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60화 (160/200)

< F1의 역사는 내가 다시 쓴다 >

레이스 당일 러시아 소치의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고, 확실한 드라이 컨디션이 갖춰졌다. 오후 2시 무렵 트랙 주변의 기온은 무려 26도까지 올랐고, 트랙 온도는 41도에 달했다.

[Russia GP Starting Grid]

[1. 준하 2. 페텔]

[3. 보타스 4. 해밀턴]

[5. 리카도 6. 마싸]

[7. 막누스 8. 훌켄버그]

[9. 페레즈 10. 오콘]

세 명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들이 US타이어를 장착하고 레이스를 시작했다. 타이어 부담이 적고, 단단해진 이번 시즌 타이어 컴파운드 덕분에 오늘 GP에서만큼은 모든 팀이 1스탑 작전을 사용할 것으로 보였다.

“신호 꺼집니다!!!”

“선두 서준하의 스타트는 무난해 보이고요...!”

높은 기온과 트랙 온도, 그리고 추월이 쉽지 않은 시가지 서킷. 스타트와 레이스 초반만 잘 버틴다면, 서준하의 우승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였다.

“더티 사이드(Dirty Side) 스타트 때문인가요? 페텔과 해밀턴의 스타트가 늦었는데요!”

“스타트가 빨랐던 보타스가 기회를 포착하고, 페텔의 앞으로 치고 나옵니다!!”

스타트할 때 레코드 라인 쪽에서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를 더티 사이드 스타트라고 한다. 소치의 첫 코너가 우측으로 완만하게 꺾이기 때문에 레코드 라인은 왼쪽 그리드로, 2번과 4번 그리드와 같이 우측 라인에서 스타트한 선수들은 코너 진입 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아! 시작부터 페텔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휠스핀이 발생하면서 이제는 해밀턴과 나란히 달리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곧바로 뒤차들에게 기회가 오는군요! 뒤따르던 리카도가 해밀턴의 우측으로 뻗어 나옵니다!”

스타트가 좋지 못했던 페텔이 어느덧 5위 리카도에게 따라잡힌 상황. 선두 서준하와 보타스가 첫 코너를 빠져나가고, 곧이어 뒤따르는 세 선수가 진입을 시작하는데,

“쓰리 와이드!!!”

“시작부터 멋진 장면이 연출되는군요...!”

초반에 반드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선수들. 페텔과 해밀턴, 리카도 세 명이 첫 코너에서 나란히 코너를 통과했다.

‘...!!!’

2그리드에서 어느덧 5위까지 추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버린 페텔. 자신의 옆으로 붙어버린 또 다른 경쟁자들과 점점 멀어져가는 페라리카의 모습에 온몸의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치 서킷 초반엔 절대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페텔이 해밀턴 가까이 경주차를 바짝 붙이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페텔이 우측으로 밀고 나오자 해밀턴이 움찔하는군요...! 페텔도 여기서 더 떨어지면 큰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거겠죠!”

“아 그리고! 해밀턴의 모션에 리카도가 물러서는군요!”

해밀턴이 움찔하는 모습에 더 크게 반응하는 리카도. 쓰리 와이드 구도에서 물러나며 3위 배틀에 페텔과 해밀턴만이 남게 됐다.

2턴의 브레이킹 존에 들어선 페텔이 필사적으로 제동 타이밍을 늦추며 해밀턴의 진입 속도에 영향을 줬다. 초반 매우 좋지 않았던 스타트를 생각하면 다행히 무난하게 2턴에 들어설 수 있어 보였는데,

“언제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요...! 막누스가 3턴에 들어오며 페텔의 옆을 파고듭니다!”

7그리드에서 출발한 막누스가 어느덧 해밀턴을 제치고 순식간에 페텔의 뒤를 쫓게 된 상황. 또 다른 추격자의 등장에 페텔이 다시 한번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놓이게 됐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라고...!!!’

4턴 진입 전 막누스가 조금 더 바짝 따라붙으며 압박을 시작하자, 페텔은 매우 늦은 타이밍에 브레이킹을 밟았다.

