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65화 (165/200)

< 페라리는 더 이상 그런 체제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

“오전 내내 서 있었더니 기운이 너무 빠지는구만, 안 그런가 다들?”

5차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 마라넬로로 돌아와 각종 스폰서십 행사와 인터뷰를 이어가는 페라리의 드라이버들. 팀의 주 스폰서 쉘의 광고 촬영까지 마치고, 또다시 테스트 서킷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두 선수를 아리바베네 감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스폰서가 없으면 콕핏에 오를 머신도 없는 거 아니겠나. 이제 게러지로 돌아가서 업데이팅 내용만 확인하고 쉬도록 하지. 내 저녁 일정은 반드시 뺄 수 있도록 엔지니어링 팀에 일러두겠네.”

F1 드라이버라면 시즌이 끝나고만 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GP가 끝난 바로 그 주에도 아니, GP 동안에도 드라이버들은 스폰서들이 요청한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나 스폰서들과 쉽게 컨택할 수 있는 유럽 일정이 시작되면, 드라이버들의 스케쥴은 더욱 바빠진다.

“이번 라운드에 저희 팀 업그레이드 파츠들이 많은가요, 감독님?”

“흠, 아마 개발팀에선 T-윙에 변화를 줬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사항은 가서 확인해 봐야 하네.”

“그렇군요, 메르세데스와 레드불은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들어갈 거라고 하던데요...”

“...”

지금 자신과 페텔 사이의 어색한 기류를 깨기 위한 아라바베네의 모습을 알아챈 서준하는 일부러 그에게 말을 붙였다. 러시아 GP 이후 페텔은 더욱 말수가 줄었고, 서준하와 함께 하는 많은 자리에서 예전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페라리의 테스트 서킷인 피오라에 도착하는 동안에도 아리바베네는 두 선수 사이의 분위기를 전환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드라이버들의 의욕을 살리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감독의 노력에서 서준하는 또 한 번 그가 왜 F1계의 명장인지를 깨닫게 됐다.

“우리가 러시아에 있는 동안, 마라넬로 개발팀에서 이번 업데이트 파츠에 대해 미리 테스팅을 마쳤다고 들었네. 이런 절차는 앞으로도 비슷하게 진행될 거야.”

“테스팅을 진행할 드라이버가 있었나 보죠?”

“아참, 깜빡했구만. 우리가 러시아에 있는 동안 새로운 테스트 드라이버가 들어왔어. 아마 지금 서킷에 있을 거야.”

새로운 드라이버라는 말에 전과는 다른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보는 두 선수. 이전에도 페라리에는 몇몇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있었지만, 이번 시즌처럼 단독적으로 테스팅에 참여했던 드라이버는 없었다. 팀의 또 다른 변화에 더해 이를 가능케 한 새로운 드라이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 사람이 테스트 서킷에 도착하자, 붉은색 경주차 한 대가 빠르게 서킷을 도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주행을 마친 경주차에서 드라이버 한 명이 내리고는 피트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다가섰다.

“이번 시즌 새로 합류한 제프 슈마허. 서로 인사 나누게.”

17시즌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입단한 제프 슈마허. 입단 사실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고, 감독과 일부 임원진들만이 이를 알고 있었다. 감독의 소개에 두 선수 모두 반가움과 놀라움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제프를 바라봤다.

“어릴 때 봤던 것 같은데, 나 기억하려나? 반가워 페텔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페텔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서준하는 그런 페텔의 표정을 흘겨봤다. 그의 여유 있는 표정은 처음 자신과 마주했을 때와 비슷했는데, 아마도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반갑다, 준하.”

“반가워, 페라리에 온 걸 환영한다.”

페텔과 악수를 마치고 이번에는 제프가 먼저 서준하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프의 눈빛 어딘가엔 이전의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이 담겨있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이미 자신보다 2년 가까이 빠르게 F1에 데뷔해 활약 중인 서준하를 두고 질투심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웠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역시 늦어질 것 같네.’

서준하는 그런 제프의 표정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도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제프는 서준하에게 주전 자리에 밀리며 데뷔가 늦어졌다. 이번 생에도 또다시 서준하의 활약이 이어지며 그의 페라리 드라이버 데뷔는 쉽지 않아 보였는데,

‘하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리가 날 수도 있겠지.’

제프가 콕핏을 차지한다면, 그건 자신의 경주차가 아닌 페텔의 그것이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도 무관심한 페텔을 바라보는 서준하. 이번 시즌이 끝나고 더욱 달라질 팀의 변화를 상상하며 제프와 페텔을 번갈아 바라봤다.

***

“사장님, 스페인 GP의 투시터(F1 2-Seater Experience) 이벤트 말이죠. 이거 어느 팀으로 선정하는 게 좋을까요?”

이번 시즌부터 조금 더 다양한 이벤트들을 기획한 FOM. F1 투시터 익스페리언스는 2인승 포뮬러카를 제작해 팬들도 F1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이벤트다. ‘F1 Experience’팀의 책임자 윌터가 FOM의 션 사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차량이 몇 대라고 했지?”

“2인승이 가능하도록 준비된 차량은 세 대입니다.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그리고 레드불 팀으로 정하면 될까요?”

