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62화 (162/200)

< 반드시 살아서 들어간다 >

“와, 역시 페텔의 드라이빙은 수준급이네요. 2위에 오르면서 선두와 격차를 5초 가까이 줄였어요.”

“서른 바퀴 이후 타이어 관리가 주요했지. 보타스의 압박만 벗어난다면, 격차는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구만.”

영국 포뮬러 B의 편집장 숀과 기자 존이 피트 스탑을 마치고 2위로 복귀한 페텔의 활약에 감탄을 내뱉었다. 레이스 중반 3위에서 서준하와 10초 이상 벌어졌었던 그가 어느새 2위로 올라와 팀메이트를 맹추격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서준하가 밑으로 내려와서 보타스를 막아줬을 텐데. 확실히 페라리가 노선을 바꾼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아. 페라리 팀으로선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이었을 텐데 말이야.”

팀 메이트 간 경쟁 구도를 만들지 않았던 페라리 팀. 오랜 기간 페라리의 역사를 지켜봐 왔지만, 오늘 페라리의 레이스 운용 방식은 기존의 틀을 깨며 편집장에게 작은 충격을 안겨줬다.

“어제오늘 페텔이 받은 심리적인 타격은 엄청날 거야. 하지만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선두에 대한 의지가 강할지도 모르겠구만.”

페라리는 14시즌부터 페텔이라는 드라이버 한 명에게 팀의 모든 걸 맞추기 시작했고, 이후 잦은 실패를 겪더라도 그에 대한 신뢰와 지원을 절대 굽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말았으니, 페텔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가 생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아! 약간 흔들렸어.”

“저런 미스 턴 하나에 1초 가까이 줄어드는 건데...”

38랩 째 서준하가 13턴에서의 파워 브레이킹 도중 약간 흔들린 틈을 타 페텔이 3.1초까지 격차를 좁혔다. 새로운 타이어를 장착한 페텔은 계속해서 페이스가 올랐고, 조금도 선두의 실수를 놓치지 않으며 집중을 이어갔다.

[1.서준하 SS - 40 Lap]

[2.  페텔 SS + 1.9s]

[3.보타스 SS + 8.8s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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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스트롤 SS + 93.8s (+12.9)]

[12.크비얏 SS + 1 lap (+5.6)]

[13.에릭슨 SS + 1 lap (+2.4)]

“사실상 페라리 듀오의 대결이 되겠는데요? 네 바퀴 만에 보타스와 페텔이 6초 이상 멀어졌어요.”

“해밀턴도 오늘 컨디션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 이렇게 해밀턴이 선두와 20초 이상 차이 났던 레이스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전반적인 레이스 상황을 훑어보는 두 사람. 40랩이 다가오는 지금, 트랙은 선두권과 중하위권 경주차들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와, 페텔 1초대로 들어왔어요! 게다가 지금 랩타임으로 봐선 메르세데스는 진짜 끝난 것 같고요.”

“흠...”

지금 상황에선 대부분이 오늘 그랑프리를 끝으로 페라리가 4연승을 차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편집장은 쉽사리 오늘 레이스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듯한데,

“지금 갤러리 가운데 신난 건 티포시들 뿐이군요. 러시아 팬들은 많이 아쉽겠어요. 시로츠킨은 리타이어했고, 크비얏은 거의 뭐 가망이 없어요.”

“그래, 사실 신인들에겐 완주조차 쉽지 않은 곳이 F1이니까. 지금 백마커만 다섯 명... 앞으로 세 바퀴만 더 돌아도 일곱 명 가까이 늘어나겠어. 이제 곧 트래픽이 끊임없을 때가 오겠구만.”

스탠드에 자리한 러시아 팬들의 얼굴과 전광판에 백마커로 표기된 선수들의 이름을 번갈아 바라보는 숀 편집장. 스무 명의 선수 가운데 현재 리타이어한 선수는 총 4명. 16명의 드라이버 가운데, 이제 곧 일곱 명이나 서준하와 한 바퀴 이상 차이로 달릴 것으로 보였다.

“근데 이렇게 백마커가 많았던 적이 있었나요?”

“선두가 빠른 만큼 백마커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나...”

레이스가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더욱 치열해진 페라리 듀오의 선두 싸움. 그와 동시에 늘어난 백마커들의 모습을 숀 편집장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44랩! 1.7초! 거의 다 왔어!!

“카피, 팀 오더는?”

-아직 없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더 좁혀!

아다미에게 팀의 오더가 있었는지를 묻는 페텔. 선두와 굉장히 근접했음에도 피트월은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슬립을 타고 속도를 높여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라는 오더가 내려졌겠지만, 페라리 팀은 그에게 아무런 오더도 내리지 않았다.

‘갑자기 뭐야 이건...’

현재 상황에서 팀이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팀 메이트와 경쟁을 통해 알아서 선두로 나서라는 것. 팀 메이트간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페라리는 철저히 두 선수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했다.

-45랩! 1.5초 돌파! 파이널 랩 전에 뚫어버려!!!

14시즌 이후 3년 가까이 페라리에 머물었던 페텔. 오늘 처음 팀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F1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4회 연속 F1 월드 챔피언을 달성하고 최고의 대우를 받았지만, 자신 말고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한 팀에게 그 사실은 그저 과거의 기록일 뿐인 듯했다.

‘고작 시즌 네 경기 만에 돌아섰다고?’

서준하의 리어윙에 박힌 페라리의 엠블럼을 보며 어제 퀄리파잉 직후 자신이 맛본 씁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어딘가 달라진 듯한 팀원들의 분위기와 자신을 대할 때의 표정들. 감정 상태가 혼란스러웠기에 그렇게 보였던 걸지도 모르지만, 오더가 없는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팀은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게 분명했다.