끼이이이이익.

브레이킹 타이밍 덕분에 막누스보다 앞섰지만, 약간의 휠락이 걸리면서 경주차는 불안정해졌고, 평소 자신의 코스 돌파와 다른 방식에 경주차도 이상 반응을 보였다. 선두를 추월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첫 랩에 페텔은 추격자들을 막는 데 힘을 쏟고 말았다.

“이제 선두 자리는 서준하와 보타스 두 선수의 대결로 좁혀졌군요! 어느새 보타스와 페텔의 격차가 3초 가까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초반 레이스 진행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예상했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레이스 초반. 페텔이 멀어져가는 선두 차를 흘겨보는 것도 잠시, 뒤따르는 추격자들의 어택에 디펜스를 시작했다.

***

“이대로 격차만 조금씩 벌려준다면, 우승까지 무난하겠어. 믿을 수 없구만, 허허.”

페라리 팀의 피트에서 선두 경쟁을 바라보는 흰 수염의 윌리엄 스메들리. 시간이 흐를수록 초반 긴장했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며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초반 걱정했던 푸쉬가 뒤에 쏠려서 다행이에요. 준하도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서준하의 활약으로 친정팀 스메들리 포뮬러도 더욱 조명을 받게 됐고, 페라리 팀의 초청으로 윌리엄이 피트에서 레이스를 관람하게 됐다. 곁에선 한서윤이 그의 말에 동조하며 다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준하랑 경쟁하던 선수들이 많이 보이는구만. 제이크, 샤를. 오, 르노의 쥴리앙까지, 언제들 올라온 거야, 그래.”

“익숙한 얼굴들을 찾으셨네요. 이번 시즌 F1에 영드라이버들이 더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

르노 2.0 시절부터 스메들리 팀의 경쟁자였던 드라이버들. 각 팀의 게러지에서 대기 중인 테스트 드라이버 몇몇이 윌리엄의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보니까 지금 준하의 상황이 더 놀라워. 영드라이버들의 커리어로 봤을 때, 지금 저 테스트 드라이버에 앉아 있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지금 GP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이것 참...”

F1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모터레이싱 드라이버로선 엄청난 이력. 오래전부터 F1무대에서 봐왔던 마싸, 알론소, 해밀턴 같은 선수들과 겨루는 서준하의 모습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모터스포츠에 오랜 세월 몸담아왔던 윌리엄도 생소한 일이었다.

“저 선수들 표정이 엄청 의욕적이네요.”

“준하가 이렇게 선전하고 있으니 놀라우면서도, 어쩌면 자신감도 차오르겠지.”

한때 서준하의 경쟁자였던 드라이버 모두 언제든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F3에서 서준하와 수차례 배틀을 이어갔던 제이크의 모습이 윌리엄에게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초반 혼란스러운 상황이 조금씩 줄어들자, 레이스 상황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윌리엄이 또 한 번 참가 팀 피트 주위를 둘러보는데,

“웬만한 선수들은 다 올라온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안 보이는데?”

“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F1 이전 서준하와 경쟁하던 대부분이 선수가 F1 콧핏에 근접한 상황. 윌리엄의 예상과 다르게 자신이 기대했던 선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겠어? 제프 슈마허 말이야. 이번 시즌 F1 얘기가 나온 걸로 아는데...”

16시즌 F2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F1 무대로의 이적 가능성이 높았던 제프. F3 시절 스메들리 팀을 들었다 놨다 했던 드라이버기가 어느 팀 피트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네요, 제프가 안 보여요.”

“확실히 F1이라는 건 슈마허라는 명성과 F2 챔피언이라는 타이틀 말고도 다른 게 있어야 하는 것 같구만.”

“그래서 준하의 데뷔가 더 눈에 띄는 거 같아요. 굉장한 행운을 타고났다고 할까요?”

기존 드라이버들의 성적이나 F1 팀의 상황 등등 운과 타이밍은 F1 데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분명해 보였다. 그녀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다시 선두의 페라리카로 시선을 옮긴 윌리엄.

