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55화 (155/200)

< 하필 4라운드가 소치라 더 불안하겠지 >

“저쪽! 저쪽! 페라리 피트월 잡아!!”

3차전 바레인 레이스 종료 직후, 서킷 곳곳을 촬영하던 스카이스포츠 방송팀. 프레젠터 토니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카메라맨에게 손짓했다.

“엄청 우는데?”

“오늘 페라리도 죽다 살아났으니까요.”

“근데 못 보던 얼굴이야.”

페라리 팀원들 대다수가 위닝 랩을 도는 서준하의 경주차를 보러 홈스트레치 부근 펜스로 달려나간 상황. 피트 월에선 나 홀로 눈물 콧물 다 쏟고 있는 한 스태프의 모습이 보였다.

“이야, 세레머니가 특이하네.”

잠시 후, 검차대로 서준하와 그의 페라리카가 우승자 팻말 앞에 멈춰섰다. 경주차를 멈추고 콕핏에서 나온 서준하. 오른손을 하늘로 뻗어 검지로 하늘을 찌른 후 말아쥔 주먹을 강하게 흔들었다. 대다수의 우승 드라이버들이 흥분에 가득 차 날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세레머니였다.

“응? 저 사람은 아까...”

곧이어 박수와 환호를 내지르는 팀원들에게로 달려간 서준하. 펜스에 다가선 그가 곧바로 품에 안은 사람이 있었으니,

“아아, 서준하의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였구나.”

수많은 취재진과 팬들 사이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는 롭과 서준하. 곁에 있던 페라리 팀 스태프들도 덩달아 포옹을 나누며 승리를 자축했다.

“정말 아무도 예상 못 했던 루키의 첫 우승이야.”

“진짜 운이 좋았네요. 페텔과 해밀턴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흠... 근데 그냥 단순히 어부지리로 얻은 행운은 아니지 않나?”

서준하의 깜짝 우승을 그저 해프닝 정도로 보는 듯한 테드. 그의 말에 토니가 고갤 흔들었다.

“그랑프리 우승에도 운도 빠져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운만으로 우승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렇긴 하죠.”

단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미덕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수십 년간 F1을 겪어온 토니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드라이버들에게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드라이버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한 무언가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능력이랄까? 헌트, 세나, 페텔. 과거의 이런 드라이버들이 그랬잖아?”

세 선수 모두 그랑프리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두면서 빛날 수 있었던 것도,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반드시 쟁취했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서준하가 우승하지 못했다면, 그의 첫 우승은 훨씬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즌 내내 성과를 내고 있는 꾸준한 페이스는 서준하가 단순히 복권에 당첨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 아니 빠르면 이번 시즌에 페텔과 해밀턴의 양강 구도가 깨져버릴지도 모르지.”

“와, 서준하가 55포인트로 1위? 이렇게 되면, 페라리도 좋은 상황이지만, 머리도 좀 아프겠네요.”

“그렇지. 페라리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거야.”

오늘은 서준하가 장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드라이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F1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드라이버는 107명이 되었지만, 서준하처럼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그 자리에 오른 드라이버는 드물다. 스카이스포츠는 물론, 많은 포뮬러 언론들이 이제 서준하라는 월드챔피언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

“그랑프리 데뷔 3라운드만에 폴포지션, 그리고 4라운드만에 우승. 다시 한번 준하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바레인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페라리 팀의 만찬. 본격적인 저녁 식사에 앞서 아리바베네 감독이 서준하의 첫 우승을 조명했다. 오늘 저녁은 감독이 특별히 마련한 자리로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하게 됐다.

“레이밴 쪽에서 준하를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는 연락이 들어왔어요. 전반기 끝나고 후반기 들어가기 전까지 스케쥴을 알려달라고 하네요.”

페라리 팀의 메인 스폰서로 있는 아이 웨어 시장의 글로벌 리더 레이밴. 시즌 초반부터 서준하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들이 첫 그랑프리 우승 소식 이후, 곧바로 페라리의 커머셜 팀에 연락을 취해왔다.

“위블로도 모델 변경에 준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준하가 이번 시즌 스폰서들의 눈길을 제대로 끌었구만.”

“위블로에서도요? 거긴 웬만해선 광고 모델 잘 안 바뀌는 곳인데. 준하가 더 바빠지겠네요.”

“아무래도 준하의 이미지가 젊은 사람들한테 잘 어필되는 것 같아. 레이밴 같은 경우에는 정말 트렌디한 선수 아니면, 드라이버를 메인 모델로 안 쓰는 곳으로 알고 있거든.”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서준하. 포디엄과 인터뷰에서 그가 찼던 선글라스와 시계가 그의 활약과 더불어 인기를 끌었다. 첫 우승 소식이 전해지면, 앞으로 더 많은 광고가 들어올 것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갈리에라가 서준하의 테이블로 자릴 옮겨 스폰 소식을 전했다. 곁에서 소식을 듣던 한서윤도 무언가 생각난 듯했는데,

“아, 맞아 준하 선수. 우리나라 RG 그룹 알지? 거기서 18시즌이나 19시즌에 우리 팀 스폰서로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RG에서요?”

“응응, 근데 그냥 스폰서가 아니고, 타이틀 스폰서야...!”

RG가 다른 팀도 아닌 페라리를 후원하겠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 아시아 기업들에게 국내외 모두 인지도가 높은 서준하는 좋은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고려타이어 알지? 그쪽 임원진에서도 준하 선수한테 관심이 있나봐. 필립 대표님하고 미팅이 잡혔다는데?”

