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현차가 페라리 만큼 빠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
15시즌 혼다의 엔진을 사용하고부터 절망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맥라렌 F1 팀. 이번 시즌 팀의 주전 선수 알론소는 아직까지 포인트 획득은커녕 단 한 차례의 완주조차 없는 유일한 드라이버다.
[Spain GP. 15/66 lap]
[Rank. Pit Stop – Tyre]
[1. 막누스(non stop - S)]
[2. 페텔(non stop - S)]
[3. 보타스(non stop - S)]
[4. 해밀턴(1 stop – S)]
[5. 리카도(non stop - S)]
[6. 알론소(non stop - S)]
[7. 서준하(1 stop – S)]
“페라리의 서준하 서킷으로 복귀! 알론소 뒤에 붙었습니다!”
“뭐?!”
오랜만에 순위권 진입이 가능한 알론소의 모습에 흥분으로 가득한 맥라렌 피트월. 갑자기 오렌지 색 알론소의 경주차 뒤로 페라리 카가 따라붙는 걸 확인했다.
“페라리는 이번 랩에서 언더컷 효과를 뽑아내겠다는 생각이구만.”
지난 30년간 작전과 전략을 지휘해온 맥라렌 팀의 단장, 론 데니스. 피트 레인을 빠져나온 이후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페라리 팀 신인의 차량을 보고는 상대의 레이스 전략을 단번에 캐치해냈다.
“그걸 아는 이상 쉽게 내줄 순 없지...! 알론소에게 전하게.”
데니스의 말에 페라리의 의도와 전략이 드라이버에게 전달됐다. 완주는 물론, 지난 두 시즌 동안 최고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 앞에 맥라렌은 쉽사리 물러설 생각이 없었는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2001년 데뷔 후, 슈마허 시대의 종말을 앞두고 두 번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알론소. 스페인 스포츠계의 우상이자,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F1의 또 다른 슈퍼스타다.
팀의 무전과 동시에 그의 윙미러로 홈스트레치 이후 불쑥 등장한 페라리의 경주차가 보였다.
“코리안? 그래 어디 차빨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고.”
-너, 너무 무리하지 마, 알론소.
“닥쳐...”
성적 부담보다는 완주를 목적으로 달리며 레이스 자체를 즐기는 중인 알론소. 그에게 서준하라는 페라리의 신성과의 배틀은 새로운 자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같은 날은 달려줘야지!!!”
늘 문제가 생겨 알론소를 열 받게 만들었던 혼다 엔진이 오늘은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홈스트레치를 타고 들어온 가속도는 알론소가 더 빠르죠! DRS를 쓰지 못하고 서준하가 첫 번째 DRS 존을 지나칩니다!”
피트 레인에서 제한 속도 80km/h로 달려 나온 서준하는 알론소의 뒤에 붙었지만, 1초 내로 격차를 붙이지는 못했다. 다음 턴부터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될 것으로 보였는데,
“자, 막누스가 15랩 피트 스탑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페텔과 보타스는 그대로 달릴 것 같고요. 이렇게 되면 언더컷에 들어갔던 해밀턴과 서준하는 지금부터 최대한 랩타임을 끌어올려야 하는데요...!”
“아! 말씀하신 순간, 서준하가 4턴 안쪽으로 파고들자 알론소가 곧바로 라인을 막아섭니다!”
고속 코너가 끝나고 벌어진 알론소와 서준하의 휠투휠 상황. 이어지는 코스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두 선수의 움직임이 더욱 치열해졌다.
“아! 서준하는 이번 랩 최대한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데요...!”
서준하의 눈앞으로 보이는 알론소의 리어윙. 그의 주행은 매우 교묘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얼핏 보면 블로킹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규정 내 무빙으로 서준하의 라인을 가로막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멘텀은 살려내며 스피드를 잃지 않았는데,
‘...영리해.’
