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57화 (157/200)

< 이건 예상했던 그림이 아닐 텐데 >

“아! 0.12초 차이...”

“아쉽다, 오콘이 한 턴에서 앞섰던 것 같구나.”

스쿠데리아 토로 로쏘 팀의 게러지. 4차전 Q2의 마지막 주자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자, 중계 스크린으로 Q3 진출자의 명단이 표시됐다. Q3를 대비해 재출발을 대기 중이던 크비얏과 그의 레이스 엔지니어 하멜린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리 팀 레이싱카로는 절대 Q3에 못 올라가요. 애초에 스트레치에서 뻗어 나가는 힘이 저쪽이랑 다르다고. 도대체 이딴 차로 어떻게 성과를 내라는 건지...”

레드불 레이싱의 주니어 팀 또는 B 팀으로 여겨지는 토로 로쏘. 소유주가 레드불 레이싱과 동일한 레드불이지만, 팀의 지원이나 기술 인력적인 측면은 확실히 뒤떨어진다.

레드불 팀의 드라이버 두 명 모두 Q3에 진출한 걸 확인한 크비얏이 이번 퀄리파잉에서도 좌절한 얼굴로 결과표를 받아들였다.

“막누스 저 자식, 저런 랩타임으론 이번에도 포디엄을 노리긴 글렀어. 차가 좋으면 뭐해요, 실력이 없는데, 실력이.”

“흠... 벌써 페텔이랑 2초 이상 차이가 나잖아.”

“페텔 얘긴 하지 마세요. 이름만 들어도 진짜 짜증 나니까.”

14시즌 만 19세의 나이로 레드불 팀에 입단하며 활약을 이어온 크비얏. 하지만 1년 전 러시아 GP에서 페텔에게 크러쉬를 일으킨 사건과 더불어 지나치게 공격적인 드라이빙으로 막누스에게 레드불 시트를 내주며 강등되고 말았다. 상위권 팀에서도 좋은 기록을 뽑지 못하는 막누스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페텔의 모습에 크비얏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코리안 드라이버는 이제 확실히 레귤러로 불릴 수 있겠구나. 루키가 시즌 4라운드 내내 한 번도 안 미끄러지고 잘 버티는데?”

“페라리카를 탔는데 쉽게 미끄러지긴 힘들죠...”

Q2 1위에 랭크한 서준하의 기록에 하멜린이 놀라움을 표시하자, 크비얏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F1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을 이룰 수 없는, 소위 ‘차빨’, ‘팀빨’이 존재하는 곳. F1 데뷔를 그런 최강팀에서 시작한 서준하는 그저 운이 좋은 드라이버일뿐이었다.

“아무튼 고생했다, 12위면 포인트권도 노려볼 만해.”

“홈 그라운드에선 컨디션이 좋아요. 포디엄 피니시까지 해볼 겁니다.”

“그래, 근데 또 너무 무리하진 마. 아까 Q1에 3턴 진입하는데, 갑자기 작년 기억이 떠오르더구나.”

크비얏의 모터레이싱 인생을 통틀어 최악의 레이스였던 작년 러시아 GP. 하위팀으로 강등당한 것은 물론, 자국 팬들과 대통령 앞에서 망신을 당한 최악의 경기다.

“두 번 다시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크비얏. 어쩌면 레드불에서 활약하던 자신이 페라리나 메르세데스로 이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페텔 때문에 놓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Q3 시작을 앞두고 중계 스크린에 등장한 페라리 팀에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

“카딜레, 다시 공기압을 좀 더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직도 불안정해?”

“네, 리어가 흔들려서 코너를 빠져나올 때 대부분 트랙션이 약하네요.”

“흠... 컴퓨터에 입력된 값으로는 지금이 최적인데 이상하네. 일단 네 차는 네가 제일 잘 아는 거니까. 지금 바로 빼줄게.”

Q1, Q2 타이어의 에어 압력에 변화를 줬던 서준하. Q3 시작 전, 게러지로 돌아와 팀의 엔지니어링 책임자 카딜레에게 피드백을 늘어놨다.

