적인 모습이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들. 국적불문 페라리 유니폼과 붉은색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이 선수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우리 형보다 나이가 어린데 이런 곳에서 달리고 있어... 이건 말이 안 돼...”

“와! 나오자마자 추월! 알론소를 한 턴만에 제쳤어...!”

레이스가 한창인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뜬금없는 생각들. 서준하보다 네다섯 살 어린 두 선수에게 서준하라는 드라이버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게다가 언론과 TV에서만 보던 F1 스타들을 거침없이 앞지르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코치님, 서준하 선수는 레이싱 천재라는데, 진짜 저희도 F1까지 갈 수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무언갈 처음 시작할 땐 불안과 회의로 가득하다. 이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벽은 한없이 높아 보이고, 자신의 가능성보단 한계가 먼저 보인다. 이들이 롤모델로 삼았던 서준하 역시 또 한 번의 도전 앞에서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성찬아, 율아. 너희들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이제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증명한 선수가 나왔으니까.”

유년 시절 카트 선수 생활부터 지금의 포뮬러원 코치가 되기까지. 한명호는 한국인 F1 드라이버가 탄생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이제 서준하를 통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확인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곤 한명호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고맙습니다, 서준하 선수.’

유소년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한명호의 태도는 이전과 달라졌다. 어쩌면 F1 드라이버가 될지도 모를 이들을 제대로 키워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서준하는 여러 사람들의 꿈을 키웠다. 어린 레이서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육성하는 코치진과 더 큰 레이싱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미캐닉들의 꿈까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낸 한국인 F1 드라이버에게 한명호는 깊은 감사를 느꼈다.

“와! 324km/h!!!”

13턴 멀리서 남다른 굉음을 쏟아내며 등장한 서준하의 페라리카. 오늘 레이스 스피드 트랩에서 최고 속도를 찍어내며 또 다른 추격전을 시작했다.

***

[2R China GP. RACE]

[28/56 Lap]

[1. 페텔 2. 오콘 3. 에릭손]

[4. 서준하 5. 알론소. 6. 해밀턴...]

“새 타이어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서준하! DRS 존에 들어감과 동시에 알론소를 제치며 28랩을 달립니다!”

극초반 소프트 타이어 교체 후 피트 스탑 없이 26랩 이상을 달리고 있는 선수들이 순위권을 차지했고, 서준하를 비롯해 10~15랩 사이 피트 스탑에 들어간 선수들은 그 뒤를 쫓았다.

28랩, 서준하가 타이어 체인지 없이 계속 달리던 알론소를 제치며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 뒤로 추격전을 시작했다.

“아! 서준하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1턴 선회 속도가 무려 254km/h! 빨라요! 빠릅니다!”

레이스 시작 전 팀으로부터 지적받은 1턴 코스 돌파. 직선 주로에서 이어져 온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270도 턴 깊숙이 들어가는 용감한 모습을 보였다. 이전 바퀴부터 코스 돌파를 타이트하게 가져가며 3위 에릭손과 가까워지는 서준하. 곧 있으면 피트 레인으로 사라질 자우버의 경주차 뒤에 붙어버렸다.

“이번엔 에릭손인가요?!”

“6턴 앞에서 먼저 급감속하는 에릭손! 자, 과연!”

300km/h에 육박하던 속도를 80km/h 이하로 떨어뜨려야 하는 헤어핀 코스 6턴. 감속량이 어마어마해서 상하이 서킷의 좋은 추월 포인트 중 하나다. 모터스포츠의 이상적인 추월 구간을 지나칠 서준하가 아니었으니,

“서준하! DRS 따윈 필요 없다는 건가요...!”

교체한 S타이어의 피크 타임과 앞선 경주차들의 마모된 타이어 상태. 헤어핀 진입에서 에릭손이 최대한 늦게 브레이킹을 했지만, 뒤따르던 서준하의 탈출속도를 따라잡긴 어려워 보였는데,

“성공! 에릭손을 제치고 서준하가 3위로 올라섭니다!”

“아, 서준하! 자우버에게 페라리가 어떤 팀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에릭손은 이번 랩 피트 인할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요...!”

“확실히 앞에 누가 있는 걸 싫어하는 선수예요. 자, 이번에는 오콘인가요?!”

이어지는 고속 슬라럼 구간에서 3G 이상의 G포스를 견뎌내며 분홍색 경주차 뒤에 붙은 서준하. 섹터 3 돌파를 시작하며 DRS 존에 들어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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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328km/h...]

백스트레이트 탈출 시 빨랐던 재가속 타이밍. 이어지는 오콘의 슬립 스트림 속에서 페라리 경주차의 스피드는 다시 한번 최고 속도를 돌파했다.

훼에에에에에엥.

오콘의 우측으로 튀어나오며 2위 자리에 올라선 서준하. 직선 주로 끝 15턴을 두고 파워 브레이킹에 들어갔다. 마지막 16턴을 두고 이제 스타트 라인이 눈앞에 보이는데,

-이번 랩 만들자 준하야! 내가 장담할게! 타이어 신경 쓰지 말고 달려!

어차피 피트 스탑에 들어갈 오콘과 에릭손을 추월해가며 앞으로 치고 나오는 서준하. 추월과 어택은 그만큼 타이어에 부담을 주기에 현재,

“오케이, 해보자!!”

S 타이어 교체 이후 가장 빠르고 집중해서 달린 28번째 바퀴. 타이어 부담이 큰 서킷에서 이번 랩 강하게 몰아붙이는 이유가 있었으니,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16턴 탈출 이후 연석 바깥으로 빠질 듯 말 듯한 서준하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띠링.

[China GP - New Lap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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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lap - 1분 31초 728]

-래, 랩! 랩 레코드!!!

2004년 이후 13년 동안 결코 깨지지 않았던 마누엘 슈마허의 상하이 서킷 랩 레코드 1분 32초238. 신차 성능과 진보된 기술에 더해 최강자 해밀턴도 넘지 못했던 기록이지만, 페라리의 루키가 해내고 말았다.

‘이건 17시즌에도 기회였어...!’

18시즌 해밀턴에 의해 깨졌던 슈마허의 기록. 하지만 서준하는 알고 있었다. 17시즌 규정의 변화와 피렐리 타이어 컴파운드의 변화. 이 두 가지라면 충분히 한두 랩 정도는 기록 도전을 노려볼 만했다고.

‘이젠 너만 막으면 끝이다!’

뒤따르던 오콘과 에릭손이 피트 스탑에 들어간 상황. 서준하가 윙미러로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실버 애로우를 바라봤다.

< 이건 17시즌에도 기회였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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