“그래, 맞아 행운. 하지만... 그 행운이 전부는 아니지. 준하에겐 그게 있으니까.”

서준하를 처음 봤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의 주변에서 느껴지던 엄청난 승리의 기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

-현재 트랙 온도는 42도! 리카도의 브레이크가 과열됐어. 피트 스탑 전에 반드시 격차를 줄여라, 보타스!

2위 자리에서 선두 서준하를 맹추격하고 있는 발트 보타스. 기온이 더욱 올라감에 따라 트랙 온도가 급상승하자, 몇몇 경주차들의 브레이크가 과열로 불타는 현상이 발생했다. 보타스가 우승하기 위해선 머신의 온도가 더 높아지기 전에 가능한 빨리 추월을 시도해야 했다. 하지만,

-10랩 격차가 0.5초 더 벌어졌잖아! 집중해!

따라가기도 어렵지만 따라가서도 안 되는 추격전이 시작된 레이스 초반. 선두와의 격차는 6랩에 2.0초에서 10랩에는 3.3초로 더 벌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따라잡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힘들어진다...’

지금 선두 차는 다른 차의 배기가스나 터뷸런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 클린 에어(Clean Air)의 이점을 활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10랩 랩타임을 전해 듣자, 보타스는 위기감을 느꼈다.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 해밀턴이 현재 5위라는 사실과 자신의 윌리엄스 시절 가장 활약했던 GP가 러시아라는 사실로 봤을 때, 오늘 레이스는 보타스에게 찾아온 또 다른 우승 기회. 다시 이 사실을 자각하고는 흐려졌던 집중력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코리안...!!!’

이번 시즌 서준하를 만난 뒤로 보타스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불이 붙었다. 레이스에서 선두권 배틀은 드라이버간 실력을 겨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 개인적인 앙금과 굴욕감과 질투심 등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낀 보타스가 다시 선두 차를 주시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치의 백스트레치를 최고속으로 빠져나와 13턴에 들어서는 서준하. 급감속 구간에서 추격자의 기척이 더 크게 느껴졌다. 레이스 초반 리드를 이어간다는 자신의 예상은 맞아떨어지고 있었지만, 뒤따라오는 경쟁자가 페텔이 아닌 다른 상대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1랩 어딘가 달라진 듯한 보타스의 코스 돌파! 13턴 진입에서 브레이킹 존의 한계까지 제동 타이밍을 늦춥니다!”

두 선수의 격차가 다시 2초 후반대로 줄면서 평이하게 흘러갔던 레이스 상황에 변화가 시작되는 듯 보였는데,

“또다시 최대한 브레이킹 타이밍을 늦추는 보타스! 1초 내로 격차를 줄인다면, 이제 추월도 가능해 보이는데요...!”

또 다시 새로운 랩을 시작하며 윙미러를 흘겨보는 서준하. 이전보다 더 가까워진 뒤차와의 간격을 확인했다.

‘첫 우승에 대한 의지가 이런 건가?’

전생의 서준하가 아는 보타스의 생애 첫 그랑프리 우승 장소는 바로 오늘 이곳, 17시즌의 러시아 GP다. 기어코 자신을 뒤쫓아온 모습에서 전생과 같은 첫 우승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전생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다. 이번 생 보타스의 상대는 서준하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서준하가 마음먹은 건,

‘F1의 역사는 내가 다시 쓴다!!!’

두 선수에게 찾아온 그랑프리 우승의 기회. 오늘은 보타스의 첫 우승 그랑프리가 아닌, 서준하의 2연승 장소가 될 거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격차를 좁히는 듯 보였던 보타스가 다시 뒤처지고 있습니다!!”

“보타스가 느린 게 아닙니다! 섹터3 서준하의 돌파 속도를 보시죠! 오늘 레이스 가장 빠른 랩타임인데요!!!”

1초 내로 줄어들 것처럼 보였던 두 선수의 격차. 11랩 막바지 보타스가 뛰듯이 달렸다면, 서준하는 날고 있었다.

< F1의 역사는 내가 다시 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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