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49화 (149/200)

< 폴 기록이 뒤집어졌다 >

“말씀하신 순간, 서준하 선수가 다시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바레인 인터네셔널 서킷의 홈스트레치 펜스 근처. MBD의 포뮬러 원 프로그램 아나운서 최별이 카메라 앞에서 FP2 현재 서킷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비에 들어갔던 서준하가 예상과 달리 빠르게 복귀하자, 최별을 비롯한 국내 방송팀 스태프들이 들뜬 얼굴로 다시 촬영을 시작했는데,

“다시 한번 이곳의 분위기는 뜨거워졌습니다. 아웃 랩을 마친 서준하 선수가 이제 플라잉 랩에 들어간 듯한데요...!”

가끔씩 최별은 경주차가 내뱉는 천둥 같은 배기음에 깜짝깜짝 놀랐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서준하의 페라리 카를 조명하며 응원을 보냈다.

오늘 현지 파견의 취지는 중계와 해설보단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고, 더불어 인기 여아나운서가 F1을 경험하는 리얼리티까지 영상에 담는 일. 실제 서준하의 열렬한 팬인 최별 아나운서가 페라리카를 두고 환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와아아!! 1분 31초 841! 사고로 FP2를 망칠 뻔했던 서준하 선수가 가장 빠른 레코드를 달성했습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과 주변 한국팬들의 환호도 카메라에 담겼다. 잠시 후, FP2가 끝나고 선수들이 검차대로 복귀했다. 서준하의 개인 인터뷰를 위해 대기하던 최별 곁으로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이 모여드는데,

“한국팬들이 많이 와계시는데요. 그러면 우리 서준하 선수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젊은 여성팬들에게 다가서는 방송팀. 카메라의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그녀들 틈으로 최별이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오늘 누구를 응원하러 오셨나요?”

“꺄아, 어떡해. 서준하 선수요...!”

“멀리 이곳 중동까지 오시는 게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F1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신 것 같아요!”

“주변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사실 F1은 잘 모르지만, 평소 서준하 선수 너무 팬이라... 으, 서준하 파이팅!”

F1은 잘 몰라도 서준하를 응원하기 위해 모여든 한국팬들. 출중한 외모와 더불어 언론에 드러난 서준하의 이미지는 아직 어린 선수임에도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서준하라는 공통 관심사를 두고 웃음꽃 피는 인터뷰를 마친 최별. 이번에는 또 다른 한국팬에게 다가섰다.

“들고 계신 카메라와 장비들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혹시 기자신가요?”

“아, 그냥 취미로 F1 관련 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아, 블로그를 하세요?”

“요즈음 부쩍 국내에서 F1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잖아요? F1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F1을 소개하고 경기 내용을 담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F1의 광팬이었다고 밝힌 삼십 대 중반의 남성. 국내 모터스포츠 유명 블로거의 등장에 최별의 눈이 번뜩였다.

“국내는 물론이고, 서준하 선수에 대한 현지 반응이 남다르잖아요. 선생님께선 서준하 선수의 어떤 면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최별은 현장에서 서준하의 남다른 존재감을 느꼈다. 그가 서킷에 등장할 때 분위기는 급변했고, 질주를 시작할 땐 슈퍼스타들과 비슷한 환호가 쏟아졌으니까.

국내팬들은 물론, 세계 각지의 다양한 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봤을 때, 평소 언론과 방송으로만 접했던 모습보다 반응은 훨씬 뜨거웠다.

“아무래도 페라리라는 세계 최고 팀의 메인 드라이버라는 사실과 이번 대회 최연소 루키라는 점이 주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바로 매번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선수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혹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어느 누구도 서준하 선수가 이렇게 빨리 기록을 세울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물론, 매 레이스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좀전의 연습주행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서졌던 차량을 금방 고치고 나와 최고 랩타임을 세웠으니까요.”

어떤 기록을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공식과 보편적인 과정으로 가득한 F1 무대. 하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서준하의 모습은 오랜 기간 F1을 지배해온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있었다.

“자, 이제 선수들이 파크 퍼미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럼 저희도 서준하 선수를 만나러 가볼까요?!”

엄청난 취재 인파가 몰린 검차대 출구 앞. 실제 서준하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인 최별이 들뜬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

-피트 레인 오픈 10분 전이다, 준하야

Q1, Q2를 마치고 피트에서 Q3를 기다리는 서준하. 팀 라디오로 롭이 시작 시간을 알렸다.

“팀이 제시한 목표 랩타임은 몇 분이지?”

-1분 28초대. Q2보단 최대 0.7초 이상 빠르게 타야 할 것 같아. 섹터 3에서 랩타임 보고 한 바퀴 더 달릴지 말지 결정하자.

이번 라운드 Q1, Q2는 치열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중하위권 선수들의 폼은 올라왔고, 경주차는 안정됐다. 이는 곧 랩타임에 반영됐고, 이전 라운드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결과적으로 Q3 진출자 간 랩타임 차이는 0.1~0.2초 안팎으로 아주 근소했는데,

“28초대라... 오케이.”

Q2에서 1분 29초 596의 기록으로 3위에 랭크한 서준하. 앞선 1위, 2위와 0.05초도 차이 나지 않는 기록으로 볼 때, 이제는 정말로 1000분의 1초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였다.

-분석팀에서 데이터가 왔어. 경쟁자들보다 우리가 섹터 2에서 랩타임이 뒤처져.

“섹터2?”