이번 생 그의 드라이빙을 처음 느껴본 서준하. 몇 차례 배틀만으로 그가 왜 세계 최강 드라이버였는지 알게 됐다. 심지어 지금 그가 맥라렌 차에 오른 것이 안타까울 정도.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애초에 무리하게 추월할 생각은 없었다. 고속 코너에서 끈질기게 격차를 유지해온 서준하. 백스트레치에 들어옴과 동시에 앞차와의 격차를 확인했다.
“DRS ON!! 서준하가 알론소의 앞으로 튀어나옵니다!!!”
백스트레치에 오르자마자, 시원하게 맥라렌 카를 앞질러 나오는 페라리카. 티포시들은 꽉 막혔던 무언가가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기다렸던 순간! 페라리카에서 참아왔던 스피드가 터져 나오는군요!!!”
피트 스탑에 들어갔던 막누스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이번 랩 최대한 빠르게 돌아야 한다. 알론소 덕분에 서킷의 절반 동안 크게 속도를 내지 못한 상황에 롭이 다급해졌다.
-더! 더! 더...!!!
최고속을 내며 달리는 서준하에게 별다른 오더를 내리지 못하고 ‘더’라고 외칠 뿐이었는데,
‘아직 절반이나 남은 거야, 하나만 걸려라...!!’
롭과 달리 서준하는 할 수 있다는 투지로 가득했다. 서킷의 절반을 허비했다기보단 나머지 절반을 위해 예열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뿐. 막누스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다.
‘그렇지! 저거야!!!’
DRS와 함께 순식간에 백스트레치를 돌파한 서준하. 리카도의 경주차가 눈앞에 보이자, 이내 그의 10턴 진입 라인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오우!! 이걸 어쩌겠다는 거야?!
날카로운 코너링 각도 때문에 급 브레이킹이 요구되는 10턴 헤어핀. 너무 빠른 진입 속도에 롭이 소릴 지르고,
훼에에에에에에에에엥.
알론소의 슬립 스트림을 타고 끌어올린 스피드. 서준하가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10턴에 진입했다.
***
카탈루냐 서킷 패독의 VVIP 관람석.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신인이 F1 슈퍼스타 알론소를 제치는 장면에 FOM으로부터 초대받은 VIP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소문대로 굉장한 드라이버네요. WEC(세계 내구 선수권 레이스)에도 저런 한국인 선수가 나온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특히나 한국의 대현자동차 고성능차 개발 담당 부사장, 알버트의 놀란 표정을 체이스 회장이 포착했다.
“저는 반대로 서준하 선수가 자국팀 소속 차량에 오른 모습을 보고 싶군요, 하하.”
“허허,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저런 정상급 드라이버가 페라리 팀에서 신생팀으로 이적할 일이 있겠습니까?”
체이스 회장은 새로운 제조사들의 F1 유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오늘 알버트를 이곳에 초대한 것도 이들의 출전 의향을 파악하기 위함. 때마침 대현차가 관심을 보일 한국인 드라이버의 활약에 농담과 진담이 섞인 듯한 말을 던졌다.
“대현차가 페라리만큼 빠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하하.”
“...그거 참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 여태껏 대현차 직원들은 빠르게 달리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오래전부터 대현차는 F1에 관심이 없었다. 도요타와 혼다 그리고, BMW도 자금 문제에 허덕이며 철수한 마당에 F1은 쉽사리 출전하기 쉬운 무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서준하 선수가 은퇴할 시기엔 그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하하.”
F1이 침체기라거나 기술적으로 얻을 게 없다는 근거를 대며 F1에 대한 관심을 일절 보이지 않았던 알버트 부사장. 오늘 알버트가 이곳에 자리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지금 그의 말은 대현차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거 조금 있으면 F1 무대가 한국 기업들로 가득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감지한 체이스 회장이 또다시 가볍게 한 마디 던지고,
“이번 시즌에만 세 개의 한국 기업들이 타이틀 스폰서와 독점사를 요청해왔거든요.”