‘그때 그 예감이 맞았군...’

마라넬로에서 서준하의 연습 주행을 처음 본 날, 페텔은 그가 평범한 루키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금 그 예감은 맞아 떨어졌지만, 이렇게 빨리 퍼스트 자릴 위협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49랩 1.4초! 50랩 1.2초!! 더는 못 까불도록 밟아버려!!!

피니시까지 두 바퀴가량 남은 상황. DRS를 열 수 있는 격차까지 가까워지자, 아다미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판단을 후회하게 만들어줄게, 잘 봐둬라...!’

팀은 자신과 서준하 둘 중 누가 더 실력 있는 드라이버인지 확인하고 싶을 터. 추월 시도가 가능해지면서 페텔은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기회라고 여겼다. 월드 챔피언과 10년 차 드라이버의 기량이 어떤 건지 분명히 보여줄 때가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DRS를 열면 끝나는 거야!!!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 드라이버, 저스틴 페텔. 파이널 랩을 시작하며 루키와의 격차를 1초 이내로 줄였다.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그의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

-페텔과의 격차 1.2초! 절대 슬립 스트림을 허용해선 안 돼, 서준하!!

35랩부터 이어져 온 팀 메이트와의 추격전이 드디어 파이널 랩에 이르렀다. 페텔과의 격차가 1초 전후를 왔다갔다하며 롭이 긴장이 극도로 치솟았다.

[DRS ACTIVATION ZONE 1]

파이널 랩을 시작하며 1턴을 빠져나온 서준하. 가슴속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첫 번째 DRS 존으로 시선을 옮겼다.

“...!!!”

선두 차량은 DRS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그 앞에 백마커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홈스트레치 백마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위기감은 폭발적으로 치솟고 말았다.

-1.1초...! 이대로 가다간...! 지켜내라, 준하야!!!

페텔에게 DRS를 허용하더라도 한 번의 진로 변경으로 추월을 막을 기회가 있지만, 소치 오트드롬의 두 번째 DRS 존에서의 추월 성공 확률은 90%가 넘는다. 사실상 DRS를 막지 못하면, 피니시를 앞두고 선두가 달라지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나올지도 모른다.

-다 왔어! 이제 마지막 DRS 존만 벗어나면 끝이야!!!

9턴을 빠져 나와 두 번째 DRS 구간이 시작되는 백스트레치로 들어서기 위해 경주차의 방향을 돌리는데,

“있다!!!”

-...!!!

백스트레치를 달리는 토로 로쏘의 경주차 한 대. 크비얏의 경주차를 발견한 서준하가 재빠르게 그의 뒤로 달라붙었다.

-DRS! DRS! DRS! ON!!!!

크비얏과 1초 이내 격차로 들어오며 DRS를 켜고 슬립 스트림에 오른 서준하. 조금씩 페텔과는 멀어지며 크비얏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

“...!!!”

-XX!!! 피해!!!

서준하의 눈앞으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크비얏의 리어윙. 순간적으로 반사 신경을 발휘하며 스티어링 휠을 틀었다.

파바박.

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의도치 않은 타이밍에 순식간에 좌측으로 튀어나온 서준하. 프론트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느끼며 우측 프론트 윙에 충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론트가 심상치 않아!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 밸런스! 밸런스부터 잡아!!

피니시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페라리 피트 월. 다운 포스의 변화로 갑작스럽게 속도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모두가 침착함을 잃고 말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롭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라는 오더를 내리며 경주차의 상태를 파악하려 했다.

-최대한 리어 그립으로 코스 돌파해! 거의 다 왔어...!!!

“...”

크비얏과 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서준하의 눈앞으로 전생의 크러쉬와 비슷한 기억들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러한 충격도 잠시,

쿵.

파바바바박.

뒤쪽에서 들려온 엄청난 소음. 기척에 놀란 서준하가 윙미러를 흘겨봤다.

“...!!!”

-...!!!

여전히 자신의 뒤를 쫓는 페텔의 페라리카. 하지만 무엇보다 서준하를 놀라게 만든 건 이전과 달라진 경주차의 모습이었다.

“아!!! 크러쉬! 이중 크러쉬가 발생했습니다!!!”

“서준하와 접촉이 있었던 크비얏! 이번에는 페텔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크비얏인가요?!”

“와, 페텔 저 상태로 계속 달리는데요...!!!”

중계 스크린에 등장한 페텔의 경주차. 놀랍게도 우측 앞바퀴 한쪽이 사라진 페라리카가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며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세 바퀴의 페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발휘합니다!!!”

오늘 레이스 파이널 랩의 마지막 섹터를 두고 벌어진 기절초풍할 만한 상황. 1998 시즌 벨기에 GP 어느 드라이버의 질주와도 유사한 모습에 갤러리 모두 기겁하고 말았다.

“크러쉬 이후에도 그대로 달리는 페라리 듀오!!! 이제 남은 턴은 세 개! 피니시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페텔의 뒤를 쫓는 메르세데스의 보타스!! 아! 섹터 3에서 만날 것 같아요!! 이거 정말 마지막까지 모르겠는데요...!!!”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금 서준하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온몸으로 차량의 중심 이동을 느끼며 피니시까지 남은 네 개의 코스에만 집중했다.

‘반드시 살아서 들어간다!!!’

파이널 랩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상황에 소치 오트드롬을 찾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두 차량을 바라봤다.

< 반드시 살아서 들어간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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