“내일 레이스에서 날씨 변화만 크지 않다면, 에어로파츠는 지금처럼 갈 거야. 지금이 마지막 점검 기회니까, 공기압은 이번엔 확실하게 잡아보자.”

“네, 아마 지금이 최상일 거예요. 고마워요, 카딜레. 덕분에 다시 제대로 달릴 수 있게 됐네요.”

이견 없이 최상의 셋업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드백. 서준하는 엔지니어들과 원활한 소통 주고받을 수 있는 F1 드라이버 가운데서도 몇 안 되는 선수였다.

모터스포츠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결국 사람이 주인공이다. 대회를 통해 수많은 인연을 만나는 게 된다. 문제 해결과 별개로 지금처럼 경주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똘똘 뭉치는 일에 서준하는 큰 매력을 느꼈다.

“카딜레, 그러면 리어 트랙션 말고 더 이상 문제없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책임자님.”

두 사람의 대화를 멀찍이 바라보던 페라리 팀의 CTO 비노토. 엔지니어링 파트에 관해선 까다롭기로 소문난 카딜레와도 가깝게 지내는 서준하의 모습에 흐뭇해 했다.

비노토가 페라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평소 게러지에서의 모습만 보더라도 서준하가 단순한 드라이빙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준하야, 오늘 업데이팅은 미세했지만, 앞으로 진행될 신형 프론트 서스펜션 때문에 핸들링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거네.”

“아, 프론트 그립력 때문에 핸들이 더 무거워지겠군요.”

“그렇지, 아마도 이제는 팔 근육 훈련도 추가로 해야 할 것 같구나.”

F1 팀은 시즌 내내 경주차의 특정 부분을 업데이팅한다, 시즌 중후반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를 앞두고 있는 페라리 팀. 모든 개발을 총괄하는 비노토가 막간을 이용해 드라이버들에게 이를 알렸다.

“이젠 목뿐만 아니라, 팔도 엄청 두꺼워지겠네요.”

“오, 근데 이거 따로 훈련이 필요 없겠는데...?”

이런 디테일한 부분도 미리 알려주는 CTO의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낀 서준하. 자신의 팔뚝을 걷어 올리며 양팔에 힘을 가득 실어 보이자, 울퉁불퉁한 힘줄과 두터운 전완근이 드러났다.

‘이번 생에도 역시...’

17시즌 후반부터 진행되는 페라리 팀 경주차 프론트 세션의 변화. 그에 따라 드라이버 신체 특정 부위에 부담이 가해지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서준하는 입단 때부터 따로 팔 운동을 해왔다.

“오케이, 그러면 오늘 마무리 잘해주게. 이제 차에 타도록 하지.”

비노토의 눈에 서준하의 상승세는 단순히 패기와 행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드라이빙 테크닉과 엔지니어링 지식, 신체적인 강인함과 남다른 정신력 등등. 이밖에도 정상급 드라이버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피트 레인 오픈! Q3 스타트!”

피트레인을 빠져나가는 서준하의 경주차를 바라보는 비노토. 당장의 성과와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허허, 해밀턴이 벌써 나온 거야?”

“이야, 챔피언이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건 또 처음이네.”

Q3 시작과 동시에 피트 레인을 나서는 로이스 해밀턴. 패덕의 VIP 스탠드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FOM의 체이스 회장과 션 사장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 같네요. 원래 마지막에 황제처럼 등장하는 선수가 이렇게 일찍 나오다니.”

“그럴 만도 하지, 지금 종합 랭킹 순위야말로 충격적일 테니까.”

“그래서 그런 건진 몰라도 확실히 지금 스타트는 최강자가 누군지 보여주겠다는 느낌이 강해요.”

2014년 이후 챔피언 경쟁 구도에서 항상 1, 2위에 랭크했던 해밀턴. 굴욕적이게도 지난 레이스 리타이어 이후 신인에게 종합 포인트에서 밀리며 종합 랭킹 3위에 랭크했다.

“해밀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계속 페라리의 상승세가 이어지면 좋을 텐데요.”

“그렇지, 오늘 한 번 더 우승을 차지한다면, 이거 완전히 기세를 꺾어버리는 건데... 하필 4라운드가 러시아라니 좀 아쉽구만.”