“오, 그래요? 한국에서도 F1이 더욱 뜨거워지겠습니다. 하하.”
지금 이 자리에서 말 몇 마디로 대현차를 F1으로 불러들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F1에 참가하는 건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투자도 필요한 사안이니까. 그럼에도 체이스 회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바에는 최선을 다했다.
‘대현차만 들어온다면 그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
사실 알버트는 대현차 내 레이스 대회 출전에 막대한 결정권을 가진 임원진이었고, 아직 공론화되지 않은 이런 소식들은 이제 다시 F1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현차를 움직이기에 충분한 권위자였으니까.
“알버트, 다음 달 F1의 새로운 엔진 논의 자리에 대현차도 나오셔서 자유롭게 의견 한 번 주시지요?”
몇 년 전과는 크게 달라진 듯한 대현차의 태도. 체이스 회장이 시작부터 참아왔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
“저런 미친!!!”
“부딪혀! 부딪힌다고!!”
급경사 헤어핀을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서준하 때문에 놀란 건 페라리 팀뿐만이 아니었다. 급감속 헤어핀을 평이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리카도의 차량을 주시하던 레드불 스태프들도 흥분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런데,
“...!!!”
본래 코스 공략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리카도의 안쪽을 파고드는 서준하의 경주차. 마치 리카도를 방호벽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것처럼 아슬아슬 옆으로 바짝 붙어 선회를 시작했다.
“어디서 저런 배짱이...”
자칫하면 급브레이킹으로 바깥으로 밀려 나가거나, 주변 차량과 부딪힐 수도 있는 서준하의 아찔한 코스 돌파. 어느덧 리카도의 옆을 나란히 달리고 있는 페라리 드라이버의 대담성이 호너를 사로잡았다.
“안 돼! 무조건 막아...!”
리카도는 타이어 교체가 필요했지만, 이번 라운드 레드불은 막누스를 우승시킬 생각이었으므로 그의 피트 스탑 복귀까지 리카도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방어선이 뚫리고 말았는데,
“막누스, 해밀턴과의 격차는?!”
“아직 피트 스탑이 끝나지 않아서..”
“추정! 추정치로 뽑으란 말이야!”
“...대, 대략 4.2초 정도로 예상됩니다!”
“젠장, 2초가 더 늘고 말았구만...!”
이제 막 피트 박스에 멈춰선 막누스와 중계 스크린을 번갈아 바라보며 호너는 안절부절못했다.
“...!!!”
신기록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던 팀의 피트 스탑이 오늘따라 너무 느려 보였다. 그렇게 막누스가 피트를 벗어날 때쯤, 서준하와 리카도가 마지막 코너를 빠져 나왔다.
“치고나와 리카도!!!”
“끝까지 막아!!!”
홈스트레치에서 또 한 번의 휠투휠 상황이 벌어졌고, 서로가 서로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가기 위해 뒤엉키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런데,
“잠깐! 리카도!!!”
화면에 표시된 리카도의 차량 속도를 확인한 호너가 리카도에게 직접 무전을 날렸다.
“지금 당장 우측으로 빠져! 비켜줘!!”
불과 몇 초 전까지 디펜스에 치중하라는 오더를 내렸던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인데,
“오히려 속도가 더 빨라졌잖아...! 멈추란 말이야!!!”
상대의 슬립 스트림을 이용하며 속도를 키워나가는 서준하와 리카도. 이는 오히려 상대가 홀로 스트레치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빠른 스피드를 내도록 부스터 역할을 한 셈이었다.
“아! 서준하가 앞차의 슬립을 이용하며 오늘 레이스 최고 속도를 뽑아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제 서준하의 앞으로 피트 레인 출구를 빠져나오는 또 다른 레드불의 경주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 대현차가 페라리 만큼 빠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 끝