4라운드가 열리는 러시아 소치. 한국 최초의 타이어 전문기업인 고려타이어. 세계 타이어 시장 매출 7위 회사의 대표급 인사가 스폰서십을 두고 PHsports와 미팅을 요청했다.

“아마 준하 선수의 개인 스폰 때문인 것 같아. 고려타이어면 정말 엄청 큰 기업인데, 이것도 잘 됐으면 좋겠다.”

“음... 그러게요.”

개인 스폰서라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서준하. 물론 스폰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그 기업이 국내 자동차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려타이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 정도 기업이라면 충분히 다른 걸 시도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데,

‘개인 스폰서 정도로는 부족해. 더 과감한 투자가...’

F1과 서준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지금 수준으로 코리아 그랑프리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나 제아무리 뛰어난 F1 드라이버라고 하더라도 혼자 힘만으론 역부족. 더 많은 기업들이 더 큰 돈을 들고 판에 들어와야 한다.

‘일찍이 성공 사례가 나온다면, 다른 기업에서도 판에 들어오는 일이 쉬워질 거야.’

자국 그랑프리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건 서준하도 바라는 일. F1 활약으로 기업들의 관심을 받게 된 지금, 그 목표를 위해선 조금은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였다.

“점점 국내 기업들도 F1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이러다 진짜 우리 소원 이뤄지는 날이 오는 거 아니야?”

한국인 F1 스태프들과 한국 F1팬들의 소원은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한국인 드라이버의 질주를 직관하는 것. 서준하의 상승세로 국내에서 코리아 그랑프리의 부활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

“소치 오토드롬(Sochi Autodrom)은 고저차가 거의 없어. 타이어 이슈가 굉장히 적은 서킷이지.”

3차전을 마치고 곧바로 마라넬로로 복귀한 페라리 팀. 스텔라의 가이드 아래 전략 팀과 드라이버 팀이 서킷 공략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특정 코너에서 만큼은 부담이 꽤 큰 편이야. 특히나 3, 4턴에선 3.5G 이상의 중력가속도가 3초 이상 걸리지. 마치 이스탄불 파크의 8턴과도 비슷해. 어떤 느낌인지 알겠나, 준하?”

서킷 설명을 이어가는 스텔라. 소치 서킷에 첫 출전인 서준하를 두고 팀은 좀 더 세심하게 주의 사항을 알렸다. 곁에 앉은 페텔의 눈에 지난 시즌과는 많이 달라진 스텔라의 눈빛을 포착했다.

“왜, 뭐 다른 할 말이 있나, 페텔?

“아니에요, 계속 진행하시죠.”

그런 페텔을 발견한 스텔라가 묻자, 페텔이 환히 웃으며 회의를 이어가길 청했다.

그렇게 회의는 계속됐고, 잠시 후, 회의가 끝나자 모두가 자릴 떠난 오피스에 페텔과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 아다미만 남게 됐다.

“왜 다들 안 하던 개인 코칭을 회의 시간에 하고 그러는 거지?”

“...”

회의 중간중간 신입에게 서킷 주의 사항을 따로 알려주던 스텔라와 전략팀원들. 덕분에 평소엔 일찍 끝마쳤던 회의 시간이 길어졌다. 서준하가 앉았던 자릴 흘겨보는 아다미가 불만을 늘어놨다.

“이제 다들 준하도 욕심이 나는 거겠지. 웨버의 기분이 이랬으려나...”

“에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아직 첫 우승 임팩트가 남아 있는 것뿐이라고.”

시즌 내내 서준하에 대한 달라진 팀원들의 반응을 두고 자신의 과거 기억들이 떠오른 페텔. 신인 시절 레드불 팀에서 첫 우승을 일궈내며 팀의 메인 드라이버 웨버를 견제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팀원들은 자신에게 적극적이었고, 웨버는 이를 불편해 했다.

“흠...”

시즌 초반 챔피언 구도를 이어가던 페텔에게 3라운드 리타이어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해밀턴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에 불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팀의 신인이 자신을 꺾고 챔피언 구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어차피 나중에 준하도 리타이어 한 번 하면 싹 뒤바뀔 순서야. 그냥 우린 평소처럼 다음 경기 어떻게 해밀턴을 잡을지만 신경 쓰면 돼.”

확실한 분위기 반전을 위해선 4라운드가 중요해진 상황. 하지만 통계상 소치에서 메르세데스의 우승 확률은 100%로 압도적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페텔에게 아다미가 자신의 전략을 꺼내려던 그때,

끼익.

“다들 아직 안 갔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서준하.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페이퍼 뭉치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응, 잠깐 얘기할 게 남았다. 먼저 들어가라, 준하야.”

“그래, 마무리 잘해.”

페텔의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서준하. 회의실 밖을 빠져나오는 동안 예전과 달라진 페텔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미묘했지만 지금 그에겐 시즌 초반과 같은 여유가 없었다.

‘하필 4라운드가 소치라 더 불안하겠지.’

서준하는 알고 있다. 메르세데스 팀이 이곳에서 최강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 말고도 미소 짓게 만드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페텔, 네 커리어에서 우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까.’

러시아에서 우승은 물론, 페라리 이적 후에는 포디엄에도 한 번밖에 오르지 못한 페텔. 이번 러시아 그랑프리에서도 팀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된 서준하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 퍼스트는 내가 될 거야...’

회의실 안으로 보이는 페텔의 얼굴. 심각한 표정에 서준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하필 4라운드가 소치라 더 불안하겠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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