준비된 세 대의 차량을 운전할 드라이버는 총 세 명. 윌터가 큰 고민 없이 팬덤이 가장 많은 상위권 세 팀의 이름을 꺼내며 션 사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여긴 스페인이잖아. 꼭 들어가야 할 사람이 있지 않겠나.”

“아...”

“레드불을 빼고 맥라렌을 집어넣게. 바르셀로나는 알론소를 보러 온 사람이 절반이 넘을 테니까.”

F1 드라이버 가운데 유일한 스페인 출신인 맥라렌 팀의 알론소. 현재 맥라렌의 성적이 바닥을 기더라도, 알론소의 팬덤은 레드불 팀과 그 드라이버 모두의 팬덤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

“그러면 맥라렌에서 알론소 선수, 페라리에선 페텔, 그리고 메르세데스에선 해밀턴 선수에게 미리 전달해두겠습니다.”

자신이 고민했던 사안을 해결한 윌터가 자연스럽게 톱 드라이버들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아니, 아니. 페라리에선 페텔 말고 서준하로 집어넣게.”

“네?! 페텔을 빼고요...?”

이런 큰 행사에선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챔피언 드라이버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사장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던 윌터가 이어지는 그의 답변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불이 붙었을 때 더 활활 태워야지 않겠나.”

데뷔 2년 차 F1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서준하. F1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드라이버들의 인기투표에도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나 FOM이 새롭게 타겟으로 하는 젊은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션 사장의 눈길을 끌었다.

“잠깐, 잠깐. 그 뒤에 같이 타는 게스트들은 어떻게 됐나. 이전에 말했던 대로 섭외된 거야?”

“네, 말씀하신 세 명 모두 섭외했습니다.”

“오케이, 좋아. 그럼 자리 배치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F1에서 추진하는 새로운 빅 이벤트이니 만큼 유럽의 인기 드라마 주연 배우들을 2인승 포뮬러카에 태울 계획이었다. 기대감에 찬 사장이 윌터를 향해 물었다.

“해링턴 씨는 원래부터 엄청난 해밀턴의 팬이라고 하셔서 둘이 묶으려고 했고요. 나머지 두 사람은 오늘 직원들과 토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알려주신 두 선수 모두 예상 못 한 선수들이라...”

“그래, 정해지면 다시 보고해주게. 대신 팬들이 흥미를 갖는 건 주행이 끝나고 배우들과 선수들이 갖는 케미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아, 아 네...”

“벌써 어떻게 묶여야 할지 감이 오는구만, 하하.”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벤트 참가자들. 이벤트 당일 포뮬러카에 탄 그들의 함성이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모습을 상상한 션 사장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

“이미 5라운드 시작 전부터 예고해왔던 대로 레드불은 많은 업데이트를 진행했고, 오늘 FP1, FP2에서 그것이 성공적이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5차전 그랑프리의 금요일 공식 일정 저녁. FP2를 마친 프레스 룸으로 페라리, 메르세데스 그리고 레드불 세 팀의 수장들이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메르세데스 팀 역시 사실상 새로운 레이싱카를 선보였는데요. 두 팀 모두 연습 주행 완벽한 기록을 내면서 성공적인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라운드 페라리 팀에게 상당한 위협을 가할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아리바베네 감독님...”

레드불 경주차의 에어로파츠의 변화 그리고, 5kg가량 가벼워진 파워 유닛과 새로운 디자인의 메르세데스 경주차 업그레이드. FP1과 FP2 각각 두 팀의 드라이버들이 압도적인 기록을 뽑아내며 언론들의 기대를 샀다. 기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너와 테오 감독이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난 라운드 페라리의 퍼스트 제도에 변화가 오면서 팀 내 경쟁 가속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연습 주행에서도 페라리가 처음으로 순위권 기록 경쟁에 뒤지는 랩타임이 나왔고요.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과거 경험으로 볼 때, 팬들의 걱정은 합리적이었지만, 오늘 연습 주행의 성적과 두 선수의 경쟁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괜한 이슈를 만들려는 듯한 의도가 있는 듯 보였지만, 아리바베네는 개의치 않고 답변을 시작했다.

“일단 오늘 연습주행 결과는 업데이트 파츠에 대한 테스팅 성격이 강했습니다. 팀 내 경쟁 구도에 대해선 페라리의 드라이버들을 더욱 믿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4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페라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답변에도 여전히 팀 내 경쟁 구도에 대한 찝찝함을 드러내는 몇몇 기자들. 그 모습에 아리바베네가 다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매년 F1에선 한 명의 드라이버를 희생시키는 팀 오더로 논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시즌 초중반부터 팀 오더로 논란을 키웠던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나 그런 체제로 매 GP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메르세데스가 대표적. 답변 도중 좌측에 앉은 테오를 살짝 흘겨보기도 했다. 그리고,

“페라리는 더 이상 그런 체제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아리바베네는 두 명의 드라이버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 방식은 서열을 정하고, 팀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방향을 바로잡고 모두의 의욕을 키우는 것.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들을 응시했다.

“앞으로 페라리는 하나의 팀으로서 더욱 강해질 겁니다. 그런 체제를 따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페라리의 임원진들은 보수적이며 어지간해서는 전통과 관례를 깨지 않는다는 사실로 유명하다. 기존의 방식을 거부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아리바베네. 지금 그의 머릿속으론 이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 페라리는 더 이상 그런 체제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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