-내리막 구간에서 브레이킹 포인트가 밀려. 아마도 내 생각으론 메르세데스 경주차보다 페라리 차의 공기역학적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

네 개의 직선 코스로 이어진 바레인 서킷. 그 가운데 섹터 2는 오르막에 이어 긴 내리막 구간으로 코너 공략의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다. 특히나 섹터 2 후반 꽤 가파른 오르막은 중고속 코너와 이어지기 때문에 차량의 에어다이내믹스 성능이 요구된다.

“맞아. 아까 Q1 플라잉 랩 때, 13턴 오르막 정점에서 거센 바람을 맞았어. 아마도 운이 좀 따라야 할 것 같다.”

사키르는 사막 한가운데 있어 다른 서킷보다 바람에 더 민감하다. 몇몇 불행한 선수는 강한 바람에 코스 아웃되는 일이 있을 정도. 치열해진 경쟁과 더불어 새로 발견한 변수가 Q3 시작 전의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3 Round. Qualifying 3]

[PIT LANE OPEN]

[11 분: 59 초]

Q3가 시작과 동시에 여러 선수들이 피트를 나섰다. 지난번 1, 2라운드 모두 Q3에 진출하지 못했던 참가자들이 보였다. 이번 시즌 첫 Q3인 만큼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이를 갈았을 거다. 그 모습에서 이번 Q3 역시 얼마나 치열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린 계획한 대로 정확히 7분에 출발한다.

“Copy.”

F1 팀에는 여러 명의 전략 담당자들이 있다. 퀄리파잉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복귀하는 시점까지 전략팀이 오더를 내린다. 종종 드라이버 주관대로 어택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세컨드 드라이버로선 철저히 전략팀의 오더를 따라야 한다.

부와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앙.

예정된 시간이 되자, 서준하가 피트를 나섰다. 피트레인을 빠져나오자, 시작과 동시에 먼저 아웃 랩을 했던 경주차들과 마주쳤다. 포스 인디아와 맥라렌의 레이싱카가 빠른 속도로 서준하 옆을 지나치는데,

“맥라렌, 포스인디아. 사키르에선 확실히 다른 모습이야.”

페레즈와 알론소 모두 바레인 GP의 강자들. 사키르에서 페레즈는 종종 포디엄에 올랐었고, 알론소는 이곳에서 최다승을 보유한 유일한 현역 드라이버다. 매 라운드 포디엄 경쟁이 치열하지만, 직접 서킷에 나오자 그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기록은 중요치 않아. 지금 가장 빠른 건 준하, 너야.

이번 FP2에서 가장 빨랐던 선수는 서준하였다.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환경.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 서준하가 서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

“막누스를 시작으로 Q3 플라잉 랩을 마치는 선수들! 자, 마지막 예선에는 어떤 기록이 등장할지...!”

일찍이 어택에 들어갔던 선수들이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며 중계진의 시선이 타임로그가 표시된 스크린으로 향했다.

“1분 29초 687! 막누스가 Q2보다 0.8초 이상 빨라진 기록을 세웁니다!”

“와,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요...! 곧이어 페레즈와 알론소가 스타트라인을 통과합니다!”

뒤따르던 경쟁자들이 곧바로 막누스의 기록을 갈아치우자, 전광판 맨 위 잠정 폴 랭커의 이름이 계속해서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FP1, FP3 모두 가장 좋은 랩타임을 보여줬었던 메르세데스의 보타스! 보타스가 두 번째 직선 주로를 돌파합니다!!”

“보타스에겐 이번 라운드 성적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포디엄 경쟁을 위해선 지금 퀄리파잉에서 반드시 순위권에 랭크해야 합니다...!”

현재 퀄리파잉 상황과 똑 닮은 FP2에서의 기록은 아쉽지만, 연습주행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보타스. 잠정 폴의 기록보다 섹터 1, 2구간을 빠르게 돌파하며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섹터 2 피니시. 현재까지 선두다, 보타스. 섹터3에서 0.2초 이상 더 줄일 수 있도록!

고속 코너와 직선 구간 엔진 출력은 메르세데스 경주차의 장점. 특히나 섹터 3에서 단연 가장 빠른 기록을 보였던 보타스는 섹터 1, 2에서 선전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가능해! 타겟 타임을 넘어버리겠어!”

-퍼팩트! 이번 라운드 폴포지션은 너야!!!

서킷 분석부터 최적의 차량 세팅까지 이번 라운드 심혈을 기울였던 보타스.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온 그의 눈앞으로 스타트라인이 보였다. 완벽했던 주행의 결과를 맛보기 위해 홈스트레치를 달리는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직선 구간에서 스로틀을 당기는데 집중했던 보타스의 신경이 조금씩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윙미러를 흘겨보는 찰나,

“...!!!”

보타스의 뒤를 빠르게 쫓아오는 붉은색 페라리 카. 플라잉 랩을 달리는 동안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상황에 갑자기 등장한 경쟁자의 모습에 보타스가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띠링.

-와! 1분 28초 821!!! 잠정 폴이다, 보타스! 속도 줄이고 피트인 하도록!

타겟 타임을 만들어내자 레이스 엔지니어가 곧바로 타이어 관리에 들어가라는 오더를 내렸다. 하지만,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보타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일단 그대로 달렸다. 홈스트레치에서 봤던 페라리카의 모습이 본능적으로 속도를 내도록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젠장! 보타스 멈추지 마! 그대로 한 번 더 달려!

“...?!”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28초대의 기록. 다음 코스 진입 전 순간 보타스의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서준하가... 폴 기록이 뒤집어졌다...!

팀 라디오로 울려 퍼지는 잠정 폴 랭커의 이름. 보타스의 입가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오며 또 한 번 힘겨운 어택이 시작됐다.

< 폴 기록이 뒤집어졌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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