14시즌부터 챔피언 구도에서 독주를 이어온 메르세데스 팀. 경쟁 팀의 부재로 많은 사람들이 F1의 흥미가 떨어진다고 평가했지만, 이번 시즌 초반 페라리의 연승으로 대회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진 상황. 이런 페라리의 부활이 반가운 FOM으로선 메르세데스의 우승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레이스 장소가 다소 아쉬웠다.

“몇 코스만 봐도 리카도보다 숏런 퍼포먼스가 훨씬 뛰어나구만.”

“러시아는 역시 메르세데스군요. 해밀턴이 무난하게 폴포지션을 차지할 것 같네요.”

섹터 3으로 진입하는 해밀턴의 실버 애로우. 이제 막 아웃 랩을 시작한 경주차들 옆으로 그가 빠르게 코스를 돌파했다. 그리고,

“1분 33초 767. 트랙 레코드... 아직 경쟁자들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이거 시작부터 기운 빠지겠어, 허허.”

연습 주행과 Q1, Q2에서 자신이 보여줬던 랩타임과 비교해 상당히 빠른 기록. 모두의 예상대로 해밀턴은 전년도보다 2초 이상 빨라진 랩타임으로 잠정 폴에 올랐다.

“33초는 깨지기 힘든 기록이겠어요. 비슷하게 출발한 레드불이랑 포스 인디아 쪽은 34초대에도 못 들어왔고, 흠...”

해밀턴의 피니시 이후 플라잉 랩을 이어가는 Q3 진출자들. 대부분이 전년도보다 빠른 기록을 세웠지만, 해밀턴의 기록은 압도적이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주목하는 한 선수가 있었으니,

“빨라요. 이번엔 보타스도 무시할 수 없겠는데요?!”

과거 레이스카의 퍼포먼스를 고려했을 때 보타스의 기록도 기대를 모았다. 14시즌 이곳에서 포디엄에 올랐고, 15시즌엔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포디엄 피니시가 유력했으니까. 게다가 17시즌엔 가장 완성도 높다고 평가받는 메르세데스 레이스카까지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오! 섹터2. 폴기록과 0.25초 차이. 남은 두 턴에서만 빠르게 해준다면...”

이해관계를 떠나 퀄리파잉에서 더 빠른 선수가 등장하는 일은 항상 흥미로운 일이다. 두 남자의 시선이 홈스트레치로 들어오는 보타스의 경주차로 향하고,

“0.48초 단축! 보타스가 해내네요...!”

“이렇게 되면 생애 첫 폴포지션인가?”

“그렇죠. 와, 연달아 트랙 레코드가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인데요.”

트랙 레코드의 해밀턴보다 훨씬 더 빠른 기록을 달성한 보타스. 소치 오토드롬의 모든 갤러리들이 보타스를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는군요. 이번에도 메르세데스가 소치의 프론트 로우를 차지하는군요.”

“흠... 아직 두 명 남았네.”

션이 예상했던 흐름에 다소 아쉬움을 드러내자, 체이스가 그의 주의를 피트 레인 근처로 주목시켰다. 회장의 손이 가리키는 곳엔 붉은색 페라리카 두 대가 차례로 서킷에 등장하고 있었다.

“일찍이 트랙 레코드까지 나온 상황에서 끝까지 기다렸다가 나왔다는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Q3 종료 4분 가까이 남은 시간. 아웃 랩을 도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종료까지 페라리 팀의 플라잉 랩은 딱 한 번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죠. 근데 전방에 트래픽이 있네요. 이건 예상했던 그림이 아닐 텐데...”

Q3 짧은 시간 동안 열 명의 경주차들은 아웃 랩과 인 랩을 포함해 세 차례 이상 서킷을 돌게 된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플라잉 랩에 있어 또 다른 누군가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데, 불행하게도 페라리 듀오의 플라잉 랩에는 피트로 복귀를 시작한 경주차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그냥 들어가겠다고?!”

페텔보다 먼저 스타트 라인을 통과한 페라리의 루키. 장애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배짱 넘치게 플라잉 랩을 시작했다.

< 이건 예상했던 그림이 아닐 텐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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